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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탄하와의 再會
오전을 자고 나니 개운하다.
베트남 항공을 찾아가서 서울로 떠날 항공편을 재확인하고 숙소에서 가까운 호수에 나가 벤취에 앉아 낚시질을 구경하다 지리를 익히기 위해 거리를 걷는데 이정표에 낯 익는 지명이 눈에 띈다. 한참을 생각하다 나짱에서 하노이 아가씨들이 적어 준 주소를 보니 그들이 적어 준 거리다. 길 옆 건물의 번지수를 확인하니 51번지 그들이 적어 준 것은 58번지다. 숫자가 많은 쪽을 따라 걸으니 내가 묵는 호텔쪽에서 아주 가까운 곳이다. 56번지까지 나오고 다음은 커다란 고층 빌딩이 서 있다.
빌딩의 수위에게 주소를 주고 물으니 이곳이 맞는 단다. 수위에게 보탄하 양을 불러 달라고 하니까 자기를 따라 오라며 에리베이터로 4층으로 안내하고 사무실에 들어가 보탄하양을 불러 주었다.
나짱에서 만났던 그들의 친구들까지 몰려 나왔다. 응접실로 안내되어 차를 대접받으며 시간을 내서 하노이를 둘러보자고 한다. 숙소를 알려 주고 하롱베이에 다녀와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호텔에 돌아와 다링 카페에서 주선하는 1박2일짜리 하롱베이 투어를 24달러를 주고 신청했다.
名勝地 하롱만(Vinh Ha Long)
5시에 호텔에 짐을 맡기고 나왔지만 다링 카페의 차는 6시가 다 되어 왔다. 호텔 한군데를 더 들려 하롱만을 향해 달렸다. 미국인 2명, 프랑스 부부, 일본 여자 4명, 나까지 합쳐 9명이 1박2일간의 식구다.
처음에 미니 버스는 잘 달렸지만 하노이 외곽에서 펑크나 나서 그 동안 노부부가 운영하는 상점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며 기다렸다.
기아의 베스타는 동북쪽으로 향해 달리는데 길이 좁아 맞은편 차와 서로 마주 보고 오다 근접하면 서로 피해 가는 형국이라 은근히 걱정이 된다. 주변은 벼농사로 끝없고 평야에 농부들로 가득하다 이곳은 2모작 지역으로 모내기가 전부 끝나 푸르름이 가득하다. 얼마를 가다 길이 끊기고 차를 배에 실어서 건너편에 내려놓고야 덜컹거리는 도로를 계속 달렸다. 주변은 계속 끝간데 없는 평야 였다. 점심때가 가까워지자 동쪽으로 돌산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그 형상이 묘한 모습이다. 영화 ‘인도차이나’의 촬영 무대이기도 한 하롱베이 가까이 다가와 옴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한시간 반가량이 지난후에야 하롱에 도착했다. 바다 위로 툭 튀어나온 수 없는 기암이 환상적인 풍경으로 다가 왔다. 기암의 숲이다. 월남전 당시에도 미군이 이곳은 폭격을 하지 않았다는 곳이다. 신비한 분위기가 도는 바다 였다. 호텔을 배정 받는데 일본 여자 4명, 프랑스 부부, 미국인 2명과 나 세팀으로 편성되었다 해변의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식탁 배정은 동양인과 서양인으로 구분했다. 일본 여자 애들은 30대 디자이너 선생과 그에게서 배우는 20대의 학생들이 였다. 이중 두명은 한국도 방문하여 대체로 한국에 대하여 많이 알고 선생과는 영어와 한자를 가지고 의사 소통이 잘 이루어 졌다.
식사후 배를 타고 섬을 돌아보는 쿠르즈 여행이다. 섬과 섬 사이를 빠져나가면 고기잡이하는 어선들의 작업이 한창이고 현지에서 커다란 새우를 사 먹을 수도 있다. 어떤 섬들은 동굴이 반대편까지 통하는 것과 주위가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둘러싸인 섬, 모양이 너무나 신기하게 생긴 섬이 즐비하다. 흙 하나 보이지 않는 암석 위에 수많은 나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 생명력이 대단함을 느낀다.
한 곳에 상륙하여 석회 동굴을 들어가니 현란한 종유석에 모두 감탄을 한다. 폭포가 쏟아지는 모습과 석주, 들어 갈 수록 아름다운 모습에 모두 환호성을 지르고 좋아 하지만 이 속은 사우나탕과 같아 모두 땀으로 목욕을 한 꼴이다.
호텔에 돌아와 3명이 돌아가며 샤워를 하는데 미국인 뚱보는 온 몸에 털이 하도 많아 원숭이 같았다. 샤워를 하는 모습도 강아지 목욕시키는 것에 비유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녁 식사를 하러 가며 담배를 사는데 하노이에서 11,000동하는 것이 여기서 15,000동이다. 비싸다고 하니 주인이 물 건너 산 넘어 온 가격이란다. 저녁 식사후 비취의 카페에서 맥주를 기울이니 밤도 깊었다.
다음날 아침 식사 후에 다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다. 다른 방향으로 섬 사이를 돌아다니다 한 섬에 들려 새로운 석회 동굴을 구경했다. 어제의 것보다 규모가 크지만 아름다움은 덜 했다.
배를 정박시키고 수영을 하는데 미국인 둘만 들어간다. 마침 석회 동굴에서 땀을 흘린 터라 나도 뛰어 들었는데 내 수영 실력이 미미한 것이어서 오래 동안 물 속에 있을 수 없어 얼마간 있다 배로 오르려니 사다리가 없어 배 옆의 타이어를 잡고 오르려니 오를 수가 없다. 몇번 시도하다 뱃사람이 붙잡아 주어 간신히 올라 왔다. 나중 알고 보니 미국인 두명도 올라오지 못해 쩔쩔 맨다. 더욱이 털보는 몸무게가 워낙 무거워 그를 끌어올리는데 한바탕 소동을 버렸다. 점심때는 배위에서 식사와 과일을 준비해 주고 배가 부두에 닿자 버스에 옮겨 타고 하노이로 돌아 왔다.
호치민 墓(Lang Chu Tich Ho Chi Minh)
오늘 아침에 보탄하양이 호텔로 찾아와 하노이를 안내해 주기로 되어 있었는데 회사 일로 오지 못하니 다른 때 시간을 내겠다고 아침 일찍 전화를 해 왔다. 할 수 없이 호텔 주인에게 부탁하여 길 건너 옷가게를 하는 남자에게 10달러를 주기로 하고 하루 종일 오토바이로 안내를 부탁했다. 옷가게 주인하고는 의사 소통이 어려워 차질이 생길까 봐 내가 꼭 들려야 할 곳을 베트남어로 메모해 주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키고 하노이의 모든 곳을 구경시켜 주겠단다. 듬직하고 성실한 사람이 였다. 오토바이를 달리면서 거리의 명칭, 호수의 이름, 한국 식당, 한국 물품 판매 상점 등을 베트남어로 말해 주는데 사전 공부를 해둔터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먼저 호안키엠 호수 위에 조성되어 있는 옥산 신사를 찾았다. 레로이 왕의 전설이 있는 곳인데 특이한 것은 13세기 몽고의 침략을 격퇴한 탄홍다오가 모셔져 있다. 문기둥에는 한자로 쓰여 있고 하노이 시민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다. 오토바이 사내는 볼 곳이 있으면 나를 내려놓고 입구에서 성실히 대기하곤 했다.
호치민 묘가 있는 곳에 도착하니 묘 앞은 넓은 광장이 였다. 1975년 만들었는데 모두 대리석으로 만들었고 내부에는 호치민 주석의 유체가 유리 상자안에 안치되어 있다. 묘 내부에 들어 갈 때는 반바지, 선글라스 착용이 금지된다. 말을 하거나 중간에 멈추어 서지 못하고 사진 촬영도 금한다. 밖을 나와 길을 따라 걸으면 호치민이 살았던 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 목조 건물은 소박하고 서민적인 인품을 알 수 있고 베트남과 결혼했다며 평생 독신으로 살아 왔던 그의 삶을 생각하며 베트남을 사랑한 한 인간의 생에 머리가 숙여진다. 묘의 뒤편쪽으로 호치민 박물관(Bao Tang Ho Chi Minh)이 지척에 있다. 호치민 탄생 100주년 되는 날에 개관한 박물관에는 호치민 생가의 모형, 애용했던 물건, 편지 혁명과 관련 있는 물건들을 전시하고 있다. 민족의 독립과 통일에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화도 상영된다. 호치민 묘와 박물관 사이에 일주사가 있다. 11세기 이조 시대에 연꽃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는데 기둥이 하나 밖에 없어 일주사이다. 연못에는 연꽃이 가득히 피어 있다.
軍事 博物館(Army Museum)
디엔 비엔 푸(Dien Bien Phu)거리에 위치해 있고 도로 건너에는 레닌의 동상이 서 있고 레닌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소련이 붕괴되고 그 많은 레닌 동상 중에 남아 있는 것이 몇이나 될까? 하노이 거리엔 레닌의 동상이 건재하다.
베트남이 항쟁으로 점철된 전쟁의 역사를 물증과 함께 실감나게 전시해 놓았다. 전시실에서 AD40년경의 쭝자매의 항쟁, 중국과의 항쟁, 디엔 비엔 푸 전투와 베트남 전쟁 당시 사이공 함락 상황을 재현시킨 모형이 인상적이다. 안 마당에는 각종 무기를 전시해 놓고 추락한 미군 전투기의 잔해 쌓아 놓기도 했다.
이번에는 하노이 서북쪽에 있는 타이 호(Ho Tay)로 갔다. 일몰 광경이 일품이라는 커다란 호수가 아름다워 주변은 고급 빌라 지역으로 프랑스 풍의 집들이 예쁘게 지어져 있다. 넓은 타이 호를 한바퀴 돌아 맞은 편에 있는 작은 절에 들렸다.
신자들이 이곳에서 소원을 비는데 향을 가득 피워 사원의 탑마다 향을 꽂고 기도하고 음식을 놓고 기도하는 것을 몇번이고 반복한다. 무슨 소원을 염원하는지 몰라도 이들의 소박하고 정성스런 신심이 부럽다.
바람이 불자 타이 호에 물결이 출렁인다. 호수가에 한동안 쉬다 점심을 먹자고 안내를 부탁하니 얼마를 달려 작은 수로 건너의 음식점으로 들어갔다. 남녀 손님도 많고 음식을 나르는 아가씨들도 제복을 입고 깨끗하다. 음식을 시키라고 하니 3가지 고기를 가져 오고 맥주를 시켰는데 고기를 소스에 찍어 먹어 보니 맛이 괜찮았다. 한참을 먹다 무슨 고기냐고 물으니 이 친구 하는 말이 안 통해 한참 설명하니 알아듣고 길밖에 있는 개를 가르친다. 고기를 잘 보니 개고기 였다. 조리 방법이 여러 가지로 개 순대도 옆자리에 보니 있다. 생각지 않게 개고기를 포식하고 계산을 하니 4달러 였다.
가슴을 드러내 보이는 女子
오토바이는 한 호텔 앞에 멈추어 서더니 이 친구가 대우 호텔 하면서 손으로 가르친다. 하노이에 엄청난 대우 호텔이 아름다운 호수가에 우뚝 솟아 있고 그곳에 태극기가 게양되어 있었다.
베트남에서 처음 휘날리는 태극기를 바라보았다.
호텔 옆의 호수 안에 들어가니 공원을 조성해 놓고 동물원까지 겸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별로 없어 동물 구경을 하며 호수를 한바퀴 도는데 원숭이 우리 앞에서 왠 젊은 여자가 어깨를 친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나를 보며 웃는데 그 모습이 귀엽다. 다시 딴 곳으로 가려니까 나에게 다가오며 2시간만 자기와 함께 있자는 얘기인 것 같았다. 왜 그러냐고 하니까 자기하고 함께 가자는 거다. 별난 일이다 싶어 다음 동물 우리 앞의 벤치에 앉으니 옆자리에 와서 자기 가슴을 드러내 보이며 함께 가자고 한다. 한낮 공원에서 이런 짓을 하다니 여기가 사회주의의 심장부 아닌가. 이런 것에 잘 못 걸려들다간 톡톡히 망신당할 것 같아 얼른 자리를 떴다. 밖으로 나와 오토바이 사내에게 설명해 주니 큰일 난다고 쫓아가면 안된다고 당부를 한다.
역사 박물관에 들렸지만 모든 것이 베트남어로 되어 있고 전시품이 모두 복제품이여서 아쉬웠다. 입구로부터 관람 순서가 표시되어 있어 따라 가면 글을 몰라도 다소 이해가 된다. 몇 개의 호수를 들른 다음 마지막으로 문묘를 찾았다.
이곳이 베트남 최초의 대학이다. 문안에 들어서면 정자로 된 문이 또 하나 나오는데 상단의 정자가 이채롭다. 이 안을 들어서면 연못이 있고 또 문을 들어서면 양옆에 규문각이 있는데 이것이 하노이의 상징물 중 하나이다. 원조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 안에 82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고 비석에는 300년동안 3년에 한 번씩 행한 과거에 합격한 진사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벽이 없이 탁 트였고 경내의 양쪽에 있어 조용하다. 제일 안쪽에 공자를 모신 사당이 제일 큰 건물로 서 있고 양쪽에 부속 건물이 있다.
문묘 옆의 샛문으로 가면 수상 인형극을 공연하는 곳이 있는데 하노이에 오면 한번은 꼭 구경할만 하다. 공연 내용은 베트남 전설을 내용으로 삼아 음악과 대사가 나오며 이것에 맞추어 물위에서 인형들이 물을 내뿜고 연기를 뿜으며 연기를 하게 되는데 특이한 인형극이 아닐 수 없다.
하루 종일 오토바이 뒷좌석에 매달려 다니니 이젠 실증도 나서 그만 호텔로 가자니까 이 친구 아직 볼 곳이 몇 곳 있다며 유명한 사원 3곳을 더 돈 다음 하노이 거리를 종횡무진 달리며 여긴 어디고 저긴 무엇이라며 베트남어로 지껄여 낸다.
성의는 고맙지만 이젠 돌아가자고 몇 번을 독촉한 끝에 호텔로 돌아 왔다.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데 호텔 옆 꽃가게 여자들이 낯이 익었는지 농담을 던진다.
보탄하의 訪問
일어나자 마자 대충 짐을 꾸려 두었다. 밤에 다시 찬찬히 정리를 해야겠지만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해 두었다. 마지막 날이라 시장으로 나가 장터의 이곳 저곳을 돌며 먹거리도 조금씩 사 먹으며 돌아 다녔다. 코리아나 식당에서 한국 음식도 먹어 보고 목각 몇 점을 쇼핑하고 돌아오니 후론트에서 보탄하가 5시에 온다고 나가지 말라고 일러준다. 5시에 오토바이를 타고 온 보탄하양은 볼수록 미인이다.
내일 사이공으로 회사 일로 떠나야 된다며 많은 시간을 내지 못해서 미안하다며 오토바이를 타라고 한다. 오토바이 꽁무니에 매달려 한참을 가니 낮에 왔던 타이 호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많이 나와 있었고 일몰의 광경이 주변의 풍광과 호수에 어우러져 아름다웠다. 보탄하에게 저녁 식사 할 만한 곳을 안내하라고 부탁하니 시내로 한참 들어와 조그만 식당에 들어가니 베트남 전문 음식점으로 깨끗하고 내부 장식도 잘해 놓은 고급 음식점이 였다. 종업원의 매너도 마음에 들었다. 음식을 그에게 부탁했더니 우리 나라 신설로 같은 음식을 겸해 몇 가지 나왔는데 맛이 좋았다. 맥주와 후식까지 합쳐 10달러 였다. 그곳에선 큰 금액이지만 정말 음식값은 싼 곳이다.
보탄하는 오토바이로 호텔까지 나를 데려다 주고 하노이 구경을 안내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돌아갔다.
내일 아침 4시에 공항에 나갈 궁리를 하다 호텔 주인에게 가겟집 남자를 내일 아침 공항까지 부탁했다. 5달러에 흥정을 마쳤다.
호텔 주인과 쓰고 남은 베트남 화를 미화로 전부 환전을 했다.
새벽의 공항길
4시에 호텔을 나오니 엄청난 비가 쏟아지고 있다. 난감한 일이 였다. 그렇다고 다른 대체 수단이 없으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가게 주인한테 갈 수 있겠느냐고 하니 걱정 없다고 한다. 호텔에서 우의를 하나 준비해 주고 가게 주인이 헬멧을 건네준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우의를 걸치고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 뒷자리에 올랐다. 비오는 깜깜한 새벽길을 달리는데 넘어지면 신세 망칠 것 같았다. 바람까지 세게 불어 운전하기도 곤란할 것 같았다. 시 외곽을 벗어났는데 공항 같은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가면 되겠지 했지만 감감 무소식 이다. 5달러에 나를 새벽에 날라주는 너도 미친놈이다. 속으로 나 같으면 열 번 죽어도 안한다. 이 미친놈아. 정말 멀었다. 중간에 내가 쓰고 있던 헬멧이 날아갔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헬멧이 떨어 졌다고 하니까 괜찮다고 그냥 달린다. 거센 바람 때문에 옷도 흠뻑 젖었다. 이젠 불안한 마음까지 든다.
진작 택시를 예약해 둘걸 후회가 막심했다.
이런 고생 끝에 공항에 도착해서 8달러를 주니 좋아하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떠나갔다.
하노이 공항은 작은 역사와 같았고 근무하는 직원들도 세련되지 않았다. 사회주의의 경직됨이 그대로 보인다.
旅行을 끝내며
입장은 달랐지만 28년만의 방문이 였다. 아내의 걱정도 많았던 여행이고 고생 또한 남달랐다.
내가 주둔했던 지역의 변화는 분명 내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나름대로의 의미는 있었다. 아직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는 없지만 분단국에 사는 우리로서는 분명 여기서 새로운 각오를 다짐해야 하고 우리가 언젠가 겪어야 하는 과정을 여기서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이다.
남 베트남의 불만은 어느 땐가 분출될 것이고 역사적으로 계속해 불어온 북풍은 어느 땐가 남풍으로 변화할 조짐이 삶의 질에서부터 찾아 올 것이다. 다만 그 시기와 힘의 논리에서 많은 변수를 가지고 있지만 남풍의 기압골은 이제 서서히 형성되는 것은 아닐까?
여행기간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던 여러 나라의 여행자들에 고마움을 보낸다. 또한 솔직한 그들의 심경을 밝혀 준 베트남 친구들에 감사하고 옛전우들의 행운을 빈다.
첫댓글 야 ! 정말로 읽어 볼만한 가치가 무지무지하게 많습니다. 저역시 베트남 하노이에서 약 6개월정도 있었지만 정말로 베트남 구석구석을 둘러본 남순 동문께 감탄할뿐 입니다. 여행기 자체 내용이나 글을 써 내려가는 남순 동문의 글 솜씨 정말 대단 합니다. 저도 다음달 정도 사업때문에 한번 하노이, 하이퐁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감사 합니다.
길현친구! 작년10월 태능 동문체육대회에 같이왔던 베트남 친구가 생각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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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형, 논산26연대3중대 기억 나우? 향도 보느라고 고생만 하시고,,,반갑네요, 살아계셔서^^*제 군번은 12029620이구여, 이름은 안병희 라우, 종로세무서장하던 조창도 형의 고종사촌동생이구여, 양영인 형네 동네서 살았구여[소양로 강계여관 옆], 영인이 형도 방가워유^^*
한편의 소설을 읽은듯 생생합니다. 다퀴멘타리 영화를 본듯도 하고. 남순친구! 당신은 정말 멋쟁이로군요.
통일 후 베트남인들의 생활상, 특히 남부 베트남 출신자들의 생활상에서 시사하는 바가 많군!!! 분단 된 우리의 현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