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시장은 냉면도 팔고 삼계탕도 파는 삼오정 건물부터 전에 천우장이 있던 도로까지 전체를 아우른다. 넓게 보면 그렇다. 좁게 보면 2층 건물 외벽에 검은 페인트로 서면시장이라고 써 놓은 낡은 시장건물을 말한다. 건물 맞은편의 돼지국밥집들과 통닭집들도 서면시장에 들어간다. 서면시장 건물은 땅딸하다. 칼국수집들로 이름을 얻은 1층도 땅딸하고 옷수선집이 있고 포목점이 있고 그릇가게가 있는 2층도 땅딸하다. 땅딸한 서면시장은 그러나 묘하다. 땅딸해서 오히려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한번 끌어들인 사람이 서면시장을 또 찾고 그러면서 서면시장은 딴딴해진다. 서면시장은 팔팔 끓는 시장이다. 시장 골목에 들어서면 커다란 솥들에서 돼지국물이 팔팔 끓고 칼국수 집집마다 팔팔 끓는다. 통닭을 튀기는 기름이 팔팔 끓고 상인들과 행인들의 표정이 팔팔 끓는다. 서면시장은 땅딸하지만 속내는 뜨겁고 시장 거리는 짧지만 내실은 야무지다. 뜨겁고 야무진 시장이라서 서면시장은 넘어지면 코가 닿을자리에 들어선 백화점에도 밀리지 않는다. 늘씬한 백화점과 겨루어서도 당당하다. 백화점과 함께 서면을 지키면서 백화점과 함께 큰다. 서면시장은 땅딸하지만 백화점 손님도 받아내고 백화점이 받아내지 못하는 손님도 받아낸다. 서면시장은 그래서 공존의 시장이다. 낮은 것과 높은 것이 공존하는 시장이다. 작은 것과 큰 것이 공존하는 시장이고 오래 된 것과 오래 되지 않은 것이 공존하는 시장이다. 명암이 공존하는 시장이고 장단이 공존하는 시장이고 노장청년이 공존하는 시장이다. 서면시장은 그래서 의외의 시장이다. 의외의 시장이고 가능성의 시장이다. 낡은 시장건물 칼국수집 단골층이 젊은 남녀인 것이 의외라면 장꾼들이 즐겨 찾던 돼지국밥집에 말끔한 차림의 남녀노소가 붐비는 것은 가능성이다. 낯설면서도 낯설지 않는 것, 그것이 서면시장의 의외이다. 서면시장의 가능성이다. 서면시장의 가게들은 엔간하면 60년 전통을 자랑한다. 60년 역사는 예사다. 변두리도 아닌 곳에서, 헐어서 다시 짓기에 이골이 난 도시의 한가운데서 반백년 역사를 고수한다는 게 어디 예삿일인가. 강산이 거듭거듭 바뀌는 세월에도 주눅 들지 않는 힘, 그게 공존의 힘이고 의외의 힘이고 가능성의 힘이다. 언제였던가. 통닭집 다락방에서 술이 엉망으로 취한 날. 비좁은 계단으로 내려오다 굴러떨어진 날. 함께 취했던 이십대 초반의 친구들은 기억에도 가물거리는데 나를 취하게 했던 통닭집은 지금도 닭을 튀기고 있다. 지금도 그날의 아슬한 기억을 튀기고 있다. 한때는 결혼까지 생각했던 청순한 소녀. 이십년 전, 소녀에게는 난생 처음인 돼지국밥을 맛보인 곳도 서면시장이다. 국밥을 먹다 지인을 만나는 통에 먹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자리를 뜬 기억이, 잊은 줄만 알았던 기억이 나를 젖게 한다. 나를 누지게 한다. 세월이 지나도 사람이 지나도 지난 세월과 지난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게 장소의 미덕이다. 장소의 깊이다. 서면시장이 흥청댄다. 정월대보름을 며칠 앞둔 따스한 날, 대학생 나이 풍물패들이 서면시장을 걸쭉하게 부추긴다. 꽹과리소리가 가빠진다. 장단이 빨라진다. 풍물패를 들인 가게에서는 막걸리 한 사발씩을 내어놓는다. 풍물패는 입술을 축이기 전에 "고시레!" 막걸리를 가게 앞 시장거리에 흩뿌린다. 가게가 잘 되라는 마음일 게다. 시장이 잘 되라는 마음일 게다. 서면시장은 지금 고시레다. dgs111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