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를 가다
# 고속도로에서
목마름으로 푸석해진 대지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장마로 이어질 조짐이다. 검정색 포도 위로 타이어들이 쉬지 않고 포말을 말아 올리고 있다. 시커먼 이무기가 울림(鬱林)을 박차고 나올 듯한 계곡에는 운무가 뒤엉겨 초록의 생명들을 감싸고 있다.
의외로 스쿨버스 안이 조용하다. 여행이란 떠나는 순간의 마음이 제일 기쁘고 설렌다는 평범한 이치를 오늘도 느끼며 출발한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기대는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도상에 그려진 ‘남해’의 모습은 ‘아메바’의 형상으로 여전히 창해 위에 떠 있었다.
“아메바!”
실로 오랜 기억의 잔상에서 끌어올린 용어임이 틀림없다. 중학교 생물시간에 현미경을 통해 본 미세조직들은 우리에게 호기심을 주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생동감 있는 들꽃의 세포조직, 머리를 박박 긁어 털어낸 비듬의 푸석한 결체, 개구리 뒷다리에서 뜯어 낸 근육조직의 단단함…
피자, 치킨점 문의, 00고속, 00해운, 00화학, 00제과, 00이삿집센터 …
교량구간, 안개지역, 눈, 비. 안개 시 안전운행, 긴급신고, 저속차 우측통행, 오르막 차로 끝, 단속 중, 사고위험 감속운행 …
눈감으면 무의미하게 스쳐 갈 도로변의 단어들이 오늘은 다정한 모습으로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역행하고 있는 차들은 여전히 우리와는 무관하게 스쳐가고 있다.
# 대교를 건너다
총연장 660m, 높이 80m. 1973년에 세워져 남해군과 하동군을 연결하며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남해대교가 우리의 이목을 끌었다. 이순신 장군의 전승을 기념하기라도 하듯 이 곳에는 일몰이 장관이라 했다. 지난 임진란을 상기시키는 거북선이 대교 왼쪽 아래에 정박해 있었다. 고함과 유혈과 인간으로서의 만감이 교차했을 격전지에서 관광을 즐기고 있는 나로서는 묘한 씁쓸함과 세상사의 구조적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남해는 섬이라기보다는 남해읍이 자리한 섬 속의 도시와도 같았다. 뭍에서 보았던 각종 행정기관과 교육시설, 그리고 각종 유명메이커 지점들이 자리한 읍내를 통과한 후에 우리는 남해의 정서를 느낄 수 있었다. 뭍에서 잘 자라지 않는 야자수와 유자나무, 산비탈을 일구어 만든 다랑이 논, 해상에 떠 있는 작은 섬들의 조화, 돌담장 위로 수줍은 듯 내밀고 있는 슬레이트 지붕과 처마 등이 해풍의 습기를 머금은 채 곳곳에서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우리가 처음 방문한 곳은 ‘남해스포츠파크’였다. 관광안내 책자에는 국내 최대의 남해스포츠파크라고 소개되어 있었지만 다양한 시설들이 그리 잘 활용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는 못했다. 평일, 그것도 날씨가 잔뜩 찌푸리고 있는 탓인지는 몰라도 시설을 이용하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고 다만 호텔 종업원들만이 휴식을 즐기는 분위기였다.
우리가 두 번째 들른 곳은 다랑이 논으로 유명한 ‘가천마을’이었다. 이 곳이 최근 개봉 된 영화 ‘맨발의 기봉이’의 촬영지였음은 도착해서야 알았다. 가천마을과 다랑이 논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가천마을 맞은 편 산정, 또는 가천마을 뒤에 위치한 산을 등반해야 할 듯싶었다. 경사로에 올망졸망 하게 이어져 있는 가천마을의 가가호호는 집 안에 거암이 놓여 있는 등 이색풍경을 보여주고 있었으며 민속신앙물이 잘 정비되어 있었다. 특히 전국에서 가장 잘 생겼다는 ‘가천암수바위’는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남해기행의 백미는 역시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삼남 제일의 명산인 ‘금산’을 오르는 일이었다. 이 곳은 온갖 전설을 담은 38경의 기암괴석이 금강산을 닮았다 하여 소금강 혹은 남해 금강이라 부른다. 보광산에서 태조 이성계가 오랫동안 수도한 결과 왕위에 오르자 고마움의 표시로 비단 금(錦)자를 써서 이름을 금산이라 명명했다고 전한다. 이 곳에는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보리암’이 자리하고 있다. 망망대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기암절벽의 영봉에 자리 잡고 있어 불타의 힘을 느끼게 해 주었다. 자연 석문인 ‘쌍홍문’, ‘상사바위’, ‘부소암’ 등 금산은 어의 그대로 비단과 같이 고운 결들을 간직한 명산이었다.
# 어설픈 사진으로 보는 남해
# 해풍을 가슴에 품고
‘땅 끝에 서면 바다가 보이고 그 바다 끝에 하늘이 놓여있다’는 평범한 이치를 오늘도 경험하며 여행지에서 떠난다. 남해 또는 상주해수욕장에 족적을 남긴 무수한 사람들은 가슴에 무엇을 품고 이 곳을 떠났을까? 2박 3일 동안의 여정 속에 시선을 사로잡았던 여러 모습들이 영상으로 떠오른다.
싱싱한 고등어처럼 해변에서 젊음을 자랑하던 젊은이들, 귀선의 잡어들을 받으러 오토바이를 몰고 선착장으로 달려가던 억센 어부의 아내, 소형어선에 몸을 싣고 멸치를 낚으러 떠나던 구릿빛 동남아 사람들의 옹골찬 몸놀림, 낚시 줄의 떨림에 시신경을 집중하는 바다낚시꾼의 초조한 낯빛, 해수에 몸을 맡긴 사람들의 즐거운 비명, 세상을 가슴에 품은 듯한 느낌을 주던 고래횟집 여주인 그리고 …
싱싱함과 연륜을 자랑하는 몽돌해안가의 ‘물건방조어부림’, ‘왕’자가 붙는데 전혀 어색할 것이 없는 단항의 ‘왕후박나무’, 선인들의 지혜와 숨결이 느껴지는 ‘원시어업방죽렴’, 고즈넉한 미조 북항의 정경, 사람을 그리워하는 염해의 등대…
나는 이제 가슴에 해수를 가득 담고 도시로 떠난다. ‘땅 끝에 서면 바다가 보이고 그 바다 끝에 하늘이 놓여있다’는 평범한 이치를 잊고 사는 이들과 어울리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