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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문수사리보살이여, 내가 보니 여러 임금들이 부처님께 나아가서 최상의 도를 물을 때 좋은 국토와 궁전과 신하들과 후비(後妃)들을 다 버리고 머리와 수염 모두 깎고 법복을 입습니다. 혹은 또 어떤 보살들은 비구(比丘)의 모습을 하고는 고요한 데 홀로 앉아 경전 읽기를 좋아합니다. 文殊師利여 我見諸王이 往詣佛所하야 問無上道하고는 便捨樂土와 宮殿臣妾하고 剃除鬚髮하야 而被法服하며 或見菩薩은 而作比丘하야 獨處閑靜하야 樂誦經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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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국토에 궁전과 신하들과 후비들을 다 버리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법복을 입는 그런 왕도 있습니다.’
임금들이 출가를 해서 법복을 입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행적하고 똑 같습니다. 그와 같은 이야기를 해놨고,
또 보니까 23번에 보면은
23. 또 보니 어떤 보살들은 용맹정진하며 깊은 산에 들어가서 불도(佛道)를 사유하고, 또 어떤 욕심을 떠난 이는 늘 한적한 곳에 있으면서 선정을 깊이 닦아서 다섯 가지 신통을 얻습니다. 또 보니 어떤 보살들은 선정에 들어가서 합장하고 천만 가지 게송으로 모든 부처님을 찬탄합니다. 또 어떤 보살들은 지혜는 깊고 뜻은 견고하여 부처님께 법을 물어 모두 다 듣고 기억하며, 또 보니 어떤 불자는 선정(禪定)과 지혜가 구족하여 한량없는 비유로써 대중들을 위하여 법을 강설하며, 기쁜 마음으로 설법하여 많은 보살들을 교화하며 마군의 무리들을 물리치고 법의 북을 울립니다. 又見菩薩은 勇猛精進하야 入於深山하야 思惟佛道하며 又見離欲한이는 常處空閑하야 深修禪定하야 得五神通하며 又見菩薩은 安禪合掌하야 以千萬偈로 讚諸法王하며 復見菩薩은 智深志固하야 能問諸佛하고는 聞悉受持하며 又見佛子는 定慧具足하야 以無量喩로 爲衆講法하고 欣樂說法하야 化諸菩薩하며 破魔兵衆하고 而擊法鼓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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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정진한다’그랬어요. 그리고 또 어떤 이는 ‘욕심을 떠난다’‘한적한 곳에 있다. 그래서 선정을 잘 닦는다.’
또 어떤 이들은
‘또 어떤 보살들은 지혜는 깊고 뜻은 견고하여 부처님께 법을 물어 모두 다 듣고 기억하며,’
참 우리는 기억이 잘 안 되죠.
그것도 이제 우리가 하도 말하자면 그런 업을 쌓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재미있는 무슨 저기 저 연속극은 보고서 다 외워가지고는 친구에게다 전화로 그냥 만날 때까지 못 참아. 전화로 그냥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이야기한다. (일동 웃음) 살을 붙이고 뭘 붙여가며 그냥...
어째 그리 머리가 좋은고? (일동 웃음) 동작하는 것 까지 다 일일이 다 이야기 하네. 그렇게 머리가 좋습니다.
왜냐?
우리는 부처의 소질을 가지고 있어요. 사람사람이 본래 부처의 소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는 무조건 똘똘 외운다, 한번만 보면 외워요. 다 천재예요, 사실은.
나는 그래서 천재(天才)가 아니고 불재(佛才)라 그래. 부처· 불(佛)자, 재주· 재(才)자,
부처의 재주를 가진 분이다, 우리는 부처의 재주를 가졌다고 부처님으로부터 우리가 인가를 받은 입장입니다. 그걸 아셔야 돼요.
그런 자신감, 자기에 대한 깊은 이해, 이게 중요하다니까 ...
무엇보다도 사람의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 이게 제일 중요합니다.
너무너무 값진 존재예요, 알고 보면은.
대단히 위대한 존재라고 하는 이 사실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우리가 살아가면서 해야 됩니다. 그리고 잘 외워지지 않는 것은 그만치 우리가 습관을 들이지 않아서 그래요.
그러니 자꾸 훈습(熏習)을 해야 훈습, 훈습.
그래서 지니고 다녀라, 수지(受持), 수지, 수지, 책을 가지고 다니라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또 이제 23쪽에 ‘보살행의 상서’ 두 번째가 있죠.
(4) 보살행의 상서 2 24. 또 보니 어떤 보살은 고요히 명상하여 천신들과 용들이 공경하여도 기뻐하지 않으며, 또 어떤 보살들은 숲 속에 있으면서 광명을 놓아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여 불도에 들어가게 하며, 또 어떤 불자는 잠자지 않고 숲 속을 경행(經行)하며 부지런히 불도를 구합니다. 또 어떤 이는 계행(戒行)을 잘 지켜 행동이 뛰어난 것이 마치 보배 구슬과 같이하여 불도를 구하며, 또 어떤 불자는 인욕의 힘이 훌륭하여 잘난 체하는 이가 나쁜 말로 꾸짖고 몽둥이로 때릴지라도 그것을 다 견디어 불도를 구합니다. 又見菩薩은 寂然宴黙하야 天龍恭敬을 不以爲喜하며 又見菩薩은 處林放光으로 濟地獄苦하야 令入佛道하며 又見佛子는 未嘗睡眠하고 經行林中하야 勤求佛道하며 又見具戒한이는 威儀無缺하대 淨如寶珠하야 以求佛道하며 又見佛子는 住忍辱力하야 增上慢人이 惡罵捶打라도 皆悉能忍하야 以求佛道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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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보니 어떤 보살은 고요히 명상하여
천신들과 용들이 공경하여도 기뻐하지 않으며,
또 어떤 보살들은 숲 속에 있으면서 광명을 놓아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여 불도에 들어가게 하며,
또 어떤 불자는 잠자지 않고
숲 속을 경행(經行)하며 부지런히 불도를 구합니다.’
이런 말도 있습니다. 그러니 경행하는 것도 좋아요. 잠이 오면은 방안에서도 이렇게 도세요. 일어서서 가만히 가만히 걸으세요.
사찰에는 도량이 넓지 않습니까? 그러면 법당을 돈다든지 탑을 돈다든지 하는 게, 그냥 탑돌이가 아니에요. 탑돌이, 공덕이 된다고 도는 게 아니야!
경행(經行), 잠을 쫓고 망상을 없애고 그래서 부처님 말씀을 가슴 속 깊이 이렇게 스며들도록 하는 그런 그 하나의 수행이 그런 그 ‘탑돌이’에요. 탑을 돌거나, 법당을 돌거나, 부처님을 돌거나 아니면 저 잔디밭에 나가서 돌거나 그 명상하는 모습을 한번 그려보십시오.
척 부처님 말씀 한 가지를 가슴에 담고 천천히 명상하면서 공원이나 어디를 이렇게 거닌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나의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속에는 또 부처님의 말씀을 담고 걸어가니까 훨씬 더 아름답고 보기 좋지요. 저절로 그 아름다움이 풍겨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 등등도 다 볼 수가 있다,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다음에 넘겨서 보면은 저기 중간에
25. 또 보니 어떤 보살은 온갖 희롱과 농담과 어리석은 무리들을 멀리 떠나서 지혜로운 이들을 친근하여 일심으로 산란(散亂)함을 제거하고 억 천 만년을 산림에서 생각을 집중하여 불도를 구합니다. 또 어떤 보살은 맛있는 반찬과 좋은 음식과 백가지 탕약으로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보시하며, 그 값이 천만금 나가는 옷이나 값을 매길 수도 없는 훌륭한 옷으로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보시합니다. 또 천 만 억 가지의 전단향나무로 만든 값진 집과 아름다운 이부자리로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보시하며, 또 아름다운 동산에 꽃과 과일이 풍성한 숲과 흐르는 냇물과 연못들을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보시합니다. 이와 같은 가지가지 좋은 보시를 *기쁜 마음으로 행하여 싫어할 줄 모르면서 최상의 도를 구합니다. 혹 어떤 보살들은 적멸(寂滅)한 법을 설하여 가지가지 가르침으로 무수한 중생들을 교화하며 又見菩薩은 離諸戱笑와 及癡眷屬하고 親近智者하야 一心除亂하고 攝念山林을 億千萬歲하야 以求佛道하며 或見菩薩은 餚饍飮食과 百種湯藥으로 施佛及僧하며 名衣上服이 價直千萬과 或無價衣로 施佛及僧하며 千萬億種인 旃檀寶舍와 衆妙臥具로 施佛及僧하며 淸淨園林에 華果茂盛하면 流泉浴池로 施佛及僧하대 如是等施가 種種微妙를 歡喜無厭하야 求無上道하며 或有菩薩은 說寂滅法하야 種種敎詔 無數衆生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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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모든 것들을 기쁜 마음으로 행하여 싫어할 줄 모르면서 최상의 도를 구합니다. ’
이런 구절이 있어요. 기쁜 마음으로, 요는 그렇습니다. 부디 무엇을 하든지 기쁜 마음으로 하시고 마음에 안 내키거든 하지마세요. 안 내키거든 잠깐 쉬세요. 그러면 저절로 조금만 간격을 두면 고개가 돌아갑니다, 그쪽으로. 경전에 손이 잡힙니다. 그러면 기쁜 마음으로 다시 읽을 수가 있어요. 절대 싫은 마음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보시도 그렇습니다. 보시도, 정말 얼마를 내든지 간에 기쁠 때,
‘아 내가 잘했다.’하는 그런 마음이 날 때 하세요.
부처님 언제 보시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그건 각자의 몫이고 각자의 어떤 그 수행을 위해서 각자의 복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 기쁜 마음으로 해야지 만약에 조금이라도 기쁘지 아니하고 후회스럽다, 그러면 만원을 보시했으면 한 십만 원 은 까먹습니다, 그거 아셔야 돼요,
그리고 우리가 참 잘하노라고 잘했고, 정말 착하게 살았는데, 평생을 착하게 잘 살았는데 왜 이렇게 모이지가 않고, 쌓이지 않고 갈수록 더 박복한가? 그건 자기 지혜가 거기뿐이기 때문에, 자기의 지혜가 한계가 있어서 그래. 스스로 보기에는 잘 한 것 같지마는 내가 보기에는 아닌걸, 부처님이 보기에는 아닌 거야.
그래 실컷 잘 보시해놓고도 ‘하이고’ 돌아오면서, ‘아이고 그...’좀 그 미련이 가는 거야.
또 어떨 때에는 후회까지 해.
어떤 신도님은 보시를 상당히 했었어요.
어떤 스님에게 참 잘, 스님이 잘할 때, 보시를 했어요. 상당히 많은 액수를 했습니다.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자기가 알고 있는 스님하고 좀 다른 거야. 달라. 뭐 이런 소문도 들리고 저런 소문도 들리고, 그것이 진짠지 가짠지 확인도 안 해보고 그만 화가 나가지고 가서 “스님 그전에 내가 보시한 것 주십시오.”해서 돌려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일동웃음) 지금 살아있어요.
나는 분명히 알고 하는 이야기지 이런 이야기 함부로 하면 크게 구업 짓는 거거든요. 그래도 실명을 안 들면 그런 것만 해도 어딘데.(일동웃음)
그런 그것까지 있습니다. 이게 중생의 마음이에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럴 수가 있어요, 그거 다 이해합니다. 그러니까 희사(喜捨), 하잖아요, 희사. 버릴 사(捨)자 아닙니까? 기쁠· 희(喜)자, 버릴· 사(捨)자,
헌신짝 실컷 신다가 귀찮아가지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그런 마음으로 해야 돼. 그렇게 가뿐한 마음으로, 버리면, ‘주고 나니까 너무 가벼워, 너무 좋아.’이런 마음으로 해야 됩니다.
그 희사라고, ‘희사함(喜捨函)’이라고 써놓은 것 그것만 가지고도 우리가 얼마든지 수행할 수가 있는 거죠, 사실은. 참, 우리 인간의 마음이 그렇게 오묘 불가사의합니다. 부처님도 다 몰라요 그걸, 중생마음.
누가 그거 돌려받을 줄, 시주했다가 돌려받을 줄 알았겠습니까? (일동웃음) 부처님도 몰랐을 거야. 야, 참 신기하죠. 나는 그거 이해해요. 이해해. 왜냐?
나도 그와 같은 중생이니까, 그와 같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니까 이해한다고.
*기쁜 마음으로 행하여 싫어할 줄 모르면서 최상의 도를 구합니다.
내가 이 구절을 보고 별을 탁 쳐놨어. ‘야, 이거 한마디 해야지!’ 하고. (웃으심)
그 다음 보면 26번을 보면
26. 혹 어떤 보살은 모든 법(法)의 본성이 두 가지 모습이 없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은 줄로 보며, 또 어떤 불자는 마음에 아무런 집착이 없어서 이 미묘한 지혜로써 최상의 도를 구합니다. 或見菩薩은 觀諸法性이 無有二相이 猶如虛空하며 又見佛子는 心無所着하야 以此妙慧로 求無上道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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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어떤 보살은 모든 법(法)의 본성이 두 가지 모습이 없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은 줄로 보며’
이래놨어요.
‘모든 법(法)의 본성’ 이것은 이제 두 가지 모습이 없다, 이거 설명하려면요 여러 날 걸리는 이야기입니다, 여러 날 걸리는 이야기. 모든 법이, 모든 존재가 두 가지 모습이 없다. 하나다, 하는 것입니다. 통일된 하나의 모습, 그건 뭔지 아십니까?
지금 나는 늙었어요. 어릴 때 모습하고 다르잖습니까? 두 가지 모습입니다. 여기 두 가지 모습이 없다고 그랬어요. 실지로 두 가지 모습이 없는 것이 우리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두 가지 모습이 없는 통일된 하나의 모습,
그것은 부처님하고도 같고, 부모하고도 같고, 뭐 옛날에 계셨던 선조하고도 같고, 뭐 내 자식하고도 같고, 승속을 막론하고 남녀를 막론하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히 하나의 모습, 이거 있습니다.
혹시 기억나시는 분, 생각나시는 분 말씀해 봐요.
하나의 모습이 무슨 모습이겠습니까?
불교 1번지, 어디 수준 높은 신도들 한번 말해 봐요.
텅 비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공(空)’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무(無)’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본래 고향이 텅 빈 곳입니다. 그러다가 어떤 인연의 힘이 생기면 우리가 이런 모습으로 나타났다가 또 이 인연의 세력이 다 하면 이제 텅 빈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석가 달마도 다 그렇습니다.
우리 선조들도 다 그와 같습니다. 공자 맹자도 다 그렇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고 여러분도 마찬가집니다. 뒤에 올 우리 후손들도 똑 같이 텅 빈 모습에서 이런 인연이 모였을 때는 이러한 각양각색의 형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다가 또 인연의 힘이 다하면 또 텅 빈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또 다시 또 인연이 결합하면 또 이렇게 나타나서는 당신하고 나하고 전생에 만났었지 하고 이렇게 또 만나서는 아웅다웅 지지고 볶고 하면서 또 살고, 이게 인생사예요.
그래 텅 빈 모습 이것은요 석가도 달마, 맹자도, 여러분이나 저나 뭐 남녀노소 동서고금 할 것 없이 공히 똑 같은 그 본래의 그 모습이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거 하나만 알아도요, 그거 하나만 알아도 열반 얻기가 쉽습니다.
그거 아는 게 열반이야. 그리고 뭐 이렇게 올라갔다가 떨어졌을 때
그렇게 가슴 아파 하지 않습니다.
그거 알면 높은 자리에 올라갔을 때 그 그냥 뭐 부정으로 긁어모아 가지고 지금 뭐 법정에 드나들고 이렇게 안 합니다. 그거 알면요.
우리의 본래의 고향, 본래의 모습은 텅 빈 거야.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야.
이거 알면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가 그냥 막 긁어가지고 그냥 제일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본인이 안 가면 자식이 가고 아니면 비서나 사돈네 팔촌까지 걸려 들어가지고 지옥에 갔다가 나오고 그러잖습니까?
그걸 불교의 이치를 몰라서 그런 거예요. 부처님의 이치를 몰라서 그렇습니다.
우리들도 사실 욕심 다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을 자꾸 귀로 스치고 지나가기만 해도 금방 일어나면 또 새나가 버리지마는, 그렇더라도 이렇게 한번씩 귀로 스치고 가는 것, 이것 만으로도요 큰 약이 됩니다, 큰 약이 돼요.
콩나물 법문 한 마디 해드릴까?
여러분 콩나물 키울 때 생각나시죠? 콩나물에 물을 줍니다. 처음에는 그게 딱딱한 콩인데 물을 주면 차츰차츰 불어요, 그래도 계속 물을 주는 거야. 그러면 움이 터. 물은 다 새나가버리는데 왜 그게 움이 트고 자라고 그래서 나중에 우리가 먹을 만치 콩나물이 그렇게 자랍니까?
물은 한 방울도 없이 다 새나가 버립니다.
우리도 듣자마자 새나가는 게 이게 원칙이야. 전혀 걱정하지 마세요. 새나가는 것 전혀 걱정하지 마시고 열심히, 열심히 물 주세요. 열심히, 열심히 물주면 콩나물은 콩나물대로 자라고 우리의 영혼은 우리의 영혼대로 무럭무럭 그렇게 자랍니다.
그 이제 공부하고 뭐 읽고 (일동, 박수), 좋은 법문 들은 것 이거 다 새나가. 심지어 콩나물 법문까지 새나가도(청중, 폭소) 그래도 결국은 여러분의 영혼은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자꾸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꾸 하는 거예요.
안 하고 이 시간 여기 안 오시고 딴 데서 뭐 할 거예요, 그래. (일동, 웃음) 한번 생각해 봐요.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 있으면 글로 가세요, 그냥.(일동, 웃음) 현명한 사람은요 무엇이 가치가 있고 무엇이 가치가 덜한가, 그거 압니다.
그거 아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야.
그 존재의, ‘모든 법의 본성이 두 가지 모습이 없는 것이 마치 허공과 같은 줄 본다’ 그랬잖아요. 허공, 텅 빈 허공.
우리도 있으니까, 인연이 있으니까 이렇게 모였지마는 법당도 텅 비고 내 자신도 이 세상에서 텅 비어 없을 때가 머지않았습니다. 그거 다 그저 호흡하듯이 쉽게 받아들이면 좋습니다.
그 다음에 부처님의 열반의 모습까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5) 부처님의 열반
27. 문수사리보살이여, 어떤 보살들은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사리에 공양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불자들은 수없이 많은 탑을 쌓아서 국토를 장엄하는데, 높고 아름다운 보배 탑이 높이는 오천 유순이고 세로와 가로가 똑 같이 이천 유순이라. 그 많은 탑마다 천 개의 깃대와 깃발과 이슬처럼 반짝이는 구슬 휘장과 보배 풍경이 어울려서 울립니다. 천신(天神)들과 용과 신들과 사람과 사람 아닌 이들이 향과 꽃과 온갖 풍류로써 항상 공양합니다. 문수사리보살이여, 모든 불자들이 사리에 공양하느라고 훌륭하게 탑을 꾸미니 국토는 저절로 빼어나게 아름답고 미묘해서 마치 천상의 나무에 화사하게 꽃이 핀 듯 합니다. 文殊師利여 又有菩薩은 佛滅度後에 供養舍利하며 又見佛子는 造諸塔廟 無數恒沙하야 嚴飾國界하대 寶塔高妙하야 五千由旬이며 縱廣正等히 二千由旬이라 一一塔廟에 各千幢幡이며 珠交露幔에 寶鈴和鳴하면 諸天龍神과 人及非人이 香華伎樂으로 常以供養하며 文殊師利여 諸佛子等이 爲供舍利하야 嚴飾塔廟하면 國界自然히 殊特妙好하대 如天樹王이 其華開敷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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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수사리보살이여, 어떤 보살들은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에 사리에 공양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불자들은 수없이 많은 탑을 쌓아서
국토를 장엄하는데,
높고 아름다운 보배 탑이 저기 높이가
오천 유순이나 된다.’
이런 등등 부처님의 한 생애를 다 이야기합니다.
다 이야기하는 그런 내용으로 이제 광명에 비친다, 이 말이여. 광명에 비친다!
광명이라고 하는 것은 뒤에 여러 번 나옵니다만 부처님 광명 속에 이러한 모습,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 우리가 수행하고 있는 모습들이 다 나타난다, 그랬어요.
광명은 무엇입니까?
지혜입니다.
밝은 안목이에요. 바로 이 이웃에 살아도요 여기에 무수한 사람들이 법문 들으러 드나들고 해도 불교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은
‘저 사람들이 왜 저렇게 모이는가?’,
저기 내가 큰 절에 사는데 큰 절 바로 밑에 동구에서 기념품 장사, 음식장사하면서 수십 년 대대로 살았는데도 한번도 절에 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어.
이해가 안 되는 거야. 지혜가 없으니까, ‘왜 가는가?’이해가 안 되는 거야. 왜 그 생돈을 부처님 앞에 갖다 놓는고?’ 이해가 안 되는 거야.
하! 신기하죠?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꽉 막히기로 하면 그와 같이 이해가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차츰차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서 지혜가 차츰차츰 생기기 시작했어요.
지혜는 광명을 뜻합니다.
마음의 밝은 빛, 그것은 곧 지혜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등을 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등불을 밝히는데 부처님이 이 세상에 지혜로서 오셨다. 우리에게 지혜의 안목을 열어주기 위해서 오셨다하는 뜻으로써 ‘세상에 그 지혜를 모양으로써 상징적으로 보여 줄만 한 게 뭐가 있을까?’생각하고 생각하다가
‘아 저 불이구나! 불빛이구나!’ 옛날에 전기도 없고 할 때 등불이 생겼습니다. 등불, 얼마나 길을 잘 비춥니까?
인생이 살아가는 길을 지혜가 비추듯이 등불이 어두운 밤길을 비춰줍니다.
다 그런 의미가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부처님 오신 것은 ‘지혜의 등불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상징적으로 우리가 기억하고 다시 우리가 답습하고 또 그것을 하나의 교훈으로 삼아서 우리도 그렇게 살자고 하는 뜻에서 등불을 밝힙니다.
초파일도 가까운데 여러분 등 꼭 키세요.
여기 나가시다가 여기다 전부 기재하시고 등 하나씩 꼭 달고 그렇게 가세요.
등의 의미를 알았으면 천개 만개를 켜도 좋습니다. 그런데 왜 등을 밝히는가 하는 뜻을 모르고 이 무상사 이 시간에 오시지 않은 분들은 등을 한 개를 밝히는 것도 아깝습니다, 사실은. 뜻을 알고 밝히면 백 개, 천 개를 밝혀도 좋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아 이러한 이유구나 아셨으니까 등을 꼭 달아서 우리 저 한국의 제일 큰 법당, 무상사 이 불교 법당이 아주 잘 발전되도록 그렇게 기원도 하고 내 어두운 마음도 밝히는 의미에서 꼭 그렇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 답을 청하는데 이제 답은 뒤에 나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다 하고 나서 이제 문수보살에게 답을 청해야 될 게 아닙니까? ‘답을 청하다’하는 대목이 있어요. 26쪽에 보면은,
5. 답(答)을 청하다 28. 부처님께서 광명 놓으시니 저와 대중들은 이 세계의 여러 가지 훌륭하고 아름다운 모양을 잘 봅니다. 부처님의 신통과 지혜가 희유하여 청정한 광명을 놓으시어 한량없는 세계를 비추시니 저희들은 그것을 보고 전에 없던 일이라 생각합니다. 문수보살이시여! 저희들의 의심을 풀어 주소서.
29. 여기 이 사부대중들이 문수보살님과 저를 우러러 봅니다. 세존께서 무슨 일로 이러한 광명을 놓으십니까? 보살께서 대답하여 우리들의 의문을 풀어주고 기쁘게 하소서. 장차 무슨 이익이 있으려고 이러한 광명을 놓으십니까? 부처님이 보리도량에서 얻은 미묘한 법을 설하시려는 것입니까? 저희들을 위하여 수기(授記)를 주시려는 것입니까? 모든 부처의 세계가 온갖 보배로 장엄함을 보며 여러 부처님을 뵈옵게 되오니 작은 인연이 아닌가 합니다. 문수사리보살이시여, 사부대중과 용과 신들이 모두 보살님을 우러러보오니 무슨 뜻인지 말씀하여주소서.
佛放一光하시니 我及衆會가 見此國界의 種種殊妙하니 諸佛神力과 智慧希有라 放一淨光하사 照無量國하시니 我等見此하고 得未曾有니다 佛子文殊여 願決衆疑하소서 四衆欣仰하사 瞻仁及我니다 世尊何故로 放斯光明이닛고 佛子時答하사 決疑令喜하소서 何所饒益으로 演斯光明이닛고 佛坐道場하사 所得妙法을 爲欲說此닛가 爲當授記닛가 示諸佛土에 衆寶嚴淨하며 及見諸佛하니 此非小緣이니다 文殊當知하소서 四衆龍神이 瞻察仁者하나니 爲說何等이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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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 사부대중들이 문수보살님과 저를 우러러 보고 있습니다.
우리 둘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문수보살이 답을 하셔야지요.’이런 뜻입니다.
세존께서 무슨 일로 이러한 광명을 놓으십니까?
그리고 왜 그 광명 속에는 많고 많은 모습들이 다 비춰집니까?
여러분들요, 지혜가 있으면 돈도 보입니다. 뭐 장사 안 된다, 시절이 어렵다, 뭐 경제 사정이 어렵다, 다 지혜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지혜 있는 사람은요 눈에 돈이 다 보입니다.
세상이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보이게 되어 있어요.
바로 그렇습니다.
지혜가 있으면요 전부 이 광명에 비친 모습이 우리 눈에 들어오듯이 그와 같이 세상이 보이고 인생이 보이고 사건의 전후가 보이고, 내 인생의 앞뒤가 다 보인다하는 그런 뜻입니다.
보살께서 대답하여 우리들의 의문을 풀어주고 기쁘게 하소서. 장차 무슨 이익이 있으려고 이러한 광명을 놓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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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주 앞으로 법화경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을 여기에 이 미륵보살 미륵도 아니네, 여기에 보니까, 참 지혜로운 미륵보살의 질문 속에 다 있습니다.
‘무슨 이익이 있다고 이러한 광명을 놓으십니까?’
이제 여러분은 법화산림을 통해서, 법화경을 위해서, 법화경을 통해서 여러분의 인생을 확 바꾸십시오. 또 법화경을 통해서 여러분의 불교관을 확 바꾸십시오. 불교적인 어떤 수행이 진정한 가치 있는 참다운 그런 그 지견이, 지혜가, 안목이 무엇인가를 이제 확 바꿔야 됩니다. 그게 이제 법화산림의 상서요 이익입니다.
‘무슨 장차 무슨 이익이 있다고 이러한 광명을 놓으십니까?’했잖아요?
그리고 그 다음에
부처님이 보리도량에서 얻은 미묘한 법을 설하시려는 것입니까? 저희들을 위하여 수기(授記)를 주시려는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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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보리도량에서 얻은 미묘한 법’ 이랬습니다.
부처님이 저기 부다가야 보리도량에서 깨달았잖아요?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법을 다 통째로 다 토해놓고 갈려고 하는 것입니까?
그걸 다 설하려고 하는 것입니까?
사실입니다.
이 법화경에서 그걸 다 설했습니다. 평생 설한 것은 전부 법화경을 설하기 위한 전조(前兆)입니다. 서론입니다.
법화경 이전까지는 전부 서론이에요. 법화경이 본론입니다.
그래서 여기 이런 말이 나오는 거예요.
보리도량에서 깨달으신 미묘한 법을 이 법화회상에서 다 털어내어 놓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설법하시려는 것입니까?
참 미륵보살이 대단한 보살이야. 벌써 법화경의 그 앞으로 전개될 것을 이렇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또 수기를 주시려는 것입니까?
이런 말까지 나오네.
법화경은 다른 이름으로 하면 ≪授記經≫ 이라고 할 만치 3분의 1이 수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번 만 줘도 될 텐데 하도 미련한 사바세계 중생들이다 보니까 열 번, 스무 번, 백번, 천 번을 수기를 줍니다.
그 수기란 게 뭐냐? 이렇게 어리석고 못나고 무식하고 미련 투성이인 이런 캄캄한 중생도 그대로 부처라고 하는 사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수기입니다.
‘언제 부처가 될 거다’ 아니에요.
말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 뜻은, 법사는 숨은 뜻을 드러내서 알려주는 게 법사의 소임입니다. 그래서 경전에 있는 대로만 할려면 각자 경전을 읽지 뭐하려고 내가 설명해. 그래서 이 수기의 내용을 보면은 앞으로 이렇게 이렇게 해서 부처가 될거야, 라고 이야기했지마는 사실은 현재 이대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 부처다, 라고 하는 것이 수기의 내용입니다.
그걸 이제 여러분은 아시게 될거예요.
어째서 그렇게 철두철미하게 수기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가? 우리는 그 이야기를 아무리 아무리 들어도
‘아니야, 저 스님은 불교를 잘 몰라. 불교를 잘 모르니까 나 같은 사람을 보고 부처라고 하지.’(대중, 웃음)
속으로 지금 이러고 있다구, 거의. 80%이상 되는 대중들이, 거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
그러니까 참, 이게 들어도 우리가 제대로 믿기가 참으로 어려운 거예요.
그 이제 법화경 공부가 끝날 쯤 되면은 이제 정말 당당하게 “아! 나는 관세음보살이야! 아니야, 나는 부처야!”라고 이렇게 자신 있게 어깨를 펴고 ‘뭐 그렇게 부처가 못나고, 어리석고 찌그러진 부처가 어디 있어?’ 라고 해도 ‘나는 찌그러진 대로 부처야!’
‘나는 이렇게 못난 대로 부처야! 왜 어쩔래?’ (일동, 웃음)
이럴 날이 와야 됩니다. 올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또 수기를 하지. 여러분에게. (일동, 박수)
모든 부처님의 세계가 온갖 보배로 장엄함을 보며 여러 부처님을 뵈옵게 되오니 작은 인연이 아닌가 합니다. 문수사리보살이시여, 사부대중과 용과 신들이 모두 보살님을 우러러 뵈오니 무슨 뜻인지 말씀하여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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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리도요, 무상사에서 이 법화경 공부하는 것 이것 큰 인연입니다.
보십시오. ‘작은 인연이 아닌가 합니다. ’큰 인연이에요.
‘ 문수사리보살이시여! 사부대중과 용과 신들이 모두 보살님을 우러러 뵈오니 무슨 뜻인지 말씀하여주소서!’
이렇게 답을 청하는 미륵보살의 말씀은 여기까지 이제 끝이고, 다음 시간은 문수보살이 이제 거기에 대한 답이 나갑니다.
답이 이제 근사하겠지요. 기대하십시오.
오늘 공부 여기까지입니다. (대중, 박수)
정공(淨空;친쿵) 법사 주1)
화장정종학회(華藏淨宗學會) 불타교육기금회(佛陀敎育基金會)
창립대선사 (대만)
○중국 안휘성(安徽省) 여강현에서 1927년 중국(安徽省廬江縣) 태생(속명;徐業鴻)인 친쿵 스님은 1949년 대만으로 이주, 몽골계 금강승 고승(章嘉呼圖克圖)과 재가(대만 李炳南)거사로부터 13년간 불교를 수학한 학승, 1959년 대북의 임제사(臨濟寺)에서 구족계를 받았으며 법명은 각정(覺淨), 자는 정공(淨空).이후 48년동안 윤리도덕 회복과 대승불교 자비정신 홍포를 기원하며 강경과 불교교육, 법보시에 전념하고 있다.
○1979년에 중국 불타교육기금회(佛陀敎育基金會), 화장정종학회(華藏淨宗學會) 등 아미타불의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왕생을 기원하는 정토종을 개척, 수십 개의 불교교육과 정토전문 수행조직을 창립하였으며, 1995년에는 싱가포르 불교거사림과 정종학회를 창립하여 불교교육과 인재양성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현재 미국이민, 호주에서 주석, 홍콩을 비롯한 동남아에 설법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스님은 비디오, 인터넷 홈페이지, 위성 TV등을 통해 포교하는가 하면 <십선업도경>등의 경전을 영어 불어 아랍어 스페인어 노어등 6개국 언어로 번역하여 전세계에 보급하고 있다.
○ 대만 화장정종학회와 정공 스님- 한국에 청대 건륭(乾隆)판 대장경(大藏經) <龍藏(용장)> 100질(10억원 상당)을 법보시했다. 《건륭대장경龍藏(용장)》100질 , 《정공법사의 료범사훈 강술》 1만 3000부, 소형염불기 1만개, 《염불공덕》 1만부도 함께 법공양 했다. 소형염불기와 《염불공덕》 소책자는 전국 불교병원법당, 사회복지관, 양로원, 유치원에 법공양
○대만 정공큰스님의 무량수경테이프를 듣고 출가한 중국여배우 천샤오쉬[법호는 묘진(妙眞); 속가명 =>린메이메이 (林妹妹);陳曉旭 ; 43 - 입적] 와의 인연은 전세계를 감동시켰다.
천샤오쉬(陳曉旭.43 - 입적)는 남편(하오퉁)도 교화하였고 남편도 두 사람의 재산 수 백 억원을 가족, 사찰, 자선단체로 3 등분해 증여한 뒤 출가했다. 출가 전부터 유방암 말기였던 묘진스님은 출가 후 석 달 뒤 입적하셨고, 스님의 뜻에 따라 약 60억 원의 자선단체기금이 조성되어 현재도 수많은 사람들의 어려움을 돕고 있다.
증엄(證嚴;쩡이앤) 큰스님 주2)
자제공덕회(慈濟功德會)창시자 (대만)
○보천삼무(普天三無) 증엄스님[자제공덕회창시자]
1.천하에 내가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없다
2.천하에 내가 믿지 못할 사람은 없다
3.천하에 내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자제공덕회의 ‘4대 지업(四大志業)’=> 자선, 의료, 교육, 인문 등
○1966년 증엄 법사 설립-전 세계 회원 500만명 활동,
○1985년 설립된 세계최초의 불교방송국[대만] - 대애방송국- 지상 14층, 지하 3층의 규모로 이곳에서 TV, 라디오 방송.
방송국의 경우 대애지우(大愛之友)라는 전 세계 400만 명의 후원자가 돕고 있으며, 대만 내 5만 명의 후원자들이 매일 폐품을 모은 돈으로 방송국에 보시하는 돈도 연간 50억이 넘는다고 한다.
○빈민의료시설이 모태
○ 86년 개원한 자제병원- 종합병원과 최근 개원한 응급의료병동은 웬만한 한국의 대학병원 규모를 훨씬 능가, 왕생실, 자제공덕회 회원 수백 명의 자발봉사, 웅장한 정사당, 1999년 겨울 북한에서의 구호활동에 대한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 북한 주민들이 보낸 '부처님이 지구를 어루만지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초대형 걸개자수' 는 유명하다.
○세계 재난이 있는 곳에 세계 최초로 달려가는 대만 자제공덕회
○세계 500만 자제공덕회 회원
무비스님의 법화경 산림 ≪법화경, 꽃을 피우다≫ 불교 T.V 무상사
(2009년 4월 22일 법문 끝)
백련화 사진
º 地圓 스님
사진 및 동영상 촬영 (2009년 4월 22일)
º 문수법공양회 º 석천 慧江님 º 慧明華님
감사합니다 나무 묘법연화경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