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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譯 淸 苑 詩 抄
淸安李氏 발간사
내가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날이 적다는 것의 의식하던 그날로부터 줄곧 나에게 부담을 주는 과제가 있었으니, 그것은 한동안 집집마다의 시렁위에 즐비했던 문중 선현들의 문집이 이런 저런 이유로 한권 두권씩 자취를 감추고 이제 가까스로 남아있는 몇 권 안 되는 책 들마져도 한문을 해독하지 못하는 후손들에게는 한갓 낡아빠진 종이뭉치에 불과하다는 절박한 사실이었습니다.
무릇 이 세상에 태어나서 전시대로부터 한 시대를 이어받은 자손들에게는 집안 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계승발전 시켜 다음세대에 넘겨줄 무한책임이 있다고 하겠거늘 스스로의 무지와 무성의로 인하여 이 책무를 다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조상님이나 후손들에게 그 보다 더 큰죄는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비록 동물적인 목숨은 이어갈지언정 분명한 가계문화의 단절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한 시대의 링커(Linker)의 부재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나는 이 고민을 혼자 감당하기가 어려워 전일 청안이씨 충의록을 반듯하게 국역하셔서 우리 집 후손들의 한을 풀어주신 당대의 석학 운영 손종섭선생을 찾아가서 조상에게 불효하고 후손에게 작죄하는 나의 두려운 마음을 실토하였던바 내 심중을 이해하시고 도와주실 것을 언약하셨습니다.
아시다시피 선생은 일찍 松江歌辭精解 ‘옛정을 더듬어’ ‘李杜詩新評’ ‘우리말의 高低長短’ ‘내 가슴에 梅花 한그루 심어놓고’ ‘다시 옛 詩 精을 더듬어' '노래로 읽은 唐詩’ 등 수많은 한시(漢詩) 국역(國譯)을 하셔서 세인의 흠선(欽羨)을 받아오신 분이십니다. 선생의 번역에서는 기존의 시의 번역이기보다는 오히려 옛 그 시인을 다시 환생시켜 현대인과 함께 호홉하면서 새로 창작시를 읊게 하신 듯 생동감이 넘치면 형용하지 못할 흥분을 함께하게 합니다. 그래서 나는 선생을 한시 국역에 있어서는 우리나라에서 제일인자임을 주저하지 않고 단언합니다.
그래서 내가 생각해 낸 것이 제한된 시간 안에 보다 많은 선현들의 유목을 통해 그분들의 삶을 재현하는 방법으로 그분들의 시서중(詩書中) 우선 시(詩)만을 발췌 번역함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그 뜻을 선생과 상의하였던바 쾌락하여 주셔서, 선생의 지극정성으로 이 책이 햇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시(詩)가 무엇이며 어떻게 생성되어 지고 어떻게 작용하는지는 이 책 서문에서 선생이 소상하게 밝혀 놓으셨습니다.
아! 이러한 행운이 또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선생의 말씀대로 이 시집에는 위로는 1700년대 조선 영조조(英祖朝)로부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는 장장 200여년간의 역대의 문중 선현들이 환생하여 오늘을 사는 우리들과 한자리 하고 계십니다.
나는 사람이 살아있다는 것은 누군가의 의식 속에 그가 존재하고 있는 동안은 죽어도 살아있다고 보아야 옳다는 생각입니다. 역으로 비록 그의 육신이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그의 삶이 내 인식에 존재하지 않을 경우에는 나의 입장에서는 생사와는 무관한 존재입니다.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의 차이는 오직 사람의 인식에 의해서 구별됩니다. 그래서 영생의 개념은 현실사회에서도 가상의 공간에 존재하는 엄연한 ‘비추얼 리얼리티’(virtual reality)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 책은 이 택에 수록된 할아버지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그 감격적인 부활이 구십 고령의 인생경륜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당대의 명가의 집도로 이룩되었으니 이러한 행운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또한 선생과 우리 집은 이런 저런 혈연 지연으로 결코 남이 아니니, 우리 선현들이 선생의 장거를 가상하실 것으로 나는 확신합니다. 보시라! 그리고 들으시라! 살아 숨 쉬는 이 할아버지 저 할아버지의 주옥같은 시 한 귀절 한 귀절을!
다만 이 책 발간에 즈음하여 형언 할 수 없는 죄책감이 나를 사로잡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습니다.
이 시집에는 꼭 있어야 할 여러 어른의 유시가 수록되지 못하였습니다.
삼남에서 대학자로 이름났던 학반재 할아버지의 유고가 없음은 그렇다 치고 무기헌 할아버지의 유고를 싣지 못하였음도 아쉬움이며 최근세에 와서는 동애 할아버지의 유고도 찾지 못하였음이 크게 여한으로 남습니다. 외람되이 구암. 인와 두 할아버님의 교분도 새삼 애절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후일 누군가에 의해서 보다 많은 어른들의 시문이 발굴되어 이 책이 증편 보완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나아가 또 하나의 아쉬움은 내 이 일을 도모함에 삼대소가의 후손들이 모두 한자리하여 병신년의 정의를 되살려 같은 시대를 살아오신 청안 일문의 선현을 빠짐없이 모셔서 이곳에서 향음 주례상을 차리지 못하였음입니다. 빠른 시일 내에 중/개 파의 또 다른 청원시초가 출간되어, 이 책과 합본 집대성 되어질 날을 기다립니다.
이 책의 표제 <청원시초>는 역자이신 운영 선생이 명명하셨으며, 글씨는 종손 성환군이 썼습니다.
처음 이 시집 편집을 구상할 때에는 이곳에 시가 등재되신 할아버님 한분 한분의 묘역 사진을 권두에 올릴까 생각했으나 그 자리가 마땅하지 못하다는 충고도 있고 해서 아쉬운 마음은 있었으나 여기에는 싣지 아니하였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두촌 일문의 세계를 전대로부터 이어받아 한 시대를 경영함에 성정. 도장숙질. 달경 재종숙 외 여러 숭조애족하는 마음과 우애가 남다르신 족조 숙질들이 함께 계셔서 마음 든든하였습니다.
우리는 억겁을 두고 형님 아우이며, 아재 하배입니다.
이에 즈음하여 오매불망 분중 일을 걱정하가 가신 윤숙 내곡 족조부. 종서공. 이원숙부님에게 새삼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바라건대 이 책이 산대 땅과 인연이 되어 태어나고 살아갈 모든 이에게 우리가 서로 남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하고, 여하히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깨닫게 하는데 도움이 되엇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끝으로 출판을 맡아 해주신 보경문화사 이상하사장님 외 임직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204년 12월 일
두촌공(杜村公) 15세손(十五世孫)
소우재공(疎迂齎公) 칠세손(七世孫) 영 만(榮滿) 삼가 씀
<淸 苑 時 抄> 서문 2005/04/13 22:50 추천 0 스크랩 0
서문(序文)
시를 정의하는 동서고금의 이론이 구구하고 방대하나, 그 밑바닥에 깔려 있는 공통분모는 ‘시란 감동(感動)의 소산이다’로 귀결되어 언어로 전신(轉身)하는 산고를 거쳐 출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독자를 같은 강도로 공명하여 감동을 재생하는 성능이 부여되어 있으니, 우리가 시를 읽으며 가슴이 뭉클해지거나 눈시울이 뜨끔해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詩’를 매개로 하여 시인의 감동이 같은 싸이클로 독자에게 전달되는 일종의 감전 상태라 할 만하다.
우리는 이처럼 詩를 통해 전해오는 감전과도 같은 충동에서, 기약하지도 않았던 ‘인간의 본향(本鄕)’, ‘정(情)의 옛 뜰‘에 어느덧 돌아와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순간, 또한 어이 기약했으랴? 그 동안 잃은 줄도 모르고 잃고 있었던 자신을 거기서 꿈같이 만나게도 된다. 이는 비정으로 치닫는 인간 심성을 정화해 주는 시의 공덕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듯 고귀한 고인들의 유산이건만, 이를 표현한 수단이 한자(漢字)인 탓으로 오늘날은 거의 돌보지 않은 소외된 곳에 사장(死藏)되어 있으니, 어찌 안타깝다 하지 않으랴? 오늘날 이를 극복하는 길은 국역을 통하여 글자의 뜻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작자의 가슴에 깃들었던, 그리고 작자가 나타내고자 고심했던, 그 ‘시정(詩情).을 오붓하게 환원해 내는 일이다.
오랫동안 사장되어 있었던 그 문자들이건만, 내 이제 이를 흔들어 깨움에, 놀랍게도 당시를 재연하듯 버적버적 불꽃을 튀기며 방전(放電)상태로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이 바로 詩의 영원성으로, 죽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죽은 듯 시퍼렇게 살아 있었던 것임을 알게 해준다.
인와선생의 시 ‘삼년상을 마치고’에서 보라 시병하던 그 방을 빈소로 삼았다가, 이제 철빈(撤殯)한 뒤에 다시 일상의 거처로 삼으려니, 그 마음이 오죽했으랴?
애달프다! 흰머리의
무궁한 이 슬픔을
늙은 아이 엉엉 울어도
어일 수가 없구나!
哀哀白首無窮痛 老子兒啼更未爲
흰머리의 늙은 아들이 아이 울음으로 ‘엉엉’ 울고 있는 것이다. 선인의 수택(手澤)으로 어룽져 있는 그 방의 모든 것! 촉목비감(觸目悲感)으로, 눈에 띄는 그 어느 것 하나 애달픈 눈물을 쏟게 하지 않는 것이 없다. 지극한 슬픔에서 터져 나오는 울음에 무슨 격식이 있으랴? ‘애고 애고’나 ‘아이고 아이고‘ 같은 격식화한 허곡(虛哭)은 가식일 뿐이다. 설움에 겨워, 설움에 북 받혀 나는 목 메이는 그 소리, 이야말로 설움에 겨운 아이들 울음 그대로의 울음이다. 눈물 콧물이야 흐르는 대로 방류해 놓은 채, 한없이 엉엉 목 놓아 울고 있는 오열이요 통곡이다. 아무리 원통해 울어도 울어도 어이할 수가 없다. 그래서 ’갱미위(更‘未다爲)다. 환생이 불가능할진댄, 울고 나면 설움이라도 좀 헐해져야 할 텐데, 그렇지도 않으니 어이하랴? 참으로 ’어이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선생은 어머니의 등창을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어 낫게 한, 워낙 효자였음에 더욱 그러하였으리라.
또 구암선생의 <자식 초행 날 마상에서>를 보라.
마상에서 문득 기억이 난, 그의 선고의 시;
내 나이는 오십이 넘고
네 나이는 이제 열 두 살
넉넉잡아 오륙년만 지나도
너 장가가는 것 보련마는...
吾年五十餘 汝年今十二
怡過五六年 始可見汝娶
만득(晩得)으로 얻은 독자를 장가보내어 며느리를 보게 될 그날까지 만이라도 살고 싶건마는, 어이하랴? 이미 불치의 병으로 포병(抱病)한 그의 아버지는 그예 그 오륙년을 지탱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다. 이미 반세기 전의 일이건만, 인자의 도리를 다하지 못한 자신이 오히려 그 영광을 누리고 있음에서 느꺼워지는, 그리도 애달픈 눈물을 마상에서 쏟으며 읊은 다음 시가 또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물짓게 하고 있지 않은가?
‘오륙년이 아쉽구나’
하셨던 선고(先考) 시구(詩句)
지금에 생각이 나
피눈물에 옷이 젖네.
恰過五年先考語 至今追憶血沾衣
이 밖에도 인와 선생의 <할머니 재갑년에[王母再甲年有感]>, 구암선생의 <자식의 병[兒病]> <손자를 어르면서> 등은 그 모두가 인륜의 알뜰한 정이 적나라하게 나타난 아름다운 작품들로서, 두고두고 이륜지정(彛倫之情)을 관개(灌慨)하여 인간 정서의 순화에서 비익(裨益)하는 공이 클 것으로 믿어진다.
구암선생의 <깊은 밤 자식 글 읽는 소리>는 지독한 가난 속에서도 안빈낙도를 신조로 삼아 온 선비정신 속에, 무심중 노정되고 마는 자가모순의 괴리, 이러한 인정의 기미(機微)에서 문득 발하는, 이 심한 자조를 보라. 그러나 선생의 신조는 의연히 <배고픔을 참다> <쓸쓸히 읊다> 등의 작품을 통하여, 여전히 물욕을 거부하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선생을 대표할 수 있는 작품은 <느닷없이 이는 흥>이라 할 만하니, 그 전문을 들어보자.
산 집에 일없이
앉았노라니
햇빛이 유난히
곱기도 하다.
아이들은 대숲 너머
희닥거리고
매미들은 솔밭에서
맴맴거린다.
농부는 푸름에 묻혀
소를 부리고
빨래 아낙은 보내나니
방망이 소리...
이곳에 깊숙한
홍치 많으니
그 심정 말하려다
도로 잊었네
山窩無事坐 天日更淸明
兒隔竹林戱 蟬藏松樹鳴
耕夫埋野色 溪女送砧聲
此地多幽興 欲語卻忘情
고요히 산집에 앉아, 다사로운 초여름의 고운 햇살을 듬뿍 받고 앉았노라니, 마음이 투명해진다. 아무 잡념이 일지 않는 허심한 경지에 이른다. 다만 들리는 것은 아이들의 히히닥거리며 장난치는 소리, 일심으로 울어대는 원근의 매미소리... 소 부리는 소리만 들려오는가 하면, 개울 가 빨래터에서인 듯, 아낙네들이 보내주는 방망이 소리들! 그 모두가 실체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어울어져 나는 자연의 음율이다. 삶의 소리요, 생의 찬미다. 누리는 것이 어찌 사람만이랴?
소. 매미와 같은 동물들 대와 솔과 푸른 들 빛의 식물들! 진경(眞境)임을 온 몸으로 느낀다. 번개같이 순간적으로 번득이고 살아져 간, 삶의 이 현묘한 게시를 말로 나타내고자 해보나, 문득 잊고 만다. 사실은 잊은 것이 아니라, 그것은 이미 우리의 사전에는 없는, 말 이전의 말로서, 말을 초월한 한 깨달음일 뿐이다. 그것은 곧 삶의 철학의 발견이요. 도(道)의 경지에 이르렀음이니, 우리는 이에서 선생이 원량(元亮)을 연상케 하는 시의 대수(大手)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
내 그윽이 고종~ 순조~ 연간의 두항 고을을 상상해 보건대, 인와. 구암. 족숙질 간의 양호(兩皓)가 양거수(兩巨樹)처럼 마을을 지키고 서서,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고 맑은 바람을 일으켜 원근에 미쳤으며, 그 학맥과 시풍이 소우재공을 비롯한 다음 세대로 맥맥이 이어져 갔음을 본다. 그것은 여러분의 시를 이 <청원시초>에 집약해 놓음으로써 더욱 일목요연해짐을 보게 된다. 양호의 숙연(宿緣)은 구암 선생의 <무인년 제석에 인와 족부와 함께>에서 볼 수 있듯,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두 늙은이 분명코
전생의 인연으로
한 문중에 생장하여
구순을 살고 있네.
해마다 이 밤 오면
함께 맞아 보내나니,
돌아가는 그 날도 아마
생애의 봄을 함께 하리...
二老分明宿世因 一門生長九回旬
年年此夜同迎送 歸日應同百世春
보라! 그 예언은 적중하여 세 살 차인 두 분이 똑같이 순조22(1822)년 함께 세상을 떠났으니, 특히 감명을 깊게 하고 있지 않은가?
두분이 장수를 누리는 동안 수많은 모임자리에서의 시운은 물론, 앞서 떠난 친구, 친지들에의 수많은 만장들도, 그 모두가 또한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시어들이라, 한갓 의례적, 양식화한 투어투(套語套)를 벗어버린, 청신함이 있다.
소우재공의 <도산구곡>은 모현 기행(模賢紀行)의 장대한 작품이며, <봄을 보내며> 30수의 연작은, 정히 자연 시인의 면모를 엿보게 하고 있다. 일양공의 <비에 갇힌 친구를 위로하며>는 심상한 위로의 말이 먹혀들지 않을 것이매 차라리 이죽거리며 놀려먹음으로써 그 초조해 하는 마음을 역으로 달래 주는, 막역간에 있음 직한 일품이다. 만산공의 <즉흥>, <가을밤>, <서림정에서>와, 그리고 옥간공의 <열여섯날 밤에> 등에는 풍월의 멋이 너울거리는 흥겨운 작품들이다. 옥간공의 <여윈 아내> <어머님 생신에>도 다 알뜰한 인정에서 우러나온 정겨운 작품이며, 또 그의 <도시를 구경하며>에는 정곡을 찌른 날카로운 형안이 돋보인다.
다 어찌 일일이 들어서 말하랴? 여기 선입된 시 들은 무비 수준 이상의 작가들임은 물론이다. 모두가 청안 이 씨의 맑은 시원에 핀 백화난만한 꽃떨기들이다.
내 일찍이 우리나라 역대 한시의 시평서인 <옛 시정을 더듬어>와 그 속편이 (다시 예 시정을 더듬어>를 간행하면서, 어찌 그리도 우둔하여, 그 몇 편쭘 이 가운데서 선입하지 못했던고? 견문의 좁음을 탄식할 뿐이다. 호곡 남용익이 그의 시선집인 <기아>를 간행하고 나서야, 백곡 김득신의 <호행절구>를 싣지 못한 것을 후회하여 ‘바다를 엎어 진주는 걸러내고 달은 놓쳤구나!’ 하던 같은 탄식을 면할 수 없게 한다.
내 산대와는 인향에 생장하면서 청안 이씨 집안의 내력과 범절을 포문하였을 뿐 아니라, 비문과는 누대 연비연사의 인아지친이며, 더구나 인와,구암 양 선생은 나의 종고조이신 무만재공의 스승이셨으니, 세의가 막중하다
게다가 일찍이 나의 지기인 이원 이성락 형과 동파 이영만 형, 그 숙질의 간곡한 청으로, 임란에 창의한, 일문 십륙 의사의 <충의록>을 국역한 바 있은 이래로, ‘충의집‘으로서의 강한 인상을 간직하게 되었거니와, 이번에 <청원시초>를 계기로 여러 집들의 많은 문집을 일일이 섭렵하게 되었음에서 다시 ’문한집‘으로서의 인식을 거듭 귿히게 되었다.
내 이 청원 유시의 초역을 부탁받고도, 노혼 탓으로 인순 천연하여 미쳐 탈고도 못한 터에, 아! 어쩌랴? 그 사이 이원형이 홀연 타계하고 말았으니, 이럴수가!... 인사의 덧없음을 모르는바 아니나, 어쩌면 이리도 심할 줄이야! 내 길이 허희 탄식할 뿐이다.
2004년 12월 일
운영(雲影) 손 종 섭 (孫宗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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