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의 궁(宮), 성(城), 문(門) (1)
북경은 세계적인 도시다.
중국의 수도이기 때문에, 그래서 중국의 정치, 외교, 행정, 경제, 문화, 교통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경은 중앙정부의 직할시이다. 직할시는 성(省)과 더불어, 최고 지방행정단위이다.
그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없지만, 주민으로 등록된 인구가 대략 1천4백만 명을 헤아리며, 반년 이상 거주하는 유동인구까지 합치면 2천만명을 넘어선다고 한다.
시내 면적은 서울의 두 배 정도는 되고, 현(縣) 등 교외지역까지 포함한, 직할시의 전체 면적은 한국의 경기도 넓이와 비슷하다.
지금 이 북경이 몸살을 앓고 있다. 출퇴근 시간은 물론이고, 날씨가 좀 안 좋거나 하면 시내 간선도로의 차량은 몇 시간째 거북이 운행을 해야 한다. 강수량은 적은데, 도시는 팽창하여 수돗물 공급문제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으며, 북쪽 70킬로미터 바깥에 황사를 일으키는 평원이 자리하고 있어, 봄마다 하늘을 혼탁하게 있다. 그래서 수도를 중국 중부내륙도시로 옮기자는 안이 계속 제기되고 있지만, 중앙정부는 아직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있다.
어쨌든, 북경은 그 규모와 수도라는 상징성, 그리고 많은 문제점이 있다 할지라도, 그 역사,문화적 차원에서 충분히 주목하고 구경할 만한 도시이다.
북경이 수도 역할을 하게 된 것은, 금(金)나라, 원(元)나라 때부터이며, 그 궁성이 지금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명(明)나라 성조(成祖: 永樂帝)가 15세기초에 남경에서 수도를 북경으로 옮기면서부터이다. 그때부터 도로를 일부러 바둑판처럼 구획하였다.
그리고, 청(淸)나라에 이르러, 궁성과 도로가 더욱 정비되고 화려함을 더하게 되었다. 7백여년 궁성을 건설하고, 보수하였으니, 민중의 고초 또한 극심했으리라.
어쨌든, 지금 남아있는 중국의 궁성 유적 가운데, 북경의 궁성이 가장 보존이 잘되어 있는 편이지만, 청조말의 원형을 완전히 유지하고 있지는 않다. 즉 19세기말부터 1945년에 이르기까지, 외국군대가 여러 차례 침입하고 점령하면서, 또 청조와 전통을 증오했던 민중들에 의해 많은 부분이 파괴되고 유실되었다.
그리고, 신중국이 1949년 10월 1일 세워진 이후, 도시를 다시 구획하고 도로를 정비하면서, 성곽과 건물을 적잖이 헐어냈다. 궁궐 외곽을 둘러쌌던 성곽이 지금은 대부분 그 자취만 있을 뿐이다. 성곽이 교통을 막고 있고, 도시 확장에 걸림돌이 되었으므로, 그 불가피한 고충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성곽 외에, 궁궐과 문루 등 중요하고 상징적인 건축물은 보존되어 있는 편인데, 도시 전체적으로는 전통적 풍광이 갈수록 심하게 파괴되고 있어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북경은 그 한가운데에 있는 궁성의 대칭축을 중심으로 해서, 바깥으로 확대되고 있는 전형적인 도시다. 즉, 뭉쳐진 국수 반죽을 늘여서 펴듯이, 중심은 두텁고, 바깥은 확대되며 엷어지는 형국이다. 그래서, 2환로(二環路), 3환로, 4환로, 5환로, 이런 도로 이름이 생겨났다. 환(環)이란 가락지 처럼 동그랗게 둘러싸는 것을 뜻한다.
북경의 궁성, 즉 내성과 외성을 감싸는 도로는 2환로이다. 지금의 북경은 5환로까지 생겨났으니, 이 5환로 안이 시내라 할 수 있고, 그 바깥은 교외지역이라 하겠다.
그리고, 북경은 산이나 바다를 옆에 끼고서, 이것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도시가 형성된 것이 아니라, 넓은 분지에 인공적으로 설계되어 형성되었기 때문에, 동,서,남,북이 명료하다. 즉 동남-서북, 동북-서남… 이러한 방향을 갖는 큰 도로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북경에선 어느 도로에 서 있더라도, 그 방향잡기에 혼선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렇게 방향이 확실하게 잡힌 것은, 임금(천자)은 남면(북을 등지고 남쪽을 바라봄)한다는 사상, 또는 찬 기운이 있는 북쪽을 등져야 한다는 풍수 관념과도 관련이 있다.
아무튼, 북경의 중심은 바로 궁(宮)이고, 이를 성(城)이 감싸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대칭축을 중심으로 바라보아야, 북경의 도시 풍경을 잘 이해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2008년 북경 올림픽 개막식 컨셉의 하나도 이 대칭축이었다.
궁성은 네 지역으로 분류할 수 있다. 즉 자금성, 황성, 내성, 외성이 그것이다.
자금성(紫禁城)은 말 그대로 하나의 성곽으로 둘러싸여 있는 궁궐이다. 보통 ‘고궁(古宮)’이라 부르는 지역이다. 사방 모서리에 각루(角樓)를 세웠다. 서울 경복궁의 동십자각, 서십자각처럼 말이다.
자금성의 크기는, 남북으로 9백 61미터, 동서로 7백53미터에 달한다. 천자(天子)가 사는 곳이라 9천9백9십9칸의 건물이 있다고 하는데, 실제 칸 수는 8천7백7칸이라는 조사결과가 있다.
자금성을 둘러싸고 물길을 만들었는데, 이를 통자하(筒子河)라고 부른다. 즉 방어를 위해 일부러 물로써 사방을 둘러친 ‘해자’ 역할을 하는 셈이다. 해자의 너비는 52미터이다.
이 자금성과 거리를 두고 다시, 외곽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이 바로 황성(皇城)이다. 그 길이는 9리에 달한다,
내성(內城)은 다시 황성과 거리를 두고, 황성을 둘러싸고 있다.
그런데, 외성(外城)은 내성을 둘러싸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성의 남쪽 면을 북쪽 면으로 하여, 다시 하나의 성곽을 형성하고 있다.
즉 내성이 정사각형 모양으로서, 황성을 둘러싸고 있다면, 외성은 내성의 남쪽에서 직사각형 모양으로, 내성과 연결되어 있으며, 각 모서리마다 각루가 있었다. 내,외성 전체 길이는 37킬로미터에 달하며, 성벽 높이는 10미터 이상이다.
내, 외성 바깥에 있는 해자를 호성하(護城河)라고 부르는데, 지금은 많이 매몰되어 없어졌다. 그리고, 원나라 때까지는 지금의 내성 북쪽에도 성곽이 있었다. 즉 지금의 내성 북쪽면이 명나라 때 남쪽 방향으로 이동한 셈이다.
자금성에는 황제 일가와 이들을 모시는 환관(내시)과 궁녀들이 살았으며, 황성 안에는 관청이 자리하고, 내성 안에는 황족, 귀족들이 살고, 외성 안에는 서민들이 살았다.
외성, 내성, 황성, 자금성의 중심되는 건물과 문은 모두 중앙 축선에 자리하며, 기타 건물은 음양 원리에 따라, 동쪽과 서쪽에 대칭을 이루며 서있다.
내성을 중심으로 하여, 그 바깥에 천, 지, 일, 월단이 각각 남, 북, 동,서에 설치되어 있다. 이것들은 하늘, 땅, 해, 달에 제사 지내는 곳이다.
이 네 곳의 단과 사직단, 선농단, 선잠단, 천신단(天神壇), 지지단(地祗壇)을 합쳐 구단(九壇)이라 불렀다.
선잠단(先蠶壇)은 황성 안 서쪽에 있다. 지금의 북해공원 북문 안쪽이다. 선잠단은 누에치기가 잘되기를, 그래서 옷 만드는 일이 잘되기를 기원하는 제단으로서, 유일하게 여성(황후)이 제사지내는 곳이었다.
천단 역시 내성 바깥에 있지만, 외성 안, 남쪽 끝에 있다.
천단은 중심 축선의 동쪽에 있으며, 황제가 자금성에서 이 곳으로 제사지내러 올 때는 천단의 서쪽 문을 통하여 들어갔다. 천단에는 기년전 ,황궁우, 회음벽, 원구단 등 볼거리가 있다.
선농단(先農壇),천신단,지지단은 천단과 대칭으로 마주하여 중심 축선의 서쪽에 있으며, 황제가 친림하여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제단이다.
내성 안, 동북쪽에 문묘(공묘)와 태학(국자감)이 있으며, 라마교 사찰인 옹화궁(雍和宮)이 있다. 또 내성 안, 황궁 서쪽에 인공호수인 남해, 중해, 북해가 있으며, 그 위에 전해(前海), 후해(後海)가 있다. 남해와 중해를 합쳐 중남해(中南海)라 부르며, 전해와 후해를 합쳐 십찰해(什刹海)라 부른다. 바다 아닌 바다들이다.
현재, 중남해는 중국 중앙정부가 들어서 있고, 정부 요인들이 살고 있어, 외부에 개방하지 않는다. 천안문 서쪽으로 가면 신화문(新華門)이라는 문이 하나 있다. 민국초기에 새로 만든 문인데, 이 곳이 중남해의 남문이다.
북해는 북해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이화원과 더불어 대표적인 황족 정원으로 관광객과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구룡벽 등 여러 명물이 있다. 십찰해는 한국의 인사동 처럼 골동품을 파는 가게가 많으며, 주변에 산재한 독특한 골목길, 즉 호동(胡同: 몽고말로 샘이 있는 곳, 즉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을 둘러보기 위해 외국인들이 자전거로 끄는 인력거를 타고 구경하는 곳이다. 밤에 가면, 주변의 운치있는 카페나 식당에서 호수를 바라보며 차를 마실 수 있다.
황성 안, 즉 천안문 안쪽 동쪽 편에 태묘(太廟 :종묘)가, 이와 대칭으로 사직단(社稷壇)이 자리한다. 태묘는 역대 황제들을 제사지내는 곳이고, 사직단은 사신(社神: 지신)과 직신(稷神: 곡식신)에게 제사지내는 곳이다. 지금 태묘 자리 옆에는 인민문화궁전이, 사직단 자리 옆에는 중산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황족 정원이라 일컫는 이화원(颐和園), 원명원(圓明園)은 아예, 내,외성과 멀찍하게 떨어져 서북쪽 외곽에 자리한다. 이 곳은 옛날에는 교외였지만, 지금은 번화한 시내와 연접하고 있다. 이화원은 불향각, 곤명호가 유명하다. 원명원은 19세기말 8국 연합군이 침략할 때에 불태워져서 그 원형을 거의 상실하였으나, 수풀과 물이 많아 산책하기에 좋다. (계속)
2010.10.5, 맹강현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