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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남정맥 6주차 ( 한티재 - 여항산 - 오곡재 - 발산재)
【 개 요 】 |
♣.4월 24일(토요일) |
~.16:10 : 울산 터미널 출발(6,500원) |
~.18:40 : 마산 터미널 도착 |
~.19:20 : 마산 남부 터미널 도착(시내버스:800원) 및 석식 |
~.20:35 : 터미널 출발(함안행 : 연동 1,400원) |
~.21:00 : 연동 수궁온천 도착(입장료:7,000원) |
♣.4월 25일(일요일) |
~.05:45 : 기상 |
~.06:30 : 온천 출발 |
~.06:44 : 한티재 진고개 휴게소 도착(택시:5,000원, 조식:5,000원) |
~.07:18 : 한태재 출발 |
~.08:18 : 봉화산(649.2봉) |
~.09:53 : 서북산(738.5m) |
~.11:32 : 여항산(770m) |
~.12:25 ~ 13:08 : 중식(743.5봉 지나서) |
~.13:18 : 미산재 |
~.13:55 : 오곡재 |
~.15:08 : 527봉 |
~.16:12 : 363봉 |
~.17:29 : 326봉 |
~.17:56 : 발산재 |
~.19:50 : 마산 터미널 도착(발산재 휴게소에서 개인 승용차 히치 하이킹) |
~.20:30 : 마산 터마널 출발(6,500원) |
~.22:40 : 울산 터미널 도착 |
【 산 행 기 】 |
▒ 서 기(4월 24일: 토요일) 지난주 부득이한 사정으로 빠진 구간의 종주를 혼자서라도 메우려고 며칠동안의 계획과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다곤 했지만, 막상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니 걱정 반 설렘 반이다. 먼저 단독종주를 하신 회장님의 경험과 광율이의 격려를 듣기도 하였지만 말이다. 사전에 인터넷을 통하여 버스 시간을 검색해보니 울산 출발을 4:30 이전에만 한다면 무난할 것 같아서 터미널에 도착하니 4시가 막 지나고 있다. 차표를 사서 마산행 직통버스에 승차하니 곧 출발이다(4:10발). 승객은 거의 만원이다. 주말 오후인지라 도로는 시내부터 정차구간이 많다. 고속도를 진입하여 통도사 나들목 부터는 아예 거북이 걸음이다. 1시간 40분 소요거리로 알고 다음 스케줄을 잡았는데 토요일 오후 도로 사정을 감안하지 않았다. 이래가지고서는 마산에서의 스케줄이 엉망이 될 것 같다. 노변의 야산에 있는 아카시아는 하얀 꽃을 메 달기 시작한다. 아마 얼마 후면 아카시아 향내를 맡으며 산행을 하게 될 것 같다. 마산 터미널에 도착(6:40)하여 남부 터미널로의 이동 시간 절약을 위해서 택시를 이용하려다, 계획을 다음차로 변경하기로 하고 조급증을 떨치며 시내버스로 이동하기로 한다. 마산 시내도 토요일 오후 퇴근 차량들로 정체가 심하다. 남부 터미널에 도착(7:20)하여 함안행 8시 35분차편의 출발시간도 여유가 있어 어림잡아 “연동”(1,400원)까지 차표를 구매하고는, 저녁을 뼈다귀 해장국에 소주를 곁 더려 넉넉히 해결한다. 토요일 막차편 인데도 승객이 몇 안 된다. 발차 시간을 기다리며 “앗싸 고도리” 게임을 한판 벌렸는데 폰이 진동을 한다. 회장님의 격려 전화다. 기사 분에게 마을 이름도 모르고 진동을 지나서 수궁온천엘 간다고 하니 금방 이해 하셨는지 쉽게 내려주신다. 자그마한 아저씨가 시골 분들만 상대해서인지 인정 있게 대해주신다. 9시쯤 도착하여 온천장엘 입장하니(7,000원) 주말이라 어린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단위의 몇 팀이 있고 한산하다. 잘은 모르지만 이런 시골에 이만한 시설의 온천장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생전 처음 간 낮선 하늘아래 혼자서 밤을 새는 묘한 자유도 즐기고, 두려움도 떨치려 PC방에 들려 잠시 오락 등으로 망중한을 즐기다보니 와그리 시간이 잘 가노. 언젠가 싶게 12시가 가까워 내일을 위해 억지로 잠을 청한다. |
▒ 산행기
*한티재 - 서북산(738.5m) - 여항산(770m)- 오곡재
눈을 떠니 5시 45분이다. 한티재까지 차편이 걱정이라 서둘러 행장을 꾸리고 나선다. 조금 기다리니 마침 한티재 쪽에서 빈 택시가 와 돌려서 잡아타고(6:35) 진고개 휴게소에 도착하니(6:44 5,000원) 쌀쌀한 날씨 때문인지 을씬년 서럽다. 된장국에 아침을 사서(5,000원) 먹고 봉화산을 향하며 하루를 시작한다(07:18). 완만한 경사로는 평범하며 뚜렷한데 많이 찾지 않는 코스라 소나무 사이의 잡목들로 무성하다. 잡시 오르막 인가 했는데 다시 내리막이다. 고저녁한 아침 산길을 홀로 걷는데 한 자웅의 꿩이 갑자기 솟구쳐 올라 깜짝 놀란다. 조용한 아침에 부부간 사랑을 나누는데 웬 방해냐고 저들은 내가 무지 원망 서러울 것이다. 새로운 야생화도 구경하며 혼자 하는 산행의 즐거움을 최대한 만끽 하려는 나도 너희들의 갑작 서러운 출현이 싫다 이놈들아!
(홀아비꽃대)
(은방울꽃) 등로의 방향은 남서진에 서서히 경사가 심해진다. 서둘지 말자. 모처럼의 자유를 만끽하자. 조금 행보가 늦다고 타박할 사람 없다. 평정심을 갖고자 마음을 다잡으며 갚아오는 숨을 참는다. 땀도 나기 시작하여 재킷을 한 벌 벗고는 내쳐 오르니 지도상 봉화산인 649.2봉이다(8:18). 갈림길에 한그루의 큰 산철쭉이 멋을 내며 뽐내듯 만개하여 나를 반긴다. 함박웃음을 띤 연분홍의 새색시 같이 탐스럽다.
오른쪽 길은 본래의 봉화산길 같고, 왼쪽으로 남진방향의 평탄한 등로를 따르니 마루금의 등로 주변에 간간히 억새도 있다. 이따금 암릉 구간도 나오는데 큰 고도차는 없다. 잠시 오르막 내리막을 소화하니 경사가 심한 암릉 구간에 왼쪽으로는 다시 남해안 진동면 난포 앞바다가 가깝고, 오른쪽 저 멀리는 서북산이 초록의 신록에 쌓여 솟아 있다. 아마 남해 바다를 제일 가까이서 조망하고는 다음부터는 서서히 멀어 질 것이다.
경사가 급한 암릉 구간을 내려서니 안부에 임도가 넓게 가르마처럼 펼쳐진다. 신작로 같은 임도를 따르다 임도도 서서히 고도를 높이니 햇볕도 이제는 따갑고 그세 또 숨이 차다. 임도가 마루금을 만나 방향은 오른쪽으로 꺾기니 북서진으로 바뀌며 마루 금으로 이어 진다. 등로 주변에는 산주가 그리 오랜 전은 아닌 것 같고 소나무, 잣나무로 가지런히 조림을 하였는지 나무들이 곧게 잘 자라고 있다. 잠시 내리막을 내려서려는데 오늘 산행을 시작해서 처음으로 인기척인 두런두런 사람소리가 들려온다. 그리 젊지도 않은 부부가 배낭을 짊어지긴 했는데 산나물을 캐며 담소를 즐기다 그네들도 사람을 만나니 반가운가 보다. 인근의 마을에 사신단다. 울산에서 왔으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가야 한다니까 교통편도 걱정해 준다. 넉넉한 행복이 따로 있을까? 처음 만난 낮선 이와의 몇 마디의 대화에도 친근감을 느끼며 걱정해 주는 이들의 인정이 바로 우리네 삶의 평범한 진리일진데. 와그리 쉽지가 안노! 작은 임도를 가로 질러 오르막을 시작하니 오른쪽에는 소나무를 벌목해 두었는데 병이 들었던 모양이다. 서북산의 오르막을 앞두고 따가운 햇살을 피해 소나무 그늘에서 숨을 고르며 잠시 쉰다. 즐기자. 혼자임을 즐기자. 본격적 오르막이다. 서서히 고도를 높이는데 앞서가는 젊은 부부를 또 만난다. 그네들도 고사리랑 산나물을 캐며 등반도 할 겸에 부산에서 왔는데 뱀도 세 번이나 만나고 소득이 별로 란다. 고사리가 있을 범한 곳이 아니라고 아는 체를 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서북산이 아직 멀었냐며 묻기에, 나도 초행이라며 좋은 하루 되라고 인사를 하고 앞서 오른다. 어느새 등로 주변은 소나무가 사라지고 키 작은 잡목과 철쭉 군락지다. 작은 바위를 내쳐오르니 평평한 정상에 헬기장을 만들어 놓은 서북산 정상이다(738.5m 9:53). 정상인데도 아무도 없다. 반나절을 지나온 마루금을 돌아보니 그 넘으로 저번 주 구간인 광려산, 대산 하늘선에 무학산 정상도 보인다. 정상비는 헬기장에게 정상을 비켜주고 서북산 전적비를 동무삼아 옆에 두고 있다. 50년 8월 미 25사단 5연대 소속의 티몬스 대위외 100여명 사병의 낙동강 서부전선의 치열했던 전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 리차드 티몬슨 중장이 주한 미8군 사령관으로 부임하여 인근의 38사단장 하재평 소장과 그 휘하 및 장병들과 95년 11월에 건립하였다고 새겨 두었다. 나도 묵념을 해주고는 여항산을 향한다.
<앞:봉화산 가운데:광려산,대산 하늘선 맨뒤에:무학산 정상> 방향은 북서진이다. 등로는 좋다. 잡목들이 터널을 만들어 놓아서 그 사이로 걷다보니, 봄에는 며느리만 들일을 내보낸다는 따가운 봄볕을 피하게 해준다. 706봉을 올랐다 잠시 내려서 마당 같은 넓은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 전 지나온 봉화산 마루금을 감상하며 봄볕도 즐겨 본다. “U"자의 이쪽과 건너 쪽을 마주보는 셈이다. 그 사이 골짜기로는 시골 마을들이 옹기종기 보인다. 등로는 큰 고도차 없이 걷기에 좋다. 봄날의 여흥을 즐기며 콧노래도 나올 만 하다. 헬기장을 지나고 잠시 걷다 보니 마루금이 약간 우회를 한다. 지나고 보니 큰 바위가 가로 막았다. 봄 가뭄에 말라 있었지만, 이끼도 제법 보기 좋게 끼였고 형체도 웅장해 보인다. 이름 있는 산에 있었다면 그럴듯한 이름도 있겠지? 그래 니는 감히 내가 이름을 붙여 주마. “오늘부터 니는 장군 바위다” “수하를 많이 거느리고 이산을 지키는 장군 말이다” 잡목 사이로 여항산의 암벽이 신록과 어우러져 위용을 나타낸다. 조금은 서두른다. 예정 시간 보다 지체도 되었지만 정상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얼마나 되었다고 그새 외로움 타나? 사람이 그립게.....
암릉을 만나는데 우회로도 있지만 설치된 안전 로프를 이용하여 어렵게 올라보니 여항산의 위용이 잘도 보인다. 등산객도 여럿 보인다. 서둘러 내려와 얼마간에 절벽 같은 바위가 또 가로 막는데 위험 안내판이 우회를 유도하지만 험로인 암벽을 고집 한다. 힘들게 오른 만큼 뒤돌아 조망도 감상해 본다. 좋다, 서북산하며. 잘록한 안부에 내려서니 해발 720m에 “서북산 5.9km” “좌촌 2.6km” “미산재 2.8km” “정상 0.2km” 라는 이정표가 바위 그늘에 서있다.
좌촌 쪽에서 젊은 등산객이 올라와 같이 정상을 마저 한다. 쇠사슬과 로프가 마련돼 있다. 연전에 청수 우골로 한피기를 통과하여 영축산을 홀로 오르다 작은 바위에 설치된 로프를 이용하다 로프가 끊어져 큰 낭패를 본 기억이 나서 쇠사슬만을 이용하여 힘들게 오른다. 여항산 장상이다(11:32). 산세만큼이나 이산은 근교에서 많이들 오나보다. 함안군 가야읍의 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여러 팀이 모여 있고 벌써 무리져 점심을 먹는 팀도 보인다. 정상이 좁아 교대 교대로 사진을 찍곤 한다.
정상석의 고도를 다시 고쳐 새긴 흔적이 보이는데 지도와 달리 770m로 새겨져 있다. 주위의 서북산의 고도등을 볼 때 지도의 표고 보다는 770m가 맞을 것 같다. 시간을 조금 허비 한다. 지금까지 혼자라 종일 사진한 컷 못하다, 정상석을 배경으로 차례를 기다린다. 사진 찍기도 좁아 사진사가 조금만 방심하면 뒤로 떨러질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차례가 와 한분에게 부탁을 하니 겁이나 자신이 없단다. 어휴 이런 맹추! 그런데 여기까지 어떻게 왔노? “영남 산악회”라는 재킷을 입은 분께 다시 부탁을 한다. 이건 또 뭐야? 메모리가 다 찼다며 사진이 찍히지 않는단다. 사진기를 점검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온 불찰이다. 즉석에서 지나간 불필요한 사진을 삭제 시킨다. 어휴! 이 아까운 시간에..... 쪼그려 앉아서 하는 짓이란. 한심한 지고. 어렵게 한 컷하고 암벽위를 지나 완만하게 내려서니 느들 지대다. 자연히 생긴 돌들이 아니고 옛 성터의 잔해다. 그 옛날 포구가 가까운 이곳에는 왜구의 출몰이 잦았으리라 추측해본다. 성터의 잔해가 끝나자 내리막 경사가 심해진다. 해발 700m에 “정상 0.7km” “서북산 7.2km” “미산재 1.4km” “의상대 4km” “돋을샘 1.2km” “미산 13.5km”라는 이정표가 지키는 안부다.
직진하여 오르는데 다시 성터 잔해의 느들 지대다. 여기는 오가는 사람들이 작은 탑을 여러 개 세워놓았다. 그대로 방치해 두는 것 보다는 나은 것 같다. 중국의 만리장성도 그 성아래에는 일반 양민의 시체로 기초를 삼을 정도라 했는데 여기도 같지 않을까? 이렇게라도 그들을 기리면 말이다. 얼마간 오르니 743.5봉이다(12:11).
이제 시장기도 서서히 온다. 작정은 오곡재쯤으로 했었는데. 무리한 계획 이였나? 방향을 남진으로 바꾸며 암릉 구간을 내려서면서 바위틈에서 점심 만찬을 라면 하나 끓여서 먹는다(12:25). “역시 산에서 먹는 라면이란 별미다 말이야.” “소주한잔 곁들이면 따~악 인데.” “아니다! 라면 안주는 소주가 더 쓰더라.” “이~런 이런! 쇠주는 쓴맛에 쫙~ 한잔 아이가?”........ “흐~ 흐~흐....” 혼자라도 점심시간은 즐겁다. 오후 일정을 점검해 본다. 계획의 꼭 절반쯤인데 과연 발산재 까지는 무리 아닐까? 나의 체력에. 오전을 소화한 일정으로 볼 때 아마 6시쯤에나 도착이 가능 하리라 싶다. 아무튼 오곡재에서 다시 생각하기로 하고 일어서니 40여분이 여삼추 같이 훌쩍 지났다. 잠시 내려서니 널따란 바위위에서 부부 두 쌍이 점심을 먹으며 쉬고 있다. 내가 점심을 먹을 동안에는 지나가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데? 아~ 오곡재 쪽에서 올라와 쉬나보다. 편안하게 내려서니 함안, 진주, 마산의 경계인 미신재다(13:18).
빨강색 승용차가 끊어진 자갈길 도로 옆 공터에 세워져 있다. 아마 잠시 전 두 쌍의 부부들의 차인가 보다. 직진이면 의상대라는 작은 푯말이 서있고 길이 끊어 쪘음을 알리는 합판도 도로 옆에 누워 있다. 낙남 구간인데? 의상대라니? 어쨌든 직진으로 오르막을 천천히 오른다. 작은 바위 전망대에서 왼쪽을 보니 여향산과 마루금의 하늘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여기를 의상대라 하나? 743.5봉이다. 그대로 통과하여 십수분 급하게 내려서니 비포장도로가 봄볕을 받고 길게 누워 있는 오곡재다(13:55 390m 정도). 나도 배낭을 베고 눕는다. 심한 갈등에 빠진다. 계속 할 것인가, 여기서 마감을 하고 철수를 할까. 고도 편차는 많지는 않다고 했는데. 하지만 지금 내 체력으로는 체감이 심할 텐데. 아무도 못 만나고 혼자 일 텐데, 왼쪽 아래 여양리 오실골 마을에서 해맑은 아이들의 노는 소리가 지척에서 나는 것 같아 나를 유혹한다. 숲 속의 뻑국이 우는 소리는 도리어 처량하다. 그래 가자! 일단 나서면 다시 뒤돌아 오진 않겠지. 어차피 차주도 일행과 함께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정 늦어지면 마산에서 심야버스를 타지 머. 마음을 추서리 고는 행장을 다시 차려 일어선다. *참 고 : 현재 까지 도상거리 : 94.5 km(연숙이와 함께가는 낙남정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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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곡재 - 363봉 - 326봉 - 발산재 천천히 오르막을 오르니 등로 양쪽으로는 몇 그루의 때 이른 철쭉이 벌써 지고 있다. 봐주는 이 없어 외로워 벌써 지나? 검은 나비 두 마리가 나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잠시 따르다 어디론가 훌쩍 날아간다. 그들도 내가 외로워 보였나 보다. 아무도 앞서서 지나가지 않아서 인지 잡목사이의 거미줄이 기분 나쁘게 얼굴을 휘감는다. 서서히 경사가 가픈가 싶은데 벌목해둔 나무들 사이로 함안 414 삼각점이 있는 535봉 이다(14:32).
등로의 방향은 이제 남진으로 바뀐다. 왼쪽으로는 여항산 하늘선이 신록에 눈이 부시고, 오른쪽은 진주시 이반성면 이다. 오르막 내리막을 세 번쯤인가를 했는데 암릉 구간을 지나니 소나무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분위기로 누워 길을 막는다. 희미한 등로에 마루금을 잠시 피하게 만들고, 수구 맀다가, 뛰어 넘었다가. 잠시 소홀히 하다 몇 번을 등로를 잃고 다시 찾고, 그때마다 회장님이 달아둔 표시기가 와그리 반갑노. 추측컨대 매미때 이곳 소나무들은 해충이 들어 병들어 죽어 가고 있었던 상황 같다. 그러다 보니 모두들 힘없이 때로 넘어져 버린 것이다. 점점 힘까지 떨어지는데 이것은 보통의 고통이 아니다. 넘어진 나무들이 막지 않으면, 잡목들이 할퀴고, 삭정이들이 발목을 찌르고. 내리막에서 등로의 상태가 조금 좋아져 안도하고 내쳐 내려가니 희미하게 등로는 사라지고 옆을 살피니 임도가 넓게 시작을 한다. 그제야 표지기들이 하나도 보이지 않음을 안다. 아차! 이기 아인데. 나침반을 켜고 보니 방향도 아니다. 순간 당황이 된다. 방해 된다고 꺼놓았던 폰을 켜서 회장님과 통화한다. 뜽금없는 임도라니! 니 잘못 됐다”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 올라간다. 십수 분을 올라가니 등성이 삼거리에 왼쪽 길은 희미했지만 표지기들이 달려있고 오른쪽 길은 뚜렷하지만 잠시 내려가니 등로가 아니고 자연스럽게 생긴 수로에 낙엽에 수북이 쌓여서 등로로 착각했다. 생각 없이 좋은 길이라고 걷다가 이 아까운 황금 시간에 체력을 소진하며 삼십 여분을 알바로 때웠다. 지루하게 363봉을 올랐다(16:10) 내려서 얼마간 가니 왼쪽으로는 포장된 임도가 나란히 한다. 이겐 또 웬 유혹? 도로를 따라 겔로프가 내려온다. 아무도 보는 이 없는데 손을 들어 부탁을 해서 타고 내려갈까? 힘도 많이 떨어졌는데. 갈등을 느끼다 정리도 체 끝나기 전에 차는 휑하니 지나간다. 그래 잘 가라 쨔샤! 괜히 나타나서 나를 시련에 빠지게 하네. 해는 내 그림자를 동쪽으로 길게 눕게 하고 점점 사그려 던다. 평탄했던 등로가 좀 급한 경사로 바뀐다. 마지막 오르막을 앞두고 한 모금 남겼던 물을 참다 참다 마지막으로 소진 한다. 삼사십 분 후면 발산재이니 그때까진 참을 수밖에. 오늘따라 물도 모자란다. 점심에 라면을 끓여 먹다보니 생각이 조금 모자랐다. 산행을 하면서 물이 모자라 받는 고통을 아는 사람은 알리라. 안간힘을 내서 급한 경사로를 올라서 삼거리가 뚜렷한 326봉(17:30)에 이러니 갈증에 거의 탈진 일보 전이다. 사탕을 한입에 두개를 까 넣고 악물며 내리막이 끝나면 발산재 휴게소에 시원한 캔 맥주가 기다리고 있음을 위안 삼고 힘을 낸다. 회원과 같이 했다면 오늘의 하산주 메뉴에 군침을 돋우며 힘을 내곤 했는데. 서산마루의 해도 힘을 많이 잃었다. 아침에는 쌀쌀하던 날씨가 햇살이 펴지니 거의 초여름 수준 이였는데. 왼쪽 길도 또렷한데 표지기 들이 오른쪽이 발산재 임을 알린다. 멀리서 공사장의 파쇄기 소리도 들려오고 차량의 소음도 희미하게 들린다. 방향을 남서진으로 약간 꺾어서 완만하게 진행하다 다시 왼쪽으로 틀어서 조금 급한 경사로를 내려오니 무덤 위에도 소나무 두 그루가 누워 있다. 작년 추석 때 후손들이 다녀가지도 않았나? 10시간 40분의 대장정을 마감하는 발산재에 내려서니 인걸은 온데간데없고 하얀 개 두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반긴다(17:56). 이곳 유지들이 세워둔 자연보호 헌장비만 소공원에 휑하니 서있고 휴게소에는 사람이 철시를 했다. 휴게소가 있던 도로는 이제 구도로가 되었다. 마산 - 진주간 2번 국도가 확장공사를 하면서 고갯길을 직진으로 만들어 우회로가 돼 버렸다. 그래서 가게를 철시를 하였나 보다. |
*참 고 : 현재 까지 도상거리 : 103.8 km(연숙이와 함께가는 낙남정맥 참조) |
▒ 산행후기 주인은 없지만 텃밭의 수도꼭지에서 계속 흘러내리는 물에 입을 대고 갈증을 우선 풀고 대충 땀을 씻는다. 옷이며 배낭은 노란 송홧가루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자연보호헌장 비를 사진으로 남기고 있는데, 진주 쪽에서 넘어온 승용차가 멎더니 젊은이가 혼자 내려 가게를 기웃거린다. 그네도 주인 없는 가게 문을 몇 번 흔들더니 투들 대며 다시 오르는데 마침 운전자 혼자뿐이라 노선 버스정차장 까지만 부탁을 하니 혼 케이 허락을 한다. 담배가 떨어져서 담배를 사려고 들렀다면서 담배 한 대만 달랜다. 그 봐 이수형님! 이럴 땐 담배도 필요한 거잖아요. 5분여 잠시 달려 내려오니 온천단지가 형성돼 있다. 목욕도하고 옷도 갈아입으려고 하차를 하려고 부탁을 하니 자기도 마산 까지는 심심하게 혼자 운전하며 가느니 같이 가잔다. 역겨운 땀내에 미안하기도 하여 다시 제고를 하라고 하니 그게 다 사람 사는 냄새 아니냐며 신경 쓰지 말라는데 젊은 사람 답지 않다. 남부 터미널에서 다시 본 터미널로 이동하는 시간도 많이 걸리는데 마침 자기도 본 터미널을 지나간단다. 여러 가지로 신경 써 준다. 10여분을 내려와 2번국도와 14번 국도와 만나는 삼거리를 앞두고 정체가 심하다. 휴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차량들이 길게 꼬리를 물고 있다. 고속도로를 이용 하려다 정체를 피하려고 국도로 왔다는 운전자는 나에게 행운을 주려고 그랬나 보다. 삼거리를 지나서 부터도 가다, 서다 반복이다. 이제는 시원한 맥주한잔이 제일 그립다. 차량이 속도를 못 내고 있어 짜증도 나겠지만 참으라며 담배를 권하니, 오면서 나를 자세히 보니 연세가 지긋한 분 같은데 아까 차를 타자마자 담배를 달래서 정말 예의에 벗어났다며 겸손해 한다. 요점의 젊은이답지 않은 말에 도리어 내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내 몰골이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나? 어렵사니 터미널에 도착하여 슈퍼에 들려 켄 맥주부터 하나 사서 한입에 부어 버린다. 7시 50분인데 막차가 9시다. 젊은이를 만나지 못하였다면 정말 심야버스를 탈 뻔했다. 목욕탕도 들릴 여유가 없다. 승차권을 우선 구매하고선, 땀내 나는 이 상태로는 음식점도 그렇고 노상 포장마차에서 할머니가 썰어주는 순대에 소주한잔으로 내 순대를 체우며 오늘 만난 젊은이의 당부를 되새긴다. 너무 너무 감사하다고 하니 베풀 때도 있고, 도움을 받을 때도 있는게 아니냐며, 나보고는 아저씨도 오늘 받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 베풀면서 사시란다. 세 사람이 길을 가도 한사람에게서 배울 것이 있다고 했는데 좋은 산행과 좋은 사람과의 만남 속에서 진정 난 무엇을 배웠나? 그래요! 젊은이 내 명심 하리다. 복 많이 받고, 하는 일 마다 좋은 일만 있길 간절히 빌겟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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