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도산면 도선마을 이야기
(마창기술봉사단 2006년 11월 12일)
아침 일찍 중동성당으로 갈 준비를 하고 신발을 신고 있는데 친구가 와서 차에 타고 성당에 도착하니 몇 사람 있었다. 그리고 단장님이 교황으로부터 “십자훈장”을 받아 성당입구에 전시를 해두었다. 본인은 큰 영광일 것이고 같은 종교을 가진 사람들 또한 큰 기쁨이 될것이다.
<십자훈장 증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통영시 도산면 도선마을 신평부락으로 봉사활동을 간다는 것을 알았다. 모두 다 정확한 위치를 몰라 전번에 갔던 한퇴마을 입구까지 갔다가 도산면 가오치마을 까지 들어가기도 하면서 늦게 신평부락에 도착하였다.
<신평부락의 모습>
통영시 도산면 도선리 마을은 고성에서 14호 국도를 타고 통영으로 가다 보면 길의 좌측에 있는 마을은 원산리 이고, 국도에 접하여 우측에 있는 마을이다. 3개의 부락 즉 신평, 평리, 연도부락(섬)으로 이루어 져있으며 고성군과 통영시의 경계에 놓인 마을이다. 고성군계를 빠져나가면 좌측으로 벽방산이 멋진 모습을 드러내며 보인다. 벽방산 정상이 마을을 굳어보고 있으며 바다가 접해져 있다.
<신평리에서 바라본 벽방산의 모습>
[산의 높이는 650m이며, 벽발산(碧鉢山)이라고도 부른다. 석가의 십대 제자 중 한 사람인 가섭존자(迦葉尊者)가 벽발(碧鉢:바리때)을 받쳐 들고 있는 모습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통영시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부근의 천개산(524m)과 능선이 이어져 함께 오르는 등산 코스가 있다.
고찰과 비경이 골짜기 곳곳에 많이 있다. 고찰로는 654년(무열왕 1)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안정사의 대웅전(경남유형문화재 80)이 있다. 산에 남아 있는 가섭암· 의상암· 은봉암· 만리암· 천개암 등이 안정사의 부속 암자였던 곳이다. 비경으로는 만리창벽· 옥지응암· 은봉석성· 인암망월·가섭모종·의상선대·계족약수·한산무송 등이 있어, 안정사팔경(安靜寺八景)이라 불린다. 한편, 산 정상 부근에는 진달래가 많아 4월 중순이면 절정을 이룬다.
산행은 안정사에서 은봉암을 거쳐 정상에 오른 다음, 의상암과 가섭암을 거쳐 하산하여 안정사로 내려오는 코스가 있다. 이 코스는 약 4.3㎞ 거리로, 3시간 정도 소요된다. 천개산과 연결하여 등반하려면 안정사에 출발하여 가섭암을 거친다. 가섭암을 지나 의상암에 이르는데, 의상선대를 보려면 의상암 뒷길을 따라가야 한다. 의상선대에서는 남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의상선대에서 왼쪽 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정상이다.
정상은 상봉(上峰)·칠성봉(七星峰)이라고도 부른다. 정상에서는 다도해를 비롯하여 부산 앞바다가 보이며, 대마도까지도 볼 수 있다. 정상에서 안정치로 내려오면 대나무 밭에 이른다. 이곳이 만리암터이며, 이 위에 솟아 있는 절벽이 만리창벽이다. 여기서 능선을 따라 천개산 정상에 닿고, 동쪽 길을 따라 내려서면 은봉암이다. 은봉암 대웅전 옆에 세워 높은 바위가 은봉성석이고, 샘은 계족약수이다. 은봉암에서 안정사로 내려오면 산행이 끝난다. 이 코스는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신평리 전경>
이 마을은 밀양 박씨가 전라도 보성에서 평리부락에 이주하여 오면서 시작 되었고, 경주 이씨와 밀양박씨가 많이 살고 있으며 평리마을 입구엔 큰 포고나무가 있고 바로 뒤에 경주 이씨의 재실이 있다. 재실의 대문 현판엔 명덕문이라 쓰여 있고 재실에는 도선제라고 적혀있다. 1979년에 재실이 만들어 졌다고 함.
<경주이씨의 재실 모습>
조금 올라가면 천씨 재실도 보이고, 평리부락 끝에는 밀양박씨의 재실이 서있다. 이 곳을 지나서 곧장 가면 이주 해온 밀양박씨의 역사가 적혀있는 비가 있다고 하였다. 1980년 밀양박씨 재실이 만들어 짐.(박진효씨 59세 증언)
<천씨 재실>
<밀양박씨 재실 모습>
마을은 평지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인구는 110여 명 살고 있고, 60세 이상 노인이 66명이며, 이들 중 남자가 21명, 여자가 45명이다.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하였다.
아이들은 도산초등학교와 도산중학교로 다니며, 초등학생은 스쿨버스가 다니고 있다고 하였다. 일반적인 생활은 고성군으로 가고 있으며, 큰 병원은 진주를 이용한다고 한다. 주 수입원은 벼농사와 고구마 순이며, 10여 명은 바다의 자연산 석화를 채취하여 살아간다고 한다.
마을의 숙원 사업은 신평에서 평리까지 가는 길의 확장과 신평에서 이상민씨 집 앞까지의 도로 포장이라고 하였다.(이장 : 진종석씨의 증언 60세)
연도 섬 가는 바닷가 쪽으로 계속가면 바다가 끝나는 곳에 칠성끝이라는 지명을 가진 곳이 있는데 이곳에 6개의 고려장 터의 흔적이 있고 연도 섬에 한곳이 있다하여 알려준 방향으로 찾아보았지만 실패를 하였다. 평리부락에 사는 박진효씨는 자신이 어릴 때엔 이곳에서 쇠붙이들이 있었다고 하였다. 다음에 다시 가게 되면 꼭 그곳을 찾아 촬영한 모습을 다시 올릴 것이다.
첫댓글 자료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