우리의 물두멍 되신 예수님, (요약설교) (출애굽기 30:17~21)
우리가 읽은 말씀은 제사장들이 회막에 들어 가기전 손발을 씻기 위하여 놋으로 물통을
만들어서 재단과 회막 사이에 놓았습니다. 훗날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할 때에는 둘레가 삼십
규빗이나 되는 큰 물통이 황소 열두 마리의 형상 위에 놓였었는데 그것을 성경에서는 설명하기를
부어 만든 바다라고 했습니다.
(열왕기상 7:23~27) 또한 역대하 4:6절에 의하면 제사장이 청동의 물통안에서 몸을 씻기
위한 것이라고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30규빗이었을 때 물통이 둘레는 약 15M나 되는 커다란 물통 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 물두멍의 다리는 구리로 만들었습니다. 다른 여타의 기구는 레위인들이나
제사장 그룹들이 어깨에 맬수 있도록 고리와 띠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물두멍 만큼은 고리나 띠로 만들지 않고 놋으로 다리를 만들어서 항상 땅과 연결 되어서 물두멍을
지탱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의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구속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위에 살아 갈 때 물두멍을 소흘히 할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이 물두멍의 재료는 회막문 곁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놋 거울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매우
의미가 있습니다.
거울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 주는 것이 거울입니다. 사람들은 거울을 드려다 보면서 자기가 자기의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처럼 착각을 합니다. 그러나 제 아무리 훌륭한 거울을 들여다 본다해도 있는 모습을
그 이상 예뻐지게 해주지는 못합니다. 여인들은 자신들의 아름다운 얼굴을 비춰 줄
소중한 거울을 제사장들이 사용할 물두멍을 만들기 위해 거울을 포기합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내가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던 것을 주님을 위해 포기해 보적이
있었는지 우리는 정직히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내가 나를 포기한 사람이 많을 때 내실 있는 교회가 됩니다.
기도 할 때든지 말로써는 늘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이 땅에 살면서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듣고 싶고 좋은 평가를 얻기를 바라는 마음, 극히
세속적이고 또한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땅의 것이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날마다 수족을 씻는 의식을 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휭사를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영적인 제사장의 직분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희생제물의 피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 직분을 수행하려면 항상 손과 발이 물에 씻겨져야 합니다.
출애굽기 29:4절 말씀을 살펴보면 [ 너는 아론의 아들들을 회막문 앞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의복을 가져다가 아들에게 속옷과 겉옷과 예복을 입히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런데 물두멍에서 씻는 것이 두가지 뜻이 있습니다.
①. 온몸 전체를 씻는 행위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제사장으로 임명될 때 한번만 몸을 씻는 의식인 것입니다.
②. 매일 하나님께 나아갈 때마다 수족, 즉 손과 발을 씻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고 세레를 받는 것은 한번 제사장으로 임명 될 때 온몸을 씻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즉 이제부터는 내 뜻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만을 위해 살겠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를 건넌 사건과 똑같습니다.
즉 세례란 이제부터는 내 마음대로 살지 않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어떤 의식이나 행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세례식전에 반드시 확인할 것은 구원 받았는지, 이제부터 주님 말씀대로 살기로
결단했는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의식 절차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주 예수를 섬기고 헌신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손과 발이 항상 더러워집니다.
그래서 인생이 지저분하고 더러워 진 행위로 하나님 앞에 나가지 않기 위해서
항상 물두멍에 와서 손과 발을 씻는 의식이 필요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말씀을 보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는 모습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3:8절말씀) [ 베드로가 가로되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는니라]
“우리들이 선생님을 씻겨드려야지 어찌 선생님이 우리 발을 씻기십니까? 그렇게는 안됩니다.”
했더니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여러분. 큰 돌을 물에 던져도 가라앉고 모래알을 물에 던져도 가라 앉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나를 부인하지 않고, 나를 정결하게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크고 작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씀 드리면 자기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도 하나님을 섬길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기를 그런 사람은 기업이 없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목욕이란 이미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자, 그 다음 손 발을 씻는 행위는
이미 구원받았어도 하나님 앞에 범죄한 행위를 일컫습니다.
물두멍은 회막 문 바로 앞에 있었는데 이것의 의미는 회막에 나가는 자는 곧 백성의 일이
아닌 제사장의 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실 때 일반 백성들을 향하여 이 말씀을
주시지는 않았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을 것이니라] (마 16:24)
백성된 사람에게는 주시지 않고 제자들에게만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주를 섬긴다고 하나 나를 부인하지 않으면서 좁은길 보다는 넓은 길을 원합니다.
좁은 문보다는 큰 문을 원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고 구원 받는 것은 너무나도 쉽습니다.
또 너무 간단합니다. 가령 죽을 범죄를 범한 사람일지라도 예수 믿는 것을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에 믿으면 그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룩해지고 제사장의 직분을 감당하고 하나님의 교회와 백성들을 섬기기
위해서는 내가 성결해져야 하는데, 즉 회막 뜰에(백성이) 앉아 있는 수준에서 회막 안으로
들어가는 제사장 위치로 옮겨져 가는 성화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물두멍의 단계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 길을 걸으면서 주를 따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보면 뛰고 날아도 아직 유치한 수준이요 백성의 수준인 것입니다.
많은 일을 하나님 앞에서 감당하면서도, 주를 위해서 열심히 봉사하고 섬긴 다하면서도
자기 부인이 없는 사람은 여전히 백성의 수준에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참고, 갈라디아 5:16~21)
우리가 이와 같이 육체의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의 교회를 섬길수 있다는 것입니다.
헌금도 남보다 많이 할 수 있고, 봉사도 하고 구역장도 성가대도 할 수 있습니다.
남보다 더 많은 헌신을 드릴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21절 맨 마지막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갈5:21,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이 말씀은 우리가 구원의 반열에서 끊어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내 손과 발과 입이 여전히 옛것을 끊지를 못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가증이 여기십니다.
왜, 입으로는 주를 시인하나 내 삶으로는 주예수를 부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피는 우리의 죄의 문제를 다룹니다. 우리의 근본적인 죄에 문제를 다룹니다.
사망의 문제를 다루고, 심판의 문제를 다룹니다.
그런 반면 물은 우리의 지저분하고 더러운 것, 불결한 삶의 내용을 다룹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심령이 깨끗해지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어야 하기도 하지만
또한 물로써 씻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사도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9)
우리가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고 주님이 내 안에서 하십니다.
이처럼 내가 고백 했지만 내가 부인되지 않으면 주님께서 나를 통해서 일 하실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온전히 죽어야 주님께서 내 속에서 온전히 역사하십니다.
(참고,민수기 26:61) 아론의 아들로써의 제사장이었던 나답과 아비후의 섬김은 자기를
포기하지 않은 섬김의 대표적 케이스입니다.
즉 이들은 신분이 제사장이었지만 하나님의 방법대로 섬기지 않고 자기 식으로, 자기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겼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소에서는 하나님의 제단의 하나님의 불만을 사용해야
하는데 다른불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향을 드리려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죽었던 것입니다.
그는 고귀한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거룩한 제사장의 까운을 입었습니다. 봉사를 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방법의 수고를 거절하셨습니다.
그렀습니다, . 예수님의 피가 없이는 구속의 길이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의 피로써만 구원을 얻습니다.
따라서 물두멍이란 것은 우리를 씻는 것, 성결을 의미합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또 성령은 거룩의 영이고 성결의 영입니다.
성령을 모시고 성령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지저분한 손과 발의
더러움을 언재나 씻어야 합니다.
(참고, 시편 110:10) [ 하나님께서 저희에 요구한 것을 주셨을 지라도 저희의 영혼을
파괴하게 하셨도다]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탐욕으로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도의 응답을 받는 다 할지라도 그 영혼은 점점 병들어 간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깨끗이 씻지 않고도 열심히 주의 일을 하며, 다른 사람들을 도와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영혼은 점점 파괴해져가는 이것을 잊지 맙시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전서 9:27절에 고백하기를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을 읽어보면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여기서 절제란 것은 내가 내 스스로 자기 관리를 말함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고린도전서 6:12절 [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아무에게든지 제재를 받지 아니하리라]하셨습니다.
남이 나를 제재한 것이 아니라 내가 나 스스로를 절제함을 말씀합니다.
제 아무리 훌륭한 고급 차량이라도 제동장치가 고장난 차라면 이윽고 폐차장을 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은 보편적으로 예수를 많은 사람이 믿으나 자기를 부인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저 복 받고, 잘 되고 형통하는 것의 설교를 하면 교인들이 다 좋아합니다. 맞습니다.
분명히 복음안에는 축복이 들어있고 번성함과 부귀가 들어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 백성들에게 적용하는 것이지, 제자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은
설령 그런 것들을 얻었음에도 버립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축복권이 없어서 가난하게 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늘 매를 맞았고 피곤했고 가난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길을 따르기로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은 단순히 예수 믿고 천당가는 것만을 생각한다면 그렇게 고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제자 사명의 길을 살고져 한다면 우리는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맛을 잃은 소금일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유월절 사건을 통과 했으며
홍해바다를 건넜습니다, 그러나 이윽고 광야에 나왔을 때 그들이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애굽의 문화를
떨쳐 버리지 못하고 옛날을 그리워하고 옛 사람의 질서를 따라 갈 때
하나님은 그들을 광야 모래밭에서 모두 죽게 하셨습니다. 그런점에서 구원은 피로써
얻은 것이지만, 그 구원이 성장하고 성숙해서 하나님의 영광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범사 속에서 물두멍을 통과 하는 사건이 우리에게 없으면 우리는
일 평생 사람 냄새만 풍기다가 어느날 주 앞에 서있을때, 예수님 저를 몰라보십니까?
글쎄 나는 자네를 모르겠구만,....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습니다,
◎ 기도 ◎
아버지 하나님, 나를 부인하고 나를 포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릅니다.
때로는 기도할 때, 때로는 신앙의 훈련을 쌓을 때, 내 욕심과 내 소원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기도라는 채널을 사용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할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가 사명자의 길을 살겠다고 결단하면서도 여전히 교만함과 혈기를 붙잡고 있고,
세상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유치하고 천박한 모습을 봅니다.
아버지 소원하오니 우리가 우리를 부인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가 넓은 길이 아닌 좁은 길을 찾게 하옵시고 많은 사람이 따라가는 넓은
문이 아닌 좁은 문을 생각하면서 기쁨으로 걸을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오늘도 성령으로 주님 찾아오셔서 우리를 도우셔서 주님의 길을 능히 따를 수 있게 하옵시고,
이말씀과 기도로 능히 거룩하게 하옵소서.
- 아멘
Paul Mauriat Best 모음곡 No. 3 - Paul Mauriat Orch. -
1. Minuetto
2. Air On The G String
3. Concerto D Aranjuez
4. Ballade Pour Adeline
5. Hungarian Dance No.5
6. Penelope
7. Besame Mucho
8. Bilitis 77
9. Polonaise(Los Chacos)
10. Dark Eyes
11. Recuerdos De La Alhambra
12. Ebb Tide
13. El Condor Pasa
14. Red River Velley
15. Free As The Wind
16. Maggie
17. Il Silinzio
18. Yester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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