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 대통령은 교하 노씨이지만, 광산노씨의 한 뿌리다. 따라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노태우 전 대통령은 한 집안이다. 노(盧)씨 집안에서 대통령을 두 명씩이나 배출한 셈이다.
광산 노씨의 대표적인 인물은 노수신(盧守愼,1515~1590)이다. 중종 38년에 문과에 장원한 그는 명종 때 을사사화로 파직된다. 그 뒤 진도로 유배되어 19년을 보냈다. 선조가 즉위하면서 귀양살이에서 풀려나 이조판서, 대제학, 영의정을 지냈다.
노(盧)씨의 발상지는 산동성 치박(淄博)시이며, 하북성 범양(范陽)에 많이 살고 있다. 범양은 유비(劉備)의 고향이며, 현재 북경의 바로 옆에 있는 탁주(涿州)이다.
노씨는 원래 강태공의 8세손인 혜(傒)가 있었는데, 혜는 제(齊)나라의 정경(正卿)벼슬에 올랐던 사람으로 노현(盧縣)이라는 고을을 식읍(食邑)으로 받아서, 후에 이 고장의 이름을 따 성을 노(盧)씨로 정하였다. 노씨의 도시조(都始祖)는 원래 당나라의 한림학사를 지낸 노수(盧穗)라고 전하는데, 그는 당나라 말년에 중국 범양(范陽)에서 왔다.
하북성 탁주시에 가면 범양노씨 대종사가 있으며, 모든 노씨는 이곳에 발원되었다고 전한다. 탁주를 방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탁주는 이름이 천하에 날리고(涿州名揚天下), 탁주는 세계 노씨 시조의 땅이다(涿州是世界盧氏祖先的基地)”라고 적혀 있다.
광산노씨 시조 노수가 아들 9형제를 거느리고 신라에 왔으며, 9형제가 모두 신라에 등과 하여 고려 초년에 봉읍(封邑)됨으로써 9관 노씨의 시조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광산노씨가 큰집으로 알려졌으며, 교하노씨, 풍천노씨, 곡산노씨 등이 다 같은 집안이다.
노씨는 강태공(姜太公)의 8세 손에 의해 생겨난 성씨이기 때문에, 강태공의 제사에도 참석한다. 노태우 전대통령도 강태공의 사당을 참배하여 ‘선조님의 업적을 기리자’ 라는 글을 남겼다. 광주시 북구 삼각산 아래 삼릉단(三陵壇)에 노태우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의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삼릉이란 임금의 릉이 세 개란 뜻으로 앞으로 한명의 대통령이 나올 듯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