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당선작]-낙타 -김옥숙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돌 속의 길이 환하다
전일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함평 병어젓-박옥영
전북일보[2003신춘문예]시 부문 당선작 "왕오천축국전"
조선일보[신춘문예] 시 당선작/ ‘미꾸라지 추’자 찾기...천수호
한국일보[신춘문예 시 당선작] 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
[한라 신춘문예/시 당선작]오래된 수목원-<오형석>
강원일보 시 당선작 섬강에서
[신춘문예 詩 당선작]섬강에서- 장시우
열리지 않는 섬
꽃망울을 피어 올린 몸짓은 힘겹다
눈뜨지 못할 아침이 찾아와
나무를 흔들어 깨우고
햇귀는 그늘을 지운다
그가 손을 내밀었을 때
풀꽃은 잠시 흔들렸다
가슴깊이 물이스며
들숨 날숨이 뒤섞인 섬강은
뿌리 속으로 물이 들었다
물떼새 날갯짓 따라 흐른다
눈감으면 발목에 감기는 강물소리
그는 울음을 강바닥에 묻었다
그가 내 손을 잡았을 때
나는 달맞이꽃과 같아서
그에게 가서 입을 맞춘다
풋잠처럼 씨앗처럼.
[신춘문예 詩 당선작]심사평
예심에서 넘어온 12편의 작품 중 진유의 `풍경' 장시우의 `섬강에서' 김린의 `눈이 녹지 않는 집' 김정학의 `가벼워지는 집' 장은선의 `산골 폐교에서'가 마지막으로 남았다.
장은선의 `산골 폐교에서'는 폐교가 간직한 세부를 무리없이 담아냈으며 김정학의 `가벼워지는 집'은 집에 묻어 있는 삶의 얼룩들이 정감있게 형상화되고 있으나 후반부가 소홀했다는 느낌이다.
김린의 `눈이 녹지 않는 집'은 생의 온기가 빠져나간 현실을 밀도있게 다뤘지만 거기에 그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든다.
진유의 `풍경'은 한(생각)을 담아내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그 부족함이 없다는게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장시우의 `섬강에서'도 문제점이 없는것은 아니나 유연하고 신선하다.
신춘문예가 작품의 완벽성보다는 앞으로의 가능성과 새로운 비젼을 제시한다는 점에 무게를 두는 것이고 보며 기쁜 마음으로 `섬강에서'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이상국<시인>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동전위의 탑
- 이 영 자
달동네 언덕바지 구멍가게에서 LG25시 편의점까지
떡볶기집 지나 맥도널드 빠리바케트 건너 뛰고 붕어빵집까지
딸아이는 떼굴떼굴 굴러다니는 중입니다
자, 지금
어디론가 내처 달리는 당신 호주머니 속의 짤랑거림
그것은 동전마다 아름아름 굴리고 온 바퀴들의 볼멘 혓바닥
바퀴 사이로 휘감겼던 눈빛들이
뜨겁게 조였다 헐거워지는 소리 잠겨 있지요
울퉁불퉁 바퀴가 되기 전
한 잎의 해였고 한 잎의 달이었고
해와 달이 구름에게 먹힌 날의 막 구워낸 한 입 빵이었던
동전의 길
빵을 사먹을까? 돼지저금통에 넣을까?
고민에 빠진 딸아이와 뜨거운 이마 맞대고
자, 이제 날아올라 볼까요
까마득히
어머니 먹지 않고 입지 않고 쌓아올린 동전 위의 탑까지
팔랑팔랑
날아올라 가만히 손바닥 펴면
매질처럼 따가운 햇살의 가지 위로 벙긋벙긋 피어오른
딸아이 얼굴 한 잎 붕어빵 한 입
눈앞이 아찔합니다
더 이상 굴러 떨어질 바닥이 보이지 않는 곳입니다
[시 심사평] 삶의 구체성 위에 생각의 깊이 갖춰
마지막까지 뽑는이들 손에 남은 작품은 모두 다섯 사람이 내놓은 여섯 편
이었다.
「내 마음의 호수」, 「휴식 같은 풍경」, 「고친다」, 「하얀 바다」 그
리고 「동전 위의 탑」과 「청동 물고기」가 그것이다. 선에 오른 작품은
어느 것 없이 남다른 훈련을 거친 것들이어서 제 나름의 됨됨이가 빛났다.
그러나 신인다운 패기가 모자란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눈에 확 뜨
이는 작품을 찾기가 어려웠다는 뜻이다.
「휴식 같은 풍경」, 「고친다」, 「하얀 바다」는 모두 교과서 같은 품
격을 지닌 작품이다.
그만큼 발전 가능성이 엷다. 특히 「하얀 바다」는 아버지가 겪었을 법
한 종이 재생공장의 노동 체험과 그것을 바라보는 자식의 눈길이 잘 갈무리
된 작품이어서, 발상이 신선했다.
그러나 동어반복에 가까운 말씨는 시의 울림을 죽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작품이 지닐 바 완결성에 대한 고심이 앞으로 승패를 가를 것이다.
거기에 견주어 「내 마음의 호수」는 오히려 거칠고 들뜬 숨길이 뽑는이
들 눈에 들었다.
거침없는 시상 전개와 경쾌한 걸음걸이는 다른 이와 뚜렷이 나뉘는 가능
성이었다.
그러나 『내 마음에 작은 호수가 있어/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사람들 사
이로/ 걸어갈 때는 아주/ 조심스럽게 걷지』로 시작되는 첫머리의 긴장이
마무리까지는 이어지지 못했다.
작품이 가볍다는 느낌을 밀쳐내기에 시의 뼈대가 약했던 셈이다.
「동전 위의 탑」과 「청동 물고기」는 한 사람이 낸 작품이다. 그러면
서 다른 이들 작품에 견주어 상대적으로 흠이 적었다. 「동전 위의 탑」이
나날살이 속에서 겪은 바를 섬세하게 그리고자 한데 골몰한 작품이라면,
「청동 물고기」는 매우 급박한 숨길에다 산사 물고기 풍경에서 얻을 수 있
는 바 연상의 자유로움을 극대화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곳곳에서 읽기를 가로막는 비약이 눈에 거슬렸다.
자연스레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이 「동전 위의 탑」이었다. 삶의 구체성
에 든든하게 뿌리 내린 위에다 생각의 깊이를 갖추고자 한 몸가짐은 이즈
음 신인들이 쉬 놓치고 있었던 덕목이다.
『떼굴떼굴』과 같이 다섯 차례에 걸쳐 거듭한 첩어에다 시의 흐름을 내
맡겨버린 안이함도 엿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차 건강한 생활시로 나아갈 자질을 이 작품은 숨기
지 않았다. 당선자는 물론, 모든 응모자의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양왕용(부산대 국어교육학과 교수·시부문 평론 )박태일(경남
대 인문학부 교수·시인)
[경인 신춘문예 - 시부문 당선작] 타관에서 (박세인)
몇 번이고 물어서 갔다
저물 무렵 차는 늦게 도착했다
강원도 옥수수 술을 마셨다
잎새 우수수 떨구는 바람, 삭풍인갑다
무너진 탄촌 바라보며 저문 강물소리 들었다
여행지에서 아무 생각없이 무작정 걸었다
그 생각의 끝에 늘 두고온 사람들 있었다
추억은 잊어버리려해서 잊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무진장 쏟아지는 저 청천 하늘
별 속에도 그 사람 있었다
토방에서 중늙은이 몇 화투를 치고
나는 낮게 엎드려
두고 온 도시와 지난 생을 생각하였다
세상이 받아주지 않으면
가끔 사랑하는 것이 죄가 된다
검은 밤이 길고 길었다
강물 거센 물살 소리, 잠이 오지 않았다
허름한 여관 벽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그래도 삶이란 살아 볼만한 것이다'
그곳을 나올 때 한 번 더 보았다
[경인 신춘문예] 시부문 심사평
시에 있어 새로움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죄악이다. 새로움은 사물에 대한 인식의 문제이며 시정신의 문제이다. 사물에 대한 재인식이 없이는 새로움은 불가능한 것이며 자기 안에서의 혁신이나 실험은 엄두도 낼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새로움은 실험정신에 가서 닿는다. 뿐만 아니라 새로움은 기존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일이기도 하다. 전통에 대한 부정,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 언어에 대한 부정, 삶에 대한 부정이 새로운 시세계를 담보하는 것이다. 이번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본심에 올라온 작품들을 읽으면서 심사를 맡은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느낀 것 중의 하나가 새롭지 않다는 것이다. 오래 만난 사람처럼 혹은 오래 입은 옷처럼 편안하고 익숙한 시편들을 놓고 우리들은 고민했다. 결국 새로움이 엿보이는 시를 찾을 수밖에 없었고 다행히 다음 세 분을 최종심에 올릴 수 있었다.
'내소사, 그 어두운 전나무 숲으로'의 김선아, '다 쓸려간 모래밭이 상쾌하다'의 김해선, '타관에서'의 박세인이었다. '내소사, 그…'는 상상력의 신선함이 돋보인다. “스스로 새로워지는 나무들의 상처에선 어느새 버섯의 포자들이 자라 오르고” 같은 재생과 극복의 이미지들이 시를 읽는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시적인 분위기에 경도된 흠이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다 쓸려간…'는 간결한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시적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북채를 든 바다파도는 한치씩 올라가고발정난 갈매기의 울음소리”와 같은 빼어난 표현이 보이지만 지나치게 사소한 것이 흠이다.
심사를 맡은 두 사람은 쉽게 박세인의 '타관에서'를 당선작으로 뽑는데 합의를 했다. 이 작품은 형식의 새로움과 삶에 대한 진지한 되돌아봄이 돋보인다. “잎새 우수수 떨구는 바람, 삭풍인갑다”와 같은 신선한 표현도 이 시가 흡인력을 갖게 한다. 함께 투고된 다른 작품들도 고른 수준을 보이고 있어 저력을 짐작케 한다. 삶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바탕으로 한 수없는 부정과 긍정의 모습 또한 이 시인의 잠재력을 읽을 수 있게 하는 요소이다.
그러나 언뜻언뜻 보이는 상투성의 나락을 경계할 일이다. 좋은 시인 한 사람을 새롭게 만난 기쁨이 크다. 대성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황동규·김윤배>
경향신문[시 당선작]귀로 듣는 눈-문성해
눈이 온다
시장 좌판 위 오래된 천막처럼 축 내려 앉은 하늘
허드레 눈이 시장 사람들처럼 왁자하게 온다
쳐내도 쳐내도 달려드는 무리들에 섞여
질긴 몸뚱이 하나 혀처럼 옷에 달라붙는다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실밥을 따라 떨어진다
그것은 눈송이 하나가 내게 하고 싶은 말
길바닥에 하고 싶은 말들이 흥건하다
행인 하나 쿵, 하고 미끄러진다
일어선 그가 다시 귀 기울이는 자세로 걸어간다
소나무 위에 얹혀 있던 커다란 말씀 하나가
철퍼덕, 길바닥에 떨어진다
뒤돌아보는 개의 눈빛이
무언가 읽었다는 듯 한참 깊어 있다
개털 위에도 나무에도 지붕에도 하얀 이야기들이 쌓여있다
까만 머리통의 사람들만 그것을 털어내느라 분주하다
길바닥에 흥건하게 버려진 말들이
시커멓게 뭉개져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그것이 다시 오기까지 우리는 얼마를 더 그리워해야 하나
〈문성해〉
[시 심사평]쉬운 언어로 깊고 넓은 뜻 표현
최종심에서 심사위원들은 네 응모자의 작품에 주목했다. 안여진씨의 응모작은 언어가 맑고 신선하다. 사물을 접하는 감각도 날카롭다. 그러나 주제가 새롭지 않고 깊이도 부족하다. 게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상투적 표현에 의지하는 습관이 있다.
유승하씨는 현실을 분석하는 눈이 예리하고 필력도 훌륭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 주제도 깊고 다양하다. 이따금 사실의 묘사와 은유적 표현 사이에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이 흠이다.
김금숙씨의 응모작은 심사위원들의 눈길을 가장 오래 끌었던 작품이다. 삶의 깊은 체험이 주제와 언어 속에 드러나고 작품을 쓰는 태도가 진지하며 표현도 힘차다. 그러나 여성의 몸이나 임신과 생리에 관한 주제가 현금 시단의 유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심사위원들의 안타까움이 있었다.
당선자인 문성해씨는 경쾌한 일상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쉬운 언어로 드러내는 뜻은 깊고 넓다. 사물의 한 귀퉁이를 가볍게 건드려 의미 하나를 폭발하게 하는 이 능력은 결코 흔한 것이 아니다. 당선작인 ‘귀로 듣는 눈’에서 읽게 되는 것은 시각과 청각 간의 공감각적 환치에 그치지 않는다. 거기에는 실현되지 못한 채 무효가 되어버린 모든 선의와 희망에 대한 수준 높은 성찰이 있다. 다른 작품 ‘수건 한 장’에서도 인간의 삶과 사물이 어떻게 진정한 관계를 맺게 되는가를 감동 깊게 서술한다. 그가 훌륭한 시인으로 성장할 것을 확신한다. 당선자의 문운을 빌며 모든 응모자들의 분발을 기대한다.
<김종해·황현산>
광주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무인도 - 정동현
[광일 신춘문예당선작] 시
"펼쳐진 언어들 꿈 장래성 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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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
짙은 물빛 가까운 저녁엔 단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누이들의 냄새가 그리워진다 겨드랑이 쉰내가 조개처럼 따닥따닥 매달려 유난히 북적이는 퇴근 시간- 나는 오랜 추억의 크기만큼 좁은 섬으로 흘러 들어간다 이 사람 저 사람 할 것 없이 마을 버스 속으로 꾸역꾸역 몰려들 듯 물결에 쓸려 고래 뱃속으로 가라앉는다 고깃집 붉은 빛과 싸이키 조명 탐조등이 능숙하게 훑고 지나가는 곳마다 파도가 일렁이고 산호초 춤추는 아로마 나이트크럽 아니 아로마 노스탤지아 나이트크럽 그게 그곳의 본래 이름일게다
우리 동네 마을버스 1-2번 로얄빌딩 바이더웨이 광덕슈퍼 목이동 파출소 지나 강서 보건소에서 노선은 끝난다 늘 그렇듯 구토와 주정과 욕설로 끝나는 나이트크럽 무인도보다도 외따로 떨어진 종점 버스- 춤추던 산호초들은 어디 있을까 파도소리도 없이 적막한데 빈 손잡이처럼 흔들리는 밤의 끝 한 누이가 내게 다가와 고단한 별들의 눈썹이 새겨진 전단지 하나 건네준다.
광일신춘문예 심사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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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돈이 되지도 않고 명예가 되지도 않은 시절을 살아가면서 왜 이 지상 위에 시 쓰는 영혼들이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가에 대해서 선자들은 심사기간 내내 이야기했다. 새로운 시간들에 대한 열망, 꿈, 상처의 회복, 날개...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 선자들의 손에 최종적으로 남은 작품은 최미정, 나정숙, 정동현의 시편들이었다.
최미정의 `화성식료품'은 이미지의 전개가 탄탄하고 삶의 냄새도 곳곳에 스며 있었으나 식료품 가게 너머의 어떤 언덕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미흡하다는 생각으로 최종선에서 제외되었다.
나정숙의 `기억 저 편'과 정동현의 `무인도'를 두고 선자들은 격론을 펼쳐야만 했다. 두 작품이 분명한 장점과 결함을 한꺼번에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억 저 편'이 보기 드물게 정확한 풍경 묘사를 하고 있는 반면 그 시점이 과거지향적이라는 점이 지적되었고, `무인도'의 경우 범상한 삶의 풍경들을 자신만의 감정의 체에 걸러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데 성공하고 있으나 그 감정들이 지닌 열망과 꿈이다분히 감상적일 수 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인도'를 당선작으로 뽑은 이유는 이 시가 지닌 철저한 현재성, 자신의 삶을 따뜻한 언어의 꿈으로 치환할 수 있는 능력을 산 때문이었다. 더욱이 함께 보낸 11편의 다음 시들이 일정한 치기를 내보이고 있음에도 거기 펼쳐진 언어들의 꿈이 충분한 장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도 선자들의 눈길을 끌었다. 안정보다는 변화를 열망하는 시대적 패러다임이 선자들의 선택 행위에 내재해 있었음에도 부인할 길이 없다.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과 열정으로 삶의 막막한 풍경들에 강렬하게 부딪쳐 나가는 멋진 시인으로 성장해 나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곽재구(시인·순천대 교수) 고재종(시인)>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 두실역 일번 출입구/최정란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려진 작품은 12명이 쓴 71편이었다. 이 시편들을 읽으면서, 예비시인들이 지향하는 시의 경향이 어느 지점에 와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발상의 새로움도 있었고, 세태를 흥미롭게 반영하는 삶의 시들도 많았다.
그러나 심사자들의 관심은 누구에게나 열려져 있는 시적 대상을 개성적인 시선으로 노래하는 역량이었다.
다양한 소재들이 시적 대상이 되고 있었지만 참신한 언어감각, 선명한 이미지 조형력과 개성적인 자기 호흡법을 지닌 시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는 대부분의 시들이 신춘문예용 맞춤시를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cafe 통기타’ ‘낙타할머니’ ‘굴비’ ‘두실역 일번 출입구’ 등이었다.
‘cafe 통기타’는 통기타의 줄이 지닌 음역을 다양한 이미지로 변주하고 있는 발상 자체가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짧고 긴 호흡의 교대가 빚어내는 개성적인 리듬은 살만했다. 그러나 시를 여는 첫행의 이미지가 다음 행을 적절히 유도하고 있지 못해 시작의 적절성이 문제가 되었다.
‘낙타할머니’는 한 노파의 일상의 모습을 낙타로 형상화하고 있는 발상은 좋았으나,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기법이 너무 교과서적인 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새로운 발상에 걸맞는 새로운 이미지가 필요했다는 말이다.
‘굴비’ 역시 충분히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역량을 보이는 작품 중의 하나였다. 어머니가 엮던 굴비에 대한 추억을 섬세한 리듬과 원형적 이미지로 형상화하고 있는 점은 이 시가 지닌 강점이다. 그러나 한 편의 시가 지녀야할 구성의 집중력이 떨어져, 시가 지녀야 할 긴장감을 갖지 못한 것이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이에 비해 ‘두실역 일번 출입구’는 시의 구성력이나 언어를 다루는 감각이 뛰어났다. 뿐만 아니라 농아부부가 굽는 붕어빵을 시적 대상으로 삼아, 그들이 빵을 굽는 행위를 말을 굽는 시적 의미로 끌어올리고 있는 시선이 돋보였다.
그리고 그들과의 교감을 통해 전해지는 시적 화자의 따뜻한 인간애를 무리 없이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는데 쉽게 합의했다. 당선을 축하하며 계속적인 정진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 신경림(시인), 남송우(문학평론가·부경대 교수)
대한매일 신춘문예]시 당선작-´꽃 피는 공중전화´(김경주)
퇴근한 여공들 다닥다닥 세워 둔
차디찬 자전거 열쇠 풀고 있다
창 밖으로 흰쌀 같은 함박눈이 내리면
야근 중인 가발 공장 여공들은
틈만 나면 담을 뛰어넘어 공중전화로 달려간다
수첩 속 눈송이 하나씩 꾹꾹 누른다
치열齒列이 고르지 못한 이빨일수록 환하게 출렁이고
조립식 벽 틈으로 스며 들어온 바람
흐린 백열등 속에도 눈은 수북이 쌓인다
오래 된 번호의 순들을 툭툭 털어
수화기에 언 귀를 바짝 갖다 대면
손톱처럼 앗! 하고 잘려 나 갔던 첫사랑이며
서랍 속 손수건에 싸둔 어머니의 보청기까지
수화기를 타고 전해 오는 또박또박한 신호음
가슴에 고스란히 박혀 들어온다
작업반장 장씨가 챙챙 골목마다 체인 소리를
피워 놓고 사라지면 여공들은 흰 면 장갑 벗는다
시린 손끝에 보푸라기 일어나 있다
상처가 지나간 자리마다 뿌리내린 실밥들 삐뚤삐뚤하다
졸린 눈빛이 심다만 수북한 머리칼 위로 뿌옇다
밤새도록 미싱 아래서 가위, 바위, 보
순서를 정한 통화 한 송이씩 피었다 진다
라디오의 잡음이 싱싱하다
[대한매일 신춘문예]시 당선작-´꽃 피는 공중전화´ 심사평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시편들은 모두 만만치 않은 솜씨를 보여주었다.높낮이를 쉽게 가늠하기 힘든 작품들 중에서 당선시 한 편을 고른다는 것은 괴로우면서도 즐거운 일이기도 했다.
번갈아 작품을 꼼꼼히 읽어보고,선자들은 한여진의 ‘나의 서가’외 5편,권오영의 ‘투입구’외 4편,김경주의 ‘꽃 피는 공중전화’외 4편 등을 최종 후보작으로 정하였다.
이 세 편의 시들은 저마다 장단점이 있었다.‘나의 서가’외 5편의 시들은 평이한 서술로 진솔한 감정을 유연하게 드러냈지만,시적 수사에서 약세를 보여주었고,‘투입구’외 4편의 시들은 유전자 조작 실험쥐나 공룡알 화석 등을 통해 과학적 상상력을 독특하게 포착하고 있지만 이를 시적으로 전환시키는 데는 아직 미흡한 점이 있었다.
김경주의 ‘꽃 피는 공중전화’외 4편의 시들은 이런 약점들을 극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선자들의 관심을 끌었다.삶을 객관적으로 투시하는 시선을 절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동시에 사물의 핵심을 놓치지 않는 시적 역량이 신선하게 다가왔다.예를 들어 “서랍 속 손수건에 싸둔 어머니의 보청기까지/수화기를 타고 전해오는 또박또박한 신호음/가슴 속에 고스란히 박혀온다”와 같이 사물의 속살을 파고드는 그의 ‘꽃 피는 공중전화’는 당선시로서 손색이 없다고 판단되었다.다른 투고작의 고른 수준 또한 참고가 되었다.
최종 당선자에게 축하와 격려의 말을,그리고 아깝게 탈락한 응모자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해 드린다.또한 신춘문예가 일회성 연례 행사가 아니라 모든 시인 지망생들에게 지속적인 분발과 자기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황동규·최동호
매일신문 시[당선작]-낙타 -김옥숙
낙타의 젖은 눈썹을 본 일이 있는가 그림 속 낙타의 눈을 들여다보지 말라
낙타의 길고 아름다운 눈썹에 손을 대지 말라
천년만년 그림 속에 박제가 되어있어야 할
낙타가 고개를 돌려 당신 앞으로 걸어나올 것이다
낙타가 당신에게 올라타라고 말을 건넨다
언젠가 낙타의 등에 올라타고
한없이 사막을 건너갔던 것처럼 낙타의 익숙한 등
불룩한 혹을 쓰다듬을 것이다 당신은
지쳐보이는 식구처럼 낙타가 안쓰러울 것이다
선인장들은 하늘에다 무수한 가시를 박아 넣고
메마른 하늘을 마구 찔러대고 있다
선인장의 눈과 귀는 뿌리에 있지 낙타가 말한다
캄캄한 지하에 눈과 귀를 박아 넣고
수만 미터 아래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를 찾아내는 거야
내 몸 속의 물을 꺼내 마셔, 괜찮아
낙타의 목을 끌어안고 우는 당신
낙타의 몸에서 물을 꺼내 마신다
모래바람이 불어와 낙타의 몸을 이불처럼 덮는다
당신은 눈물을 훔치며 그림 속을 걸어나온다
당신의 몸 속에 들어온 낙타 한 마리
문을 열면 모래 바람이 거세게 불고
당신의 늑골 속으로 기억 속으로 모래가 쌓이는 소리
당신은 몸 속의 낙타 한 마리 거느리고
사막을 건넌다 그림 속의 낙타는 눈썹이 길다
[심사평-시적상상력, 서사적 밀도 뛰어나]
본심에 오른 작품 중에 논의의 대상이 되었던 작품은 「철탑」, 「머물어가는 사람들」, 「옻나무 숲으로 들어가는」, 「고서점에서」, 「결합」, 「매직아이」, 「곶감」, 「월전리」, 「어린골파」, 「낙타」, 「말이 그려진 방석」, 「지구촌 오지를 가다」, 「사월」, 「살꽃이 피다」, 「아리랑성냥」, 「홍인」, 「외딴묘지」, 「재봉틀」 등이었다.
모두들 그만그만한 수준을 지닌 작품들이었기 때문에 확실하게 이것이다라고 집어내기엔 어려움이 따랐다. 그러면서도 최후까지 남은 작품은 「살꽃이 피다」, 「사월」, 「말이 그려진 방석」, 「낙타」,「 어린 골파」, 「월전리」였다.
어린골파는 작품구성이나 서정적 처리가 가장 짜임새 있는 작품이었으나, 함께 투고한 다른 작품들이 편차가 심해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였다. 「말이 그려진 방석」과 「살꽃이 피다」는 두 작품 모두 나름대로의 어법을 지닌 독특한 감수성의 소유자라 생각되었다.
그런데 이것 이외의 작품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이미지의 부자연스런 연결이 마음에 걸려 고심끝에 제외시켰다. 「월전리」는 싱싱한 감각과 활달한 감수성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낙타」와 함께 당선작으로 하고 싶을 정도였으나 한 작품을 선택해야하는 신춘문예의 응모방침에 따라 부득불 빠지게 된 아쉬움이 남는다. 시적상상력과 서사적 밀도가 더 뛰어났다는 점이 「낙타」가 당선작으로 선정된 이유였다. 더욱 정진한다면 모두에게 좋은 결실이 있을 것으로 믿는다.
권기호(시인, 경북대교수)
정호승(시인, 현대문학북스대표)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작 - 돌 속의 길이 환하다
/신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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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심에 오른 투고자는 6명이었다. '오리병아리'의 이태규,'형벌'의 유행두,'겨울 과메기'의 김기찬,'겨울 측면'의 탁명주,'가스통이 사는 동네'의 안여진,'돌 속의 길이 환하다'의 신정민이 바로 그들이다.
이 시들은 전체적으로 수준이 퍽 고른 편이었다. 특히 추상과 관념에서 벗어나 현실적 삶의 구체에 깊고 진솔하게 뿌리를 내린 시들이 많아 퍽 고무적이었으며 선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오리병아리'는 결말이 식상하다는 점에서,'겨울 과메기'는 평이한 묘사와 설명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겨울 측면'은 절박하거나 간절하지 않다는 점에서,'가스통이 사는 동네'는 체험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먼저 제외되었다.
결국 유행두와 신정민의 작품이 남게 되었는데,이 두 사람의 작품은 어느 작품이 당선되어도 당선작으로서 손색이 없다 싶었다. 그러나 유행두의 '형벌'은 '지구 끝에서/아내가 붕어빵을 굽고 있다'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감각적인 참신성이 돋보였으나 내용보다 형식에 치중한 나머지 읽고 나서 허전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신정민은 고른 기법과 다양한 시야를 통해 축적된 시적 역량을 한꺼번에 보여주었다. '한 노인이 사물함 속으로 들어간다' 등의 구절에서는 상상력을 현실적으로 구체화시키는 개성적 힘이 있었다.
특히 당선작으로 결정한 '돌 속의 길이 환하다'는 시는 결국 은유로 이루어진다는 시의 기본을 가장 충실히 지키고 이해하고 있는 시로 여겨졌다.
시인 허만하·정호승(예심:시인 박태일·최영철)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심사평
시의 기본 정신 가장 충실해
최종심에 오른 투고자는 6명이었다. '오리병아리'의 이태규,'형벌'의 유행두,'겨울 과메기'의 김기찬,'겨울 측면'의 탁명주,'가스통이 사는 동네'의 안여진,'돌 속의 길이 환하다'의 신정민이 바로 그들이다.
이 시들은 전체적으로 수준이 퍽 고른 편이었다. 특히 추상과 관념에서 벗어나 현실적 삶의 구체에 깊고 진솔하게 뿌리를 내린 시들이 많아 퍽 고무적이었으며 선정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오리병아리'는 결말이 식상하다는 점에서,'겨울 과메기'는 평이한 묘사와 설명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겨울 측면'은 절박하거나 간절하지 않다는 점에서,'가스통이 사는 동네'는 체험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먼저 제외되었다.
결국 유행두와 신정민의 작품이 남게 되었는데,이 두 사람의 작품은 어느 작품이 당선되어도 당선작으로서 손색이 없다 싶었다. 그러나 유행두의 '형벌'은 '지구 끝에서/아내가 붕어빵을 굽고 있다'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감각적인 참신성이 돋보였으나 내용보다 형식에 치중한 나머지 읽고 나서 허전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신정민은 고른 기법과 다양한 시야를 통해 축적된 시적 역량을 한꺼번에 보여주었다. '한 노인이 사물함 속으로 들어간다' 등의 구절에서는 상상력을 현실적으로 구체화시키는 개성적 힘이 있었다.
특히 당선작으로 결정한 '돌 속의 길이 환하다'는 시는 결국 은유로 이루어진다는 시의 기본을 가장 충실히 지키고 이해하고 있는 시로 여겨졌다.
시인 허만하·정호승(예심:시인 박태일·최영철)
전일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 함평 병어젓-박옥영
1
이 새 저 새 해도 먹새가 으뜸이라
고흥 진석화
낙월도 백하 영암 모치젓
강진 꼴두기 함평 병어젓
푸욱푹 삭아
짭짤하게 간이 들어도
바다를 끼고 사는 제 어미 품속
에 자라서
입맛이 다 다른 법이라
2
오늘이 벌써 칠일이니
설장이 서겠네
한창 병어젓, 엽삭젓 맛이 들겠네
칼칼한 겨울비 내리는 장터
해 지기 전부터 장작불 지필 것
이네
평생 보따리 챙겨들고 살아
더러 모나고 휘어졌지만 억척스
레 살아남은 얼굴들
온 나절 선짓국 설설 끓다
병어젓 한 쪽지에 간 맞추며
훌훌 막걸리 들이켜 불을 쬘 것
이네
파장한 시장 모퉁이
구구절절 마지막까지 지키고 서
서
수더분한 손매로 몇 십 번 손을
잡았을
온갖 자식자랑 늘어놓는 목숨들
아, 설 대목 바쁜 틈에도
짭짤한 겨울비 내리고
장바닥 여기저기 퍼 놓은 장국냄새
아직 그리움 버리지 않았을 게고
오랜 근심에 삭아 골골한 할머니
무릎 앞
비좁은 틈새로 꾸역꾸역 파고
들어와
갖은 흥정에도 저렇듯 넉살좋은
병어새끼들
아직 싱싱하니 설 밑천이 되겠네
철퍼덕 앉은 병어 몇 마리
인사성 밝은 뉘 집 새끼 만나자
도톰한 손바닥들 탁탁 치며
금방이라도 팔딱 뛰어오를 듯
뛰어오를 듯
3
비 오는 함평장터
입심 좋게 타던 장작은
삭아들수록 옹골찬 불담이 되고
함평 병어젓은
뼈마디 살점 하나 하나
푸욱푹 삭아야 제 맛이지
겨울엔 더러 비가 내려야 제 맛
이지
시 심사평/ 나희덕
30대 중반 이상의 응모자가 많아서인지 전체적으로 젊고 참신한 시보다는 삶에서 얻어진 경험이나 깨달음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시들이 주조를 이루었다.
발상과 표현의 탄력성이 약한 대신 차분하고 진솔한 어법을 보여주는 시들의 미덕이 나름대로 있기는 하지만, 신인을 발굴하는 신춘문예에서 이런 현상이 그리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본심에 올라온 시들 중에서 최종적으로 선자의 손에 남겨진 것은 박옥영, 김희철, 이지담, 장민하, 김영기의 시였다.
김희철의 시는 묘사 속에 서사를 녹여 넣어서 인상적인 이미지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지나친 생략이나 비약이 시의 서사적 구조를 모호하게 만들고, 전체적인 의미보다 부분적인 언어를 다듬는 데 공력을 들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이지담의 시는 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아 시상을 차분하게 이끌어가는 힘이 있지만, 다소 작위적이고 어색한 표현이 종종 눈에 띈다. 주관적인 의미 부여가 좀더 보편성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장민하의 시는 어조가 활달하고 생동감이 느껴지는 게 특장이지만, 산만하게 흩어져 있는 시상을 좀더 압축하고 정제했으면 좋겠다. 김영기의 시는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만나 삐걱거리는 내면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 삐걱거림을 더 깊이 내면화하면서 문학적 수련을 충분히 해나갔으면 한다.
당선작으로 뽑힌 박옥영의 `함평 병어젓'은 향토적 정감과 자연스러운 입담으로 설 대목의 장날 풍경을 맛깔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시에서 푸욱 삭아 제맛을 내는 것은 함평 병어젓만이 아니다. 시장에 목숨을 붙이고 살아 숨쉬는 모든 존재들이 함께 부대끼는 모습은 아름답고 훈훈하다. 그러나 성찰적인 성격이 강한 다른 시들에서 깨달음이 너무 직설적으로 표현되거나 모호한 관념에 머무르고 있는 시구들이 발견되곤 한다.
일정한 상투형에 따라 시를 의도적으로 만들기보다 시적 대상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숨결과 리듬을 살려낸다면, 그의 시가 좀더 새로워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번 당선이 그런 거듭남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나희덕 (시인^조선대 교수)
전북일보[2003신춘문예]시 부문 당선작 "왕오천축국전"
왕오천축국전
지금도 무릎이 시큰거리느냐
천 삼백 년이면 불심 강한 이도 한 수 접고 가는 길
어쩌면 너도 천축(天竺)서 관절 꺾고
절 마당 목욕탕인냥 푸욱 담그고 싶었겠지
북녘땅 접어들 때엔 미처 예측 못했겠지
살아 있는 부처 만나기 위해 떠났던 기약 없는 길이었기에
다들 흑백사진 속 표정 없는 얼굴과
써금써금 해진 활자 이야기로만 기억하지만
너만은 또렷이 알고 있지
총령(蔥嶺) 거쳐 오대산 한 달음에 달려오던 발길이
꼬이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지
중국 공안에 쫓기던 어린 눈동자
고향이 함흥이랬지
단속 피해 신발만 챙겨든 채
훈춘 화룡 거치면서 몸은 숨 죽이는 일에
더 빨리 익숙해졌다지
장춘행 기차에서
매운 기침으로 쏟아지며 안겼을 때
네 몸은 후끈 달아올랐다지
부처님 진신사리 접했을 때보다
예정에 없던 일이라 변변히 옷가지도 못 챙기고
도문 국경* 저편에서 물끄러미
강 이쪽으로 씁쓸히 시선만 던지던 아우여!
돌아오지 않는 다리 안으로
성큼, 건너 설 때는 언제인가
이 땅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부처 때문인가, 꽃제비 때문인가
그도 아니면 무심한 우리 때문인가
오늘도 목숨을 승인 받기 위해
연변, 길림, 용정으로 떠돌면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혜초, 내 어린 아우여!
* 북한과 중국의 국경 사이에 있는 다리로 이 다리를 통해 경제와 인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진다.
/장창영(2003전북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자)
[2003신춘문예]시 부문 심사평
전반적으로 시의 수준이 높았다. 다들 엇비슷해서 그런지 우뚝하게 빛과 향기를 발하는 수작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과거와 비교하면 주제와 어법이 다양해진 것은 보기 좋았지만, 길이가 길어지고 말이 많아진 것은 별로 좋게 보이지 않았다.
꼭 필요해서 길어졌다고 보기보다는 손길과 생각이 거칠어서 간추려지지 못한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 시를 사랑하는 일은 말을 사랑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아껴 고르면서 부심하지 않는다면 좋은 글을 기대하기 어렵다. 부심해서 고른 말로 이룬 시는 전체와 세부가 모두 방만하지 않은 법이다.
유희수, 김일영, 이광찬, 최용만, 장창영 제씨의 작품들을 남겨서 거듭 읽었다. 저마다 귀한 장점이 있는 개성적인 시들을 보내셨다.
장점과 단점을 저울질하여 마지막에 남긴 작품은 ‘산수유’(최용만)와 ‘왕오천축국전’(장창영)이었다. 전자는 개성적인 어법이 서사적 소재와 만나 빚어낸 아름다운 작품이었으나, 통일적이고 일관된 주제 효과를 거두는 데 부족함이 보였다.
동봉한 다른 시들도 고른 수준을 보여주었고, 특히 풍자와 알레고리의 방법이 돋보였는데, 역시 전자와 같은 단점을 나누어 가지고 있어 아쉬웠다.
후자는 선에 오른 작품들 가운데 가장 무거운 주제를 다룬 시로서, 비교적 침착한 어법과 안정된 서정시의 감각, 그리고 시대를 넘나드는 상상력을 보여준 작품이었으나 또한 세부에 문제가 없지 않았다.
숙의 끝에 ‘왕오천축국전’을 당선작으로 고른다. 천삼백 년 전 머나먼 구도의 길을 떠난 조상을 상상의 묘법에 기대어 오늘의 아우로 바꾼 기지와, 아우의 방황과 그에 대한 연민이 결국 우리 겨레의 묵은 염원으로 연결되는 스케일, 그리고 동봉한 시들이 뒷받침하는 다양한 시적 고민과 탄탄한 언어적 능력를 사기로 한 것이다.
번번히 낙선의 쓴 잔을 들면서도 꾸준히 시의 길을 다져온 장창영씨의 당선을 축하하며, 아울러 선에 오르지 못한 분들께 간곡한 위로와 격려의 뜻을 전한다.
/최승범(전북대 명예교수, 시인)
/이희중(전주대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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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신춘문예] 시 당선작/ ‘미꾸라지 추’자 찾기...천수호
●옥편에서 ‘미꾸라지 추(鰍)’자 찾기.....천수호
도랑을 한 번 쭉 훑어보면 알 수 있다
어떤 놈이 살고 있는지
흙탕물로 곤두박질치는 鰍
그 꼬리를 기억하며 網을 갖다댄다
다리를 휘이휘이 감아오는
물풀 같은 글자들
송사리 추, 잉어 추, 쏘가리 추
발끝으로 조근조근 밟아 내리면
잘못 걸려드는
올챙이 거머리 작은 돌맹이들
어차피 속뜻 모르는 놈 찾는 일이다
온 도랑 술렁인 뒤 건져올린
비린내 묻은 秋는 가랑잎처럼 떨구고
비슷한 꼬리의 (송사리)추, (잉어)추, (쏘가리)추만
자꾸 잡아 올린다.
(편집자주:송사리추, 잉어추, 쏘가리추는 원래 한문 글자로 표기해야 하나 컴퓨터 한자의 제한으로 한글로 대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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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문예] 시 당선소감-심사평
◆당선소감/ “까마득한 시의 고고학 속으로…”
국그릇에 드나드는 숟가락이 국맛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내 시가 아직 맛을 알지 못하듯이. 그러나 숟가락 끝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이 그리워 나는 자꾸 시 속으로 몸을 담근다. 그릇 안의 온기만큼만 몸을 녹이고 난 또 국을 데운다.
시를 사랑하느라 견제하는 법을 놓쳐버린 건 아닌지, 내 기억을 갖고 있는 숟가락과 내 체온을 갖고 있는 국그릇을 번갈아 쳐다본다. 참, 많은 그릇들을 채운 것 같았는데 결국은 비워져야 할 것들이었다. 시를 쓰는 것은 끊임없이 비워내는 국그릇과 같아서 자꾸 숟가락을 퍼올려 씹어도 보고 삼켜도 본다.
가야할 길이 멀다. 몇백 년이 지나도 눈·코·입이 그대로인 시, 피부의 탄력이 느껴지는 시, 팔뚝의 푸른 동맥이 푸릇푸릇 드러나는 시의 고고학 속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가다가 길을 잃지 말라는 당부의 소리가 들린다. 지도해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 드리며 부족한 시를 세상으로 밀어내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린다. (천수호)
▲1964년 경북 영천 출생 ▲대구 계명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재학중
◆ 심사평/ 긴장된 시적 질서·패기 탁월
신춘문예가 ‘프로신인’을 배출하는 제도라면, 가장 중시되어야 할 요소는 그 신인의 프로로서의 가능성일 것이다. 이 가능성은 때로 작품의 완결성이 미흡할 경우에도 거칠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수가 있다. 작품의 질서가 주는 조화에 매료되어 그 뒤의 힘찬 에너지를 놓친다면, 심사자는 두고두고 아쉬움에 머무를 수 밖에 없다. ‘옥편 속에서 <미꾸라지 추(鰍)>자 찾기’ ‘오래된 부채’ 외 3편의 천수호씨와 ‘못은 나무의 역사를 만든다’ 외 4편의 김형미씨는 이같은 아쉬움을 처음부터 걷어내 준 분들로 높은 평가에 값할 만 하다. 당선자가 된 천씨는 긴장된 시적 질서와 패기 양면에서 탁월한 재능과 힘을 지닌 것으로 보이며, 김씨 역시 패기가 대단하고 대담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지하철 역에서’ 외 3편의 윤석정씨, ‘석모도 민박집’ 외 4편의 안현나씨도 새로운 시각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그들만의 언어로 그것을 표현해내는 능력이 기성시인을 차라리 앞서는 면이 있다. 당선자, 그리고 당선을 양보한 김씨의 창의력을 다시한 번 가슴에 새기며, 앞으로의 활동을 주목하고 싶다. (황동규·시인, 김주연·문학평론가)
한국일보[신춘문예 시 당선작] 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
김일영
햇빛들이 깨어져 모래알이 되고
조개들은 그 빛의 알갱이로 집을 지어
파도에 마음을 실어 보냈다가
다시 불러들이던 섬
밥 묵어라
어둠이 석양 옷자락 뒤에 숨어
죄송하게 찾아오는 시간,
슬쩍 따라온 별이
가장 넓은 밤하늘을 배불리 빛내던
달빛 계곡 꿈을 꾸면
쪽배가 저보다 큰 텔레비전을 싣고
울 아버지 하얗게 빛나는 이빨을 앞장세워 돌아오듯
이제 다친 길을 어루만지며 그만 돌아와
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
여린 삐비꽃을 씹으며
애들 소리 사라진 언덕에 앉아 있으면 석양은
머리가 하얀 사람들이
애벌레처럼 담긴 마당에 관절염의 다리를 쉬다 가고
빌려서 산 황소가 다리를 꺾으며
녹슨 경운기 쉬고 있는 묵전을 쳐다 보는 섬으로
늙은 바람이 낡은 집들을 어루만져주는 고향
그대가 파도소리에 안겨 젖을 빨던
그 작은 섬으로
*묵전: 묵혀두어 잡초가 무성한 밭
[신춘문예 시 심사평] 특별한 안목·가능성 높이 평가
예심 과정 없이 우리는 응모작 수천 편을 직접 다 읽어야 했다. 이렇게 많은 응모작 앞에서 우리는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신춘문예’라는 아름다운 계절병이 도지고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읽혀지기를 원하는 시의 의지가 폭넓게 퍼져 있다는 것에 경이감과 함께 의아스러움을 느낀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시적 리터러시가 높다 하겠다.
이는 시가 과거의 유물이거나 소수 마니아를 위한 장르로 치부되고 있는 세계 여러 나라의 경우와 달리, 우리가 이례적으로 누리고 있는 시의 축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 분에 넘치는 시의 복지가 한낱 거품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응모작들을 읽어가는 동안 떨쳐버릴 수 없었다는 것도 우리는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응모작의 태반이 이것도 시라고 생각하고 쓴 것일까 하는 당혹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워드 프로세서의 보급으로 곧바로 눈 앞에 뜨는 활자체가 시 아닌 것도 시처럼 보이게 하는 착각을 주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시를 너무 쉽게, 혹은 함부로 쓴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엇다. 아니면 지금의 우리 삶이 그렇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최소한 어떤 것이 시이기 위해서 가져야 할 제한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시를 이렇게 쓸 수밖에 없는 어떤 내적 필연성을 갖고 있는가? 이 두 물음을 견딘, 김일영씨의 ‘삐비꽃이 아주 피기 전에’와 고경희씨의 ‘겨울단상’, 그리고 차주일씨의 ‘삼베옷에 밴 땀내’를 최종심에 놓고 우리는 고심하였다.
차주일씨의 ‘삼베옷…’은 삶에서 우러나오는 체험의 심도가 있어보인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꾸며서 쓴 것 같지 않다는 것도 장점으로 지적되었다. 그러나 시가 어떤 시상을 향해 응축되기보다는 풀어져 있으며 그것의 구성에 있어서 다분히 평면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고경희씨의 ‘겨울단상’은 그의 다른 시편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전체적으로 시를 유지시키는 고른 수준을 획득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
자신의 어떤 정신적 외상과 관련된 듯한, 어딘지 병적인 상흔들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것을 시의 무늬로 그려나갈 줄 안다는 점도 돋보였다. 그러나 그의 시가 단아하고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 우리를 불안하게 하였다. 그것은 금방 소품주의(이것은 시가 짧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의 한게에 안주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완성도는 다소 떨어져 보이지만 지금 씌어진 것 그 이상의 시, 호흡이 긴 시를 쓸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 때문에 우리는 김일영씨를 당선자로 결정하는 데 동의하였다.
‘슬쩍 따라온 별이/ 가장 넓은 밤하늘을 배불리 빛내던’과 같은 구절에서 보듯 그는 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이 되게 하는 특별한 안목을 터득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 시의 후반부나 그의 다른 시편에서 드러나듯 언어의 과부하가 걸려 시적 인식이 비전도체처럼 막혀버리는 과욕을 앞으로 그가 조절해야 할 것이다. 정진을 바란다.
/심사위원=김광규 정희성 황지우
[한라 신춘문예/시 당선작]오래된 수목원-<오형석>
뿌리의 생각들이 하늘을 이고 있다
이곳에선 오래된 바람이 나무를 키운다
누구나 마음 한구석 풀리지 않는 의문 하나씩 갖고 있듯
나무는 잎사귀들을 떨어뜨려 그늘을 부풀게 한다
볕이 떠나기 전에 오래된 바람은 칭얼거리는 나무를 타이르고
흙이 부지런히 물질을 서두르는 동안 뿌리가 생각을 틔우는지
다람쥐들이 가지를 오른다, 햇볕의 경계에서 숨은 그림을 찾듯
나는 발걸음을 멈추고 그들이 흘리는 소리를 줍는다
나무의 숨결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바람은 손끝이 저리도록 열매를 주무른다
그때마다 잎사귀들 웃음소리가
숲이 안고 있는 침묵의 당간지주를 흔들었다
나무가 발끝을 세워 마른 솔방울을 떨어뜨리는 사이
지나온 시절 앙다물고 뭉쳐있는 마음의 응어리를 가늠해본다
여물지 못한 생각을 방생해야겠구나
숲에 와서 가슴 한켠에 나무 하나 심는다
열매가 익고 있는 소리들이 새들의 귀를 씻는 시간,
해가 지면 수목원은 고여있던 생각들을 태워
하늘로 오르는 길로 벌건 잉걸을 뿜어 올린다
많은 작품들을 읽었다. 문학의 위기 또는 죽음이라는 풍문이 끊임없이 떠도는 세태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이 아직도 밤을 지새며 자신의 영혼을 백지장에 새겨놓고 있다는 사실의 확인이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순수하지 못한 욕망에 의하여 요행을 바라 영혼을 회칠하고 있는 이들도 더러 있지나 않은지 가슴 한 켠이 무거운 심정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만큼 정성을 기울인 작품들 못지않게 요령부득이한 작품들과 난삽한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 작품들 또한 많았다는 얘기다.
고금순 김양희 신유야 윤정 오형석 등 제씨의 시편들이 나름대로 주목을 끌었다.
그것들은 각기 안정된 시적 짜임과 탄탄한 전개, 소재 처리의 깔끔함 등을 보여주고 있어 제씨들의 오랜 시작과정을 증거해주고 있었다. 제씨의 시편들은 그러나 동시에 이미지 직조가 불철저한 부분이 있거나 또는 주제의 심도가 약하기도 하고 때로는 불투명한 표현들의 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혐의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김양희의 ‘꿈꾸는 자벌레’와 오형석의 ‘오래된 수목원’이 끝까지 남았다. 두 작품 모두 시적구조가 탄탄하고 이미지의 전개가 자연스러우며 주제의식 또한 뚜렷하여 다른 응모자의 시편들에 비해 얼마간 돋보였다.
그러나 심사란 배제의 원리에 있는 것, 오랜 고민 끝에 김양희의 경우 결말이 너무 확실하고 소박하다는 점이 마음에 걸려 오형석의 ‘오래된 수목원’을 당선작으로 밀기로 했다. 정진을 빈다.<시인>
동시 당선작 및 심사평
매일신문 동시 당선작-배꼽-김봄씨
[부산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 사다리/윤희윤
조선일보[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문 .......... 임경림
한국일보[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손톱끝에…
매일신문 동시 당선작-배꼽-김봄씨
[당선작]
엄마랑 목욕탕 가서 물거품이 뽀글거리는
온탕에 들어갔을 때
내 동실한 배 한 가운데
작고 예쁜 것
동그랗게 웃던 그것
엄마와 내가 한 몸이었을 때
묶여 있다가
이 세상 나올 때
나뉘어진 것
혼자서도 잘 크라고
맨 처음 열어준 문이었다지
나 속상할 때
혼자 집을 보다 슬그머니 무서울 때
문득 만져지는 너
용기 잃지 말라고
엄마 대신 따스하게
나를 감싸주는 너.
[심사평-적절한 시어선택...연계성 뛰어나]
심사를 하면서 중점을 둔 기준은 `소재의 참신성'과 `표현의 독창성' 그리고 `동시로서의 눈높이' 등이었다. 이런 관점으로 응모작품 전체를 읽고 난 다음, 시로서의 격식을 갖추고 있으면서 동시의 특성을 제대로 살린 작품 네 편을 골라 최종 심사대상으로 삼았다. 이원락씨의 `나는 날마다 자란다'는 시의 격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으며 시적 표현도 뛰어났으나, 소재 선택이 진부하다는 점이 흠이었다. 박성우씨의 `미역'은 마른 미역을 통해 유추한 몇 가지 사실 등을 시로 형상화한 능력은 돋보였으나, 역시 소재의 참신성이 떨어지고 주독자인 어린이들의 공감대를 얻기에도 무리가 가는 작품이었다.
김경옥씨의 `숲속에서'는 시어의 함축성과 이미지를 뚜렷이 드러내는 상황전개 등이 돋보였으나, 시에 담긴 메시지가 분명하지 못한 것이 결점이었다. 김봄씨의 `배꼽'은 우선 소재가 다른 작품과는 차별성이 있었다. 그리고 `배꼽'을 통해 엄마와 나와의 관계 지움이나, 시어 선택의 적절성, 각 연 구성의 연계성 등이 돋보였다. 또한 함께 보낸 다른 세 편의 작품과 함께 이 작품이 동시로서의 눈높이를 아주 잘 맞추고 있으며, 훌륭한 동시작가로서의 잠재능력을 충분히 지니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김봄씨의 `배꼽'을 당선작으로 결정하면서 축하와 함께 앞으로 동시인으로 대성하기를 기대해 본다.
권영세(아동문학가)
[부산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 사다리/윤희윤
한 발 한 발
차근차근 오르렴
나는 괜찮으니 마음 놓고 오르렴
키다리가 되어
높은 벽에 이마라도 잇대어
계단이 되어주고 싶은 아버지
사다리는
우리들 아버지 같다
높은 벽에 이마를 붙인 듯
두 발을 땅에 묻은 듯
다 오른 뒤에도 그 자리에 그냥 서 있다
내려오기
더 힘들다고
한 발 한 발 조심조심
등을 딛고 내려오라고 그 자리에 그냥 서 있다
[부산일보 신춘문예] 동시 심사평
개성·건강미 돋보인 수작
금년 동시 응모작에는 특히 우수작품이 많았다. 전국 각 지방에서 고루 응모하였고,예년보다 편수가 많았으므로 기대 속에서 당선작을 뽑았다.
작품을 읽으면서 초심자들에게 일러두고 싶은 부탁은 어린이를 바라보는 입장에 서지 말고 아주 어린이가 돼서 소재를 다루어 달라는 것이다.
동심의 본질을 뿌리로 한 점이나,소재의 참신성이나,시어의 선택이나,표현의 기능에 있어 이들 작품은 상당한 수준에 있었다.
그러나 굳이 말을 곁들이자면 '엄마'는 교훈을 너무 드러내었고,'봄학교의 새학기'는 반짝이는 재치가 있으나 감각에 치우친 느낌이었다. '김치 꺼내 먹던 날'은 전통생활을 담은 가작이었으나 내용이 늘어진 느낌이었고,'쌍둥이 동생'은 끝 연의 비유가 자연스럽지 않았다.
이런 점을 살피고,많은 토론 끝에 유희윤의 '사다리'를 당선작으로 결정하였다. 이 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다.
같은 어버이지만 아버지는,어머니보다 찬양의 대상이나 시의 소재에서 멀리 있어 왔다. 동시의 근원이 되어 준 전래동요에서부터 그러했다. 오늘에 와서 아버지는 어머니 노릇을 겸하고 있다. 전날의 아버지는 엄하고 무서운 존재였으나 오늘에는 엄마보다 자상한 아빠가 많다. 마땅히 찬양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 당선작은 개성과 건강미가 돋보인다. 내가 목적하는 성공에 이를 수 있도록 아버지는 사다리가 되어 준다. '나는 괜찮으니 차근차근 오르렴'하는 말씀에서 얻는 감동이 또한 크다.
동시인 신현득·김종상
조선일보[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문 .......... 임경림
오래 닫아만 둔다면
그건 문이 아니야,
벽이지.
열기 위해
잠시 닫아 두는 게 문이야.
벌서는 아이처럼
너무 오래
나를 세워 두지 말았으면 좋겠어.
본래 하나였던 세상,
나로 인해 나누어진다는 건
정말 슬픈 일이야.
안과 밖이
강물처럼 만나
서로 껴안을 수 있게
마음과 마음이
햇살 되어
따뜻이 녹여줄 수 있게
이제 그만
나를 활짝 열어주었으면 좋겠어.
조선일보[신춘문예] 동시 당선소감-심사평 (2002.12.31)
◆당선소감/ “잃어버린 신화를 좇아 지느러미 달게돼 기뻐”
마음 속, 어두운 동굴의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돌아앉아서, 내가 사랑하는 해를 몹쓸 누군가가 훔쳐가 버린 탓이라고 중얼거리며 엄마 잃은 아이처럼 오랫동안 야위고 외로웠던 적이 있다.
따뜻한 손길 한 번만 뻗치면 사르르 무너져 내릴 그 문이 왜 그리도 무겁고 두려웠던지. 벽처럼 세워두고 문을 얼마나 외롭게 만들었던지. 아파하는 나를 보면서 어쩌면 문이 나를 더 아파했는지도 모른다. 오래 벌을 세워두었던 지난날의 문에게 사과한다.
아이들 속에서 날마다 희망을 만난다. 우주로 통하는 비밀의 문이 활짝 열려있는 그들만의 세계를 만날 때마다 우울하게 눌러붙은 마음의 때가 한 겹씩 벗겨지고, 무거운 상념들이 날개를 달고 반짝인다.
자유롭게 헤엄치는, 그들의 눈과 귀가 그 밝고 따뜻한 본성을 오래도록 간직하게 해주고 싶다. 그들의 마음 속에 살아있는 신화의 힘으로, 세상은 여전히 우리에게 아름답고 소중한 무대이지 않은가.
잃어버린 신화를 좇아 열심히 헤매일 수 있게 지느러미를 달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작가콜로퀴엄 여러 문우들과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임경림)
▲1961년 경북 고령 출생 ▲200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현재 글짓기교실 운영
◆심사평/ 뚜럿한 메시지·완벽한 구도 돋보여
올해 동시부문 응모자는 212명으로 작품수로는 1260편이나 된다. 이 가운데서 1차로 54명의 응모작품을 걸러냈다. 멀리 아르헨티나와 북미에서 날아온 응모작도 섞여 있었다. 2차로 10명의 응모작품을 간추려냈다. 최명란(진주), 허영란(성바오로딸 수녀회), 유미희(천안), 황지혜(서울), 윤영선(서울), 김제일(충주), 박소명(군포), 최귀숙(서울), 박정은(익산), 임림(대구)씨들이 그들이다. 이 가운데엔 지난해에 최종심까지 올랐던 분도 끼어있다. 이 분들은 평균 5편씩 응모해 고른 수준을 보여주면서 만만치 않은 역량을 과시하였다.
당선작이 된 임림의 ‘문’은 고운말 예쁜말의 단순조합이 아닐뿐더러, 귀엽고 앙징스러운 풍경의 묘사로 끝난 것도 아닌, 의식이 살아있는 시이다. 읽어보면 뚜렷한 주제가 있음을 누구나 감지할 것이다. 동시라는 어휘에 아이 동(童)자가 있다고 해서, 시적 요건을 갖추지 아니한 채로, 언어의 순열조합 같은 짜깁기 형식의 말장난을 동시라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임림씨의 ‘문’은 그렇지 않다.
어린이의 눈으로 보아도 “‘오늘날 우리 삶터의 안타까운 상황을 노래했구나”하는 것을 능히 알 수 있도록, 구도가 완벽하고 구성이 치밀하며 메시지가 분명하다. 이런 작품성이 “동시도 먼저 시이어야 한다”는 점을 충족시켜주고 있다. (유경환·시인)
한국일보[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손톱끝에…
손톱 끝에 받아 기른 봉선아 꽃물을
최길하
손톱 끝에 앉혀 기른 그리움의 그림자를
해 기우는 서쪽 하늘 기러기가 받아서
발목에 물을 들여 산 넘어 간다.
그리움도 해질녘엔 그림자처럼 자라
꽃물도 손톱 나간 끝만 남아서
풀벌레 눈망울에 등불로 앉거든,
동그랗게 불어서 별이 뜨거든,
풀잎 끝을 휘어잡는 저녁 이슬로
저 하늘 은하수에 다리를 놓자.
그래도 차마 못 자를 그리움이 남거들랑,
그 때는 꽃씨인 양 문고리 밑에 심어 놓고
밤새 몰래 함박눈이 소복이 내린,
한겨울 아침에도 환히 비치는
반달로 자라나는 꽃잎을 보자.
[신춘문예 동시 심사평] 아이·어른 공감할 삶의 경이 표현
‘시는 만인의 것이다’. 시 중에서도 어른들끼리 쓰고 어른들끼리 즐기는 어른 시에 비해 동시가 더욱 그렇다. 동시야말로 아이에서부터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널리 쓰고 읽고 즐기는 만인의 시인 것이다.
그래서 동시는 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말과 소박한 표현을 쓰되, 아이와 어른 모두가 공감하는 간절한 진실의 아름다움을 담고 있어야 한다. 만인의 가슴에 가 닿는 동시 한 편 빚기란 하늘의 별 따기가 될 수밖에 없다.
두 심사위원의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여섯 분의 시 39편이었다. 선뜻 당선작을 합의해 놓고도 거듭 안타까운 눈길을 받은 작품은 김미경씨의 ‘그리움’, 김민하씨의 ‘자전거’, 정창선씨의 ‘그네’, 박인수씨의 ‘강’. 이분들의 응모작에는 위와 같이 심상치 않은 빛깔과 향기를 내뿜는 한두 편의 수작이, 믿을 수 없이 낡고 옹색한 유아적 작품들과 한데 섞여 있었다.
당선작 ‘손톱 끝에 받아 기른 봉선화 꽃물을’은 무엇보다 동시가 유아적인 코맹맹이 노래라는 오해와 의심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손톱 끝에 받아 기른 봉선화 꽃물’을 ‘해 기우는 서쪽 하늘 기러기’의 발목으로 옮기는 놀랍도록 대담한 비약이 그렇고, 손톱 끝에 아스라이 남은 꽃물에 등불이 앉고 별이 뜨도록 기다린다는 신선한 시간 화법이 그렇고, 그러고도 남은 그리움을 심어서 반달로 자라나는 꽃잎을 보리라는 느긋한 희망이 그렇다.
함께 보낸 응모작 ‘왜 눈물 알에는 찬란한 단청이 들어 있는가’ ‘할아버지 보시던 한양가 책은’에서도 맑은 눈이 발견한 삶의 경이를 거침없이 그려 보이고 있는 이 시인이 앞으로도 계속 정진하여 우리 동시 발전에 큰 걸음이 되어줄 것을 믿는다.
/심사위원=김용택 이상희
당선자] "시조이어 두번째 당선 기뻐"
최길하씨 인터뷰
가락이 유려하다 싶더니 최길하(崔吉夏ㆍ46)씨는 등단한 시조시인이었다. 심사위원들이 고심했듯 최씨 자신도 “작품이 조금 어려워 보일지도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그러나 “아이들의 수준에 맞추려 애쓰기보다는, 아이들과 닮으려는 순수한 마음을 시로 적는 것이 어른이 쓰는 동시의 개념에 적합한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충북 단양에서 나고 자란 최씨는 가난한 집안 환경 때문에 어렸을 적 제대로 책을 읽지 못했다. 고교 때 학교에서 구독하는 신문을 읽으면서 비로소 활자의 울림이 얼마나 큰 것인지 알게 됐다. 졸업하고 곧바로 취직했다.
그때부터 소설과 인문서, 미술서와 한문서적에까지 빠져들었다. 박제천 고형렬 장석남씨 등의 시집을 읽으며 말의 가락에 매료된 그는 시조를 쓰기 시작했고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에 당선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때가 묻는 것을 느낀다. 순수해지고 싶은 마음에 동시를 선택했다”고 그는 밝혔다. ‘손톱 끝에 받아 기른 봉선화 꽃물을’은 어렸을 적 학교 가는 길 토담 아래 피어있던 봉선화의 기억에서 나온 작품이다.
“가슴에 애틋한 봉선화물이 들었다.”오래 고민하다가 마감 하루 전날 완성한 이 작품이 그의 두번째 신춘문예 당선작이 됐다.
최씨는 성신양회에 25년째 근무하고 있다. “화학을 그렇게도 싫어했는데, 일 때문에 공부를 하다 보니 화학에 인생 철학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어떤 분야든 열심히 공부하다 보면 삶의 진리를 찾을 수 있는 게 아닐까”라고 그는 말한다. 자신이 찾아낸 인생의 진리를 맑은 영혼의 눈으로 걸러낸 동시를 쓰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