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장날은 3일과 8일이다.
신반 장날은 4일과 9일이다.
의령 촌놈들에겐 3일과 8일이 생일이었다
장날을 촌놈 생일이라 불렀다
장날이 되면 시장에 볼일이 있던 없던 모두들 가는게 시골 장이었다.
소를 몰고 우시장으로 가는 아재들...,
푸성귀 잔뜩 담은 바구니를 이고 채소전으로 가는 아지매들...,
장터를 향하는 시골길은 사람의 행렬이 이어졌다.
그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안부를 묻고 소식을 전하는 만남의 장터가 바로 시골장터였다.
"누구 집 아들이 누구와 선을 봤는데 곧 성혼이 될거라더라."
"누구네 어르신이 몸져 누우셨다더라."
"누구 집 아들은 서울가서 돈을 많이 벌어 성공을 했다더라."
장터의 소고기 국밥과 국수 한 그릇 얻어먹는 재미로
먼거리의 장터까지 따라 오던 아이들의 땟국 절은 옷소매가 정겹고
막걸리 한 사발에 새끼줄에 걸려있던 고등어가 빠져 나간줄 모르고 마구 흔들어 대며
두만강 푸른 물에 ~~~~~ 고성 방가를 하던 동네 아재들의 모습이 새삼 그립다.
이젠
장날이 촌놈 생일이 아니다.
이제
의령 장터에는 없다.
소를 몰고 장으로 향하던 아재들도
나물 바구니를 이고 모여들던 아지매들도
해질녘 동구밖에서 들려오던 취한 장꾼들의 노래소리도
땟국절어 반질해진 소매가 부끄럽지도 않던 내 유년의 모습도
이젠 볼수가 없다.
아케이트를 설치하고 생존에 몸부림을 치는 상설시장 상인들만 파리를 날리고 있다.
heo1342@hanmail.net
첫댓글 그랬다.그땐 어물전,쌀전,나무전,....품목별로 나뉘어서 팔았고,나무전에는 신을 꿰메는 신기루 아저씨와 뻥튀기 아저씨가 인기가 좋았다.
유년 시절의 기억들이 흘러 나온다. 이전의 모습을 찿아볼수 없음에 정말 아쉽다.
이젠 이 모든것이 추억속에서만 끄집어낼 수 있게 되었네...그리워진다 어린시절 그 모습 그 풍경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