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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경주 천주교회 예비자 교리를 위한 강의 입니다.]
대단히 반갑습니다. 회장님께서 지나치게 저를 피알 하시는데 많은 기대를 가지신다면 실
망을 하실 겁니다. 기대를 하시지 마시고 오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과 같이 좋은 시간을 가
지시게 된 것을 굉장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러면 여러분께서 이 자리에 오신 것은 돈 버는 일 들으러 오신 것 두 아니고 사회적으로
명예를 걸고 오신 것 두 아니시고 어떤가 무언가 한번 들어보자 해서 오신 것 일 겁니다. 그
래서 저도 오늘 이 시간에 저 세상에서 들어볼 수 없는 얘기 또 여러분이 항상 살아가기 위
해 분주하기 때문에 생각해 볼 수 없는 얘기 가장 귀중한 얘기 몇 가지를 해보겠습니다.
그럼 여러분이 솔직하게 마음을 다 털어놓고 이세상에서 나에게 제일 귀중한 것이 무엇인
가 한번 생각해 봅시다. 사람이 세상에서 생각을 하는데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
라서 그 사람의 생활 양식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지고 생활 형태가 달라집니다. 그 사람
의 인격형성이 달라집니다.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예컨대 여러분들 손에 큰칼을 들
고 있을 적에 이것을 잘 사용하면 나무를 잘라서 기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잘못 사
용하면 사람을 찔러 살인을 저지르고 말이죠. 우리가 꼭 같이 하루 밥 세끼 밥을 먹고 살아
가지만은 내가 무엇 때문에 무엇을 생각한 후 생각하고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생
은 완전히 달라지는 겁니다. 또 이 시간에는 제일 귀중한 얘기 여러분과 같이 해보고 싶습
니다. 그러면 제일 먼저 제일 귀중한 얘기가 먼지 얘기해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다
시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에게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게 머냐?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얘기입니다. 제가 서울 어느 여자 대학교를 가서 큰
강당에서 교양 강좌를 하는데 물었습니다. 여대생 여러분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게 무업니
까? 예, 사랑입니다 그랬습니다. 그래요? 그럼 학생 여러분 사랑이 무업니까? 우물우물 하
더니 그러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그랬는데요, 뭐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학생들 눈물의 씨
앗인데 사랑이 더 귀합니까?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또 서울 어느 기업체에 가서 임
원들을 모아 놓고 솔직하게 물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게 무업니까? 돈
입니다 그랬습니다. 여러분들 돈과 받을 돈 필요합니다. 또 어떤 분은 명예, 육체적인 쾌락,
여러 가지 이유를 들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 저는 이 자
리에서 누구나 다 공통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건 내 생명입
니다. 그렇죠? 생명입니다. 생명이 제일 귀한 겁니다. 이 생명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겁니
다. 권력으로 뺏어서 권력으로 해결 할 수 있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생명이 제일 귀한 겁니
다. 그러면 여러분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반복해서 늦게까지 일도 하고 공부도 굉장히 많
이 했는데, 도대체 생명이 무엇이냐? 이 문제를 얼마만큼 깊이 생각했느냐 이것입니다. 솔
직하게 아까 말씀 드린 데로 저 밖에 많은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하기 위해 돈이
필요합니다. 공부를 위해서, 나중에 출세 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하고 집도 필요하고 먹는
것 도 필요합니다. 옷도 필요합니다. 그것은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생명을 위해서 필요한
조건입니다. 필요한 방편적인 가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들이 노리고 있는 돈
이다, 권리이다. 그것이 내 인생에 대한 답변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의 살아가는 방법인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
아가면서 방법적인 일에 항상 정신을 쓰지, 무엇 때문에 생명이 무엇이냐에 대해서는 생각
하지 않다는 것. 근본적으로 우리가 뭔가 내 자신이 착각을 범하고 있다는 거, 이건 여러분
이 생각해야 될 겁니다. 솔직하게 한번 반성해 보시지요.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조건을
위해 모든 정신을 썼지, 왜 살아야 되느냐? 생명이 도대체 무어냐?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야 되느냐? 근본적인 삶의 목적에 대해서는 뒷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결과적으로 뭡니까? 목적 없이 정확한 가치관이 없이 살았기 때문에 100년을 살
아도 마지막에 공허를 느끼고 좌절하고 갈등을 느끼는 게 인간일 겁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는 가장 귀중한 내 생명이 뭔가 생명문제에 대해서 그러면 생명이라는 것은 우리 인
간과 관계 인간의 생명 동물의 생명 식물의 생명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 계속
해서 범위를 좁혀 말씀 드리겠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근본적으로 오늘 이번 강의의 총론 격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여
러분들한테 생명이 무어냐 물으면 살아 있는 건데 살아 있는 게 도대체 무어냐? 솔직히 말
씀 드려서 내가 살아 있고 내가 생명이면 생명인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저한테 묻겠죠.
그럼 박신부 당신의 생명은 무어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생명…… 그럼 일단 저는 생명은
신비스러운 거다. 생명은 신비스러운 것이다. 생명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하나는
생명 그 자체는 신비스러운 것이고, 생명이 존재하는 이유는 결실을 하기 위해서 생명은 신
비스러운 것이다. 이 두 원칙입니다. 그럼 여러분들 이 시간에 일차적으로 여기서 제기하는
문제는 나는 살아 있는 생명체다, 그러니 신비스러운 거다. 나는 신비스러운 존재이다. 그
런데 내 생명은 결실을 해야 된다. 이거 여러분 중요한 얘기입니다. 내 생명의 결실이 무어
냐 하는 거…… 에 대해서 오늘 이 시간에는 인생 철학 생활 강좌라고 그러는 여러분의 삶의
기본적인 문제 입니다. 쉽게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여러분 사과 나무 있죠? 사과나무에서
뭘 땁니까? 사과를 따죠…… 대추나무에서 뭘 땁니까? 복숭아 나무에서 뭘 땁니까? 학생들
똑똑하네요…… (웃음^^) 예, 그럼 여러분들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지 못하는 그 사과나무
그거 짤라 버립니다. 결실하지 못하는 나무, 불모의 생명, 불 의미의 생명, 아무 가치 없어
짤라 버립니다. 그러면은 그 사과나무에서 우리에게 사과라는 과일을 주는데, 결실을 우리
에게 주는데, 사과나무들 보다 위대한 나는 무얼 주느냐?... 이것 참 심각한 문제입니다. 대
단히 죄송한 얘기입니다 만은 어떠한 경우에 인간이 사과나무 하나보다도 못한 인간이 얼
마나 많이 있습니까…… 사과나무에는 사과라는 과일을 주는데, 그 인간은 세상에 없었으
면 더 좋았을 인간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니 경우에 따라서 인간은 사과나무 보
다 못한 부패한 타락된 잘못된 인간이 될 수 있다 이겁니다. 그래서 중요한 결론의 말씀 드
리면 내가 사람이 되었다 인간이 되었다, 이것으로 절대로 사과나무 보다 위대하다고 말 할
수 없습니다, 그 자체로서. 어떤 인간이 되느냐? 이겁니다. 굉장히 중요한 얘기 입니다.
여러분 살아가면서 이 걸 한번 깊이 새겨요 인생철학……사색을 해야 되요, 인간은, 생각을
해야 되요 인간은, 생각이 깊을수록 우리는 진리를 발견하고 진리를 발견함으로써 우리는
기쁨과 보람을 느끼고 삶의 가치를 느끼는 겁니다. 생각이 없는 사람 항상 허탈 공허 이것
뿐 입니다. 그러면은 지금까지 말씀 드린 거, 생명은 신비스럽고 생명은 결실을 한다. 이 두
가지 원칙을 놓고 이제 가장 나한테 다른 사람에 대한 얘기가 아닌 바로 나한테 대한 얘기
입니다, 각자에 대한 얘기입니다. 이 문제를 하나하나 얘기해 보겠습니다. 먼저 생명은 신
비스럽다, 신비스럽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겁니다. 인간은 해결할 수 없
다 이겁니다. 신비라는 것은 과학을 초월하는 겁니다. 과학적으로 해결 할 수 없는 생명이
라 이겁니다. 여러분들 이것 참 중요한 얘기입니다. 좀 더 생명의 신비성을 여러분들 좀 더
깊이 느끼기 위해서,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과학적으로 해결 할 수 없는 생명이라
이겁니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콜롬비아 호를 띄었죠? 제가 신문에 잠깐 보니깐 콜롬비아 호를 하나
띄우는데 미국 돈으로 백억 불 이상 들었대요, 백억 불 이상…… 우리나라 돈으로 계산도
못할 겁니다. 수천 억…… 그러면 백억 불 이상 짜리의 콜롬비아 호를 띠우는 위대한 인간입
니다. 얼마나 위대한 인간입니까? 인간이 만든 과학적인 문명 참 놀란 거 많이 있습니다. 컴
퓨터, 텔레비전, 여러분들 비행기 747 비행기 타보시면 알 겁니다. 저는 그 비행기를 탈 때
마나 깜짝,깜짝 놀랍니다. 747 비행기 400명이 탑니다. 그러면 비행기 저 끝이 가물가물 하
면 400명이 꽉 차는데 여기 지금 400명이 다 타구도 남아요…… 그 비행기가 400명을 싣고
이제 진짜 공중으로 날을 건가? 진짜 공중으로 나릅니다. 또 밑엔 수십 트럭 짐을 싣고 인간
은 위대합니다.
그렇게 위대한 인간인데도 우리 인간이 무언가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200원짜리 한 포기
국화꽃을 못 만듭니다. 인간이…… 왜?? 생명체이지요, 생명체는 신비스러운 겁니다. 한
포기 식물이 생명체면 전세계 과학자가 다 모여서 해결 할 수 없는 신비스런 대상일 겁니
다. 생명이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여러분들 식사 하시고 오셨죠, 여러분들이 다 드시고 온
쌀, 자 여러분들 우리나라 지금 매년 쌀 걱정하는데, 오늘 이왕 여러분 여기 오셨으니깐, 돈
버는 얘기 하나 하죠. 돈 버는 얘기,,, 저~~ 경주 어디 근교에 가서 여러분들 돈 벌고 싶으
면은 쌀 만드는 공장입니다. 쌀 만드는 공장 …… 히트 칩니다 히트 쳐…… 그렇지요? 쌀 만
드는 공장 하나 만드십시오. 그러면은 하루에 수백 트럭씩 만들어 내면은 우리국민들 잘 살
게 되고 배고프지 않고 돈 당장 벌을 텐데, 자 오늘 성당에 가니깐 박신부님이 좋은 거 가르
쳐 주더라, 그래서 공장 설계도 가지고 시청에 가서 쌀 만드는 공장 만들려고 그럽니다. 그
럼 시청직원이 당신 돌았다고 그럴 겁니다. 그렇지요……왜??? 비행기 만드는 공장, 자동차
만드는 공장, 텔레비전 만드는 공장, 있습니다. 쌀 만드는 공장 없어요, 사과 만드는 공장,
귤 만들어 내는 공장, 오징어 만드는 공장 없어요, 왜??? 생명체이기 때문에…… 이 귀한 겁
니다. 신비스러운 겁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이 우주를 가만히 한눈에 보십쇼,, 산에는 나무들 동물들 바다에 물, 동물
들 많이 있지 않습니까? 전부다 생명체인데 이 우주가 생명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은 신비
로 가득 차 있다는 거, 나도 그 중에 하나 신비스러운 존재라는 거 여러분들 그래서 신비스
러운 차원에서 자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문제해결 될 수 없다는 게 원칙이죠, 그 생명
은 신비스러운 것입니다. 한 포기 풀이 신비스럽다면은 한 마리 동물보다 나은, 내 인간 내
인간의 생명은 말 할 것 없이, 더 위대한 것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게 인간의 생명인 겁니
다. 여러분들 솔직하게 이야기 해 봅시다. 여러분들의 귀한 생명 여러분들이 돈이 필요합니
다. 5억 줄게!! 너 생명 줄 태냐? 그럼 생명 안 내놓습니다. 5억 가지고 내 생명 죽으면 아무
것도 아닌데,, 내 생명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데, 돈으로 살 수 없는 게 생명입니다. 그리고
또 솔직하게 얘기해서 여러분들이 살아 있다는 전제하에서 내가 살아 있다는 전제하에서
여러분들이 가장 좋아하는 부부관계 결혼관계 애정관계 가족관계 우리나라 대한민국국민
이것이 의미가 있는 거지,, 내가 세상에 없다면 여러분들 아무 의미 없습니다. 중요한 얘기
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내가 살아있다는 전제하에서 여러분들 가족도 자식도 부모도 아
내도 남편도 또 여러분들의 행복도 종교다, 뭐 하나님도 의미가 있는 거지 내가 세상에 없
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솔직하게 얘기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절대적인 가치는 나에게 내 자신입니다. 내가 우주의 중심입니다. 그
렇습니다. 그렇다면은 이 귀한 내 생명 나란 존재, 이걸 깊이 파고 들어가서 내 생명이 내
존재가 어디에서 왔고 어떤 목적으로 어떤 결실을 맺기 위해 온 생명이냐? 라는 것을 생각
해 봐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사색 철학을 해야 합니다. 인간은 생각을 하
는 동물입니다. 생각 없는 인간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아까 말씀 드린 데로 생각이 없
는 인간은 사과나무 보다 가치가 없어요…… 왜?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의미 없는 인간
이기 때문에 왜냐하면 인간은 손 하나 까딱 해도 의미가 있습니다. 의미를 찾기 위해서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럼 오늘 이 시간에 제일 귀중한 생명문제 생명 문제,, 나라는 것,
내가 도대체 뭐냐??
그래서 혹시 여러분들 여기에서 철학 책을 보시면 아실 겁니다. 인간이라는 문제 실존주의,
또 철학적인 인간학 몇 가지 말씀 드리면 여기 실존주의의 장 뽀르 샤르트, 가브리엘 마르
셀을 얘기 할 겁니다. 또 철학적인 인간학에서 많이 쓰는 마르크쉘드 같은 사람들 인간을
철학적으로 분석했습니다. 여러 가지 각도에서 그런데 왜 철학자들이 인간의 생명을 놓고
이게 인간이다, 요게 인간이다. 둘에다 둘을 보태면 넷이 되죠! 그렇게 이게 인간이라고 규
정 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 이겁니다. 이 참 한마디로 나라는 게 1미터 71밖에 안 돼지
만은,, 기가 막힌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전 우주가 다 등져도 해결 할 수 없는 너무 신비스
럽고 의미가 주어진 나라는 겁니다. 이걸 깨달아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떤 철학자가 이
얘기를 했습니다. 방에 들어가면 거울이 가득 차 있는 방안에 들어갔을 적에 거울 마다 자
기 모습이 달리 표현 되죠! 이와 같이 인간 그 자체는 너무나 다양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것
이 인간이다 규정 할 수 없는 게 인간이라고 그랬습니다. 철학자가 그렇게 이야기 했습니
다. 그 다음에 또 한가지는 인간은 실존하는 존재이다. 좀 어려운 이야기 입니다. 그렇죠?
그렇지만 우리는 깊이 생각해야 되기 때문에…… 인간은 실존하는 존재이다. 실존이라는
말은 제가 여기서 어려운 철학 얘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만은, 여러분들 어렵게 말씀 드
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 실존이라는 말은 여러분들 기왕 여기 오셨으니깐, 작게 생각해
봅시다. 여기 백묵이 있다. 내가 있다. 똑같이 있는 거지만, 그 모습이 다릅니다. 존재 양식
이 다릅니다. 또 여러분 집에 병원에 장미꽃이 살아 있다, 집에 강아지가 살아 있다. 내가
살아 있다 똑같이 살아있는데 전혀 의미는 다릅니다. 그래서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
이 살고 있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기 때문에, 내가 살아 있다, 똑같이 살아 있는데
전혀 의미가 다릅니다…… 인간의 삶의 양상을 실존이라고 그럽니다. 실존, 다시 말하면 백
묵은 존재하는 거고 인간은 실존한다 그럽니다. 그럼 여러분들 백묵의 실존 그러면 이것은
무식한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여기 시계나 탁자는 존재하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은
존재하는데 시계가 있는 것과 백묵이 있는 것이 내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인간의 존재
양식을 철학자들은 실존이라고 그럽니다. 실존이란 무어냐 뭐 의미적으로 부여하자면 시
간이 없습니다 만은, 자기 스스로 존재에서부터 스스로 의미를 끌어내야 한다는 것, 다시
말하자면 동물은 존재해도 본능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의미를 모릅니다. 이 백묵은 있지
만은 이 백묵 자체는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를 알아서 자
기 스스로 의미를 깨우쳐서 의미에 부가된 자기 삶을 키워나가야 한다는 존재인 것이 인간
이라 이겁니다…… 쉽게 말해서 사과나무는 봄에 꽃이 피죠? 여름에 태양을 받죠? 자연 질
서에 의해서 결실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나 인간은 자연 질서 속에 살면서 동시에 윤리 도덕
적인 질서 형이상학적인 질서 어떤 절대적인 가치를 향에서 의미를 스스로 찾아서 스스로
자기를 자기자신이 키워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유일한 존재가 인간인 것입니다. 그러니깐,
인간이 밥을 먹고 살지만, 밥 세끼만 본다면 동물과 똑같습니다. 개도 소도 밥 먹지 않습니
까? 또 인간은 먹지만은 동시에 생각을, 사색을 통해서 왜 먹어야 되느냐? 생명의 의미가
머냐 이것을 스스로 깨달아서 깨달은 바에 따라서 스스로 자신을 성숙시키고 자기를 키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유일한 존재가 인간인 것입니다. 철학자들 이야기 입니다. 그러니
인간은 실존하는 존재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내가 지금까지 살아 왔지 만은 여러분 솔직
히 말해 봅시다. 무엇 때문에 사느냐? 왜 살아야 되느냐 정확한 답변이 없습니다. 정확한 답
변이 없으니까 어떤 문제와 오류는 원망하게 되고 죽고 싶고 좌절되고 공허를 느끼고 실망
을 하게 되는 겁니다. 의미가 없으니깐,, 철학이 없기 때문에 사색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생활철학인데, 인간이 살아 있다는 것은 동물이 살아있다 식물이 살아있다, 이 근본이 다
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문화 민족은 생명의 신비성을 깨달은 문화 민족입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생명의 신비성 더군다나 인간의 존엄성, 인간의 신비성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후진성입니다. 후진성을 면치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신비스러운 단계 정확한 인생의 의미, 정확한 가치의식이 없기 때문에, 그래
요…… 그래서 제가 구라파에서 한 8년 정도 있으면서, 여러 가지를 배웠습니다 만은, 한가
지 중요한 것은 구라파 선진 민족 사람들은, 생명의 신비성 생명의 존엄성을 인정한다는
거, 또 한국 사람들은 생명의 존엄성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 나라에 지금 자연보호 캠페인,
그 입으로 자연보호 캠페인 아무 소용 없습니다. 자연보호 캠페인에는 생명의 신비성이 인
정이 되지 않고서 의미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한 나무 한 종류의 식물 우리가 밟아서 죽
여 버리면, 그 식물은 세상에 이 우주에서 영원히 없어지는 겁니다. 무슨 말인 줄 압니까?
살아 있는 동물 예컨대 코끼리를 다 죽였다고 했을 때 이 우주에 코끼리의 존재는 영원히
없어 지는 겁니다. 인간이 만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 신비스러운 대 자연 앞에 신비스
러운 것을 살려 내야겠다라는 이런 구호로서 자연보호 캠페인이 의미가 있는 거지 그냥 자
연보호 캠페인은 의미가 없습니다. 자연의 신비 생명의 신비 그러면 이왕 생명의 신비에 대
해서 말씀 나왔으니깐, 이 말만 항상 제가 하는 얘기 입니다. 물론 들으신 분도 있겠지만,
처음 오시는 분께서도 계시니깐 제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파리에 있을 적에 공부할 적에 공부하면서 지금도 잊혀질 수 없는 두 가지 사건이 있
습니다. 생명에 대한 내용인데, 하나는 제가 파리에서 공부하고 있을 적에 우연히 여름방학
때 기차를 타고 가다가 저 이태리 로마에 가다가 기차 안에서 파리에서는 여러 가지 국제
선이 다 있습니다. 그래서 우연히 프랑스 가족을 만났어요. 가족이 전부 가족여행을 하는데
우연히 기차 한 칸 안에 같이 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 하다 처음에 제가 불란서 말
을 못하는 줄 알고 있었는데, 말이 통하게 되어서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야기
를 하다가 보니 그 사람들이 천주교 신자입니다. 그래서 제가 천주교 신부이라서 굉장히 가
까워 졌습니다. 그래서 서로 주소를 알게 되가지고 편지를 왔다 갔다 했는데, 그 사람들은
프랑스 제일 중부에 리 용의 조금 떨어진 시골에 조금한 도시에 큰 공장을 하는 집이 아주
잘 사는 부자였습니다. 편지를 하면서 하루는 신부님 이번 성탄 방학 때는 우리 집에 와서
일주일만 지내 주십시오. 공기 맑고 참 좋습니다. 파리 공기 탁한데 있지 말고 우리 집에
와서 한 주일만 지내 주십시오. 이런 부탁을 하는 편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너무 좋
아서 답장했습니다. 예 제가 며칠 날, 리 용역에 갈 테니깐 거기서 인제 연락을 해서 같이
만나자고 승낙을 하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아까 이야기 한데로 공장은 시내에 있
고 자기 집은 2층집에다가 아주 별장처럼 집을 잘 지어 났어요. 집이 2층인데 한 50이 넘은
부부인데 아들 딸들은 다 출가 시키고 부부가 살고 있습니다. 2층은 저 혼자 쓰고 아래층은
부부가 쓰고 있었어요, 그런데 성탄 방학이기 때문에 제일 추운 때였겠죠, 그래서 자구 일
어나니깐, 눈이 이렇게 쌓여 있었어요, 그래서 빨리 세수를 하고 일해야겠다 하고 세수를
하고 내려가니깐, 보통 나라 같으면 아주머니들이 커피를 따뜻하게 끓여놓고 기다리고 있
는데, 그날 따라 부엌에 커피도 준비되어 있지도 않고 집에 아침부터 아무리 살펴봐도 아무
도 없어요. 한 30분을 기다리니깐, 그 아주머님이 산에서 설레 설레 눈길을 걸어 내려오고
계셨어요, “아주머님 오늘 아침에 눈이 이렇게 많은데 어디 갔다 오십니까?” 그러니까 아
주머니 답변이 오늘 아침에 눈이 이렇게 쌓여서 산에 있는 새들이 산에 있는 토끼들이 먹을
것이 없을 것 같아서 빵을 던지고 옵니다. 여러분 이 얘기를 어떻게 받아 들입니까? 저는 그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그때 그 이상 그때 그 충격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눈이 와서 산에 있는 새들이 산에 있는 토끼들이 모이를 아침부터 식사를 준비해 주고 오
는 할머니의 그 위대한 정신, 그 문화 민족의 정신 아니겠습니까? 생명의 존엄성 그 동물도
식물도 생명이 살아야 한다는 거, 우리 오늘 솔직하게 이야기 하자고 했습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은 눈 온 뒤에 새 잡으려고 그러죠!! 그렇죠? 토끼 사냥 가죠? 새 잡고 토끼 잡는 게
나쁜 건 아닙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생명의 존엄성이 문제이죠, 신비성…… 이거 하나, 또
이왕 생명 문제 나왔으니깐,
제가 여름 방학 때 캐나다에 가서 석 달 지낸 적이 있습니다. 캐나다에 가면 호수가 많이 있
습니다. 제가 미국 캐나다 간 것은 영어세계 영국, 미국, 캐나다 사회를 알기 위해서 공부
겸 갔습니다. 그런데 호숫가에 여름인데 제가 캐나다 사람들하고 낚시질을 갔어요. 낚시를
던지는데 이제 저한테 조금한 피라미가 한 마리가 걸려와서 한국식으로 너무 조금해서 기
분 나쁘다고 집어 던져 버렸어요. 또 담그는데, 5분쯤 있으니깐, 캐나다 사람이 똑 같은 피
라미를 건져 올렸어요. 그런데 그 사람 하는 말이 요거 작으니깐 다시 키워서 잡아야지 하
면서 물 속에 다 집어 넣었어요. 내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어요. 참 우리 한국 민족의 정신적
인 문제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생명의 존엄성 신비성 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존엄성
도 없어요. 그래서 기업주들이 밑에 고용주를 마음대로 다스립니다. 또 윗사람들이 아랫사
람 또 빈부의 차이 우리나라 모든 민족의 우리 한국인 모두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의
문제라고 봅니다. 인간의 존엄성, 인간이 너와 같이 너도 나와 같이 인간이 존엄하다면 그
렇게 인간을 대우할 수 있습니다. 그럼 이렇게 우리 생명의 신비성 인간의 생명이 귀중하다
는 거 생명이 신비하다는 걸 깨달을 때 그것을 우리는 어떤 제도 문제를 해결하지 않겠느냐
이런 문제에 있어서 오늘 이 시간에는 생명은 신비스럽다는 거 그러면은 이렇게 귀한 내 생
명이 이제 다른 문제로 어디서 왔고 어떻게 만들어 졌고, 이런 문제에 관해서 오늘 이 시간
에는 생명은 신비스럽다는 것 이 생명이 마지막으로 목적하는 결실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
니다. 좀 어려운 문제이지만, 쉽게 이야기 해 봅시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 지금부터 80년 전에 어디에 계셨습니까? 또 어떤 사람은 저한테 이상
한 질문한다고 그러겠지요. 그럼 또 질문 같은 질문 또 하나 해보겠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
분들 앞으로 80년 후에 어디에 계시겠습니까? 앞이 캄캄하죠? 그런데 인간에게 문제는 가
장 귀한 내 생명입니다. 돈으로도 살 수 없고 권력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내 생명이 80년을
기준으로 나를 봤을 적엔 너무 허무하다는 여기에 인간은 좌절을 느끼고 허무를 느끼는 겁
니다. 그러면 이러한 문제를 우린 좀 더 깊이 사색을 통해서 철학을 통해서 한번 생각해 보
자 이겁니다. 그러면 이러겠죠. 이제 본격적으로 나는 뭐냐? 나는 생명체인데 80년 전에 난
존재 하지 않았어. 그러면 세상에 온지 몇 년 되었습니까? 30년, 40년, 20년, 다 다른데, 여
러분들 가장 귀한 질문인데 우리 무심히 지낸 것이 있습니다. 물어보겠습니다. 여러분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 세상에 있는 줄 알고 태어난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죠? 인
간이 되고 싶다는 그런 생각으로 자유로이 선택해서 태어난 사람이 아무도 없죠? 분명히
밝혀 드립니다. 대전제가 되는 가장 귀중한 얘기입니다. 또 여러분들 이 세상에 태어날 적
에 정씨 가문에 맏아들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나신 분 아무도 없죠? 김씨 가문에 맏딸로
태어나고 싶다 해서 나신 분 아무도 없죠?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싶다고 해서 나신 분 아
무도 없죠? 이 기본적인 문제입니다. 대전제가 논리하기 위해서 대전제가 정확해야지 결론
이 정확합니다. 여러분들 앞으로 사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내 출처의
대전제를 정확하게 알고 거기에 기준을 두고 여러분들의 사명이 깨달아 지기 때문에 얘기
하는 겁니다. 그러면 제가 말씀 드린 것을 여러분 다 공감하실 겁니다. 그럼 여기서 나는
(칠판 글씨를 쓰고 있다 “제 글씨가 조금 왔다 갔다 합니다 만은, 글씨의 존재의 이유는 의사
만 전달 되면 됩니다. 그렇죠? 글씨를 잘 쓰나 못 쓰나 이 것은 둘 째 셋 째 문제입니다. 요새
사람들은 항상 핵심을 두고 2차적 3차적 문제를 따집니다. 물건 하나 살 때도, 포장을 따집니
다. 포장이 잘 됐는지 안됐는지, 사람 쓸 때도 그 사람의 실력보다 간판을 따지고 학교가 어떤
지 아닌지…… 결혼할 때도 그 사람의 인간성을 안보고 집안사정 등의 이차적인 삼차적인 문
제를 따지죠.. , 책을 살 때도 책 칼라가 어떠냐 책 표지가 어떠냐 따집니다. 알맹이는 보지 않
고…… 글씨의 존재 이유는 의사만 전달 되면 됩니다. 그렇죠? 이게 첫째 목적입니다. 제가 변
명하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사실대로 얘기 하는 겁니다.)
그럼 나라는 것은 무어냐? 생명의 신비적인 존재인 나는 생명의 주체 내가 살아 있으니깐
그렇죠? 동시에 나는 생명의 피조물입니다. 원칙, 내가 내 생명을 가지고 있지만은, 내 노력
이 주어진 생명이 아닌 겁니다. 내가 원해서 주어진 생명도 아니란 겁니다. 대전제입니다.
여러분들이 생명을 얻기 위해서, 이 귀한 생명 돈을 치르고 생명을 얻기 위해서 무슨 대가
를 지불한 게 있습니까? 우리들 자신의 무슨 노력이나 지불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쉽
게 말해서 이 귀한 생명 공짜로 얻었습니다. 그렇죠? 어떤 사람은 그럽니다. “공짜로 가도
인생 밑져봐도 본전이다 마음대로 살자” 이거는 인생에 대한 학대입니다. ……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TAPE B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나는 독립적인 존재, 그러니깐 나는 김 아무개 박 아무개 그렇게들 부르죠? 그러니깐, 나는 독
립적인 존재인 동시에 극히 종속적인 존재입니다. 이 종속적인 존재 다시 말씀 드리자면, 나
는 내 혼자 살고 있지만은, 내 혼자 만으로서는 내 의미가 밝혀지지 않는 다는 겁니다. 종속적
인 존재 여러분들 또 하나 질문 던져 보겠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 여러분께서 하루 24시
간을 사시기 위해서 하루 24시간을 사시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몇 가지쯤 되십니까? 여러분
들 생활 주변에서 여러분들 사색을 해야 합니다. 깨달아야 합니다. 철학을 해야 합니다. 생활
주변에서…… 그러면 여러분들 24시간을 살아가기 위해서 나는 무수히 많은 것이 필요하죠?
그렇죠? 그 무수히 많은 것에 내가 종속되지 않고는 살아 갈 수 없다 이것입니다. 아주 쉽게
얘기 해 보겠습니다. 어렵게 말고 쉽게…… 세상에 누구든지 사람이라고 하면 밥 3끼를 먹어
야 삽니다 그렇죠? 아무리 유혹에 호구리 하더라도 아무리 비천한 삶이라고 하더라도 사람이
라고 생겼으면은, 하루 밥 세끼 먹습니다. 그렇죠? 내 주먹이 제일이다 내가 제일이다 아무리
자기가 위대하다고 내세우지만은 하루에 밥 세끼 먹습니다. 그렇죠? 자기가 살아가기 위해서
는 그 보질 것 없는 밥 3그릇에 자기 생명이 거기에 연결되지 않고는 살아 갈 수 없다 이겁니
다. 무슨 얘기인줄 압니까? 밥 3그릇에 내가 종속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이렇게 종속 되
어있는 것이 극히 나약한 것이 인간인 것입니다. 무슨 말씀이신 줄 압니까? 이걸 깨달아야 됩
니다. 그러니까 많은 인간들이 큰 착각 속에 살아요, 이 힘으로 모든 우주를 정복할 수 있는
것처럼 우주를 정복할 수 있는 인간이지만은, 하루에 밥 세 그릇 하고 나하고 관계 없이는 살
아 갈 수 없는 극히 종속적인 존재가 납니다. 나의 모습입니다. 인간이 겸손해야 됩니다. 자기
모습을 제대로 알아야 됩니다. 그 다음에 나는 자유로운 존재인 동시에 여러분들 “오늘 이 시
간에 강의 처음 오신 분들 머 친구의 권유로 오셨겠고 또 억지로 기분 삼아 오셨겠고, 자유로
이 스스로 오신 분도 계실 테고, 어찌 됐건 여러분들 자유로이 의자에 앉아 계십니다. 사람에
게 귀한 것은 자유지요? 자유 아니면 죽음을 달라!! 얼마나 귀한 겁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
이 이 자유 때문에 불행해 졌습니다. 자유 때문에…… 자유 때문에 불행해져요…… 그럼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들 이 자유 때문에 왜 불행하냐? 근본적으로 자유에 대해 착각할 수 있기 때
문에, 무슨 착각이냐?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나는 극히 자유로운 인간인 동시에 극히 운명론
적인 인간이다. 운명론적인 인간 그러니깐, 자유는 이 숙명 앞에 운명 앞에 꼼짝 못하는 힘이
없는 자유다 이겁니다. 참 어려운 얘기입니다만, 쉽게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제가 아까 질문
을 던졌죠? 여러분들 80년 전에 없었던 내가 80년 후에 세상에 없어 질 것이다. 80년 후에 죽
음이라는 절대 상황이 우리에게 닥치죠? 여러분들 솔직하게 안 죽을 자신 있습니까? 안 죽을
자신 있어요? 그럼 인간의 자유가 멉니까? 이렇게 나약한데 왜 자유에다 모든 걸 걸고 행동하
냐 이겁니다. 안 죽을 자신 없습니다…… 끓는 불덩어리에 손가락이 안 뜨거워질 자리 없습니
다.
왜? 그건 운명입니다. 운명…… 그래서 인간이 아무리 자유롭지만은 이 운명 앞에는 인간의
자유가 아무 힘이 없어요.. 무릎을 꿇지 않으면, 거기에 순종하지 않으면 거기에 복종하지
않으면, 거기에 절대 명령에 운명론적인 명령 앞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 되는 나약한 인간일
것입니다. 이게 인간의 모습일 겁니다. 그러니깐, 나는 자유인인 동시에 운명적인 존재입
니다. 여러분 반드시 못박아야 됩니다. 자기 자신을 올 바로 안다는 것은 올바른 삶을 아는
거고 올바른 삶을 안다는 것은 올바른 진리를 깨닫는 거고, 참된 진리를 깨닫는 참된 보람
과 희망과 어떤 가치관을 정립하는 겁니다. 그럼 여러분들, 얼마나 많이 착각하고 살았습니
까? 내 힘으로 자기 힘으로 다 되는 것처럼, 자기가 자기 자신을 만든 것처럼, 자기 독립성
이 제일 인 것처럼……
그럼 이 시간에 우리는 내 자신에 문제, 인간에게 생명이란 가장 귀한 내 생명을 놓고 한번
하나하나 분석해 보니깐, 나는 내 살아있지만, 내 생명이 아니야 주어진, 생명이고, 나는
독립적인 존재인 동시에 극히 어디에 종속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그럼 종속적이라는 것은
사회학적인 개념에서 인간을 사회적인 동물,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 이겁니다. 여기
인간은 종속적인 관계 사회성을 얘기 할 때 나중에 잠깐 나오겠지 만은, 사회성이 인간이라
는 것은 머냐? 서로 만나야 산다는 것, 인간 대 인간이 만나야 산다는 것입니다.
왜? 극히 상대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이건 사회학적인 개념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입니
다. 사회가 뭐냐? 공동체 의식입니다. 공동체 의식이 뭐냐? 서로 같이 살아야지 인간이다.
왜? 사회를 떠나서는 살 수 없기 때문에, 너무 상대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여기에 나는 독
립성과 종속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동시에 또 나는 자유인임인 동시에 운명론적인
인간이라 이겁니다. 숙명에 굴복해선 안 된다 이겁니다. 그래서 이것을 철학자들은, 좀 어
려운 얘기입니다 만은, 인간 실존의 상황이다. 인간이 실존하고 있는 그 모습이 바로 이거
라 이겁니다. 이것은 남이 얘기가 바로 나한테 적용되는 여러분들 각자에 해당되는 아주 귀
중한 얘기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착각을 하고 자기 자신을 올바로 못 찾았다면은, 이
돈이 아무리 많아도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중요한 얘기입니다.
그래서 이 인간의 실존의 상황에서 두 가지 상황이 있다는 것, 주체성과 독립성과 자유, 그
다음에 피조물 종속성 운명론적인 이 두 가지 상황에서 내가 존재하고 내 모습을 찾지 않
으면 안 된다 이 사건입니다. 이 상황인 겁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이 쪽 상황을 무시하
고 이쪽만을 되기를 원합니다. 나는 살아 있다. 내 맘대로 할 수 있다. 나는 자유인이다. 모
든 것을 여기다 극단적으로 자기문제를 그러니까 결국은 해결될 수 없죠? 해결 될 수 없습
니다. 죽음이라는 운명 앞에 인간에게 주어진 그 운명 앞에 인간은 어떻게 해 볼 수 없는,
거기에 인간은 마지막에 고뇌와 좌절을 느끼는 겁니다. 그래서 이쪽만을 부르짖었던, 실존
주의 철학자, 아덴,쟝뽀르 싸르트 , 알베르트 까뮤, 물론, 정확한 내용의 그 사람들 학술을
소개할 필요 없고, 소개를 할 수 없습니다만은,쟝뽀르트 싸르트 같은 사람은 인간의 인격성
만을 인정하면서, 이것에 저항에야 된다, 그래서 장뽀르트 싸르트는 저항문화 여러분들 책
에서 저항 그래서 한때 젊은 사람들에게 굉장히 인기를 끌었습니다. 쉽게 얘기해서 장뽀르
사르트의 철학이론은 실존이론은, 저항을 할 때 자기 의미가 살아난다 이겁니다. 더 쉽게
얘기해서 누구한테 잘못을 저질러서 자기 잘못을 제지하는 절대권위, 쉽게 얘기해서 도둑
질을 해서 순경한테 끌려가는데, 그 순경 앞에서 왜 끌고 가냐? 나를.. 내 맘대로 했는데, 순
경한테 자기를 항의 할 때 그때 자기의 존재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겁니다. 얼마나 재미있는
이론입니까? 금방 듣기로는 재미있죠?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굉장히 아!! 참 재미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굉장히 장뽀르 사르트에 인기가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아무
결실이 없습니다. 의미가 없습니다. 가치가 없어요, 의미가 없기 때문에 결국은 지금은 쟝
뽀르트 샤르트가 완전히 한 물 갔습니다. 한 물 갔어요. 희망이 없는 철학, 의미가 없는 철
학, 아덴, 까뮤 같은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그 사람은, 인간의 부조리를 내세우면서 인간의
모순이다. 인간은 부조리 자체다. 이렇게 못을 박아놓고, 인간의 불행을 아주 공공연하게
얘기하면서, 특히, 해결해 볼 수 없는 인간의 불행 인간의 모순을 못 집어 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가브리엘 마르쉘이라는 사람, 가브리엘 마르쉘이라는 철학자는 인간의 실존
의 상황을 아주 정확하게 이쪽의 상황인 상황을 정확하게 봐서, 아,, 인간의 실존은 이 주체
성이 피조물 생명을 갖고 있는 인간이 생명을 주신 생명의 주인공 그것을 찾는 과정이다.
또 인간의 독립성은 인간이 어떤 독립하기 위해서는 어디에 종속을 해야 하는데,, 여러분
들 배가 고프면 밥을 찾죠?? 목이 마르면 물을 찾습니다. 궁극적으로 내 삶을 어디에서 찾
아 내겠느냐? 밥 한 그릇에 유효시간은 4시간 5시간 밖에 안 갑니다. 그렇죠? 그 4시간 5시
간짜리 밥을 먹기 때문에 죽도록 일을 하는데, 그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 이겁니다. 가
브리엘 마르쉘은 인간이 마지막으로 종속된 종속의 대상, 찾는 길의 과정이다. 그리고 또
인간은 자유인인데 이 자유는 운명한테 꼼짝 을 못해 인간에게 운명을 준 운명의 주인공,
절대적인 운명의 주인공, 그 운명의 주인공을 찾아가서 자유의 의미를 해명하는 거다. 이건
인간이 사는 과정이다 이겁니다. 가브리엘 마르쉘이 이럽니다. 얼마나 깊이 있는 철학입니
까? 그래서 인생의 마지막 인생의 종착역이 머냐 인생의 목표는 머냐? 생명을 갖고 있는 생
명이 생명을 창조하신 그분을 만나는 과정 마지막으로 종속의 절대자를 만나서 거기에 절
대적으로 종속될 때 또 운명을 쥔 운명의 주인공을 이 자유인이 만나는 그 과정이 인간의
마지막 종착이고, 인간 실존의 마지막 의미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조금 어려운 얘기 입
니다 만은, 여러분 죄송합니다. 그렇지만 다 깊이 생각 해 보십시오. 그래서 가브리엘 마르
쉘은 이것을 일인칭 이것을 이인칭(칠판에 설명 중……) 일인칭 나는 나 혼자는 살 수 없습
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가족관계, 혼자 못 살지요? 부인 있고 가족 있고, 인간의 사회성을
느끼고 있지 않습니까? 이 일인칭은 나는 너 가 있어야 사람이다. 너…… 너와의 관계입니
다. 인간은…… 그렇죠? 여러분 나와 너와의 관계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 이런 어려운 철
학을 떠나서 다 무시하고 한번 생각해 봅시다. 나는 누구와 같이 사느냐? 내가 찾는 너는 누
구냐? 여러분 다 있죠? 다 있습니다. 내가 찾는 네가 누구냐? 쉽게 얘기해서 나는 누구를
믿고 사느냐? 우리 자식을 믿고 산다. 남편을 믿고 산다. 아내를 믿고 산다. 여기 무리 중에
어떤 사람들은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권력을 믿고 돈을 믿고, 과학을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은, 거기에 뭐를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마는, 그것은 비인간적인 문제니깐, 제쳐
놓고 우선, 나는 너와 같이 너를 찾아야 됩니다. 너도 있어야 됩니다. 네가 없는 나는 존재
할 수 없습니다. 이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가브리엘 마르쉘은, 그래서 나는 너를 찾
는 과정인데, 내가 찾는 너는 중요한 얘기입니다. 내가 찾는 너는 나와 같은 너 가 되어선
안되겠다 이겁니다. 왜? 나와 같은 너라면 결국은 내 운명 내 종속이 해결할 수 없잖아요.
그렇지 않습니까? 해결할 수 없어요. 그래서 내가 찾는 너는 적어도 나보다 월등한 너 그래
서 가브리엘 마르쉘은 이것을 절대 이인칭 절대 이인칭, 절대 너다 절대 너 이런 말을 했습
니다. 절대 너다. 이건 한 마디로 얘기해서, 인간이 귀중한 생명의 신비는 신비스러운 절대
이인칭, 어떤 신비스러운 절대자, 신비의 주인공, 그 분을 그 대상을 만나지 않고는 해결 될
수 없다 이겁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조금 어렵게 얘기 했습니다 만은, 여러분 참 생각
해 보십시오. 지금 여기까지 얘기했습니다. 간추려 보겠습니다. 여러분들하고 시간은 한 시
간 약속이기 때문에……
그러면 나에게 제일 귀한 게 내 생명이다. 여러분 생명 얼마나 귀합니까? 여러분 살아가기
위해서 얼마만큼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하루 밥 세끼 먹기 위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얼
마나 일하고 아옹다옹 싸우고 말이지, 시기질투하고 얼마나 여러분들 죄를 범하고, 여러 가
지 일을 합니까? 살아가기 위해서 그 살아가는 방법적인 문제 때문에 그렇게 애를 쓰는데,
삶의 목적이 모냐? 생명 자체가 모냐? 마지막 결실이 모냐?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하고 있
지 않다는 거,, 이런 근본적인 여러분들의 생활에 있어서의 착오. 생활에 있어서의 착각을
먼저 여러분들이 생각하지 않고는, 발전할 수 없고,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생
명은 신비스럽다는 거, 내 생명은 너무 귀하다는 거. 과학적으로 해결 될 수 없습니다. 사람
이 살아 있을 적에 의사지, 사람이 죽은 다음에는 전세계 의학박사가 다 모여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왜? 사회과학의 분야가 아닙니다. 생명은, 그래서 이 귀한 내 생명이 우리는 갖고
있는데, 우연히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그렇죠? 그럼 물어
보고 생명 있는 사람 아무도 없죠? 나한테 선택의 자유를 주지 않고 나에게 주어진 거 나한
테 이레 물어보지도 않고 나한테 나에게 주어진 생명, 이 생명을 내 맘대로 처리할 수 없다 이겁니다.
왜?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살아 있지만은 주어진 거다. 피조물이라는 거. 나는 독
립적인 동시에 종속적이라는 것, 나는 자유인인 동시에 운명론적인 존재라는 것. 이 절대
상황 이 대전제 여기다가 모든 문제를 걸고 여러분들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생활 원
칙이 라던지, 대인 관계 라던지, 가치 발견이 라던지, 삶의 여러 가지 방편을 연구하고 여기
다가 기준을 두고 여러분이 살아야지, 의미가 주어진 인간이 된다 이겁니다. 실존한 인간이
라 이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특히 운명이라는 것 운명, 운명이라 그랬습니다. 여기 운명이
라는 말이 나왔기 때문에 (칠판에 필기) 제가 글씨가 조금……^^, 중용에서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동양에 천 명지 위성 이요, 하늘의 미움을 일컬어 인간의 본색은 인간의 본성은
…… 여러분들 인간의 본성 다 가지고 있죠? 자기가 다 해결할 수 없는 본성이 있습니다. 배
고프면 밥 먹고 싶고 착한 일 하고 싶고 기억이 나서 양심의 가책을 받고, 인간의 본성입니
다.그 본성 자기가 아닙니다. 아까 얘기 한데로 생명의 주체 주는 피조물, 주어진 생명이기
때문에, 생명과 동시에 주어진 본성이기 때문에……
그 본성을 동양 중용에서 천명, 천 명지 위성, 하늘의 명을 일으키면, 인간이 못 된다 했습
니다. 그래서 이 천명이라는 동양사상 굉장하죠. 운명이다, 성명이다 이것은 절대적인 가치
입니다. 동양 민족도 인간관계 인간생활에서 윤리 도덕적인 절대적인 가치를 인정했습니
다. 그런데, 오늘 한국사회에는 이것이 없기 때문에, 너와 나와의 관계 생리화학적인, 물질
적인 사회로 끝나고 말려고 하니깐, 윤리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고 가치관이 세워지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그 속에서 방황하게 되고 구속을 느끼고 좌절과 공허를 느끼게 되는 겁니다.
네. 천 명지 위성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솔 성지 위도요, 그 본성을 따라 사는 것을 인간의
도덕이다. 인간의 도덕이라는 것은 하늘의 명이 준 그 본성에 따라 주어진 도덕, 그러면은
수도지 위 교라 그 도를 더 갈고 닦는 것을 교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깐 동양사상에 있어서
인간은 크게 세 카테고리로 나뉘어 집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인간이 아무리 교육이 없어서
먹는 것은, 배고프면 먹는 줄 알죠. 그렇죠? 여러분 먹을 줄 압니다. 그리고 또 나쁜 짓을 하
게 되면 죄를 지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됩니다. 아무 교육이 없어도…… 그런 인간을 우리
는 본성적인 인간…… 본성적인 인간이라 합니다. 본성에 따라 사는 것, 별로 가치 없는 인
간입니다. 그러나 이 본성에 바탕을 두고 그 본성에 따라서 열심히 사는 것을 우리는 도덕
적인 인간, 도덕적인 인간이라 합니다. 그 다음에 이 도덕을 넘어서서 이 도덕을 더 갈고 닦
아서 도덕의 절대 가치 봉을 교다 그럽니다. 교……교다. 그래서 이 본성적인 인간과 도덕적
인 인간과 이 교는 저는 여기서 여러분께 여러분 교를 믿느냐? 교 그러죠? 교, 교를 믿는 겁
니다. 종교 문제입니다. 종교적인 인간, 이 동양사상에서 가장 최고봉 인간이 교를 믿는 (학
생들 가야 될 시간 됐어요……) 그 도덕적인 그 종교적인 인간의 최고봉이고, 그 다음에는
도덕적인 인간, 본성적인 인간, 세 카테고리로 나뉘어 지는 겁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 우리
는 적어도 금방 제가 말씀 드린 데로, 생명의 신비성이라는 어떤 절대적성, 거기에 절대 신
비와 관계를 맺어지는 인간의 관계, 그것을 우리는 종교적인 차원이다.
이렇게 과학의 차원을 넘어서는 새로운 차원에서 가치발견을 하고 새로운 차원에서 의미를
차지하는 나라고 했을 적에 여러분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테두리 똑 같은 테두리 안에서
새로운 의미 발견 없고 새로운 가치 발견 없는 그 생활여건 속에서 좀 더 높이 자기 자신을
끌어올려서 새로운 차원에서 생명의 신비 아까 얘기한 데로, 생명을 주신 생명의 신비의
주인공, 또 운명의 주인공과 마주치는 신비의 차원과의 관계에서 주어지는 자기의 의미를
깨닫는 그 과정 이것이 여러분 삶의 발전이고 여러분들 생활에 성숙적인 더 높이 성숙될 수
있는 길 일겁니다. 그것은 동양에서도 본성적인 인간에서 우리 도덕적인 인간, 보통 이 선
에 다 있습니다. 그렇죠? 그러나 이 도덕이라는 것은 종교적인 차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문
제를 걸고 회의를 느끼게 되고 여기에서는 뭉치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아까 얘기한 데로
생명자체는 신비스러운 것이 생명체입니다. 이 신비스러운 문제는 신비스러운 차원에서
만 답해지기 때문에, 과학을 초월하는 도덕과 본성을 초월하는 절대차원 이 종교적인 차원
에서만, 가능하다고 했을 적에, 여러분들 생활 속에서 지금까지 살아 왔던 절대적인 모든
가치관, 여러분들 생각했던 나름대로의 가치관,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고 그 가치관
이 올바로 살기 위해서 절대적인 삼차원적인 이런 새로운 어떤 가치발견 의미의 초? 이것
이 없이는 여러분에게 새로운 가치 발견 없고, 새로운 삶의 의미가 발견되지 않는 다는 것,
쉽게 말해서 이러한 차원에서의 인간이 아니라면은, 세상에서 100년 200년 살아도 인간으
로서는 별로 가치 없는 인간, 아까 얘기 했죠.. 사과나무에서는 사과가 열리는데, 인간에게
주어진, 생명의 신비를 깨달을 수 있는, 신비스러운 차원에서의 신비스러운 인간의 결실이
라는 그런 과정을 이런 차원에서 보지 못했다면은, 대단히 죄송합니다 만은, 이 귀한 인간
의 생명이 결실이 없는 불모의 생명으로 끝나버리는 허무한 인생이 돼버리지 않겠느냐?
이런 의미에서 오늘 여러분들 같이 이렇게 몇 가지 인간이라는 것 생명의 신비성과 내 실존
의 의미와 연결 지어서 몇 가지 말씀 드려 봤습니다. 그래서 이제 앞으로 매주 목요일 날 이
시간 한 주일 한 시간씩 여러분들 가장 귀중한 인생문제, 계속 얘기할 겁니다. 다음 이 시간
에는 도대체 우리는 이런 과정을 인간의 생명을 인생이라고 그러는데, 인생…… 인생이라
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느냐? 여러분들 뭐 인생일장 총론이다. 인생 얘기 많이 했죠? 도대
체 인생이 뭐냐? 생각이 없어요, 사실 철학이 없어요. 인생철학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의 결론은 이 세가지 차원에서의 인간인데, 적어도 나는 지금 나는 어는 차원에 있느
냐? 여러분들 스스로 반성하면 될 겁니다. 나는 그저 밥 먹고 사는 본능적인 본성에 의해서
사느냐? 아니면 윤리 도덕 선과 악을 찾는 인간이냐? 아니면 좀 더 높은 종교적인 차원에
서 신비스러운 어떤 세계에 연결 지은 인간 생활을 하느냐? 스스로 반성하면 될 겁니다. 이
런 것을 정하기 위해서 근본적으로 인생의 의미가 뭐냐? 하는 것, 굉장히 중요한 얘기입니
다. 왜? 남의 이야기는 바로 나한테 관계되는 얘기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 교육이라는 이 교
라는 것은 교육이지만은, 인간은 일단의 교육을 통해서 생각을 통해서 새로운 의미 발견 자
기 자신을 성숙시켜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운명이기 때문에, 이러한 자기 인간이라는
것의 자부심과 인간의 긍지를 갖기 위해서는 이러한 어떤 사색을 통해서 철학을 통해서 진
리를 발견하지 않고서는 인간으로서 자부심을 가질 수 없고, 동물보다도 식물보다도 못한
인간이 될 수 있다 이겁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께 다시 한번 말씀 드립니
다. 내가 뭐냐? 내가 무엇 때문에 사느냐? 삶의 마지막 목적이 뭔지? 생명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야 하느냐? 그리고 나는 운명론적인 존재를 내 운명을 어떻게 해결 하겠느냐? 죽
음이라는 운명, 내가 해 볼 수 없는 그 운명 앞에 나는 무얼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느냐 하
는 문제, 이러한 심각한 나에게 대한 문제를 좀 더 깊이 생각하고, 거기에서 새로운 인생의
의미, 과거에 내가 허 살았다, 아무 의미 없이 살았다. 새로운 어떤 가치관 절대 가치관을
찾아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아야 되겠다는 이러한 자기 자신의 노력을 통해서 우리는 한
층 한 층 성숙 될 수 있고, 더 아름다운 보람된 인간이 될 겁니다. 그럼 다음 이 시간에는 인
생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 이 시간 대단히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까
지 안녕히 계십시오……
첫댓글 우와~형도 다 하셨네요~대단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