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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 '메모리얼 슬론케터링 병원'에 고열에 시달리는 한 30대 남성이 실려 왔다. 의사는 전염성 단핵증, 백혈병, 목 안의 종기 등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며칠간 검사를 반복하면서 처방을 내렸지만 증상은 호전되지 않았다. 5일이 지나도록 정확한 원인과 병명을 확인하지 못한 의사는 병원 내 '왓슨 종양내과'로 환자를 보냈다. 이곳에서는 IBM의 인공지능 수퍼컴퓨터 왓슨이 의사를 대신해 진단한다. 왓슨은 환자의 체온, 통증 부위, 엑스레이 등 검사 결과를 종합해 후보 병명을 추렸다. 그런 뒤 인터넷으로 수백만 편의 논문을 검색해 '급성 혈관염'일 가능성이 높다고 2시간 만에 진단했다. 시간을 다투는 질병이었다면 의사는 남성의 목숨을 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인공지능 왓슨이 인간 의사보다 월등한 진단 실력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가상의 상황이 아니다. 슬론케터링 병원 등 미국 내 대형 병원에서 실제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이세돌 9단이 구글의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와의 대결에서 두 판을 내리 지면서 '인공지능 쇼크'가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갖춘 기계와 컴퓨터가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왔던 지능과 종합적인 판단력에서 인간을 뛰어넘는 사례가 눈앞에 등장한 것이다. 인공지능이 두뇌를 쓰는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보다 더 확실한 '정답'을 제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파고가 입증했다. 20수 앞을 내다보는 프로바둑 기사들은 악수(惡手)라고 여겼던 알파고의 수가 40수나 지난 뒤 묘수(妙手)였다는 점을 깨달았다. 알파고의 선택이 정답이었던 것이다. 이런 현상은 바둑과 같은 게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이미 의료·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인간 전문가보다 월등한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2011년 첫선을 보인 왓슨은 불과 5년 만에 최고 수준의 의사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뛰어난 진단 실력을 갖췄다. 미국 종양학회에 따르면 MD앤더슨 암센터 등 5개 유명 병원은 왓슨을 바탕으로 암 진단을 실시해 진단율 정확도 82.6%를 기록했다. 대장암은 98%, 직장암 96%, 췌장암 94%, 방광암 91%였고 자궁경부암은 100%였다. 인간 암 전문의의 초기 오진 비율은 20~44%에 이른다. 헤지펀드에서도 인공지능이 인간 펀드매니저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HFR에 따르면 올해 1~2월 인간 펀드매니저들은 헤지펀드에서 평균 3%의 손실을 냈지만, 인공지능을 이용한 헤지펀드는 5%의 수익을 거뒀다. 돈을 벌고 싶다면 사람보다는 인공지능을 믿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인공지능이 사람을 능가하고 있다는 것은, 지구의 지배자였던 인간이 가장 강력한 상대와 생존 경쟁을 펼치게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일자리, 경제 등 모든 면에서 과거 농업혁명이나 산업혁명에 비견될 만한 격변의 시기에 들어섰다”고 말했다. 현재 알파고는 바둑만을 위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바둑에서 보여준 정답을 찾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다양한 분야로 확대될 수 있다. 구글은 알파고를 의료 분야와 가정용 로봇 등에 적용할 계획이다. 이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인공지능의 판단이 인간보다 뛰어나다는 믿음이 생기면, 그 분야는 인공지능으로 빠르게 대체될 것”이라면서 “집을 팔고 사거나 적합한 직장을 정하는 등의 현실적인 문제에서 인공지능이 제시한 답을 사람이 그대로 따르는 맹목적인 현상도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일자리 쇼크로 이어질 것 ‘인공지능 쇼크’는 ‘일자리 충격’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인공지능은 이미 많은 분야에서 인간을 대체하고 있고, 그 속도는 더 빨라지고 있다. 아직 시험 단계지만 왓슨은 의료 자료 분석만이 아니라 환자 문진도 가능하다. 예컨대 환자가 “콧물이 나고,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 ‘콧물’과 ‘두통’을 증상에 추가하는 것은 물론 “콧물이 얼마나 나느냐”고 추가로 물어볼 수도 있다. 이는 왓슨이 인간의 자연언어를 이해하고, 그를 통해 정답을 찾아내는 능력도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의사보다 더 정확하게 진단하면, 많은 의사가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맛도 안 보고 새 맛 찾아내는 '셰프 왓슨' - IBM 연구원이 요리사들에게 인공지능 프로그램 ‘셰프 왓슨’의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다(왼쪽 사진). 셰프 왓슨은 레시피를 조합, 새 레시피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오른쪽 작은 사진들은 셰프 왓슨이 만들어낸 메뉴들. 위에서부터 ‘생강 맛 토마토 가스파초’, ‘토마토와 모차렐라 타르트’, ‘콩소메를 곁들인 관자’. /IBM 제공 일본의 데이터 업체인 UBIC는 각종 법적 분쟁에 인공지능을 사용한다. 관련 메일이나 문서를 모두 조사한 뒤, 증거로 만들어 변호사에게 제출한다. 변호사는 자료를 조사할 필요 없이 인공지능이 넘겨 준 자료만 검토하면 된다. 비서가 필요 없어진 것이다. 약사도 인공지능의 위협을 받는다. 미국 UC샌프란시스코 등 5개 대학병원에서는 인공지능 시스템을 탑재한 로봇이 35만건의 약 처방을 조제하면서 단 한 차례의 실수도 없었다. 일부 국가는 사회망 운용에 인공지능을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조지 오즈번 영국 재무장관은 최근 “영국 고속도로에 무인(無人) 트럭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인공지능이 통제하는 무인 트럭이 등장하면 물류 운송 시스템을 분초 단위까지 정교하게 계획해 효율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트럭 운전사들은 일자리를 잃고, 고속도로 휴게소의 매출은 크게 떨어진다. ◇감정·창의성도 인간만의 것 아니다 10년 전만 해도 과학자들은 인공지능이 창의성이나 감정 등이 필요한 영역에는 진출하기 힘들 것으로 여겼다. 요리가 대표적이었다. 인공지능은 맛을 볼 수 없다. 하지만 IBM이 왓슨을 이용해 선보인 ‘셰프(요리사) 왓슨’은 수많은 레시피를 검색해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새 레시피를 만들어낸다. 일본 도쿄와 미국 등지에서는 왓슨의 레시피대로 조리해 내놓는 곳도 있다. 컨설팅업체 딜로이트는 지난해 “영국 일자리의 35%가 20년 내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옥스퍼드대 역시 향후 10~20년 안에 미국에서 702개의 직업 가운데 절반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서류 작성이나 계산 등 일정한 형식이나 틀로 이뤄진 정형적인 업무는 인공지능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 미국에서는 회계사와 세무사 등의 수요가 최근 몇 년 사이 8만명 이상 줄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는 2030년이면 최소한 300만명 이상이 인공지능 상사 밑에서 일하게 될 것으로 예측했다. 김진형 카이스트 명예교수는 “인공지능이 중간 관리자로서 서류 작업과 인력 관리를 맡고, 사람에게는 현장에 나가 서류에 적힌 숫자가 맞는지 확인하는 육체적인 노동만 주어질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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