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글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凡 草
= 2009년 부산아동문학 신인상 당선작
< 지붕 위의 고물 자전거 >
수아 곽미영
“회사 파업 때문에 그냥 왔어”
아빠는 화를 내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형과 내가 인사를 해도 받는 둥 마는 둥이다.
“아이엠에프 때보다 요즘 더 심각해! 기름 값 비싸 이 일도 이젠 더 이상 못해먹겠어.”
샤워를 하고 나온 아빠가 식탁의자에 앉으며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는 10년이 넘게 컨테이너 운전을 하고 있다. 저녁을 먹는 동안 우리 가족은 한마디 말이 없다. 나는 머릿속으로 자전거 얘기를 언제 꺼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아빠가 커피를 타서 엄마에게 건넸다.
“역시, 당신 커피는 최고야!”
엄마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활짝 웃었다.
저녁 내내 심통을 부리던 아빠가 엄마 행동에 피식 웃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 얼른 말을 꺼냈다.
“생일 선물로 자전거 사 주면 안 돼?”
나는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빠 엄마가 동시에 나를 보았다. 옆에 있던 형이 눈치를 주며 인상을 찌푸렸다.
“은성아, 자전거는 집에 있잖니?”
엄마는 페달이 덜렁덜렁한 녹 쓴 자전거를 말했다.
“고물 자전거 싫어! 앉으면 아프단 말이야.”
고물 자전거는 안장이 찢어져 타고 달리다 보면 엉덩이가 쓸리고 아팠다.
“아빠, 동규는 새 자전거 샀단 말이야!”
동규는 한동네 사는 친구다. 녀석은 뭐든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이번에도 열 번째 생일 선물로 자전거를 샀다며 자랑 했다. 나는 아빠 팔을 잡고 계속 늘어졌다. 아무리 떼를 써도 아빠는 입에 자물쇠를 채운 듯 말이 없다.
어제 운동장에서 새 자전거 타고 있는 동규를 만났다. 동규 자전거는 손잡이를 돌리면 기어가 여러 번 바뀌는 최신 자전거였다. 요즘 유행하는 자전거라서 한 번 타 보고 싶었다. 나는 슬그머니 다가가 내 자전거로 길을 막아서며 말했다.
“야, 한 번 바꿔 타 보자.”
나는 내 자전거를 불쑥 내밀며 말했다. 동규는 엉겁결에 고물 자전거를 잡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이, 이 자전거……. 고, 고물상으로 가야 되는 거 아냐?”
동규는 긴장을 하면 말을 더듬는다. 안장이 찢어진 자전거를 보고 녀석은 투덜거렸다. 나는 동규 말에 자존심이 팍 상했다.
“짜-샤, 더듬지 말고 똑바로 말해! 넌 보이는 것만 다냐? 보기엔 이래도 얼마나 짱짱하게 잘 달린다고.”
녀석이 끝까지 자전거를 빌려주지 않아 결국 탈 수 없었다. 그날 이후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동규를 보면 괜히 심술이 났다. 동규가 잘 다니는 길목에 돌멩이를 몰래 놓아두곤 했다.
“은성아, 자전거 타러 가자.”
형이 언제 나갔는지 낡은 자전거와 함께 대문 앞에 서 있었다. 자전거 안장에 불거져 나온 스펀지를 노란 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형은 턱으로 뒷자리를 가리키며 타라고 했다. 운동장에 도착하자 형은 자전거를 세워두고 내 머리를 콕 쥐어박았다.
“얌마, 철 좀 들어. 아빠가 요즘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해?”
“아얏! 왜 때려! 내가 뭘 잘못 했다고, 형이면 다야?”
아무 이유도 없이 맞는 것 같아 버럭 소리 질렀다. 한여름 밤이라 더위를 피해 많은 사람들이 운동장에 나와 있었다. 큰 소리가 나자 사람들이 우릴 보았다.
나는 손을 들었다 놓았다하며 애꿎은 자전거만 퍽퍽 때렸다.
“똥-규 짜식, 새 자전거로 얼마나 뻐기던지. 똥-규 보다 잘 타고 싶단 말이야.”
나는 남들 시선은 아랑곳 않고 씩씩거리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한여름 밤 풀벌레들이 제 목소리를 뽐내며 시끄럽게 울더니 갑자기 조용했다.
나는 고물자전거를 타고 운동장을 몇 바퀴나 돌았다. 처음에 자전거를 배울 땐 곧잘 넘어지곤 했다. 그때마다 고물자전거 때문이라며 툴툴거렸지만 이제는 제법 잘 탄다. 운동장을 몇 바퀴 돌고나니 목과 등줄기에 땀이 비 오듯 흘러 내렸다. 윗옷이 땀으로 범벅이 된 채 형과 집으로 돌아갔다. 골목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식구들은 잠이 들었는지 집안이 조용했다. 마당에 세워놓은 자전거는 달빛에 어른어른 그림자놀이를 하고 있었다.
다음날, 학교를 마치고 아이들과 운동장에서 자전거를 타기로 했다. 바삐 집으로 갔더니 아빠가 술을 드시고 있었다. 언제부터 술을 드셨는지 아빠는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나 원 참! 폐기 하라고? 뭔 놈의 세상이 이러냐? 팔 때는 그렇게 비싸게 팔더니 이젠 똥값이라니! 나 원 참…….”
아빠는 했던 말을 하고 또 하고 했다. 화가 난 엄마가 부엌에서 나와 술병을 낚아챘다. 아빠가 다시 잡아채려 하자 술병을 들고 부엌으로 휙 들어가 버렸다.
나는 엉거주춤 인사를 하고 얼른 자전거를 가지러 갔다. 자전거를 끌고 나오는데 달랑거리던 페달이 툭 떨어졌다. 아빠가 벌겋게 상기 된 눈으로 쳐다보았다. 나는 노란 테이프를 들고 나와 떨어진 페달을 감았다. 아빠는 내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테이프 이리 줘 봐."
아빠가 손에 있는 테이프를 가져갔다. 나는 갑작스러운 아빠 행동에 멍하니 서 있었다. 아빠는 엉성하게 감은 테이프를 뜯어내고, 안장과 페달을 다시 꼼꼼하게 감아주었다. 말끔하게 테이프를 붙여주고 비틀거리며 들어가던 아빠가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덜 아플 거야."
나는 촘촘하게 감겨진 페달에 발을 올려 보았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들어 어깨가 으쓱해졌다. 나는 페달을 힘껏 밟으며 운동장으로 향했다.
운동장에는 동규 녀석은 보이지 않고 자전거만 나무에 서 있었다. 나는 신나게 잘 달릴 것 같은 동규 자전거로 슬금슬금 걸어갔다. 힐끔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했다.
‘이건 기회다.’
동규 자전거를 보는 순간 타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내 자전거를 나무에 세워놓고 아무생각 없이 동규 자전거에 날듯이 올라탔다. 노란테이프가 감겨진 내 자전거보다 앉는 촉감이 좋았다. 주위를 둘러보고 잽싸게 자전거를 밟았다. 페달은 내가 많이 탔던 것처럼 착 달라붙었다. 나는 쌩쌩 달리는 자전거를 더 힘껏 밟아 보았다. 새 자전거는 마치 기름이 칠해진 것 같이 잘 미끄러져 갔다. 새 자전거로 신나게 달리니 우울한 기분도 바람이 가져가 버렸다.
동규가 뻐기며 달리던 골목을 몇 바퀴나 돌았는지 모른다. 새 자전거는 아무리 타도 아프거나 쓸리지 않았다. 실컷 타고 놀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쯤 동규는 소중한 보물인 자전거를 도둑이 훔쳐갔다고 난리가 났겠지? 만약 자전거를 가져 간 사람이 나 란 걸 알면 날 도둑으로 몰 거야. 결국 난 자전거를 훔쳐 달아난 도둑이 되는 셈이다. 생각이 거기까지 들자 걱정이 되고 마음이 다급해졌다. 동규가 알기 전에 얼른 자전거를 제자리에 갖다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 페달을 정신없이 밟으며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다행히 동규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나는 동규가 오기 전에 얼른 갖다 놓으려고 있는 힘껏 페달을 밟았다.
“야, 이 은성 거기 서!”
뒤에서 동규가 달려오며 불렀다. 동규의 말은 바람이 삼켜버렸다.
“아이쿠 아야!”
나는 그만 철봉에 꽝 하고 부딪혀서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내 머리는 학교울타리로 된 탱자나무 속에 콕 박혔다.
동규가 놀라 허겁지겁 달려왔다.
“으, 은성아, 피! 피!”
동규가 가리키는 이마를 만져보니 피가 묻었다. 나는 곧바로 따끔거리는 이마를 쓸어주며 동규 자전거를 찾았다. 자전거 바퀴가 바로 눈앞에서 뱅글뱅글 돌아가고 있었다. 다행히 동규 자전거는 망가지지 않고 괜찮았다.
“풋, 하하하…….”
갑자기 동규가 이마를 가리키며 웃었다. 이마를 만지니 주먹만 한 혹이 잡혔다. 나도 피식 웃기 시작했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한참을 웃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소독약을 대충 바르고 방바닥에 벌렁 누웠다. 엄마 아빠 소리가 들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는 척 했다.
“비싸게 주고 샀는데……. 그나마 트럭은 살 수 있어 다행이에요.”
“포장마차 하기에 딱 맞지?”
형이 지난번에 쥐어박은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아빠가 컨테이너 차를 팔아 포장마차를 하는 모양이다. 나는 포장마차라는 말에 머릿속이 복잡했다. 친구들이 놀릴 생각을 하니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방문이 부서져라 힘껏 열었다.
“난, 포장마차 싫어! 왜 하필 포장마차야? 다른 거 하면 되잖아!”
나는 속사포처럼 내 말만 쏟아내고 뛰쳐나왔다.
다음날, 학교 마치고 집에 가기가 싫었다. 운동장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노랗게 익은 탱자가 보였다. 나는 탱자를 하나씩 따서 주머니에 넣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느새 해는 기울어지고 주위가 어두워졌다. 나는 주머니 속에 탱자를 가득 넣고 대문을 들어섰다. 좁은 마당에 고물자전거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 옆에는 이것저것 잡동사니도 흩어져 있었다.
“어! 내 자전거로 뭘 하려는 거야?”
나는 마당에 있는 자전거를 보고 놀라 뛰어갔다. 주머니에서 탱자들이 툭 떨어졌다. 탱자는 또르르 굴러 마당 여기저기로 흩어져 갔다.
탱자가 굴러가는 쪽으로 눈이 따라갔다. 다음 순간 눈이 딱 멈췄다. 마당 한 귀퉁이에 아직 비닐도 안 벗긴 최신형 자전거가 서 있었다. 새 자전거는 마치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나는 놀란 토끼 눈으로 새 자전거를 멀뚱하니 보고 있었다. 멍하니 서 있는 나에게 형이 뒤에서 툭 쳤다. 나는 움찔 놀라 소리를 빽 질렀다.
“형은 내가 동네북이야? 왜 맨날 때리고 그래!”
“얌마, 뭘 멀뚱하게 보고 서 있어? 아빠가 차 팔아서 네 자전거 샀잖아!”
형은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머리를 세게 쥐어박았다. 나는 입은 웃고 인상은 구겨진 어색한 표정으로 형을 째려보았다.
"여기 혹 났잖아!"
낮에 다친 이마를 코앞에 들이대며 말했다. 아픈 척 머리를 긁적긁적 엄살도 떨었다.
"얌마, 그게 왜 나 때문이야. 네가 한 눈 팔다 다쳤잖아."
형이 또 한 대 쥐어박으려 했다. 나는 얼른 피하며 입을 삐죽 내밀었다. 형은 어제 있었던 자전거 사건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함께 했는데, 차마 고물상에 줄 수 없더라.”
아빠가 오랜만에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지난번에 노란 테이프로 자전거 페달을 붙일 때였어. 제 할일을 톡톡히 하고 있는 저 고물자전거가 날 가르치는 거야."
‘당신 참 한심스럽군. 술로 모든 게 해결 돼?’
“자전거가 눈을 부라리며 노려보는 거야.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지.”
나는 아빠 얘기를 들으며 소리 지르고 뛰쳐나간 게 미안했다.
우리 가족은 힘을 모아 포장마차를 열심히 만들었다. 자전거 바퀴를 노란색으로 칠하고 지붕에 바퀴를 올렸다. 지붕에 달린 바퀴와 바퀴 사이에 ‘행복 하우스’란 이름도 새겼다.
나는 페달을 들고 장난을 치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아빠, 좋은 생각이 있어. 페달을 달아 지붕 위 바퀴와 연결하는 거야. 그리고 아빠가 토스트 굽는 동안 스위치를 누르면 자동으로 바람이 들어가는 거지. 그러면 페달이 돌면서 바퀴도 같이 돌고 풍선은 빗물이 흘러내리듯 나오게 돼. 갑자기 풍선이 툭 튀어 나오면 손님도 좋아하지 않을까?”
나는 양 팔을 동그랗게 만들어 바퀴가 빙글빙글 도는 시늉을 했다.
“손님이 주문하고 돈을 직접 넣고 페달을 돌리는 거야. 이렇게.”
나는 손이 닫기 쉬운 곳에 페달을 달고 돌렸다. 느닷없이 아빠가 나를 힘주어 껴안았다.
오늘 드디어 ‘행복 하우스’가 개업을 했다. 눈에 잘 띄는 곳에 메뉴판을 놓았다. 그 밑에 찐한 글씨로 ‘페달을 돌리면 행복이 나옵니다. 힘껏 페달을 돌리세요.’ 라고 적었다.
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달려왔다. 아이는 메뉴판을 보더니 말했다.
“아저씨, 딸기 주스랑 토스트 주세요.”
주문을 한 아이는 신기한 듯 페달을 돌렸다. 아이가 신나게 페달을 돌리자 지붕에서 바퀴가 뱅글뱅글 돌았다. 그러더니 '행복 만 땅' 이란 글씨가 새겨진 풍선이 나왔다. 풍선을 꼭 쥐고 집으로 가는 아이 입은 함박꽃처럼 활짝 피어났다. 지붕 위 노란 바퀴는 아이가 떠나가도 혼자 말없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