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개발시인으로 다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북한의 지도자 김정일의 사주는 어떤한지 알아본다.
인터넷이나 역술서적 여러곳에서 이미 현 북한의 최고위원인 김정일의 사주를 간명한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일부는 북한의 지도자라는 선입견적인 면에서 부정적인 면을 너무 염두에 두고 간명을 한 것 같았다. 이렇게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게 되면 정확한 사주 판단을 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이 자리에서는 객관적인 면에서 선입견없이 그의 사주를 간명해 보기로 한다.
김정일은 양력 1942년 2월 16일 자정을 훨씬 넘어서 새벽에 태어났다고 한다. 생시를 축시로 추정해본다.
김정일은 일간이 庚金으로 寅달에 태어났다. 寅중 火의 기운이 시간에 투출하고 년지의 午火와 합을 하여 화기가 왕하여 寅중 丙火를 취하여 偏官格이 된다.
사주에 食傷의 기운인 水氣와 官의 기운이 강하여 신약하게 되어 丑중 辛金으로 용신을 삼고 土의 기운이 희신이 되겠다.
사주가 偏財를 월지에 보고 食傷의 기운이 많으니 풍류를 즐기고 이성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의 주위에 미인들이 많은 것을 보면 잘 알수 있는 부분이다.
正官이 시간과 년지에 있어 정확한 것을 좋아하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마음에 딱 들 때까지 주위의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 수 있다. 이러한 면이 김정일을 괴팍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다.
말이 앞서는 경우가 종종 있어 말의 내용을 실제보다 부풀리는 경우가 많으며 명예와 체면을 중요시 한다. 그래서 그는 어떤 자리에서건 목소리도 크고 자신감을 피력하는 경우가 많다. 상황설명을 할 때도 실제보다 부풀려서 하는 경우도 많은 것이다.
이상세계에도 관심이 많아 예술이나 종교 사상 문학 등에도 관심이 매우 많다. 실제로 영화나 각종 문화 자동차 등에도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印星이 희신으로 학문에도 공부도 인연이 많다. 그는 김일성에 비하면 공부를 많이 한 지도자로 알려져 있다.
일지의 子水는 傷官으로 년지의 午와 충이 되어있어서 그의 결혼운은 좋지 않은 것이다. 그는 본처외에도 다른 다른 여자들이 많이 있으며 우리 사회의식으로 하면 그는 본부인 성혜림과 이혼을 한 것이나 다름 없다.
印綬가 墓地에 해당하고 월지 역시 絶地에 해당하여 어머니와의 인연이 깊지 못하고 형제와의 인연도 깊지 못하다.
그의 대운은 22살 부터 31살에 이르는 10년을 제외하고는 財官의 운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결코 좋은 기간이 아니었다. 이 기간동안 그는 외부에 알려지지도 않았으며 베일에 싸여있는 듯한 시기에 해당한다.
그가 처음으로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한 78년부터 81년까지는 37세부터로 대운은 丙午에 해당하고 년운은 戊午 己未 庚申 辛酉 에 해당한다. 戊午년은 년간의 戊土기운으로 희신에 해당하고 午火는 일지의 傷官을 剋하면서 가정적으로는 불안할 수 있으나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의 입지를 마련하기 시작한다.
79년 己未년 역시 년간과 지지가 모두 己土 印綬로 희신이 되어 그가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을 잡아주고 있다. 80년 庚申년에는 년간과 지지가 比肩운으로 신약한 庚金 일간을 확고하게 부조하여 10월10일 에서 14일에 걸쳐 열린 제 6차 당대회에서 중앙위 위원, 정치국 상무위원, 비서국 비서, 군사위 위원 으로 공식적인 제 2인자의 자리를 굳히게 된다.
그후 81년 辛酉년의 금운까지 모든 정적을 제거하고 당당히 김일성의 뒤를 이어 국가 서열 2위로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직 대운은 관성의 운으로 공식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았으며 그 뒤로도 2위 자리를 굳혀나가기는 하였지만 큰 역활은 없었다.
그의 나이 52살 되었을때 대운은 未土의 운으로 40년에 이르는 그의 전성기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1994년 甲戌년 김정일의 나이 53세에 아버지 김일성이 죽으며 실질적인 그의 최고 지위의 시대가 열렸지만 년운이 좋지않았던 동안 그는 공식적인 최고의 자리를 바로 이어받지 아니하고 몇년 동안을 기다려야 했으며 이후 년운까지 좋아진 98년이후 미사일 발사 실험을 강행하면서도 오히려 미국과 소위 벼랑끝 외교를 펼치며 유리한 입장을 지킬 수 있었으며 대한민국의 김대중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햇볕정책의 덕을 단단히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1년 60세가 되는 辛巳년부터 그의 년운이 나빠지기 시작하여 그는 고질병같이 앓아오던 북한의 식량문제, 금강산 관광문제 등 각종 경제문제로 골치가 아파지게 되었으며 미국 대통령이 크링턴에서 부쉬로 바뀌면서 어느 정도 유리한 입장을 지킬 수 있었던 벼랑끝 외교도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제 2001년 부터 오랜동안 김정일에게는 집권이후 최초와 최고의 시련의 기간이 되고 있다. 2002년 壬午년은 壬이 丁과 合을 하여 木氣를 띄게 되고 일지의 子水를 午火가 충극하여 여자문제 집안의 내부적인 갈등이나 이별 등의 문제들이 밖으로 표출 될 것이며 2003년 癸未년은 대운이 월지 寅을 충극하는 62살의 해로 사주의 모든 地支가 충극 되어 매우 좋지 않은 해가 될 것이다. 건강과 생명도 위험해 질 수 있는 해가 되는 것이다.
이 사주의 결점은 일간이 매우 신약하고 용신과 희신이 약하여 대운이 좋아도 년운이 나빠지면 자신을 지켜주는 힘이 모자라 흉함이 바로 자신을 치게 되는 것이다.
이제 핵 개발을 시인하면서 다시 새로운 형국을 시도하는 그의 계획은 내년 2003년의 좋지 않은 운으로 인하여 그다지 좋은 결과가 일어나지 않을 것같은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