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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찾아서] 고뿔 들자 말갛게 씻은 듯한 마음에 떠오른 큰 나무 | |||||||||
[2012. 9. 24] | |||||||||
그때까지만 해도 나무는 산림청 지정 보호수였지요. 그러나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여느 느티나무와 비교해 결코 모자람이 없다는 생각에서 얼마 뒤에 낸 저의 책 '행복한 나무여행' 중에 장성 지역 답사 코스에서는 이 나무를 중요한 포인트로 지정해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인 2007년 여름에 나무는 천연기념물 제478호로 지정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느티나무이면서도 아름다운 수형을 갖추었다'는 것이 선정의 근거였습니다. | |||||||||
나무가 있는 단전리 마을은 400 년 전 입향조(入鄕祖)는 김충로에 의해 형성된 집성촌입니다. 산 좋고 물 좋은 이 마을에 보금자리를 일구었지만, 김충로에게는 견디기 힘든 아픔이 있었지요. 그의 형님과 함께 하지 못했다는 원이 남은 것입니다. 김충로의 형은 임진왜란 때에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서 무공을 세우고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김충남 장군이었거든요. | |||||||||
단전리 느티나무는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한을 안고 살아온 나무입니다. 마을에서 나무를 '장군나무'라고 부르는 것도 그래서지요. 당연히 마을에서는 수호신처럼 모시는 나무가 되기도 했고요. 마을을 일으킨 입향조가 심어 키운 나무는 그가 죽은 뒤에도 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김충로의 후손인 마을 사람들은 나무에 당산제를 지내며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했습니다. | |||||||||
지난 여름에 나무를 찾아본 것은 KBS-TV의 '6시 내고향'의 촬영을 위해서였습니다. 아래에 지난 겨울에 썼던 신문 칼럼과 지난 여름에 방영됐던 '6시 내고향' 다시보기를 링크하겠습니다. | |||||||||
나무처럼 고요하게 오늘 하루를 보내고, 다시 길 위에 올라야 하겠습니다. 명절을 맞으러 길 떠나는 분들에게 방해되지 않으려면 제가 먼저 서둘러 다녀와야 하겠지요. 그러고 보니, 다음 '나무 편지'는 추석 명절 다음에나 보내야 하겠네요. 모두 즐겁고 풍성한 한가위 명절 보내시기 바랍니다. 네덜란드 출신의 그림책 작가 레오 리오니의 작품 중에 ‘잠잠이’(최근 ‘프레데릭’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나왔다)가 있다. 주인공인 새앙쥐 잠잠이는 봄부터 가을까지 햇살 좋은 양지 녘에 쪼그리고 앉아 낮잠만 즐긴다. 일은 안 하고 졸기만 하는 잠잠이를 모두들 불만스러워하지만 잠잠이는 끈질기게 잠만 잔다. 그리고 새앙쥐 마을에 겨울이 찾아왔다. 대지에 찬란하던 빛깔도 요란하던 소리도 모두 사라지고 침묵에 들었다. 새앙쥐들도 지루하게 이어지는 권태를 견디기 힘들었다. 잠잠이가 그때 모두의 앞에 나섰다. 봄부터 가을까지 꾸벅꾸벅 졸면서 모아두었던 빛깔과 소리를 천천히 풀어내기 시작했다. 잠잠이는 결국 침묵과 권태의 계절인 겨울에 모두에게 봄의 희망, 생명의 노래를 전해 주는 아름다운 시인이 된다.
사람들은 전쟁을 피해 마을을 떠났다. 참혹한 전쟁의 폭풍이 지나고서야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멀리 떠난 뒤였다. 그때부터 누가 결정하지도 않았건만 우마제도 풍물놀이도 당산제도 모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단전리에는 전쟁 전에 70가구가 모여 살았지만 지금은 20가구와 일흔 고개를 넘나드는 노인들만 남았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입향조 장군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젊은 시절에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피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한 많은 어른들이다. 여전히 멈추지 않는 세월은 마치 온 세상을 하얗게 덮어 버리는 하얀 눈처럼 세상살이의 흔적을 하나둘 덮을 것이다. 노인들만이 알고 있는 마을의 기억도 종작없이 사라질 것이다. 마을에는 하릴없는 적막감이 찾아오고, 견디기 힘든 권태감이 휩쌀지도 모른다. 그때가 되어도 나무는 옛 마을의 영화를 온전히 기억하고 우뚝 서서 찬란했던 옛 마을의 평화로운 빛깔과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은 사람들에게 전할 것이다. 마치 레오 리오니의 그림책에 나오는 새앙쥐 주인공 잠잠이처럼. 글 사진 장성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gohkh@solsup.com 가는 길
전남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 291. 호남고속국도의 백양사나들목으로 나가서 백양사 방면으로 우회전한다. 호남선 백양사역을 조금 지나면 사가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백양로를 타고 5㎞쯤 가면 장성호 관광지에 닿는다. 장성호를 끼고 이어지는 아름다운 길을 3㎞ 가면 북하면 소재지인 약수리에 들어서게 된다. 이 길을 따라 계속 3.5㎞쯤 고갯길을 넘어가면 처음으로 나오는 주유소 맞은편에 나무가 있다. 주유소 근처의 빈자리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