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심리학 교수 연구
남자로 인식했을 때 "나한테 다가온다 싸우거나 도망가자"
여자로 인식했을 때 "나한테서 도망간다 재빨리 쫓아가자" 인간은 상대방의 얼굴을 보지 않고도 동작만으로 남성인지 여성인지를 구분한다. 심지어 나이가 어느 정도인지, 기분이 어떤지도 알아낸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도 상대방을 파악해야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인간이 멀리서 보이는 사람의 걸음걸이가 남자로 생각되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으로 파악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반대로 여성적인 발걸음은 멀어지는 모습으로 인식했다. 팔자(八字) 걸음은 가까이 오는 것으로, 발을 지그재그로 내딛는 식의 캣 워킹(cat walking)은 멀어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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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은 다가오고 여성은 멀어지고 호주 서던 크로스대 심리학과의 안나 브룩스(Brooks) 교수는 '커런트 바이올로지(Current Biology)' 9일자에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은 실제 모델이 걷는 모습을 단순화해 각각의 관절을 하나의 점으로 표시했다. 이어 관절에 해당되는 점이 움직이도록 하는 영상을 만든 뒤 실험 참가자들에게 보여줬다.
모델은 남성적인 걸음걸이에서 매우 여성적인 걸음걸이까지 다양한 형태로 걷게 했다. 점으로 표시된 걸음걸이는 사람의 정면을 보여준 것도 있고 뒤에서 바라본 모습도 있었다. 움직이는 점 만으로 동작의 방향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실험 참가자들은 점의 움직임 만으로 여성적인 걸음걸이와 남성적인 걸음걸이를 구분해냈다. 또한 남녀 할 것 없이 남성적인 걸음걸이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으로, 여성적인 동작은 멀어지고 있는 것으로 인식했다.
벨기에 연구진도 2004년 같은 실험을 통해 사람들이 관절에 해당하는 점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다가오거나 멀어지는 방향성을 지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낸 적이 있다. 하지만 당시에는 남성 모델만 사용했다. 브룩스 교수는 여성 모델을 추가함으로써 성별에 따라 동작의 방향을 다르게 인식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낸 것이다.
브룩스 교수는 "사람이 성별에 따라 동작 방향에 대해 선입견을 갖게 된 것은 상대방의 행동이나 의중을 잘못 해석해서 발생할 수 있는 손해를 줄이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원시 사회에서 남성은 공격의 대상이다. 상대가 남성으로 판단되면 일단 자신에게 다가온다고 생각해야 싸우든지 도망치든지 준비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여성이 멀어진다면 재빨리 쫓아가야 한다. 여성의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아이라면 더욱 그렇다. 따라서 여성은 늘 내게서 멀어진다고 생각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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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터마임 눈속임은 통하지 않아 서울대 심리학과 박형생 박사는 "사람의 동작을 점 모양으로 단순화해 지각 여부를 연구하는 것은 50여 년 전 스웨덴의 지각심리학자 요한슨(Johanson)으로부터 시작됐다"고 말했다. 당시 그는 "사람은 중요한 몇몇 정보만 있으면 사람이나 동물의 동작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돌이 구르거나 책이 떨어지는 것처럼 사물의 움직임은 해석하기가 매우 간단하다. 하지만 동물이나 사람의 동작은 해석할 정보량이 훨씬 많다. 그런데도 인간은 관절에 해당하는 점의 움직임만 보고도 거의 정확하게 동작의 의미를 파악해낸다.
한 예로 사람이 무거운 물건을 들 때 관절의 움직임을 점으로만 보여줘도 동작의 내용과 심지어 물건의 무게까지 거의 정확하게 맞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반면 무거운 물건을 드는 척 가장한 동작은 대부분 실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챈다. 어설픈 팬터마임이 통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박형생 박사는 "길을 가면서 사람들에게 눈의 초점을 맞추지 않아도 성별을 알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라며 "동작의 모든 정보를 처리하지 않고도 성별 등을 파악하는 능력은 생존에 필수적인 사항을 신속하게 얻기 위해 진화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