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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문학상 20년사
(출전 : [강서문화예술]. 2026) 서태수
1. 개관
<낙동강문학상>은 테마 문학상이다.
문인들은 뜻밖에 낙동강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 특히 부산지역의 많은 선배 문인들이 90년대 말까지도 나에게 ‘낙동강 연작’을 버리고 담대하게 <강> 연작으로 하라고 권했다. 그때마다 나는 이천년대에 이르면 향토 문학성이 조명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낙동강문학상은 애초부터 지속적으로 강에 관심을 지닌 작가를 선정하고자 했다. 낙동강 서정문학 창작의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천착한 작품의 양과 질을 중시하고 그분의 수상이 미칠 문단의 관심을 고려하여 문단 활동 상황도 참작했다.
작가 존중의 의미로 애초부터 “수상식”으로 행사 명칭을 정했다. 강은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 흐름이며, 유아독존의 물길이 아닌 어울림의 흐름이며, 배척의 물길이 아닌 포용의 흐름이다. 문학상 제정의 밑그림을 그리던 2007년 7월 가장 먼저 문학상 취지문부터 작성하고, 총회를 통해 10월 2일을 낙동강문학상 제정을 확정했다. 취지문은 이후 부산경남경마공원의 후원 중단으로 말미에 일부 수정되었으나 홍보물까지도 제1회본을 계속 사용함으로써 낙동강문학상의 정체성이 변함없이 지속되도록 하고 있다.
<문학상 제정 초기 연혁>
2007. 8. 5. 서태수 시인, 낙동강문학상 기획 초안 작성 -총회 상정
2007. 8. 17. 경마공원 배응기 본부장 면담, 지원금 논의
- 배갑철 고문, 박상기 회장, 서태수 부회장, 반강호 부회장
2007. 8. 23. 서태수 - 경마공원 사무처장 면담, 지원 방안 협의
2007 9. 6. 서태수 -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협조 방안 협의
2007. 9. 21. 경마공원 지원금 200만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지정기탁
2007. 10. 2. 낙동강문학학상 제정 임시총회,
서태수 부회장-문학상 제정 취지문, 문학상 내규, 홍보물 모델 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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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문학상] 제정 취지문
수수만년 이어내린 낙동강 물굽이의 마지막 자락에 위치한 이 터전은 역사적으로 가야, 신라 이래의 찬연한 문화유산을 이어받은 유서 깊은 지역입니다. 오늘도 쉼없이 이어져 내리는 낙동강의 물길은 어느덧 우리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광활한 대양으로 실어내어, 이제는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이 세계의 물길 속으로 섞여들고 있습니다.
강서문학회는 이 유서 깊은 마음자락에서 우리의 민족혼이 굽이굽이 서려 있는 낙동강의 문화적 의미를 되새기는 문화마당을 펼치면서 모든 이웃들과 함께 차원 높은 문화 예술 활동을 이룩하는 견인역을 맡고자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에 낙동강의 유유한 흐름을 따라 영위해 온 민중의 애환 서린 삶을 깊이 있게 천착한 훌륭한 작가를 발굴하여 그의 업적을 기리면서 아울러 그의 우수한 문학 작품을 함께 즐김으로써 더욱 풍요로운 예술의 맛을 향유하는데 기여하고자 이 상을 제정합니다.
서기 2007년 10월 2일 부 산 강 서 문 학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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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0. 11. 운영위원회 개최
위원장 배상호 / 위원 : 박상기, 서태수 정옥금, 반강호, 손순이, 이진웅
수상자 소상보, 배갑철
2007. 12. 12. 제1회 낙동강 문학상 수상식
홍보물 600부 제작 배포 / 축하객 - 부산문인협회장 외 총 159명
2008. 7. 경마공원 처장 지원금 1/2 삭감(100만원) 통보
2008 .12.3. 제2회 수상식(운영위원장 배상호, 수상자 서태수 정옥금)
2009. 3. 박상기 회장 추천으로 후원회장에 이광촌 녹산농협조합장 위촉
2009.10.29 제3회 수상식(운영위원장 강영환, 수상자 박상기, 손순이)
2010.9.2. 제4회 수상식(운영위원장 강영환, 수상자 문병란, 김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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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10. . 제26회 수상식(운영위원장 박상기, 수상자 낙동강문학관(관장 박찬선 시인, 백명조)
제4회부터 수상 대상자를 전국적 범위로 확장하면서 가장 먼저 <직녀에게>로 유명한 광주의 문병란 교수를 선정하였다. 문병란 시인의 수상은 2005년부터 한국시민문학협회의 [낙동강문학] 발간 과정에서 필자와의 교류를 통해 소통한 결과이다.
(제4회 수상자 문병란 교수)
제8회부터 강서문화원과 낙동강문학상운영위원회 공동 주최로 하고 주관은 강서문인협회가 맡음으로서 협통 체재로 전환하였다. 시상금도 각 200만원씩 총 400만원으로 인상하였다. 강서구청으로부터 문학상 운영에 필요한 경비 일부(810만원)를 지원받았다. 2026년 제20회부터는 상금을 각300만원(총600만원)으로 인상하고 21회부터는 대외 공개적 공모를 위해 문학상 공모, 각종 서류, 심사 방법 등 새로운 체제를 위한 만반의 준비 작업을 마쳤다.
2. 문학상 제정과 시행
2-1. 낙동강 문학상 제정
<부산강서문학회> 회원들의 활동은 탄력적 창의創意 그 자체였다. 회원들의 등단과 문집 발간이 이어지고 동인지 [강서문학]도 이미 속간되었다. 동지애로 뭉친 따뜻한 응집력으로 불과 2년 활동 기간에 부산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007년 봄. 필자는 오래전부터 꿈꾸어 오던 <낙동강문학상> 계획의 실천에 돌입했다. 짧은 연륜이지만 강서문인들의 활력은 이를 충분히 담당할 수 있다는 판단이 생겼다. 업무적 기획보다 상금이 문제였지만 외부 지원 중단의 구원투수는 이미 강서문학회 복원 때부터 준비가 되어 있는 터였다. <낙동강문학상>은 대내외적으로 명실공히 수준급의 문학상으로 기획하고 있었기에 유의할 점은 우리 회원 자체의 소외감 문제였다. 문학활동도 회원들 신명이 생겨야 되는 것이다. 여러 고려 끝에 낙동강문학상 수상자를 2명으로 하여 1명은 가급적 본회 회원을 배려하도록 하고 이에도 미치지 못하는 회원을 고려하여 <강서문학상>도 함께 구상했다. 행사 명칭은 <낙동강문학상 수상식>으로 해서 주최측 시혜施惠의 의미를 버리고 수상자를 주인공으로 배려했다. 상금의 외부 지원은 부산경남경마공원본부장 배응기 전강서구청장께 부탁하기로 마음먹었다, 행사 경비는 300만~1,000만원 급간을 예상했다.
2007. 8. 5. <낙동강문학상 기획 초안>을 작성하여 임시총회를 열었다. 회원들은 자신감에 찬 대환영이었다. 그러나 낙동강문학상의 독보적 위상 확보를 위해 강서문학상은 당분간 유보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8. 17. 배갑철 고문, 박상기 회장, 반강호 부회장과 필자는 경마공원 배응기 본부장을 면담하고 사무처장 입회하에 지원 확약을 받았다. 사무처장과 면담일자를 약속하고 강서문학회가 경마공원을 위해 할 수 있는 꽃밭 역할의 활동 자료를 미리 준비했다. 시화전, 경마공원 백일장, 경마 관련 시낭송회, 동인지의 경마공원 특집, 동인지 광고 등 일련의 유인물을 만들었다. 지원금 이상으로 보답하겠다는 의지였다. 8. 23. 필자와 경마공원 사무처장, 문화홍보 담당자의 3자 면담을 했다. 처장은 예산 부족이라며 200만원 지원을 못박았다. 명색이 한국마사회의 인색한 지원금에 실망이 컸다. 경마공원을 위한 강서문학회의 문학행사 제안도 거절했다. 오래 지원해줄 것 같지를 않았다. 그러나 첫술에 배부르랴. 첫 삽이 중요했다. 낙동강문학상 홍보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직접 수령을 사양하고 번거롭더라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통로를 택했다. 우리 문학상의 공적 의지와 지속적 지원을 위해 국가기관의 후원 로고를 사용하려는 의도였다. 9월 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측과 협의 후 9. 21. 경마공원 지원금 200만원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지정기탁되었다.
행사비 400만원 이내로 경비 절감을 위한 기획안을 다시 구성했다. 기존의 취지문 외에 문학상 운영 내규, 홍보물 모델, 상패 문구, 행사 진행 매뉴얼 등을 구체적으로 만들었다. 문학상 운영에서 장래 야기될 수 있는 여러 변수, 일테면 상금, 운영 경비, 수상자 선정의 오류 등을 고려하고 무엇보다 전회원이 동참하는 운영을 모색하여 낙동강문학상의 긴 수명을 기획했다. 특히 특정 테마가 있는 문학상으로 하여 수상 자격을 문명(文名) 위주에서 벗어나 낙동강 서정의 문학작품을 양과 질에서 지속적으로 창작한 작가를 대상으로 했다. 낙동강문학상 내규를 확정했다.
[낙동강문학상 내규]
=강서문학회 [회칙 제9조]에 의거한 내규=
1.총괄 사항
가. 상의 제정-2007.10.2. 나.상의 명칭 -낙동강 문학상
다.시상:매년 1회 라.수상자-2명
단, 특별한 경우 강서문학회 총회에서 수상자 수를 조정할 수 있다.
마.부상: 상패, 상금(각100만원)
2.세부 사항
(1)낙동강문학상 운영위원회
1.위원:위원장 및 위원 6명은 총회에서 협의하여 강서문학회 회장이 위촉
당연직 위원: 회장, 총무이사
강서문학회원이 아닌 운영위원을 2명 이내에서 위촉할 수 있다.
2.운영위원회에서 심사를 겸함 3.임기: 1년
(2)수상자 선정
가.자격: 낙동강 주변 민중의 삶을 지속적으로 형상화한 작가 중에서 다음의 각호에 해당하는 분
(가)창작 경력 10년 이상으로 낙동강 서정의 작품이 문집 반 권 분량 되는 분
(나)낙동강 서정의 문학 발전에 공로가 현저한 문인
(다)추천:강서문학회 총회에서 4명 이내 추천
(라)심사:운영위원회에서 작품성, 문단 기여도, 창작 경력, 인품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최종 선정
10. 2. 낙동강문학상 제정 임시총회를 개최했다. 비로소 <낙동강문학상>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낙동강문학상 운영 내규를 통과시킨 후 규정에 따라 운영위원(박상기, 서태수 정옥금, 반강호, 손순이, 이진웅)을 선임하고 위원장은 외부인사로 평소 강서와 인연이 있던 배상호 문예시대 발행인을 위촉하기로 했다. 제1회 수상 후보자를 총회에서 4명 선정하고 최종심은 심사를 겸하는 운영위원회에 위임하기로 했다. 2007. 10. 11. <제1회 낙동강문학상 운영위원회>를 개최하여 수상자로 본회 고문인 소상보, 배갑철 두 분을 선정했다. 2-3년은 회원 중심으로 시상하고 외부 문인은 낙동강문학상의 위상이 좀 더 견고해졌을 때 하기로 했다. 낙동강문학상은 회를 거듭할수록 이름값이 커질 것이라 생각했다.
10. 25. 수상식 업무를 위한 임시총회를 개최했다. 세밀한 프로그램을 작성하여 전회원들의 역할을 분담했다. 특히 홍보물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주최, 주관 구분 없이 낙동강문학상운영위원회와 부산강서문학회의 공동으로 하고, 후원단체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부산경남겸마공원으로 했다. 지면을 쪼개어 경마공원 광고도 실었다. 리플렛 6면에 모든 것을 다 담았다. 무엇보다 수상자 소개, 수상대표작, 수상소감, 심사평 등으로 수상자를 돋보이게 하고, 문학상의 성격과 역사까지 알 수 있는 읽을거리를 만들었다. 시상식 장소는 향토성을 살리기 위해 불편한 위치이지만 강서문화원을 선택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낙동강문학상> 시상식이 훗날 낙동강 하류의 대표적 문학상 행사로 자리매김할 것이라 여겼다.
(제1회 홍보물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로고 사용 숭인을 얻었다. / 시행 연도 2007년의 오타가 있었다.)
2-2. 낙동강 문학상 시행
제1회 낙동강문학상 수상식 준비는 차질없이 진행되었다. 홍보물 발송을 위한 주소록은 전국 규모로 했다. 리플렛 600부를 사용한 당시 자료를 보면 다음과 같다.
수상자(50), 강서구청(50), 경마공원(30) 문화원(40), 문인(220 : 문협임원 55, 부산문인 110, 전국문인 40, 강서, 언론사, 기타), 강서 회원(60), 당일 사용(150)
2007. 12. 12. 드디어 제1회 낙동강 문학상 수상식(수상자 배갑철, 소상보 / 운영위원 겸 심사위원-위원장 배상호, 박상기, 서태수, 정옥금, 반강호, 손순이, 이진웅)이 159여명의 하객과 더불어 이진웅 회원의 사회로 부산강서문화원 대강당에서 성대히 개최되었다. 문화원 갤러리에는 제1회 회원 작품전도 겸하여 문학상과 계속 동행하기로 했다. 축하화환도 식장을 장식했다. 정인조 부산문협회장을 비롯한 부산의 문인들이 대거 참석하였고, 배응기 경마본부장, 신정식 강서구의회의장, 박홍목 문화원장 등 지역 인사, 수상자의 친지들이 참석, 축사를 했다. 강서노인복지관 하모니카회원의 식전 연주, 배상호 운영위원장 인사, 박상기 회장 인사에 이어 시상과 각계 대표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강서구에서 보기 드문 성대한 행사였다.
(행사 참석 문인) (행사 전경) (정인조 부산문인협회장의 축사) (문협 회원들의 만찬 준비)(회원 작품전)
<낙동강문학상 수상식>으로 말미암아 강서지역 초유의 대외적 문학행사가 시작된 것이다. 심사평에서 필자는 2005년 강서문학 발족시의 말을 다시 인용했다. ‘시작은 미약하나마 나중은 창대할 것’이라고. 특히 김옥선 회원을 필두로 한 여성회원들의 만찬 접대는 향토성 짙은 정성이 어려 부산문단에서 두고두고 얘깃거리로 회자되었다. 행사가 끝나자마자 자체 평가회를 가지고 이어 부산경마공원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 사진 자료와 함께 <기부금 성과 보고서>를 제출했다.
제2회 낙동강문학상 수상식 준비에 작은 곡절이 생겼다. 7월, 경마공원 처장으로부터 지원금 1/2 삭감 통보를 받았다. 즉시 달려갔으나 예산부족을 들먹이며 요지부동이었다. 올해는 행사 자료를 근거로 인상될 것을 기대했는데 문화에 대한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다 배응기 본부장의 레임덕(a lame duck)이 눈에 보였다. 후일을 생각하며 수용했다. 본부장의 체면,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로고 사용, 무엇보다 <낙동강문학상>이라는 거대한 흐름에 야기될 수 있는 우여곡절은 이미 각오한 터라 남몰래 부족분을 채우고는 행사 진행에 몰입했다. 수상자로 필자와 정옥금 회원이 선정되었다. 자기 심사평까지 써야 하는 상황이라 민망했으나 제1회를 원로께 드린 바 있고, 우리 문학회원 수상 순서를 위해 수용하기로 했다. 2008. 12. 3. 제2회 낙동강문학상 수상식(운영위원-위원장 배상호, 박상기, 소상보, 김옥선, 반강호, 홍화자, 이진웅) 및 회원 작품전은 전회와 마찬가지로 진행되었다.
제3회 낙동강문학상의 경마공원 후원은 포기하고 대신 광고협찬 공문을 보냈으나 거절당했다. 다행히 박상기 회장 섭외로 3. 28. 이광촌 녹산농협조합장께 낙동강문학상 후원회장의 위촉패를 전달했다. 이광촌 후원회장은 이후 6회까지 3년간 시상금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필자의 제자인 오창선 한의원에서도 협찬을 받았다. 문학상 운영위원장은 강영환 새시대문학 대표를 선임했다. 2009. 10. 29. 제3회 낙동강문학상 수상식(수상자 박상기, 손순이 / 운영위원-위원장 강영환, 서태수, 정옥금, 반강호, 박병금, 이진웅)에서 이광촌 후원회장께 감사패를 드리고 강서문학 발간비 일부 지원에 공을 보탠 박영선 강서구청 문화담당주무에게도 감사패를 드렸다. 강서구청의 윤진성 부구청장과 김동일 의장이 축사를 했다. 이때부터 김석순 회원의 행사장 찻상차림 접대를 시작했다.
2010. 9. 2. 제4회 낙동강문학상식(수상자 문병란, 김혜강/ 운영위원위원장 강영환, 서태수, 정옥금, 손순이, 박병금, 이진웅, 조창환)은 전국화의 첫 시작으로 외부 문인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문학상의 위상에 자신이 생긴 것이다. 정서적으로 낙동강의 대척점에 있는 무등산 자락의 대표 시인 문병란 시인을 모셨다. 필자와는 한국시민문학협회 활동을 통해 평소 낙동강문학상을 잘 일고 있는 분이었다. 수상식소감에서 문병란 시인은 ‘그 동안 요산문학상 등 많은 상을 받았기에 사양해야 마땅하지만 <낙동강>이라는 거룩한 이름 때문에 이 상을 무겁게 받는다.’고 했다.
(2011. 10. 27. 제5회 낙동강문학상 수상식(수상자 성군경, 홍화자 / 운영위원 : 위원장 소상보, 서태수, 박상기, 정옥금, 손순이, 박언지)에는 광주에 이어 대구의 시인을 선정함으로써 본상이 영호남을 아우르는 가교로서의 낙동강 이미지를 구축하고자 했다. 또한 제3대 낙동강문학상 운영위원장으로 본회 고문 소상보 시인을 추대함으로써 본회 자체의 운영위원회 체제로 진입했다.
2012. 10. 25. 제6회 낙동강문학상 수상식(수상자 정해원, 박언지)의 운영주체 변경이 있었다. 장래 강서문화원과의 연합을 위한 예비적 조치로 운영주체에 강서문화원을 추가하여 공동 개최 형식을 빌었다. 그리하여 그 동안 운영과 심사를 겸해오던 조직체계를 운영위원회(위원장 소상보, 박옥위, 서태수, 반강호, 정옥금, 홍화자, 박병금)와 심사위원회(위원장 서태수, 반강호, 정옥금, 손순이)로 명목상으로 분리하여 홍보물에 심사위원 명단을 수록하였다, 3-5회의 3년 동안 후원을 해 왔던 이광촌 조합장의 후원 종료로 시상금은 자체 조달했다. 낙동강문학상의 정착에 큰 힘을 보태준 이광촌 조합장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오래도록 간직할 것이다.
2013. 10. 23. 제7회 낙동강문학상 수상식(수상자 손윤식, 차달숙)은 문화원과 공동주최하는 첫 행사가 되었다. 상금은 문협 부담이었으나 강서구청의 행사비 지원을 문화원을 통해 보조받았다. 운영위원 구성은 개정된 내규에 따라 문화원 추천 위원 2명을 추가하고, 전회와 같이 운영위원회(운영위원 - 위원장 소상보, 서태수, 반강호, 정옥금, 김옥선, 손순이, 박병금, 최해준, 강구중)와 심사위원회(심사위원-위원장 서태수, 반강호, 정옥금, 손순이)를 분리했다. 수상자는 두 명 모두 서울과 부산의 외부 인사로 선정했다. 수상식 행사의 공동주체인 <부산강서문화원>과 <낙동강 문학상 운영위원회>의 위상에 대한 견해 차이로 행사 진행 및 상패 문구에 문화원과 이견이 있었다. 문인들은 후원자적 관리를 요망하고, 문화원측은 지휘적 관리를 행사하고자 했다. 관료사회에 익숙한 문화원측 임원들은 필자가 제기하는 문학행사의 특성을 단선적으로 이해하려 했다. 그러나 전국 유명 문학상의 행사 요강을 근거로 무난한 조율을 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소상보 운영위원장의 유연한 조율에 힘입은 바 크다. 한 해 동안 협회를 운영하면서 문협의 창의적 독자성과 문화원의 조직적 관료성 사이에서 반강호 회장의 운영 능력이 발휘되었다.
2014. 9. 19. 제8회 낙동강문학상 수상식(수상자 신진, 박병금 / 운영위원 - 위원장 소상보, 서태수, 반강호, 정옥금, 손순이, 이학성 / 심사위원 - 위원장 서태수, 반강호, 정옥금, 손순이, 김혜강)은 명실공히 강서문화원과 합동체제로 진행했다. 문협 부담 상금에 200만원을 보태는 지원으로 상금 총액이 400만원으로 인상되었다. 또한 문화원과 호흡을 맞춘 강서구청의 적극적 참여 속에 거행되었다. 이전 행사에 강서구의회 의장, 강서구 부구청장의 참석 및 축사가 있은 적이 있으나 낙동강문학상 수상식 8년 역사에 구청장이 참석, 축사를 한 것은 노기태 청장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행사 현수막에 시상식이 아닌 ‘수상식’의 명칭을 쓴 주최측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 의미를 축사 속에 언급한 것도 노기태 구청장이 처음이었다.
2015년에는 10주년 기념으로 법산 김용태 (전)부산문인회장을 특별상을 드렸다. 이듬해 심사위원장을 맡아 정목일 수필가를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15회 수상자는 대구의 낙동강시인 윤일현을 선정하여 경북, 대구에 신선한 소식을 전했다.
16회 문학상 업무는 삼권분립 원칙을 무시한 회장이 독단으로 처리하여 우여곡절이 많았다. 수상자 선정과 심사평, 홍보물 제작 수상식 행사에 이르기까지 전례 없는 실책과 부실함이 노정되었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이 이후에는 회칙에서 업무 한계를 더욱 명확히 개정하였다.
2026년 봄부터 제21회 이후의 문학상 운영 기획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주요 내용은 대외적으로 공개모집을 하여 응모를 하도록 하면서 그에 따른 제반 업무 – 홍보물, 응모 양식, 심사 방법 등에 대한 세밀한 준비를 미리 마쳤다. 올해 제20회는 과도기 행사로 상금도 인상하여 각 300만원(총600만원)으로 하였는데 인상분은 당분간 문협 자체기금을 사용하기로 했다. 자체적 문학상 기금은 필자의 500만원과 배갑철 고문의 400만원을 종잣돈으로 하여 상당액이 비축되어 있다. 여기에 인상된 상금은 낙동강문학상 제정 당시의 복원 회장이면서 현재 낙동강문학상 운영위원장인 박상기 고문께서 개인적 기금을 더하기로 하셨다. 제20회 수상자는 외부 인사로는 처음으로 단체를 선정하여 <낙동강문학관(관장 박찬선 시인)>으로 확정하였다.
수상 통지를 위해 이전의 방법대로 수상 사실은 숨긴 채 상주 낙동강문학관으로 직접 예방하기로 하고 필자와 김옥선 회장, 이학성 기획실장, 김석순 사무국장이 동행했다(8.5. 수). 박찬선 관장님께서는 뜻밖의 수상에다 개인이 아닌 문학관에 수여한다는 취지에 무척 감동어린 말씀으로 수락하셨다. 이로써 낙동강문학상은 명실공히 낙동강 칠백 리를 아우르는 문학상으로 자리매김을 확실히 한 것이다.
<역대 문학상 운영 및 심사 위원장>
제1회부터 제6회까지는 운영위원이 심사를 겸임하고 제7회부터 심사위원 규정을 신설하여 심사위원장을 두었다. 심사평은 4번(제11회 김용태, 14회 김무숙, 16회 김혜강, 18회 차달숙) 외는 모두 필자가 썼다.
*낙동강문학상 운영위원장 : 1-2회(배상호) / 3-4회(강영환) / 5-10회(소상보) / 11-12(서태수) / 13–16회(반강호) / 17-18회(김형복) /19-20회(박상기)
*낙동강문학상 심사위원장 : 1-6회(배상호, 강영환, 소상보 겸임) / 7-10회(서태수) / 11회(김용태) / 12회(임종찬) / 13회(이문걸) / 14회(김무숙) / 15회(서태수) / 16회(김혜강) / 17회(박상기) /18회 /19회 /20회(서태수)
3. 평가
낙동강문학상은 연륜도 일천하고 시상 주최도 유명단체가 아니고 상금도 적고 시상 장소도 시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목 받는 문학상이 되었다. 현재 제20회까지 시상한 과정을 종합하여 낙동강문학상의 성공은 다음 몇 가지 요인이 결합된 것으로 본다.
첫째는 제4회 수상자 문병란 교수의 수상소감대로 <낙동강>이라는 거룩한 이름이다. 낙동강의 역사적 상징성과 강서의 지정학적 가치가 잘 어우러진 이름값이다. 둘째는 수상자 선정의 소박성과 공정성이다. 낙동강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 강과 더불어 사는 민중의 삶을 지속적으로 형상화한 작가를 선정함으로써 문명文名보다는 테마가 있는 문학상을 지향했다. 셋째는 수상자 중심의 시상 행사이다. 외부 문인의 수상자 선정은 사전 교감이 일체 없는데다 통보 과정도 직접 찾아가서 취지를 설명하는 예의를 갖추었다. 홍보물 리플렛도 수상자를 최대한 돋보이게 제작했고 행사는 여느 시상식보다 수상자 위주로 깔끔하게 진행된다. 그래서 행사명칭도 시상식이 아니고 <낙동강 문학상 수상식>이다. 넷째는 강서문인들의 역동적力動的 신명이다. 강서라는 외곽지역에서 강물 같은 사람들의 물결 같은 출렁거림이 그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특히 만찬이 주효했다. 강서 지역은 아직도 시골이다. 하객들 접대는 다도회 소속 문협 회원들이 두레다회로 문을 열고 만찬도 회원들이 직접 장만하여 대접함으로써 전통적 손님접대 방식을 통해 향토미가 물씬 풍기는, 따뜻한 정이 오가는 행사를 기획했다. 시상에 이은 정성어린 만찬 행사에 하객들의 찬사가 오래도록 이어졌다. 특히 다도 담당 김석순 회원과 시골 대소사의 큰 행사를 많이 치른 맏언니 김옥선 회원의 음식솜씨와 진설이 돋보이는 만찬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향토지역의 원대한 문화 창달을 설계하고 있는 강서문화원과 결합되어 그 시너지 효과가 더욱 증대되고 있다, 작은 물방울로 시작한 우리의 <낙동강문학상>이 앞으로 어떻게 변모할 지는 모른다. 다만 확신하는 것은 강서의 낙동대로에 서서 바라보는 도도한 낙동강 물길도 근원은 황지의 작은 물머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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