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학송(1901.1.21-1932.7.9)
-소설가
-필명은 서해(아호)
-함경북도 성진태생
-유년시절에 한문을 배우고 성진보통학교3년 수학이 전부임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이 1910년 간도지방으로 떠나자 유년시절을 어머니와 빈궁한 생활을하면서도
이광수의 글을읽고 혼자공부하여 문학에 눈을떴다
-1918년 그도 고향을 떠나 간도로가 방랑과 노동을 하면서 문학공부를 했고
1923년에 간도를 나와 회령에서 잡역부일도했으며
이광수의 주선으로 양주 봉선사에서 승려생활도했고 그후 상경하여 조선문단사에
입사하기도했고 1927년 현대평론사등 기자도역임했다
-그는 장편1편과 단편35편의작품을남겼다
-<토혈>과 <고국>은 그의처녀작이며 데뷔작품이기도하다
-그의소설의세계는
첫째 가난 때문에 조국을 떠나 간도에 사는 유랑민들의 이야기인 <소설고국1924>
<탈출기1925><기아와살육1925><돌아가는날1926><홍염1927> 등이있으며,
둘째 함경도 시골을 배경으로 무식하고 가난한 노동자나 잡역부들 의생활을 그린
소설 <박돌의죽음 1925> <큰물진뒤1925> <그뭄밤1926> <무서운 인상1926>
<낙백불우1927> <인정1929>등이있다.
셋째 잡지사 주변을 맴도는 문인들의 빈궁상을 그린소설 <팔개월1926>
<전기1929><전아사1927>등이 이에속한다.
신경향파문학의기수이며 작품은 그의 빈곤의 참상과 체험을 표현했으며
직선적인 문체로 호소력은 있으나 예술적인 형상화가 미흡하여 지속적인
인기는 끌지못하고 불우한 인생을 살다 일찍생을 마감했다.
최학송의 묘소는 1959년 김광섭 시인등이 미아리 공동묘지서 지금의 망우리
공원묘지로옳긴뒤 40여년 방치되다 곽근동국대교수가 각종문헌등을 뒤져
어렵게 발견하고 우리문학기림회가 최학송 문학비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