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불성실한 관계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1:1-6)
♠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버리는 길을 택합니다. 이것을 아주 보여주는 것 이 바로 호세아서입니다.
♠ 하나님께서 호세아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것은, 형식으로는 교회를 떠나지 않았어도 마음이 하 나님을 떠나고 삶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났다면 그것은 결국 하나님을 떠난 것이라는 사실 입니다.
♠ 신약 시대에는 신앙에서 고백이 중요합니다. 언제부터 그리스도인이 됩니까? 예수를 ‘주’로 고백하면서부터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 호세아서의 중요한 메시지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에 충실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이 언약의 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 호세아서가 오늘날 우리 상황에 아주 중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 밖에 있는 불신앙보다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불신앙이 더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불신앙은 구조적인 성격을 뜁니다. 교회 전체가 변질되지 않고서는 교 회 안에서 불신앙을 가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때아닌 부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이어 유다 왕이 된 시대 곧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 왕이 된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1:1)
♠ 이때는 남쪽 유다가 가장 악한 왕 아하스를 고비를 넘어 히스기야가 다시 종교부흥을 일으킨 시기였고, 북쪽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의 전성기를 지나 급격하게 쇠퇴하다가 마침내 멸망한 시 기였습니다.
♠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께서 세우셔야 하며 아들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백성들을 진리로 이끄는 목자여야 한다는 것이 호세아의 신앙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 선지자 요나를 통하여 하신 말씀과 같이 여호보암이 이스라엘 영토를 회복하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고난이 심하여 매인 자도 없고 놓인 자도 없고 이스라엘을 도울 자도 없음을 보셨고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이 하겠다고도 아니하셨으므로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손으로 구원하심이었더라 (왕하 14:25-27)
♠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노예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요나 선지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다시 나라를 부강하게 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왜 이런 약속을 하셨습니까? 그들이 너무나도 어려웠고, 늘 침체되어 있었기 때문 입니다.
♠ 참으로 신앙이 사람이 물질적으로 부요해질 때는 힘이 나고 침체에서 벗아날 수 있지만, 신앙 이 없는 사람이 부요해지면 하나님을 완전히 떠나 버립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앙 이 없는 쪽이었습니다.
♠ 물질적인 축복은 정말 무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부강함이 아무런 차이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물질적인 축복을 받을 경우, 완전히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되고 더 담대하게 죄짓는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 물질적인 부요함은 신앙이 없는 사람에게 축복이 아니라 가장 무서운 시험입니다.
♠ 이스라엘이 갑자기 잘 살게 되면서 하나님을 완전히 버리고 자기 욕심을 따라 달려가며 타락 해가는 한가운데서 호세아는 이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 그의 설교는 오늘 우리들의 불신앙을 예리하게 드러내고 치료하는, 살아 있는 말씀으로 역사 할 것입니다.
호세아에게 명령을 내리시다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1:2)
♠ 여기서 ‘처음(비로소)’는 의역된 것입니다. 원래 히브리어 성경에는 ‘여호와께서 호세아 로 말씀하기 시작하시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오래 침묵하시다가 드디어 입을 여셨다입니다.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제 그 뜻을 이루어 드리겠습니다는 것입니다.
♠ 하지만 나타난 결과는 그들은 더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더 바쁘게 만들었고 떠 쪼들리게 만들었습니다.
♠ 원래 이스라엘 사회에는 직업적인 창녀가 있을 수 없습니다. 간음을 행한 여자는 돌로 쳐 죽 이게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사실 이스라엘에는 온전한 여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바알의 풍년 제사는 아주 음란했는데, 그 음란한 사상에 물들지 않은 여자가 없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음란한 여자는 직업적인 창녀가 아닌 아주 음란한 생활을 하는 여자를 말합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너무나도 무감각했기 때문에 어떤 행동을 보지 않으면 도무지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로도 하고 달래기도 하면서 참고 참 으시다가 ‘처음(비로소)’ 호세아에게 아주 음란한 여자를 데려다가 아비를 모르는 음란한 자식을 낳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1:2 하)
♠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이런 일을 시키시는 이유가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음란한 아내는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이고, 음란한 자식은 그 안에 속한 이스라엘 백성 한 사 람 한 사람입니다.
♠ 음란(행음)한다는 것이 첫째로, 영적으로 행음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하나님과 결혼하는 것 과 같습니다. 내가 살고 죽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내 것은 하나도 없으며 모 든 것이 하나님의 것일 때, 그것이 믿는 것이지요.
♠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 하나님은 사랑을 전달하는 통로가 무엇입니까? 택함받은 백성들입니다. 우리가 그 통로예요, 그런데 신앙이 은혜의 통로가 되지 않고 내 만족이 될 때 나는 행음하는 겁니다.
♠ 음란하다는 것의 둘째는, 그들은 실제로 음란했습니다. 가나안 종교 자체가 굉장히 음란했기 때문입니다.
♠ 여기에 북쪽 이스라엘 자손들이 동참한 것입니다. 농사만 배운 것이 아니고 농사에 관련된 정 신과 가치관까지 배워서 급속하게 썩어갔습니다.
♠ 북쪽 이스라엘의 특징은 껍데기는 여호와 신앙이었지만 알맹이는 완전히 가나안 종교였다는 것입니다.
♠ 우리가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내 살고 죽는 것아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여기지 않는 다면 생활 자체가 굉장히 문란해지고 음란해집니다.
♠ 가장 무서운 것은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이 음란한 사상입니다. 우리는 결단을 내려 야 합니다. ‘정말 내가 살고 죽은 것은 하나님께 달렸다. 사람을 보지 말자! 사람을 무서워하 지 말자!’ 이렇게 결단하지 않으면 비겁해집니다.
♠ 그리스도인이 왜 존재합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잘살고 못사는 것 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퍼지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 우리가 보기에는 건포도떡이 별건 아닌 것 같지만 유목생활 하는 사람들에게는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만큼 맛있는 음식이었어요.
♠ 신학에 ‘신앙의 좌소는 마음’이라는 말이 있는데, 신앙은 우리의 머리가 아니라 마음에 자리 잡고 있다는 말입니다. 마음은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좋아하지 않으면 싫어합니다.
♠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왜 이렇게 말씀하십니까? 인격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신앙 속에 뜨거움이 없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왜 뜨거움이 없었습니 까? 그들의 마음이 온통 다른 데 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 이스라엘이 극도의 위기에 빠져 있을 때 선지자는 결코 안전할 수 없으며 자기 혼자 이상적 인 가정을 꾸미고 행복하게 살 수 없습니다.
♠ 요즘 교인들이 자신의 잘못을 전혀 생각하지 않으면서 어느 목회자가 조금이라도 잘못하는 것 같으면 밤을 새워 가면서 입방아를 찧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호세아의 비극적인 결혼은 호 세아 개인의 일이 아니라 바로 그들 자신의 일이었습니다.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1:3)
♠ 호세아가 ‘디블라임의 딸 고멜’과 결혼했다는 것은 단순히 고멜을 집에 시모로 데려다 놓 은 것이 아니라 신부대금을 주고 정식으로 결혼했다는 뜻입니다.
첫 아이 이스르엘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 하라 조금 후에 내가 이스르엘의 피를 예후의 집에 갚으며 이스라엘 족속의 나라를 폐할 것임이니라 (1:4)
♠ ‘이스르엘’은 지명으로서, 복쪽의 있는 평지의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역사적으로 아주 피비린내나는 살육이 있었던 곳입니다.
♠ ‘이스르엘’은 아합 왕가의 멸망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는 아합 왕가를 결단낸 예후 왕가를 결단내겠다는 뜻으로 아이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붙이십 니다.
♠ 호세아의 음란한 아이 이름을 ‘이스르엘’로 지은 것은 이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에 지금 호황을 누리고 있는 예후의 집안이 반드시 완전히 끝난다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 신앙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이며, 하나님께 대한 헌신이 없으면 이 땅을 차지할 수 없기 때 문입니다.
♠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언약의 보증으로 주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성령입니다.
♠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의 역사가 줄어들거나 없어지는 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 이 아이의 또 다른 이름은 ‘임마누엘’이었습니다. 이 이름은 한편으로는 유다를 괴롭히고 있는 이스라엘과 수리아에 빨리 망한다는 뜻을 나타냄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유다와 영원히 함께 계신다는 뜻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 부모들은 아이들이 저절로 크는 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이들이 만들어지고 자라는 과정을 통하여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우쳐 주십니다. 그것을 잊지 말고 깨달아야 합니다.
♠ 하나님은 왜 예후의 집안을 멸하겠다고 말씀하십니까? 바로 이 지도자들이 이스라엘을 교만 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1:5)
♠ ‘활을 꺾는다’는 것은 힘을 전혀 쓰지 못하도록 패망시키겠다는 뜻입니다. ‘활’은 힘입 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축복을 주시는 것은 완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되는 도구 로 삼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아들 로루하마
고멜이 또 임신하여 딸을 낳으매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하라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1:6)
♠ ‘루하마’는 아주 중요한 히브리어로서, ‘긍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서을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많은 위험이나 고비를 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지켜 주시기 때문입니다,
♠ ‘루하마’ 앞에 ‘로’가 붙으면 ‘no’가 붙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로루하마’는 영 어로 ‘No Mercy’, 즉 ‘긍휼을 베풀지 않겠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는 특별은총뿐 아니라 일반은총까지 거두어 가 십니다.
♠ ‘로루하마’라는 것은 그들을 이방나라처럼 대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은혜를 철 저히 거두어가서 완전히 짐승 같은 수준으로 떨어뜨리겠다는 것입니다.
♠ 마음에 기쁨이 없고 감동이 떠나고 눈물이 메마르는 것은 회복하는 게 더 큰일이예요. 좀 손 해 보더라도, 할 말을 다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나와 우리 교회 위에 머물러 있는 게 중요합니다.
♠ 믿는 사람들에게서 하나님의 은혜가 떠나면 다른 사람이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누구나 상식적 으로 아는 것도 본인은 모릅니다.
♠ ‘로루하마’는 정말 큰일납니다. 하나님이 ‘내가 너희 가정에서 은혜를 거두어 가겠다’ 하시 면 정말 큰일 나는 것입니다.
♠ 우리에게 돈이 있고 건강이 있어도 말씀이 없으면 로루하마가 되는 것입니다.
♠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말씀을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마음이 겸손해지면 성령의 역사가 회 복됩니다.
♠ 오늘 우리 한국 교회에서 말씀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은 은혜가 떨어지는 증거입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들을 수 있습니까? 긴장하면서 들어야지요, 거꾸러지며 회개하는 일 이 있어야지요. 눈물과 감동과 긴장이 있어야지요.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으 려고 합니다.
♠ 호세아는 북쪽 이스라엘의 마지막 선지자였습니다. 호세아 이후 700여 년 만에 예수님이 오 셔서 갈릴리 땅에서 설교했을 때, 성경은 ‘스불론과 납달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 다’고 합니다.
♠ 그들은 기적을 보았기 때문에 기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기뻐한 것입니다.
♠ 우리가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우리에게 은혜를 회복시켜 주십시오’ 할 때 치료해 주시고 용 서해 주신다는 사실보다 더 귀한 축복이 없습니다.
♠ 웬만한 것은 양보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놓치면 안 됩니다. 어떻게 하든지 그 은혜 가 내게 머물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유다 족속을 긍휼히 여겨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 구원하겠고 활과 칼이나 전쟁이나 말과 마병으로 구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1:7)
♠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이런 불성실함에도 불구하고 구원하시는 일을 완전히 중단하지 않 겠다고 선언하십니다.
♠ 그들을 구원하는 것은 ‘저희 왕 다윗’이 아니라 ‘저희 하나님 여호와’이십니다. 신적인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 주님은 우리를 활이나 칼이나 말로 구원하시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능력으로 구원하십니다.
♠ 우리가 본문을 통하여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신앙은 언약이며 하나님께 대한 헌신이 라는 것입니다.
♠ 교회를 떠나는 것만을 불신앙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교회 안에 있으면서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더 무서운 불신앙입니다.
♠ 호세아의 비극적인 결혼은 이스라엘의 죄를 들추어내기 위한 행동 계시였습니다.
♠ 결국 구원은 오직 하나님 여호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