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시에르는 미학적 실천을 문학, 영화, 현대 예술 등과 긴밀하게 교섭시키고 결합한다. 이 실천은 칸트가 인식의 조건으로 도입한 감성 개념을 확장․발전시켜 공동체의 지형을 나누는 조건으로 취급하고, 거기에 권력에 대한 푸코적 성찰을 첨가한 정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해지는 것, 볼 수 있는 것, 들을 수 있는 것, 만들어 질 수 있는 것, 행해질 수 있는 것, 배타적인 몫과 공유하는 공통적인 몫을 규정하는 것과, 그것에 관한 서사와 묘사가 감성의 분할이다. 문학과 예술은 그 자체로서 정치적 형태를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말해지는 것, 볼 수 있는 것, 들을 수 있는 것, 만들어 질 수 있는 것, 행해질 수 있는 것, 배타적인 몫과 공유하는 공통적인 몫을 규정하는 감성의 분할은 또한 문학과 예술의 지향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학은 랑시에르에게 그 자체로서 정치적 형태를 지니고 있다 랑시에르의 담론은 정치문학이나 혹은 참여문학에 대한 어떤 체계적인 담론이 아니다. 문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규정하는 ‘감성의 분할’ 속에 개입하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문학은 세계가 우리에게 가시적으로 되는 방식, 이 가시적인 것이 말해지는 방식, 이를 통해 표명되는 역량과 무능과 관계한다.
동일한 맥락에서 영화에는 낭만주의 시학과 고전주의 시학이 병존한다. 영화는 시각적인 것을 뛰어넘는다. 영화 우화는 단순한 우화가 아니다. 영화 우화는 고전주의 시학과 낭만주의 시학이 엇갈리게 구성된 우화(la fable contrariée)다. 영화는 예술의 세속적 관념을 그대로 표현함과 동시에 그것에 대한 반박을 실현한다. 영화는 이야기들의 낭만주의적 왜곡에서 유래하는 후발 예술이며, 이 왜곡을 고전주의적 모방으로 이끄는 예술이다. 그러므로 영화를 가능케 했던 미학혁명과 영화 사이의 연속성은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 영화는 내적 인과관계를 지닌 사건들을 결합시킨 이야기로서 아리스토텔레스적 예술에 귀속된다.
랑시에르의 문예론은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더니티의 논쟁을 비껴가면서 모더니티의 재구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문예론은 휴머니즘과 모더니티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뛰어넘어 합리성, 진보성, 주체의 우위성, 실재의 객관적 환원 등의 모델의 연속체로서 공동체의 새로운 지형을 겨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