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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경전연구회 임제록 강좌 제2강 -3(2009.06.01)
5-2 다시 한 번 맞고 싶다. 師乃云(사내운), 大衆(대중)아 夫爲法者(부위법자)는 不避喪身失命(불피상신실명)이니 我二十年(아이십년)에 在黃檗先師處(재황벽선사처)하야 三度問佛法的的大義(삼도문불법적적대의) 라가 三度蒙他賜杖(삼도몽타사장)하야 如蒿枝拂着相似(여호지불착상사)하니라 如今(여금)에 更思得一頓棒喫(갱사득일돈방긱)하니 誰人爲我行得 (수인위아행득)고 時有僧出衆云(시유승출중운), 某甲行得(모갑행득)이니라 師拈棒與他(사염방여타)한대 其僧擬接(기승의접)이거늘 師便打(사변타)하다 다시 한번 맞고 싶다, 제목을 이렇게 붙혀 봤습니다. 師乃云(사내운), 임제 스님께서 이에 말씀하시기를 大衆(대중)아, 夫爲法者(부위법자)는, 대저 법을 위하는 사람들은 不避喪身失命(불피상신실명)이니, 喪身失命을 피하지 말아야 된다, 이 몸이 죽고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까지도 피하지 말아야 된다. 爲法亡軀(위법망구), 법을 위해서는 몸을 돌보지 않아야 된다, 그런 뜻이죠. 我 二十年(아 이십년)전에 在黃檗先師處(재황벽선사처)하야, 황벽 선사 처소에서 三度問佛法的的大義(삼도문불법적적대의)라가, 세 번이나 불법적적대의를 물었다가 세 번이나 그의 몽둥이를 선사하는 것을 입었다, 賜杖(사장). 賜는 이거 아주 위의 어른이 말하자면 밑의 사람에게 선물 주는 것 같이 표현을 한 것입니다. 賜杖. 그 분의 몽둥이 선물 주는 것을 입었다, 한 번에 이십 방망이씩 육십 방망이를 맞았다, 이런 이야기에요. 그런데 그때 얻어 맞을 때 사정없이 후려치는데 그 방망이의 맛이 마치 蒿枝拂着相似(호지불착상사)하니라 그랬습니다. 여호지불착상사. 이건 이제 쑥가지, 蒿枝라고 하는 것은 쑥가지로서 이렇게 아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 것과 같았다, 이런 말인데 이건 이제 중국에서 민속에 어린 아이가 태어나면은 아주 부드러운 오월 달의 쑥가지를 꺾어 가지고 그걸 가지고 몸에다 이렇게 쓰다듬는답니다, 그게 약쑥이거든요. 약쑥을 가지고 몸에다 이렇게 쓰다듬으면은 다시는 이제 잔병 치레하지 말라고 그렇게 하는데 그 얼마나 어머니가 어린 아이에게 부드럽게 쓰다듬겠습니까. 마침 그 때 어릴 때 부모로부터 그 약쑥 가지로서 아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는 것 같이 그렇게 나는 느꼈다. 황벽 스님에게 얻어맞을 때 그랬다는 거죠. 如今(여금)에 更思得一頓棒喫(갱사득일돈방긱)하니, 지금 생각하건대 한 번 더 그런 방망이를 맞고 싶다. 誰人爲我行得 (수인위아행득)고, 누가 나를 위해서 그것을 해 줄 것인가. 그러니까 이제 時有僧出衆云(시유승출중운), 그때 어떤 스님이 떠억 나와 가지고서, 某甲(모갑)이行得(행득)이니다, 내가 한번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나를 때려 달라고 했는데 때려주겠다고 하는 아주 용기있는 스님이 나왔어요. 그러니까 임제 스님이 拈棒與他(염방여타)야, 방망이를 이렇게 잡아 가지고 그 사람에게 때려 달라고 방망이를 막 건네는데 其僧(기승)이 擬接(의접)이라, 그 중이 그 방망이를 잡으려고 막 하는 순간에 師便打(사변타)라, 방망이는 손에 잡혔겠다 또 그 중은 가까이 왔겠다, 막 건네주려고 하면서 때리는 거야, 천하에 쉽죠. 그래 후려 갈겼어. 말하자면 임제 스님의 법을 보여준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이들 장난 같기도 하고 속임수 같기도 하지마는 여기에도 법의 한 표현이고 임제 스님 자신의 한 표현이지 뭐 달리 생각할 건 아니죠. 6-1 칼날 위의 일 上堂(상당)에 僧問(승문), 如何是劍刃上事(여하시검인상사)오 師云(사운), 禍事禍事(화사화사)로다 僧擬議(승의의)한대 師便打(사변타)하다. 上堂(상당)에 僧問(승문), 상당에 승이 묻기를, 如何是劍刃上事(여하시검인상사)오, 칼날 위의 일입니까 이 말입니다. 칼날 위의 일. 이건 이제 법화경을 근거로 하면 火宅(화택) 중의 일이다, 불난 집 속에 있는 듯한 그런 삶이다, 또 劍刃上事라고 하는 것도 역시 이제 그런 뜻이죠. 우리가 날카로운 칼날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그런 아주 절박하고 급박한 그런 상황이다, 그걸 뜻하는 것입니다. 어떤 스님이 그걸 물었어요. 어떤 것이 이 세상의 삶의 현실입니까. 뭐 우리 요즘 표현으로 하면 이제 그런 뜻이겠죠. 師云(사운), 禍事禍事(화사화사)로다, 아니 위험천만이다, 큰일났다 큰일났다. 아 칼날 위에 섰으니까 얼마나 그 위험천만한 일입니까. 그러니까 僧擬議(승의의)라, 승이 머뭇거린데, 師便打(사변타)라, 스님이 또 후려쳤다 그랬습니다. 6-2 우물 속에 빠져버렸다. 問(문), 祗如石室行者(지여석실행자)가 踏碓忘却移脚(답대망각이각)은 向什麼處去(향십마처거)오 師云(사운), 沒溺深泉(몰익심천)이니라 그 다음에 우물 속에 빠져버렸다 그랬어요. 어떤 이가 물었어요. 祗如石室行者(지여석실행자)가, 석실행자라고 하는 이는 石室 善道 스님이라고 하는 분의 이야기입니다. 예컨대 석실행자가 踏碓忘却移脚(답대망각이각)이라, 디딜방아를 찧다가. 디딜방아는 이렇게 자기 몸무게를 실어가지고 다시 이제 발을 떼야 그게 방아가 내려가죠, 그러면서 곡식이 찧어지는데 발을 떼는 걸 잊어버렸어. 그걸 이제 이각, 발 떼는 것을 잊어버렸다. 그런데 向什麼處去(향십마처거)오. 그 사람이 어디를 갔겠습니까 라고 물었어요. 師云(사운), 沒溺深泉(몰익심천)이니라, 깊은 못에 빠졌다. 아주 그 짧은 대화인데 참 멋진 말이에요. 설사 우리가 뭐 오매일여가 됐다손 치더라도, 오매일여가 됐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무슨 가치있는 일은 아닌 거죠. 활발발한 살아있는 삶의 모습이 중요한 것이지 저 깊은 토굴 속에 앉아서 혼자 무심삼매에 설사 들어있다손 치더라도 그것은 세상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고 아무 보탬이 안되는 거요. 몰익심천이다, 깊은 못에 빠져버렸다 말야. 아, 근사하죠, 참. 그러니까 디딜방아를 찧다가 발 옮기는 것까지 잊어버릴 정도로 그렇게 일념에 들어갔다, 뭐 화두일념이 됐든지 뭘 일념으로 하든지 간에 그렇게 일념으로 들어갔다 말야. 그런데 그걸 임제 스님은 말하기를, 몰익심천이다. 깊은 못에 빠져버리면 그건 뭐 죽은 거지 뭐. 아무 짝에 쓸모없는 죽음입니다, 죽음일 뿐입니다. 그래서 莫云(?)無心云是道(막운무심운시도)하라, 무심을 일러서 道라고 말하지 마라, 無心猶隔一重關(무심유격일중관)이다, 무심도 오히려 한 격의 관문에 막혀있다, 그런 표현이 있는데. 그렇습니다, 무심의 경지가 설사 높다 하더라도요 유심의 경지만 못해요. 유심이라야 이게 뭐 지지고 볶고 하면서 살지, 사람이란 사는 맛이 있는 것 그것이 보살행으로 회향이 되는 것 이게 이제 불교적인 삶이고 바람직한 삶이지 무심에 빠져있는 거 그거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도 좀 부연해서 설명드릴 수가 있습니다. 6-3 모두가 착각이다 師乃云(사내운), 但有來者(단유래자)하면 不虧欠伊(불휴흠이)하야 總識伊來處(총식이래처)로라 若與麼來(약여마래)하면 恰似失却(흡사실각)이요 不與麼來(불여마래)하면 無繩自縛(무승자박)이니 一切時中(일체시중)에 莫亂斟酌(막란짐작)하라 會與不會(회여불회)에 都來是錯(도래시착)이라 分明與麼道(분명여마도)하야 一任天下人貶剝(일임천하인폄박)하노라 久立珍重(구립진중)하라 그 다음 모두가 착각이다 그랬어요. 師乃云(사내운), 但有來者(단유래자) 不虧欠伊(불휴흠이)하야, 다만 나에게 오는 사람이 있을 것 같으면은 불휴흠이라고 하는 건 잘못 보는 일이 없다, 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그러지거나 모자라게 하는 일이 없다. 總識伊來處(총식이래처)로라, 나는 그 사람의 밑천을 다 알고 있다, 나는 다 알아본다 이 말이여, 總識, 다 안다. 그가 오는 곳, 이렇게 표현했지마는 그의 정체, 그의 의도, 그의 법의 輕重을 다 알아본다 이런 말입니다. 若與麼來(약여마래), 예를 들어서 석실 행자처럼 올 것 같으면은 恰似失却(흡사실각)이요, 마치 실각한 것,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고, 不與麼(불여마), 그 외 망상이 부글부글 끓는 사람이 올 것 같으면, 不與麼來 하면은, 無繩自縛(무승자박)이다, 그 사람은 망상이 부글부글 끓으니까 노끈도 없이 스스로를 얽어 묶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망상에 얽혀 있으니까. 一切時中(일체시중)에 莫亂斟酌(막란짐작)하라, 일체 시중에서 함부로 이러쿵 저러쿵 자기 소견 갖다 붙히지 마라 이런 뜻입니다. 會與不會(회여불회)에, 알고 알지 못하는 것에 都來是錯(도래시착)이니라, 그 사람의 정체에 대해서 또는 망상 또는 무심, 그 무엇에 대해서도 안다느니 모른다느니 하는 것은 전부 착각이야. 알고 모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이런 말입니다. 分明與麼道(분명여마도)하야 一任天下人貶剝(일임천하인폄박)하노라, 분명히 말하거니와 천하인 사람들이 천하 사람들이 비난하고 비판하고 하는데 맡긴다, 무엇이라고 어떻게 하든지 그것은 내가 알 바 아니다, 그런 뜻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久立珍重(구립진중)하라, 오래 섰으니 그만 쉬어라. 7 高峰頂上(고봉정상)과 네거리 上堂云(상당운), 一人(일인)은 在高峰頂上(재고봉정상)하야 無出身之路(무출신지로)요 一人은 在十字街頭(재십자가두)하야 亦無向背(역무향배)니 那箇在前(나개재전)이며 那箇在後(나개재후)오 不作維摩詰(부작유마힐)하며 不作傅大士(부작부대사)하노니 珍重(진중)하라. 그 다음에는 고봉정상과 네거리 이렇게 했어요. 上堂云(상당운), 스님이 이제 법상에 올라가서 말하기를, 한 사람은 在高峰頂上(재고봉정상)하야, 고봉정상에 저 높은 봉우리에 있다. 최고의 경지, 깨달음의 경지라고나 할까요. 아뭏든 저~ 높은 봉우리에 있다. 그래서 無出身之路(무출신지로)라, 몸을 내놓을 그런 길이 없어. 이건 이제 여기서 고봉정상이라고 하는 것은 최고봉이라고 보기 보다는 어쨌든 그 글대로 제일 높은 봉우리에 있어 가지고, 無出身之路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한 발도 내 디딜 틈이 없는 거여. 그 한 발만 내 딛어 서면 떨어져 죽는 거니까. 그런 경우가 있고. 또 한 사람은 在十字街頭(재십자가두)하야, 네 거리, 十字街頭라고 하는 건 네 거리, 길거리에 있다 이 말이여. 그래서 亦無向背(역무향배)라, 그런데 그 사람도 또한 뒤로 물러서지도 못하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해. 亦이라고 하는 게 그 뜻입니다. 고봉정상에 있어도 꼼짝도 못하고 네 거리에 있어도 꼼짝도 못한다 이 말이여. 이게 이제 앞으로만 가든지 뒤로만 가든지 뭐 어디로 가도 갈 수 없는 그런 어떤 입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게 이제 뭐라고 할까요 우리 법으로 이야기를 하면은 말하자면은 일체 사량 분별이 다 끊어진 자리 그렇게도 볼 수가 있고 설명이 구구합니다. 那箇在前(나개재전)이며 那箇在後(나개재후)오. 그 두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앞에 있고 어떤 사람이 뒤에 있는가, 고봉정상에서 한 걸음도 못 옮기는 사람과 네 거리에 있으면서도 한 걸음도 못 옮기는 사람, 누가 좋으냐, 누가 더 우세하냐, 그런 표현이에요. 정말 알 듯 모를 듯 한 표현인데 그 다음에 이제, 不作維摩詰(부작유마힐)하며 不作傅大士(부작부대사)하라, '하라' 라고 토를 달아야 되겠네요. 유마힐도 짓지 말고 부대사도 짓지 마라 이런 뜻입니다. 유마힐은 뭡니까, 杜口(두구), 불이법문을 하는데 입을 막은 것으로, 한 마디도 말하지 않은 것으로서 최고의 경지를 삼았죠. 그럼 한 마디도 하지 않는 것으로서 제일 장한 일이다, 최고의 경지다 라고 그렇게도 하지 마라, 不作維摩詰. 그 다음 不作傅大士라, 부대사는 말하자면은 거사로서 설법도 하고 저술도 하고 궁중에 들어가서 經도 강설하고 하는 그런 도인입니다. 그럼 그분은 예를 들어서 破情(파정)과 方行(방행)을 우리가 흔히 선가에서 이야기하는데 모든 것이 앞뒤가 다 끊어진 그런 끊어진 경지를 유마힐이라면은 모든 것을 다 펼쳐보인 그런 경지를 부대사다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건 이제 어느 것도 거기 치우쳐서 짓지를 마라 그런 말입니다. 그런 것은 여기서 어떤 치우치지 않는 어떤 중도적인 것 이런 것을 생각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이건 임제 스님께서 상당하셔 가지고 두 사람의 경우를 내 세워놓고, 두 사람의 경우를 내 세워놓고 두 사람 다 어디에 있든지 간에 한발짝도 옮기지 못하는 경우인데 유마힐의 입장이겠는가 부대사의 입장이겠는가. 어찌보면 유마힐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부대사 같기도 한대 십자 네 거리에 있는 사람은 부대사이고요 고봉 정상에 있는 사람은 유마힐일테니까 이렇게 맞추어 본다면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은 그 사람의 몫이지 유마힐도 아니고 부대사도 아니다. 그러면 누구냐. 그야말로 선은 선불교가 아니다. 불교는 더욱 아니고 도교도 아니고. 도교도 아니고 불교도 아니고 선불교 마저도 아닌 그런 그 선의 경지다. 뭐 엉터리 설명을 붙히자면은 이제 그런 것입니다. 8 집과 길거리 上堂云(상당운), 有一人(유일인)은 論劫在途中(논겁재도중)호대 不離家舍(불리가사)하고 有一人(유일인)은 離家舍(이가사)호되 不在途中(부재도중)하니 那箇合受人天供養(나개합수인천공양)고 便下座(변하좌)하다 집과 길거리라. 上堂云(상당운), 有一人(유일인)은 論劫在途中(논겁재도중)호대, 論劫, 한 사람은 논겁,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도중에 있으되 不離家舍(불리가사)야, 집안 일에서 떠나있지 않고, 그 말입니다. 또 한 사람은 그 반대로 가사를 떠나 있으되, 집에서 떠나 있으면 도중에 있어야 할텐데 不在途中(부재도중)이야. 도중에도 있지 않다. 이게 우리가 가장 이상적인 삶입니다. 뭐 理에 밝으면 事에 어둡고 사에 밝으면 이에 어둡고, 그렇게 되는데 오랜 세월동안 도중에 있어도 가사에 항상 있어, 不離家舍야, 가사에 늘 있어. 理에도 밝고 事에도 밝다 이 말이여. 한 사람은 또 가사를 떠났으되 도중에도 있지 않다 라고 하는 것은 이거는 어떻게 보면은 철저히 無다, 절대 無를 말하는 것 같지마는 모든 곳에 다 있는 거죠. 가사에도 있고 도중에도 있다는 뜻입니다, 다른 입장에서 보면요. 그래서 어떤 경우도 다 이것은 前는 절대 有고 두번째는 절대 無다, 이런 표현을 쓰는데 이건 아주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음으로 해서 모든 것을 다 수용하는 그런 입장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중에 누가 那箇合受人天供養 (나개합수인천공양)고 그랬어요, 누가 인천의 공양을 받을 만한가. 절대 무가 받을 만한가, 절대 유가 받을 만한가. 절대 유는 앞의 사람이고 절대 무는 뒷사람이죠. 가사를 떠났으되 도중에도 없다니까 그건 이제 절대 무를 말하는 것이고 저 앞에는 도중에 있으면서도 또 가사에도 있다 그랬으니까 이제 절대 유를 말하는 것인데 사실은 절대 유가 곧 절대 무고 절대 무가 되면 또 절대 유가 되는 그런 그 도리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어렵게 이렇게 또 아주 상징적으로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9-1 삼구 (三句) 上堂(상당)에 僧問(승문), 如何是第一句(여하시제일구)오 師云(사운), 三要印開朱點窄[側](삼요인개주점착[측])하고 未容擬議主賓分(미용의의주빈분)이로다 問(문), 如何是第二句(여하시제이구)오 師云(사운), 妙解豈容無着問(묘해기용무착문)이며 漚和爭負截流機(구화쟁부절류기)리오 問(문), 如何是第三句(여하시제삼구)오 師云(사운), 看取棚頭弄傀儡(간취붕두농괴뢰)하라 抽牽都來裏有人(추견도래이유인)이로다 그 다음에 이제 아주 어려운 대목이, 더 어려운, 앞에서도 다 어려웠지만 더 어려운 대목이 이제 나왔는데 삼구니 삼현 삼요니 하는 내용입니다. 上堂(상당)에 僧問(승문), 如何是第一句(여하시제일구)오, 어떤 것이 제일구입니까. 師云(사운), 三要印開朱點窄[側](삼요인개주점착[측]), 어떤 본에는 기울을 窄(착) 자, 어떤 본에는 이런 곁 側(측) 자, 이렇게 돼 있는데. 이것이 다 삼요인개주점착이라. 이건 뭔 말이고 하니 三要라고 하는 세 가지 비밀, 세 가지 욧점이라고 하는 이런 도장이 있어요. 그럼 도장은 어떻습니까. 인주에다가, 朱點, 붉은 인주에다가 도장을 찍어서 그걸 인주를 묻혀 가지고 도장을 찍었을 때 그게 이제 도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거죠. 그런데 여기는 어떤 경우인고 하니 주점에다가 아직 찍기는 찍었는데 떼지를 않은 상태입니다. 側이라는 말이 그 말입니다. 窄이라는 것이나側이라는 말이나. 三要印이 열렸어, 그런데 도장밥이 묻었으니까 틀림없이 이게 표현은 됐어요, 표현은 됐는데 이게 안 뗐으니까 남이 모르는 거야. 주점칙이라는 말이 그런 말입니다. 찍기는 찍었는데 들어가지를 않았어요. 그래서 未容擬議主賓分(미용의의주빈분)이라는 말이 그 말입니다. 主賓, 주인과 객을 주관과 객관, 나누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거긴 아직도 도장밥과 도장과 그것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찍기는 찍었어요, 혼연일체죠 지금 도장밥하고 도장하고 혼연일체입니다. 주객이 나눠지기 이전이여, 그러니까 미용의의주빈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게 이제 제일구의 소식이고, 그것을 이제 如人印空 그랬어요 여인인공. 쉽게 이해하려고 하면은 도장을 허공에다가 찍었다. 허공에다 찍으면 어떻습니까. 아무 흔적이 없죠. 찍으나마나입니다. 그게 일구 소식이여. 제일구 소식. 그 다음 제 이구 소식은 如何是第二句(여하시제이구)오 그랬죠. 師云(사운), 妙解豈容無着問(묘해기용무착문)이리오마는 漚和爭負截流機 (구화쟁부절류기)리오 그랬습니다. 妙解, 문수보살이죠. 문수보살이 어찌 무착의 물음을 용납하겠는가마는 그러나 漚和(구화), 방편상, 어찌 截流機(절류기), 아주 뛰어난 근기를, 저버리겠는가, 이 말입니다. 그래서 무착문희 선사가 일보일배하면서 오대산에 문수보살을 친견하러 가서 문수보살을 만났어요. 소 먹이는 노인이었습니다. 문수보살을 만났는데 그게 문수보살인 줄 몰랐죠. 그래서 이제 그 노인에게 오대산 입구니까 오대산 입구에 날은 저물었고 이제 오대산 입구에서 노인을 만나 가지고 노인이 우선 영접을 합니다. 그래 이제 문수보살이 물어요. 무착이 무착 선사가 오대산까지 일보일배하면서 문수보살을 친견하러 왔는데 문수보살이 그냥 있을수 있나요. 노인의 모습으로 변장해 가지고 무착을 떠억 맞이하는 거라. 그게 이제 구화쟁부절류기리오 그 말입니다. 방편상, 그게 사실은 엉터리지마는 일보일배하면서 문수보살을 친견하려 하는 게 그게 상근기 일은 아니야. 그렇지만 그만한 근기도 드물어. 그래서 그를 맞아 주는 거요, 방편으로. 그래서 이제 두 사람 대화입니다. 요즘 어디서 왔느냐 그랬어요. 무착이 말하기를 나는 저 남방에서 왔습니다. 그래 문수보살이 묻다가 남방불법은 어떠냐, 남방불법은 어떠냐, 그랬어요. 그러니까 무착이 말하기를 남방 말세 비구들이 뭐 그저 계율이나 좀 지키고 그렇게 삽니다 그랬어요. 계율이나 좀 지키고 삽니다 그랬어요. 문수보살이 또 묻기를 그럼 대중들은 몇이나 되느냐 그러니까 무착이 말하기를 글쎄요, 뭐 총림에서 삼백 명도 살고 그저 많은 데는 오백 명도 살고 그렇습니다 그렇게 대답을 했어요 노인에게다가. 그 다음 무착이 문수보살에게 묻는데 여기는 불법이 어떻습니까, 여기의 불법의 분위기는 불교의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그래요. 그러니까 문수보살이 말하기를 凡聖(범성)이 同居(동거)하고 龍巳(용사)가 混雜(혼잡)이다, 범부와 성인이 같이 어울려 살고 용과 뱀이 막 뒤섞여 있다. 아주 대답이 다르지요. 그래 이제 또 묻습니다. 대중들은 그럼 몇이나 됩니까 하니까 前三三 後三三이니라. 그 유명한 전삼삼 후삼삼이 거기에서 이제 나오는 대목이죠. 뭐 그걸 무착 선사는 이해를 못했지마는 그래도 그 정도라도 받아 준거요. 그 정도라도 문수보살이 받아줬다 하는 이야긴데 그건 예컨대 도장을 가지고 물에다 찍은 거와 같다 그랬습니다. 물에다 도장을 담그면은 그게 요철로 돼 있으니까 도장이라는 게. 그러면 들어간 곳은 물이 또 들어갔을 것이고 그 도장이 밖으로 나온 양각 쪽은 물이 들어가 있을 거고. 그러니까 표시는 있다 이거야. 물에 담그고 있는 동안에는 표시가 있는 거야. 그 요철 모습 그대로 표시는 있어. 그러나 떼면 표시가 없어져 버려. 이게 제이구 소식입니다. 제일구 소식은 허공에다 찍으니까 아예 흔적이 없지마는 제이구 소식은 물에다 찍으니까 찍어 있는 동안에는 소식이 있어. 그게 뭔가 표시가 있다고요. 그게 이제 제이구 소식이라. 여기 그 알쏭달쏭한 임제 스님의 그 게송을 가지고 견주어서 보면 이제 짐작은 갑니다. 그 다음에 이제 세번째 묻습니다. 如何是第三句(여하시제삼구)오, 어떤 것이 제삼구냐. 看取棚頭弄傀儡(간취붕두농괴뢰)하라 抽牽(추견)이 都來裏有人 (도래이유인)이다 그랬어요. 간취, 잘 살펴 보아라. 붕두농괴뢰, 저기 무대 뒤에서 허수아비 조종하는 것을 잘 지켜 보아라. 인형극을 상상하세요 인형극. 인형극은 줄로 이렇게 당기든지 뒤에서 나무로 조종하든지 하는 거죠. 다 뒤에 조종하는 사람이 있어. 그러니까 무대 뒤에, 붕두는 무대입니다. 무대 뒤에서 괴뢰, 허수아비, 허수아비를 희롱하는 사람을 잘 살펴 보아라. 지금 우리가 허수아비가 말하고 듣고 하는 거에요. 抽牽이 都來裏有人 이다. 밀고 당기는 것이 모두 다 뒤에 사람이 있다. 사람이 있어서 인형을 밀고 당기고 하듯이 우리도 가자면 가고 오자면 오고 듣자면 듣고 말자면 말고, 뭔가 그 주인공이 있어서 하는 것이다. 이건 다 알아듣죠 이상은. 이 이야기는 다 알아 듣는 거야. 이거는 이제 如人印泥(여인인니)라 그랬어요. 마치 도장을 가지고 진흙에다가 도장을 찍는 거와 같아서 찍으면 어떻습니까. 잘 찍히죠 진흙 이겨놓고 한번 찍어 봐요. 도장 떼어도 또 도장이 그대로 아주 잘 요철이 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도장 생긴대로 그게 이제 진흙을 잘 이겨놓고 찍어보면 그와 같애요. 그와 같이 이 세상에 뭐 성인이 나와 가지고 뭐 이렇다 저렇다 해 봤자 해 봤자 그것은 다 흔적이 남는 일이고 불필요한 일이고 본래부터 불필요한 일이고 하나마나한 일이고, 그런 차원으로 본 거에요 이게. 그러니까 불교하곤 다르죠 이건. 내가 (계속) 선은 불교하고 다르다 라고 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래서 제일구를 터득할 거 같으면 제일구 도리를 깨달은 사람은 佛祖, 부처와 조사의 스승이 된다 그랬어요. 그것도 이제 禪에서 하는 소리지. 불조의 스승이 된다. 그 다음에 제이구를 터득한 사람은 人天爲師야, 이 세상 사람들의 스승이 된다. 그 다음 제삼구에 터득한 사람은 自求도 不了라, 자기 구제도 할 수가 없는 경지다, 그렇게 이제 말합니다. 이게 이제 어려운 대목인데 그보다 더 어려운 대목이 그 밑에 삼현삼요예요. 9-2 三玄三要 (삼현삼요) 師又云(사우운), 一句語(일구어)에 須具三玄門(수구삼현문)이요 一玄門(일현문)에 須具三要(수구삼요)니 有權有用(유권유용)이라 汝等諸人(여등제인)은 作麼生會(자마생회)오 下座(하좌)하다 師又云(사우운), 은사가 또 말하기를, 一句語(일구어)에, 한 마디 말 속에, 須具三玄門 (수구삼현문)하고, 三玄의 門을 갖췄고, 갖춰야 하고 이런 말이여. 문은, 玄이라고 하는 건 아주 신비, 신비한 문을 갖췄고. 그 신비한 하나의 문에, 一玄門(일현문)에 須具三要(수구삼요)라, 세 가지 요소, 아주 중요함, 정수, 정화, 그것을 모름지기 갖춰서. 有權有用(유권유용), 권도 있고 작용도 있다, 권은 방편이죠. 방편도 있고 방편의 작용도 있다, 있어야 한다 이런 말입니다. 汝等諸人(여등제인)은 作麼生會(자마생회)오 그대들 모든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하는가. 이렇게 그냥 알듯 말듯한 소리 이렇게 하고는 자리에서 내려왔습니다. 이건 이제 일구 또는 삼현, 일구에 삼현, 뭐 삼요, 이런 말은 근기의 어떤 활용을 나타내는 그런 표현이다, 그런 말입니다. 법문의 깊고 얕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고 근기의 활용을 나타낼 때 이러한 법을 쓴다, 이런 표현을 쓰는데 정말 그 깊은 뜻은 뭔지 속시원하게 알 길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것도 이제 우리의 숙제로 남겨놓고 참구해야 되겠죠.
첫댓글 살아 있는 삶의 모습이 중요한 것이지 설사 무심매에 들었더라도 沒溺深泉(몰익심천)이니라. 禪慧珠보살님, 녹취 고맙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_()()()_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당신은부처님, 고맙습니다.
禪慧珠님,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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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구에 깨달은 사람은 부처와 조사의 스승이 된다.(如人印空..도장을 허공에다 찍는 것과 같다. 흔적이 없음.) 제2구에 터득한 사람은 人天의 스승이 될 수 있다.(如人印水..도장을 물에다 찍는 것과 같다. 물에 도장을 담그고 있는 동안은 흔적이 있음.) 제3구에 터득한 사람은 自救도 不了라. 자기 자신도 구제 못 한다. (如人印泥..도장을 진흙에다 찍는 것과 같다. 글자가 환하게 나타난다.)..禪慧珠 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공부 잘 하고 갑니다.._()()()_
三要印開朱點窄 未容擬議主賓分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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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배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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莫云無心云是道하라, 無心猶隔一重關이다..._()()()_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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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要印開朱點窄 未容擬議主賓分
妙解豈容無着問 漚和爭負截流機
看取棚頭弄傀儡 抽牽都來裏有人 ... _()_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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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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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고맙습니다
하~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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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혜주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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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심이 좋다. 사람 사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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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_()()()_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마하반야바라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