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4>
산부인과를 개원하고 있는 J원장에게 어느 날 15세의 P양이 같은 반 친구와 함께 찾아왔다. 중학교 3학년인 P양은 내원 당시 임신 12주였고 고등학생인 남자친구와 관계를 가졌다가 임신을 하게 된 것이었다. P양은 자신이 저축한 돈과 같은 반 친구에게 빌린 돈으로 중절 수술비용을 마련하였다며 빨리 수술을 해 달라고 하였다. J원장은 P양이 미성년자이므로 P양의 동의만 가지고는 임신중절을 해 줄 수 없다고하고 부모님을 모시고 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P양은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지금 새어머니와 아버지와 함께 살고 계신데 아버지는 해외에 장기 출장 중이고 새어머니하고는 말도 하지 않는 사이라고 하였다. 새엄마가 이 사실을 알면 가뜩이나 나쁜 관계가 더욱 악화될 것이며 미국에 가 있는 아버지에게는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새엄마가 이를 알게 되면 아버지에게 당연히 일러바칠 것이므로 아버지는 자신을 문제아로 생각하게 될텐데 아버지가 자신을 걱정하게 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J원장이 그래도 미성년자의 동의만 가지고 임신중절수술을 해 줄 수는 없다고 하자 P양은 그럼 다른 병원에 가면 될 거 아니냐고 항의하였다.
<윤리적 고찰>
위 사례는 두 가지 윤리적인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우선 P양이 낙태를 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옳은가 하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위와 같은 상황에서 의사는 보호자의 동의 없이 미성년자의 임신중절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는가이다.
(1) 우선 첫 번째 문제부터 살펴보자.
중학교 3학년인 P양은 임신 12주에 임신중절을 요구하고 있다. 임신 12주 상태의 생명은 태아기에 있다. 인간의 발생과정은 일반적으로 수정 후 3주부터 8주까지의 시기를 배아기라 부르고, 수정 후 9주부터 출산 전까지의 시기를 태아기라 부른다. 물론 배아연구와 관련해서 논의되는 배아는 수정 후부터 착상 전까지의 시기에 해당하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전배아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배아기에는 신체기관이 형성되는 시기이고, 태아기에는 이 기관들이 발달하고 성숙되는 시기이다. 따라서 임신 12주면 상당히 성장한 태아이다. 인간생명의 시작 시점이나 도덕적으로 존중되어야 하는 인간생명체의 단계를 최대한 뒤로 미룬다 하더라도 임신 12주에서의 임신중절은 명백히 인간생명을 침해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윤리적으로 한 인간생명체의 생명활동을 인위적으로 중단시키는 행위는 비윤리적임에 틀림없다.
도덕적으로 존중되어야 할 인간생명의 시작점에 대한 논의는 여러 철학적인 입장에 따라 견해를 달리한다. 수정순간부터 생물학적으로는 인간 종으로서의 46개 염색체를 지니고 이 세포가 스스로 자기 내부에 프로그래밍된 대로 생명활동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존중되어야 할 인간생명을 수정란부터라고 하는 입장이 있다. 다른 입장은 감각기관의 형성시기부터 인간으로 존중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 입장은 도덕적으로 존중되어야 하는 인간생명은 최소한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sentient being)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감각기관이 형성되는 시기는 배아기 중 어느 때이므로 위의 사례에서와 같은 임신 12주는 이미 이 시기를 넘어선 단계이다. 또 다른 입장으로는 존중의 대상은 그 대상의 존재가 확립되어야 하기에 자기 정체성이 확립되는 시기, 발생학적으로는 원시선이 형성된 시기, 즉 대략 착상이 완료된 시기부터 존중되어야 할 인간생명으로 본다.
따라서 현재 논의되는 어떤 철학적 입장에서도 임신 12주의 인간생명의 생명활동을 중단시키는 행위를 정당화시켜 줄 수는 없다. 혹자는 태아가 모체 밖에서도 생존 가능하느냐를 기준으로 존중해야 인간생명의 시기를 정하고자 한다. 그러나 인큐베이터와 같은 인공 모체의 기술이 발전한다면 이런 방식의 시기 구분은 과학적 기술 발달과 함께 변동 가능하므로 윤리적 논의를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는 유의미한 기준으로 보기 어렵다. 또한 모자보건법에서도 위와 같은 사례는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경우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위 사례와 같이 산모가 미성년자라는 것은 임신 12주의 태아를 중절하는 것을 윤리적으로 정당화시킬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임신 12주의 태아를 중절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그릇된 일이지만 산모가 미성년자라는 점을 고려하여 이 경우의 임신중절은 예외적 상황이라고 말할 수있느냐는 것이다.
분명 미성년자의 산모가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여러 가지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낳을 것이다. 우선 미성년자 자신은 아직 학업에 열중해야 할 나이이고 아이를 키울 만큼 성숙한 판단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다. 위 사례에서 아이의 아빠도 고등학생으로 한 가정을 이루어 아이를 키우기에는 부적절한 상황에 있다. 그러나 이런 사정이 미성년자의 임신중절을 윤리적으로 정당화시킬 수 있을까? 문제는 부모의 미성숙이 한 인간생명을 죽일 만큼 중대한 사안인가이다. 비록 현재는 아이를 낳아 기를 능력이 없더라도 몇년만 기다리면 아이를 키울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그 때까지는 이들의 가족들이 양육하거나 그도 어려우면 사회보호 시설에서 양육하는 방법도있을 것이다. 사실 과거에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 정도의 연령이면 혼인도하고 아이를 키우기도 했다. 따라서 부모가 미성년자라는 사실이 임신 중절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이런 사정은 설사 임신한 P양의 부모가 P양의 임신상황을 알게 되고 임신중절을 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더라도 임신중절 그 자체가 지닌 윤리적 문제점을 해소시키지는 못한다. 그러나 P양이 임신중절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써 임신의 지속이 산모의 건강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경우, 다시 말해 임신중절을 하는것이 산모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것이라면, 임신 중절은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상황이라 하겠다. 그리고 이 경우에도 보호자의 동의를 얻어 임신 중절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미성년자인 P양이 자신의 상태에 대해 충분히 성숙된 판단을 하기 어렵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미성년자라 하더라도 자율적인 판단을 내릴 능력이 전혀 없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최근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미성년자에게 ‘동의’는 아니더라도 ‘승낙’의 형태로 본인의 의사를 확인해야 하고, 미성년자 본인과 보호자, 담당 의사 사이의 의사 결정과정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미성년자의 의사존중을 강조하는 이 입장도 미성년자의 의사만을 담당 의사가 확인하고 존중하면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여전히 보호자의 참여는 불가피하다. 이런 고찰은 위에서 제기한 두 번째 윤리적 질문에 대
해서도 어느 정도 그 대답을 예상하게 한다.
(2) 두 번째 윤리적인 문제는 담당 의사는 이런 상황에서 보호자의 동의 없이 미성년자의 임신중절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느냐는 문제였다. P양의 입장에서 자신의 상황을 쉽게 타개하는 방법은 당연히 임신사실을 숨기고 임신 중절하는 방법이라고 생각되었을 것이다. 인간생명의 중요성을 제대로 숙고할 만한 나이도 아닐 수 있지만 우선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보다 남자 친구와 성행위를 했다는 사실 자체를 숨기려는 생각이 더 강할 수도 있다. 이런 정황을 생각해 볼 때, P양의 임신중절에 대한 요구는 충분히 숙
고된 판단이라고 보기 어렵다. 인간생명에 대한 고려보다는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신중하지 못한 행동을 했는가에 대한 총체적인 상황고려보다는 일단 급한 불부터 꺼보자는 심정이 클 수 있다.
미성년자인 자식의 임신 사실을 접한 대부분의 부모는 임신중절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부모 역시 새로운 생명에 대한 존중보다는 지금까지 키워 온 자기 자식이 겪을 앞으로의 고생이 걱정스러워서 일 것이다. 그러나 간혹 어떤 부모들은 종교심에 의해서든 나름대로의 생명존중이란 소신에 의해서든 임신중절을 권하기보다 자식이 좀더 성숙할 동안 새로운 생명을 자신이 돌보아 주겠다고 나설 수 있다. 사회복지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면 미성년자가 성숙할 시간 동안 대신 길러줄 수도 있을 것이다. 임신중절의 윤리적 문제에 둔감한 한국 상황에서는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릴 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이유는 단지 부모가 출산을 수용할 가능성 때문만은 아니다. 보다 중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임신중절 역시 외과적 수술을 동반하며 임신중절 후 산모는 가족의 배려속에 회복기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든 사실을 숨기고자 하는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으나 이런 행동이 산모 자신의 건강을 돌볼 수 없는 상황을 만들고 정상적인 생활을 가장하는 데서 오는 신체적 부담을 감수해야할 위험이 있다. 물론 부모의 동의를 얻어 임신중절을 하려 한다 해도 산모의 건강상 임신중절을 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윤리적으로 정당화되기는 어려우며, 부모의 요구를 통해 임신중절을 한 의사는 현행법에서는 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결국, 산모의 건강상의 이유로 임신중절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임신중절이 윤리적으로 정당화되기는 어려우며, 산모의 건강이 주요한 문제가 된 만큼 미성년자의 경우 보호자의 동의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단지 위 사안이 임신의 문제여서가 아니라 다른 질병의 치료를 위한 수술의 경우와도 같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법률적 고찰>
형법 제270조 제1항에서는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위 사례에서 J원장이 P양의 임신중절수술을 실제로 시행한다면, J원장은 형법 제270조에 따라 처벌받게 된다. 다만 형법 제20조에서는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모자보건법 제14조에서 낙태시술을 허용하는 예외적인 경우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이를 종합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모자보건법 제14조에서 정하고 있는 낙태(인공임신중절) 허용 사례는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간에 임신된 경우,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히 해하고 있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뿐이다. 따라서 15세의 미성년자가 임신했다는 그 사실 자체는 모자보건법에서 정하는 낙태허용사례가 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P양과 보호자 또는 친권자의 촉탁에 의해 낙태(임신중절)시술을 행한다면 J원장은 형법 제20조의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로 처벌을 면할 수 있을 것인가를 검토해 보자.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란 법규정의 문언상 범죄구성요건에 해당된다고 보이는 경우에도 그것이 극히 정상적인 생활형태의 하나로서 역사적으로 생성된 사회생활질서의 범위 안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경우에 한하여 그 위법성이 조각되어 처벌할 수 없게 되는 것을 말한다. 즉, 낙태시술은 모자보건법상의 허용요건을 갖추지 않아 형법상 낙태죄에 해당하는 경우에도 현실적으로 대부분 행해지고 있어 이미 정상적인 생활형태의 하나라는 주장이다.
그런데 어떤 행위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가 되는지 여부는 법원의 판례에 따라 결정하여야 하는데, 판례는 이 경우 낙태시술이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행위’라고 보지 않고 있다.(대법원1985.6.11. 선고 84도1958 판결) 따라서 J원장은 형법 제270조 제1항의 낙태죄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