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조선 비화] 세종대왕을 대노하게 만든 부마 남휘의 광패와 막장 간통 사건(단편)
간통(奸通)사건- 의산군 남휘(南暉)과 칠원부원군(漆原府院君) 윤자당의 첩 윤이
조선 세종 6년(1424년) 7월 한여름, 한양 도성의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태종의 수양딸이자 세종대왕의 누이인 정선공주(貞善公主)의 남편, 의산군(宜山君) 남휘(南暉)의 의산군전(宜山君殿) 안채에서는 매캐한 술 냄새와 함께 주사위 굴러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딸각, 딸각."" 허허, 이번에도 삼륙(三六)이라! 역시 이 몸의 손끝에는 신기(神氣)가 흘러.“
남휘는 주사위를 판 위에 던지며 껄껄 웃었다. 마주 앉은 내시는 눈치를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2년 전, 정선공주가 병석에 누워 신음할 때도 남휘는 장인인 태종이 보낸 내시와 이 쌍륙1)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내의 병세가 어떠한지, 약재가 제대로 들어갔는지 따위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종실의 사위라는 막강한 배경과 흘러넘치는 부귀영화만이 그의 세상을 채우고 있었다.
그런 남휘의 시선을 온전히 빼앗은 여인이 있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공신, 칠원부원군 윤자당의 비첩(婢妾)이자 좌군 소속의 노비, 윤이(閏伊)였다.
윤이는 맑고 또렷한 눈망울에 가녀린 자태를 지닌 여인이었다. 그러나 윤이의 가슴속은 잿빛으로 타들어 가고 있었다. 상전이었던 윤자당이 세상을 떠난 지 겨우 한 달 남짓, 미처 백 일도 채 지나지 않은 남편의 거상(居喪) 기간이었다. 흰 상복의 온기가 식기도 전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의산군 남휘가 그녀를 강제로 차지해 버린 것이다.
"나으리, 이 무슨 망발이옵니까. 상제를 모시는 몸으로 다른 사내의 품에 안기는 것은 죽기보다 두려운 일이옵니다.“
윤이가 눈물로 하소연했지만, 남휘는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네깟 노비 주제에 유교의 도리를 들먹이느냐? 윤자당은 이미 흙으로 돌아간 늙은이일 뿐이다. 이제 네 주인은 나다.“
권력에 짓눌린 윤이는 의산군전에 갇혀 하루하루를 지옥 같은 나날로 보냈다. 남휘의 탐욕은 그칠 줄 몰랐고, 그녀를 향한 집착은 날이 갈수록 광기 어린 질투로 변해갔다. 윤이가 잠시만 자리를 비워도 남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남휘가 궁궐의 일로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윤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담장을 넘어 도망쳤다. 그녀가 향한 곳은 한양 거리에 사는 사촌 언니의 집이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윤이를 맞이한 언니와 형부는 놀라 그녀를 안아주며 위로했다.
"윤이야, 미련한 가련한 것... 대신의 첩이었던 네가 어찌 저런 광패한 자의 손귀에 들어갔단 말이냐.“
그러나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와 윤이가 사라진 것을 안 남휘는 눈이 뒤집혔다.
"감히 노비 따위가 나를 버리고 도망을 쳐? 내 놈을 당장 잡아서 찢어 죽이리라!“
술에 취해 광기에 사로잡힌 남휘는 하인들을 이끌고 윤이가 숨어든 사촌 언니의 집으로 몰려갔다. 쿵, 쿵, 쿵! 부서질 듯 문을 걷어차고 들어선 남휘의 눈에 사촌 언니와 형부의 뒤에 숨어 떨고 있는 윤이가 들어왔다.
"이 천한 것들이 감히 내 물건을 숨겨?“
남휘는 이성을 잃었다. 몽둥이를 들어 올린 그는 사촌 언니와 그 남편을 향해 무자비하게 휘둘렀다.
"퍽! 으악!" "살려주십시오, 의산군 나으리! 살려주십시오!“
비명과 피비린내가 작은 단칸방을 채웠다. 윤이가 목 놓아 울며 남휘의 바짓가랑이를 잡았지만, 남휘는 발길질로 그녀를 차버리고는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 언니 부부를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매질했다. 거의 목숨이 끊어지기 직전이 되어서야 남휘는 몽둥이를 던져두고,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윤이의 머리채를 잡아채 끌고 나왔다.
이 잔혹하고 광패한 사건은 즉시 도성 전체로 파다하게 퍼졌고, 마침내 세종대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경복궁 사정전. 세종대왕의 얼굴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어전 아래 엎드린 남휘는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었다.
"남휘는 들으라!“
세종의 엄숙한 목소리가 전각 안에 울려 퍼졌다.
"종실에 관련된 자는 마땅히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무슨 공덕이 있어 이런 부귀를 누리는가' 하고 더욱 경계하고 근신하여 영화를 보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너는 무술년에 조정의 관원을 구타하여 사헌부에서 벌을 청했을 때도 내가 관대히 용서해 주었거늘, 어찌 또 이 지경에 이르렀느냐?“
세종의 눈빛에 섭섭함과 분노가 교차했다.
"임인년에 내 누이인 공주가 병이 나 내가 문병하는 사람을 보냈을 때, 너는 병증이 어떠한지도 모르고 내시와 쌍륙이나 치고 있었으니 가장의 도리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윤자당의 첩 윤이는 남편의 거상을 입은 지 백 일도 못 되었는데 첩으로 삼았으니, 여느 평민의 처첩이라도 그럴 수 없거늘 하물며 늙은 공신의 첩에게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이냐!“
남휘는 이마를 바닥에 찧으며 납작 엎드렸으나 세종의 호통은 이어졌다.
"이제 또 죄도 없는 무고한 이들을 구타하여 거의 죽음에 이르게 하였으니, 어찌 이리도 광패함이 심하단 말이냐! 네 집으로 돌아가 내 명령이 내리기 전까지는 이웃 동네조차 한 발짝도 출입하지 말라!“
세종은 즉시 남휘에게 주어졌던 구사(丘史, 관노비)를 모두 몰수하고 연금 처분을 내렸다. 한편, 사건의 원인이 된 윤이에 대해서도 처결을 내리기 위해 좌군 도사 최징을 불러들였다.
"군비 윤이는 대신의 첩으로서 남편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다른 사내에게 시집을 갔으니, 이법(理法)대로라면 중하게 논죄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대사면 이전의 일이니 지나간 일은 용서하고 불문율에 붙일 것이나... 윤이에게는 군중에 속하여 가장 고되고 힘든 노역인 고역(苦役)을 맡기도록 하라.“
황공함에 고개를 숙인 남휘는 벼슬도, 하수인도 잃은 채 집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불쌍한 윤이는 권력자의 탐욕에 짓밟힌 채, 남편의 넋을 기릴 새도 없이 뼛속까지 시린 고역의 현장으로 끌려가야만 했다.
조선 초, 종실이라는 비호 아래 자행되었던 탐욕과 광기, 그리고 그 권력의 그늘에 희생된 한 여인의 비극은 세종의 서슬 푸른 호통과 함께 씁쓸한 역사 실록의 한 페이지로 그렇게 남게 되었다. 이에 세종실록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가 전합니다.
세종실록 25권, 세종 6년 7월 18일 신묘 3번째기사 1424년 명 영락(永樂) 22년
의산군 남휘(南暉)를 불러 윤자당의 첩 윤이를 간통하고 폭행한 것에 대해 꾸짖다
○宜山君 南暉奸卒漆原府院君 尹子當妾左軍婢閏伊。 一日, 閏伊歸從姊家, 暉妬且怒, 至其家毆打姊及夫, 幾至殞命。 上聞之, 召暉責之曰: "連宗室者, 宜自念吾於國家有何功德, 享此富貴? 尤當戒愼, 以保安榮。 汝於戊戌, 歐打朝官, 以致憲司上疏請罪, 予從寬典, 肆宥不論。 又於壬寅, 公主有疾, 予乃軫慮, 遣人問疾, 汝則不知病證, 與宦官六博, 殊無家長之意。 且尹子當妾婢閏伊服夫喪未滿百日, 遂以爲妾。 雖常家妻妾, 尙不可如此, 況老功臣之妾乎? 今又歐打無罪之人, 幾至於死, 何其狂悖若是? 汝歸家, 非有吾命, 雖隣里毋得出入。" 仍命收丘史。 召左軍都事崔澄曰: "軍婢閏伊以大臣之妾, 夫歿未幾, 更適他夫, 理宜重論, 然宥前之事, 姑置勿論, 其定於苦役。“
의산군(宜山君) 남휘(南暉)가 죽은 칠원부원군(漆原府院君) 윤자당(尹子當)의 첩 좌군비(左軍婢) 윤이(閏伊)를 간통하다가, 어느날 윤이가 4촌 언니의 집으로 돌아가니, 휘가 질투하고 또 노해서 그 집으로 쫓아가서 언니되는 여자와 그의 남편을 구타하여 거의 운명(殞命)하기에 이르게 하였다. 임금이 듣고 휘를 불러 꾸짖기를,
"종실에 관련 있는 자는 마땅히 스스로 생각하기를, ‘내가 무슨 공덕이 있어 이런 부귀를 누리나.’ 하고 더욱 경계하고 근신하여 편안하고 영화로움을 보전할 것이어늘, 너는 무술년에 조정의 관원을 구타하여, 헌부에서 소를 올려 죄주기를 청하였으나, 내가 관대하게 용서하고 말하지 못하게 하였었고, 또 임인년에 공주가 병이 나서, 내가 진념(軫念)하여 사람을 보내어 문병하게 하였는데도, 너는 병증세가 어떠한지 알지도 못하고 내시를 데리고 쌍륙(雙六)만 치고 있어, 조금도 가장(家長)된 도리가 없었고, 또 윤자당(尹子當)의 비첩(婢妾) 윤이를 남편의 거상을 입고 있는 지 백 일도 못된 것을 첩으로 삼았으니, 비록 상가(常家)의 처첩(妻妾)이라도 그렇지 못할 것인데 하물며 늙은공신(功臣)의 첩이란 말이냐. 이제 또 죄도 없는 사람을 구타하여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였으니 어찌 그렇게도 광패(狂悖)함이 심하냐. 네가 집으로 돌아가서 내 명령이 있지 않으면 비록 이웃이나 동네라도 출입하지 못한다." 하고, 인하여 구사(丘史)를 거두게 하고
좌군 도사(左軍都事) 최징(崔澄)을 불러 말하기를,
"군비(軍婢) 윤이가 대신(大臣)의 첩으로서 남편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다시 다른 사람에게로 시집갔으니, 이치로는 의당 중하게 논죄할 것이나, 지나간 일은 우선 용서하고 말하지 아니할 것이니 고역(苦役)의 소임을 맡게 하라." 하였다.
------------------------------
1)쌍륙(雙六) : 여러 사람이 편을 갈라 가지고 차례(次例)로 주사위 둘을 던져서 나는 사위 대로 판에 말을 써서 먼저 궁에 들여보내는 놀이의 하나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 #의산군남휘 #세종대왕 #정선공주 #조선시대사건사고 #역사비화 #조선시대간통사건 #역사스토리텔링 #조선사비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