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 대담 임애월
사랑을 위해 사랑을 앓는, 사랑의 아나키스트
김 왕 노 시인
처서를 앞둔, 여름햇살이 아직은 따갑던 8월의 어느 오후에 수원화성 성곽에서 김왕노 시인을 만났다.
조금은 고집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부드러운 미소 때문인지 편안해 보이는 표정의 그는, 지금도 축구를 하다가 뛰어왔다면서 땀에 젖은 손을 내밀었다.
詩를 위해, 사랑을 위해, 자신 앞에 내던져진 삶을 위해 끝없이 말달려야만 하는 김왕노 詩人......
푸른 그늘이 싱싱한 수원화성 성곽 아래서 그가 풀어놓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들을 들어보기로 했다.
임애월 : 김왕노 시인님 안녕하세요?
날씨도 덥고 여러 가지로 바쁘실 텐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근황 좀 알려주세요.
김왕노 :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요즈음은 시 쓰기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면 우리 아파트에 와서 우는 화려한 새소리를 듣습니다. 그 새는 시간을 아는 듯이 정확이 두 시간 정도 울다가 여섯 시 반이면 뚝 그칩니다. 저는 아파트 15층에 사는데 그 새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다가 시를 씁니다. 얼마나 새소리가 맑고 애교스러운지 맑고 발랄한 누군가의 영혼이 아침마다 왔다가는 것 같답니다.
근래에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우대식 박완호 윤의섭 고영 시인과 함께 치악산 금대리에 간 것입니다. 원시림 같은 숲 사이로 난 맑은 계곡에 몸을 담그고 있던 새벽과, 팔뚝만한 메기를 어항으로 잡았다가 다시 물로 되돌려준 일들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술로 깊어가던 치악산 금대리의 밤, 새벽에 상원사 앞까지 뛰던 일, 식탁 아래로 산물이 맑게 흘러가던 식당에서 나누던 술잔, 그리고 송정암 해범 스님과 나누었던 덕담, 야간문 푸른 산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8월 15일에는 글발 축구팀과 극단 두목 대표인 시인 최치언이 만든 연극인 팀과의 축구게임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요즘 저의 근황은 한 마디로 말해 시 쓰기와 운동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시인은 시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살고 있답니다.
임애월 : 네, 여름에는 새벽에 듣는 새소리가 정말 상쾌하지요.
수원화성이 참 고색창연합니다. 도시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성곽을 만나기가 쉽지 않은데요. 여기에 자주 나오시는지요?
김왕노 : 저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수원이라 말할 것 같습니다.
수원에서 산 세월이 벌써 20년이 넘어가거든요. 90년대 초에 수원에 왔을 때는 도청 뒤 낡은 빌라에 살았습니다. 처음 거처를 그곳으로 정한 이유는 도청 뒤 우거진 개나리꽃과 팔달산에 반했기 때문이었죠. 지금이나 예나 서장대에 올라 바라보는 수원은 현대와 과거가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도시라는 사실입니다.
사시사철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절경은 언제나 저를 화성으로 이끕니다. 요즘은 자주 오지는 못하지만 마음은 늘 화성에 머물고 있답니다.
임애월 : 선생님의 꿈은 소설가였다고 어디서 읽은 적이 있는데....혹시 소설도 발표한 적이 있으신지요?
김왕노 : 소설을 발표한 적은 없으나 몸으로 소설을 썼습니다. 마음은 시를 쓰고 몸은 소설을 썼습니다. 초기에 시를 쓰면서 보냈던 날들은 너무 격정적이었고 너무 원색적이어서 지금도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집니다. 그 당시의 사랑, 그리움, 그때 만났던 사람들...... 시를 처음 쓰기 시작한 것이 대학 2학년 때였으나 나이는 28살이었어요. 그때는 금요일 밤마다 내 자취방으로 서울이나 부산에서 다니던 나와 나이가 비슷한 예비역 대학생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어떤 친구는 세익스피어의 긴 문장을 외웠고 어떤 친구는 기타 줄이 끊어질 정도로 우리에게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습니다. 그때 나는 시를 발표했고 경찰들은 우리가 뭔가 모의라도 하는 줄 알고 우리 주위를 서성거리기도 했었지요. 한번은 인규라는 친구에게 술을 가져오라고 했더니 제사 지낼 술을 다 가져와서 할머니가 그 술을 찾으려온 적도 있었답니다.(웃음)
임애월 : 참 낭만적인 대학생활이었네요. 지금도 애주가라는 이야기는 들었어요.
김왕노 : 그 당시 만형이란 친구와 자전거로 공주에서 갑사까지 가면서 상점과 술집이 보일 때마다 들러서 한잔씩 하다가 갑사 입구에서 술이 너무 취해 자전거를 두고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가 그 다음 날 버스를 타고 다시 갑사 입구로 가서 자전거를 타고 반대로 돌아오며 또 술을 마셨습니다. 전국 토플시험 만점을 받은 그 친구와의 만남도 참 즐거웠습니다. 그러다 해마다 대학생 한 둘은 잡아먹고 흐른다는 공주의 금강 건너 반대편에 있는 막걸리 집으로 가다가 둘 다 죽을 뻔한 적도 있습니다.(웃음)
그때 대학신문에 칼럼을 썼습니다. 질투란 청보리밭에 가리지를 뿌리는 악마의 속성이란 말이 있지만, 적당한 질투는 선의의 경쟁으로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는 역발상적인 내 글을 읽고 멀리서 찾아왔던 사람도 있었고, ‘밤하늘의 무수한 별은 하늘 저 건너편에서 그리운 누군가를 찾아가려고 놓은 별 징검다리라 밤마다 별 징검다리를 밟고 누군가 올 것 같아 기다린다’고 발표한 내 시를 읽고, 내 주변을 맴돌던 사람......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내가 몸으로 소설을 쓰는 주제였으며 주인공들이었습니다.
임애월 : 어떤 모임에서 모 시인이 ‘주량과 필력은 비례한다’ 고 우스갯소리를 하시던데...... 그 주장이 때론 맞기도 하나 봅니다.(웃음)
청소년기에는 밀항의 꿈을 꾸셨다고요.......그때는 어디로 떠나고 싶으셨는지요?
김왕노 : 형은 천재였습니다. 공부를 안 해도 늘 일등을 하고 날카로운 논리력이며 엄청난 기억력으로 공부에서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능력을 가졌었기 때문에, 나는 형의 이름에 가려져 늘 이인자로 남았습디다. 근동에서는 저를 왕노라고 부르지 않고 늘 형 이름을 먼저 대고 그 동생으로 나를 불렀습니다. 특히 독서량이 많던 형은 끝없는 미지와 외지에 대한 동경을 가졌습니다. 어릴 때 형이 가출은 아니지만 먼 곳으로 가보겠다고 집을 나섰을 때 저도 끝없이 형을 따라 가다가 집으로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자연히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곳을 동경하게 되고, 특히 영어를 열심히 해 미국으로 가겠다는 형의 꿈을 쫓아 내 밀항의 꿈도 태평양을 건너서 미국이거나 달맞이꽃이 해안가에 가득 핀 남미로 내달렸습니다.
그래서 망망대해를 거침없이 누비는 고래를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영일만에 고래가 나타났을 때 그 고래를 잡기위해 사방에서 몰려들던 배들을 보기 좋게 따돌리고 먼 곳으로 유유히 떠나는 고래를 동경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고래 꿈을 꾸기도 했답니다.
임애월 : 바다는 뭍과 뭍을 가르는 경계이기도 하지만 뭍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이기도 하고, 또 다른 세상을 이어주는 길이 되기도 하지요. 저도 섬 출신이라 한때는 오로지 바다를 건너가 보는 게 꿈이었던 적이 있었답니다(웃음).
청소년기 이야기 좀 더 들려주세요.
김왕노 : 청소년기는 해당화 향기가 맵게 날리는 영일만의 아카시아 숲속에 있는 모래 무덤과 그 앞에 서 있던 비목을 보고 자랐습니다. 동네 아이들의 짱으로, 싸움장이로, 장난꾸러기로 자랐습니다. 늘 해병 1사단에서 들려오는 군인의 구보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이들을 모아 군사훈련을 시키면서 데리고 다녔습니다. 스스로 헤엄을 배우기 위해 엄청난 바닷물을 마신 일, 영일만 잔잔한 새벽바다에 들어가 아버지와 조개를 잡던 일, 땔감을 해오라는 선생님 말씀에 논둑 미끄러지지 말라고 박아 놓은 말뚝을 반 아이들을 데려가 몽땅 뽑아가 난리난 일, 과감하게 동네 형처럼 소를 타고 달리던 일, 학교 건물보다 더 거대한 모래 언덕에서 물새알을 찾던 일, 흑백의 기억으로 남아있는 눈보라 몰아치는 날에 바닷가에서 굉음을 내며 달리던 수륙양용 차와 모래밭에 자살해 가마니로 덮어둔 수녀의 삐져나온 발가락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바다에 빠져 죽은 옆집 숙희를 사흘 밤낮 동안 바다에 그물을 내리고 횃불을 들고 동네 사람들이 찾아다녔으나 찾지 못하다가 며칠 후 바닷가로 밀려온 숙희의 몸은 너무 눈부셨습니다. 물빛 팬티를 입고 평온하게 누운 숙희는 분명 용궁에 갔다 왔을 것이라는 상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람의 주검은 다 저렇게 눈부실 거라는 추측을 낳기도 했으나 나중에 내가 만난 주검들은 참혹 그 자체였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일들이 내 잔뼈를 굵게 했습니다.
임애월 : 아름답고, 슬프고, 어둡고, 추운 기억들이 공존하는 청소년 시기를 건너오셨군요.
1992년에 매일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셨으니 이제 시업 20년을 훌쩍 넘기셨는데 그해에 다른 신문 신춘문예에도 동시에 본선에 올랐다면서요?
김왕노 : 네, 그 때 시를 다섯 편 써서...... 워낙 악필이어서 아내에게 대필을 시켜 다섯 군데에 보냈습니다. 중복 투고라는 규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집대로 살아온 내가 내 방식대로 결정하고 보냈습니다.
당선취소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은 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다른 두 신문사에도 본선에 올라 있는 흔적을 지금도 찾을 수 있습니다.
산다는 것이 따분하거나
눈물나면
신종사업을 원하거나
안전하고 탄탄한 사업을 원한다면
이곳으로 오라
봄이면 바람에 휘날리는 배꽃
아침이면 안개처럼 피어오는 새떼
흥건히 고여 냇물처럼 흘러가는 푸른 달빛 사이
몇백년 묵은 소나무솦 사이
꿈의 체인점이 있다
방안에 흑백 TV 한 대
나무 기러기 한 쌍
송사리 떼가 헤엄치는 작은 어항
고만고만하게 모여
손때 묻고 길들어지며 먼지를 덮어스기도 하지만
걸레질할 때마다 당당해지는 그들
방문 왈칵 열고 들어오는
텃밭의 파꽃냄새 밤꽃냄새 미치도록 진동하는
조그만 꿈의 체인점이 있다
이곳에 오면
사랑이 샘물처럼 퐁퐁 솟는 꿈의 체인점이 있다
이곳에 오면
신속히 수선되거나 갈아 끼워지는 당신의 꿈
새살이 돋아나는 당신의 꿈
꿈속 가득 들어찬 바람도 피고름도 말끔히 짜준다
푸드득 날아오르는 잿 비둘기
패랭이꽃 언덕도 가꾸어 준다
이 근처에 오면
거친 꿈의 면을 손질하는
톱밥도 휘날린다
일이 밀리 목재소처럼
밤새 불이 켜져 있기도 한다
주문을 하면
숲속으로 드나드는 족제비처럼 신속히 배달도 나간다
휴전선을 국경선을 넘어 배달도 나간다
우리의 사업은 세계적으로 번창해야 하니까
앞으로 전망이 좋으니까
비도 바람도 무릅쓰고 배달 나간다
당신이 이곳에 와 별을 원하면
당신의 녹슨 하늘을 닦아
지금도 생생한 오리온좌르 ㄹ큰곰자리를
견우와 직녀성을 보여줄 것이다
당신이 깨어진 술병처럼 날이 서
누군가의 발바닥을 찌르거나
헌 비닐봉지처럼 이리저리 뒹굴 때
당신의 불변 속으로
질 좋은 석탄 같은 잠을 화석 같은 잠을
수십 삽 퍼넣어줄 것이다
화력 좋은 꿈에 불도 당겨줄 것이다
이제 이 꿈의 체인점으로 오라
정 바쁘시다면 당신의 집 가까이서 찾아보라
당신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의 주문을 기다리고 있다
분명 당신의 집 근처에서
꿈의 체인점은 성업 중일 것이다
- 199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시 「꿈의 체인점
임애월 : 시가 참 좋습니다. 저도 ‘신종사업’을 하고 싶거나 꿈이 거친 밤에는 ‘꿈의 체인점’이 제가 사는 집 근처 어디에서 성업 중인지 한번 찾아봐야겠네요.(웃음)
그 해의 신춘문예 등단 시인들과 모임을 만드셨다는 소문도 들리던데 그 당시 분위기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김왕노 : 그 때 시를 쓰는 시인들의 열정은 지금보다 치열했습니다.
「세한도」의 박현수, 「와디」의 소을석, 「꽃피는 아버지」의 박종명, 「민들레 홀씨」의 김종욱, 「남해시초」의 김수영 등의 시인과 만나서 서로의 시를 보여주고 감상하고 낭송하던 낭만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시는 우리의 방주이자 유토피아였고, 우리가 꿈꾸는 우주로 데려 갈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 모임이 서너 해는 계속되었습니다. 신춘문예 출신의 전대호 시인을 받아들이고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시는 철저히 개인적인 것이어야 시의 개성이 살고 문학의 완성도도 개인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모임을 접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이 아직도 이렇게 그리운 것은 시를 향한 열정으로 시만을 위하여 서로가 만났던 시간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도 가끔 박현수 시인과 만나기도 하지만 그 때의 기억은 나에게 좋은 자양분으로 남아 지금도 내 문학의 힘이 되기도 합니다.
임애월 : 그 후 10년이 지난 후에 첫 시집이 나온 것으로 미루어 등단 후 10년간은 다른 일로 바쁘셨나 봅니다.
김왕노 : 사실 문단에 들어가 시인들을 몇 년간 만나는 사이 문단의 면면을 알게 되면서 먼발치로 물러나 문학과는 점점 멀어지던 시기였습니다.
임애월 : 무슨 일이 있었나요?
김왕노 : 문인들에게 너무 많은 기대를 했었던 거죠. 문인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에게 다소 실망하게 되고 그래서 문학보다는 육체의 활동인 운동을 통해 얻는 성취감이 더 크다는 생각으로 한 동안 축구 등 스포츠에 빠져 살았습니다.
그러나 문학에서 더 멀어지기 전에 문단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사실 시 쓰기만큼 높고 순결한 절정감을 가져다주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남녀 간의 사랑도, 스포츠를 통해 얻는 성취감도...... 좋은 시 한편을 썼을 때의 그 황홀한 감동을 넘어서지는 못했으니까요.
임애월 : 2002년에 첫 시집 『슬픔도 진화한다』를 발간하셨는데 당시 신문 기사를 찾아봤어요. 뒷조사 좀 했습니다.(웃음)
‘김왕노(45) 시인의 새 시집 『슬픔도 진화한다』(천년의 시작)는 보기 드물게 남성성이 돋보이는 시편들로 채워져 있다. 섬세함 및 관념과 서정이 요즘 시의 본류를 차지하다시피 하는 현실에서 김 씨의 시편들은 호방하면서도 일견 낭만적인 정조를 띠고 있다. 특히 남성의 강고한 외피 뒤안에 숨겨진 외로움을 발설하는 시편들은 강한 울림을 준다’. (2002년 세계일보 기사)
저도 선생님의 시들을 거의 다 읽어봤는데요, ‘호방하’면서도 ‘낭만적인 정조’가 선생님의 시를 일관되게 특징짓는 키워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김왕노 : 호방하고 낭만적인 정조가 내 시의 키워드라는 것이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시를 통해 거침없이 세상으로 나가고 싶고 시를 통해 세상을 노래하고 싶던 열망이, 내 안의 감정을 핵처럼 분열시키고 활화산 같은 의식 속으로 나를 끌어들였으니까요.
임애월 : 그해에 해양문학상을 받으셨지요?
김왕노 : 첫 시집이 나온 직 후 50편의 시를 투고해서 그 상을 받았지요. 나중에 알았지만 해양문학상이 여러 개 있는데, 부산시에서 운영하는 <한국해양문학대상>을 받게 된 것입니다. 시, 소설, 수필, 동화 들 여러 장르를 망라해 대상을 뽑고 한승원 소설가 및 서규정 시인 등도 받은 권위 있는 상이라 해서 투고했는데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수상한 작품은 「사진 속의 바다」란 시였습니다.
그 바다 알지. 수평선까지 다 보여주고 썰물 때 제 바닥까지 드러내 보여주던 그 바다 알지. 그 바닷가에는 불타는 조개구이란 집이 있고, 우리는 바다를 훔치고 싶어 술잔에다 바다를 따라 마셨지. 남들은 소주라 말하지만 분명 바다를 따라 마신 거야. 노을이 슬픔으로 밀려온다는 그 순간 속에다 우리를 세우고, 바다를 훔쳐 담았지. 바다가 암실에서 서서히 인화될 때까지 우리는 몰랐던 거야. 우리의 뒤 배경이 되어준 폐선과 바닷가까지 흘러와 남은 생을 태워 조개를 구워주는 어부를, 그 어부의 어린 딸과 넓고 넓은 바닷가의 오막살이 집 한 채를, 그 바다 알지. 물 냄새 맡은 낙타처럼 찾아간 그 바다 알지. 바닷가까지 따라온 그리움이나 우리 가슴 안의 새떼를 오랜만에 바람 쐬라 풀어줄 때 우리도 바다가 되어 출렁거렸음을, 그 바다 알지. 그 사진 속의 바다. 완벽한 바다의 사진이 되어주기 위해 배경이 되어준 썰물의 풍경도, 내가 완벽한 구도의 사진 한 장을 꿈꿀 때 뒤 배경이 되어주는 자의 아름다움도 알지. 맨 뒷줄에서 뒤꿈치를 들고 고개 내미는 그 안간힘의 아름다움도 알지. 그 바다 알지. 다시 가보고 싶은 그 바다 알지.
오늘도 내가 좌초되어 가는 사진 속의 그 바다 알지. 흉어기의 그 바다 알지. 평생 정박의 닻 내리고 싶은 그 바다 알지.
- 「사진 속의 바다」
임애월 : ‘평생 정박의 닻 내리고 싶은 바다’가 ‘완벽한 구도’를 깨고 사진 속에서 금방 튀어나와 출렁거릴 것 같습니다. 상금도 꽤 많았다고 들었어요.
김왕노 : 내 몸에 잠재되어 있는 바다의 리듬에 따라 시를 쓰고 바다를 팔아 상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바다가 고마웠습니다. 때로는 격정적이고 때로는 잔잔한 바다처럼, 격정이 스러지면 순한 양이 되는 내 성격도 바다의 양면성이 몸에 배었기 때문입니다. 상금은 1,000만원이었어요. 그 때는 그게 제법 큰돈이었는데 좋은 일을 하는 데 보탬이 됐습니다.
임애월 : 시집 『슬픔도 진화한다』에서 저는 개인적으로 「사칭」이라는 시가 마음에 와 닿았어요.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이들에게 보내는 시니컬한 메시지로 수신했거든요.
적당히 자신에게 알맞는 레일을 깔아 놓고 그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살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살지는 않았는지 스스로도 반문해 봤어요. 나 아닌 다른 대상들을 ‘사칭’ 혹은 표절도 하면서요.
김왕노 : ‘사칭’은 ‘체’ 하는 데서 출발하는 것 같아요. 가식을 몸에 두르고 사는 현대인들은, ‘체’ 하지 않으면 외면당하기 쉬운 시대에 살고 있지요. 본질을, 본능을 숨기면서 ‘체’하는 것이 생존방식일 수 있으나 그 ‘체하는 것’이 결국은 자신을 망가뜨리거나 자기상실이란 비극을 불러온다고 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체’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환경에 바로 적응하는 카멜레온처럼 본질은 자기 안에 깊게 살려두고 몸의 색깔만 바꾸는, 자기보호색 혹은 자기 방어수단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살아있는 것 같습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체’, 모르면서 아는 ‘체’하면서 말입니다.
임애월 :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선생님의 시편들 속에서 보이는 그 끊임없는 슬픔의 원천은 어디에서 시작되는 걸까요?
김왕노 : 슬픔은 우리 삶의 본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끊임없이 사랑을, 세상을 움켜쥐려하지만, 결국 빈손으로 빈 몸으로 그 무엇도 얻지 못하고 멸하는 것이 인간이잖아요. 그러한 인간의 허약함이나 나약함으로 인해 인간은 가질수록 슬퍼지고, 가지지 못해도 슬퍼지고 그래서 끝내 슬플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가 아닐까요.
낙원에서 쫓겨난 인간이 다시 낙원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감이 우리 내부에 잠재되어 있으면서 끊임없이 슬픔을 만드는 것입니다.
사실 내 슬픔의 또 다른 원천은 잃어버린 고향과 잃어버린 내 청춘인 것도 같습니다. ‘의리’라는 명목으로 나는 너무나 많은 것을 내려놓고 살았습니다. 내 슬픔은 그 많은 기회를 스스로 놓아버린 어리석음에 대한 후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때 만약 내가 다른 선택을 하였더라면 더 많은 것을 남들과 나누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슬픔은 이별한 것들에게 보내는 아픈 손짓입니다. 아무리 길어 올려도 바닥나지 않는 슬픔, 그 슬픔 안에는 이별이 빠져있고 그 이별에서 끝없이 우러나는 슬픔이요.
임애월 : 네, 많은 것들을 놓쳐버린 지난날의 아쉬운 기억들이 우리 안에 잠복해 있다가 조금씩 풀려나오기도 하지요.
<박인환문학상>은 두 번째 시집 『말 달리자 아버지』로 받으신 건가요?
김왕노 : 여러 문예지에 「위독」이라는 시와 「수목한계선」 등의 시들을 발표했는데 그 시에 대한 평가가 <박인환문학상>이라는 결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여기저기서 문학상 후보로 나를 거론할 때 나는, 주면 주는 거지 후보는 싫다고 후보에 오른 내 이름을 빼라고도 하던 시기였지요.
<박인환문학상>은 후보 시인들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후보작을 찾아 심사한 후에 수상자에게 알렸습니다. 그때 내가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조금 흥분했었습니다.(웃음)
그 때 조정권 시인이 말했었지요. ‘시인들이 성실하게 시를 쓰고 발표하다 보면 누군가 그 시를 지켜보며 평가하고 있다. 그러니 시 한 편 한 편에 혼신의 힘을 다 실어라’
그 말은 지금도 나의 지침이 되어 시를 쓰게 한답니다.
임애월 : 당시 심사평에서 조정권 시인은 -그의 시는 극단적 허무와 좌절에 봉착한 삶의 내상(內傷)에서 내출혈을 일으켜왔다. 상처 입은 짐승의 포효처럼 선이 굵고 강고한 이 시인의 야생의 외로운 목소리는 오래 동안 가위눌려져 왔었다. 시인이 살고 있는 정신의 처소는 어디일까. ‘멀리서 그대 위독이란 짐승이 되어 누워 있습니다.’ 라는 시구가 암시하듯 그곳은 매우 위독한 곳이다. “위독” 은 그것이 비록 추상적 암흑의 세계라 하더라도 그 속에서 융기를 일으키는 허무의 거센 물길이 원초적 상상력과 조우하면서 웅대하게 내면화되고 안으로 굽이치는 남성적 육성을 획득한 작품이다. 대륙적 상상력으로까지 확대시켜 나간 점이 아주 든든해 보였다. 눌함(訥喊)이 절규로 뻗어 있다. 감마선같이 휘감는 광폭한 에스프리로 우리 시대를 감전시키는 송전탑 같은 힘이! 그 육성에 깃들어 있다. 박인환 문학상 수상을 축하한다- 고 했는데 여기서도 남성성이 두드러진다는 평이네요.
김왕노 : 어쩌면 내 안에 숨어있는 여성성을 포장하기 위한 위장으로 강한 힘을 가진 남성성을 극대화시키며 남자를 사칭하는 것인지 나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어릴 때도 힘이 세고 강한 아이였지만 저녁이면 혼자 남아서 먼 바다의 불빛을 보며 외로움을 삭히던 시절도 있었으니까요. 혼자 바닷가를 거닐며 손에 닿지 않는 먼 이름으로 인해 가슴에 잔물결이 일던 날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거침없이 행동하는 것은, 서까래 같이 견고하게 내밀화되어 있는 여성성이 그 밑바탕이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가끔씩 지나치게 치밀하고 여려지는 순간, 나도 내 정체성에 의문이 들어요..... 그 여성성을 떨쳐내려는 반작용인 것 같습니다.
임애월 : 사람은 누구나 내부에는 여성성과 남성성이 공존한다고 합니다. 어느 부분이 더 도드라지는지가 남성적인지 여성적인지를 결정하는 거겠지요. 선생님은 내부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는 여성성이 자신을 숨기기 위해 남성성을 밖으로 강하게 밀어내고 있다고 생각하시나 봅니다.
선생님의 시들을 읽어 본 후 저의 감상도 ‘선이 굵고 참 거침이 없구나’였고요, 두 번째는 사랑 관련 작품이 많아서 그런지 ‘낭만적이구나’였어요.
창작을 하실 때도 퇴고 없이 단번에 거침없이 쓰실 것 같은 느낌으로 읽혔거든요.
김왕노 : 사실 그렇습니다. 단 번에 쓰고 퇴고를 하지 않는 버릇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를 이끌어 왔습니다. 그 버릇을 버릴 생각도 없습니다. 거침없이 쓰므로 이미지나 표현 문체가 거칠기도 합니다.
임애월 : 자신의 경험이 창작의 기본바탕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요.
유성호 평론가는, 김왕노 시인은 ‘자신의 몸을 투과하지 않은 어떤 언어도 발화하지 않는다’ 며 ‘몸 내부로부터 자기 고백적으로 솟아나오는 울림이 큰 시’를 쓰는 시인이라 명명하였지요. 선생님만의 특별한 시 창작습관 혹은, 우리 시대의 시쓰기에 대한 말씀 좀 해 주세요.
김왕노 : 경험의 집결체인 몸은 문학의 재산이고 대지입니다. 경험 없이 쓰는 시는 어딘가 어색하고 말장난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내 몸에다가 어떤 시의 이미지를 마중물처럼 내려 보내면 샘물처럼 시를 콸콸 치솟아 오르게 하는 저변이랄까 밑바닥에는 경험이 웅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란 꿈도 밥도 아닙니다. 영혼의 끌림과 꼴림이므로 나는 나의 시 쓰기에 대해 잠깐 언급해 보겠습니다.
한 밤에 일어나면 모든 것이 아득히 멀어져 있습니다. 사물이든 사람이든 적당한 간격을 두고 드러눕거나 서서 자신에게 논물을 대듯 꿈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밤의 모서리에 서서 난 그들을 봅니다. 짐승처럼 웅크린 도시의 등에 지느러미 같이 일어선 열병합발전소의 굴뚝을 보면 문명의 거대한 발기물로 치솟은 빌딩을 보면 비애가 급격히 밀려옵니다. 거대한 것들은 반드시 어떤 것을 짓누르거나 작은 것들을 밀치고 자리 잡은 것입니다. 작고 미약하거나 힘없는 것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하늘을 물어뜯으며 한이 서린 듯 선 도시의 거대한 조형물들은 욕망이란 끈적거림으로 코팅되어있습니다. 속도 욕망의 붉은 살로 채워져 있습니다. 이처럼 자본의 논리는 욕망의 거대화와 만족을 모르는 아가리를 가졌습니다.
이처럼 욕망이 물질을 숭배하는 지금 자본적 가치가 없다고 취급받는 시란 당연히 무가치하리라 보지만 만약 이 시대가 문학을 시를 좌파적 온상의 도구 쯤 생각하여 천대한다면 씻을 수 없는 큰 오류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즐거운 나라의 재산이 경제뿐만 아니라 엄연히 지적자산이 그 무엇보다 우선된다는 것을 간과한다면 안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와 문학을 좌파적온상의 도구쯤으로 여기는 이 시대가 끝없이 나를 슬프게 만듭니다. 문학을, 문화를 모르는 몰염치한 사람들이 득세하는 이 시대가 나에게는 견딜 수 없는 유배지가 된 셈입니다. 그래서 난 서포 김만중이 구운몽을 짓듯 시를 짓습니다. 애절한 사모곡이듯 시를 쓰고 때로는 죽창을 새파랗게 깎아 봉기를 꿈꾸듯 시를 씁니다. 그렇지만 시는 꿈도 밥도 되지 않습니다. 시가 꿈도 밥도 되지 않으므로 더더욱 독자들에게도 꿈을 가지게 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시대와 독자, 시인의 삼위일체가 되어 시를 통한 소통을 모색해 나가야 합니다. 끓임 없는 모색을 통해 시를 얻고 또한 시를 통해 얻는 절정감이 물질이나 육체를 통해 얻는 것보다 순결하고 한 차원 높은 것이므로 난 시에 천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이 이슬처럼 끝없이 영감을 내려준다는 새벽에 마른 혓바닥으로 그 영감을 핥으며 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유년 시기에 어머니께서 어둠이 가시지 않는 시간인데도 마당을 비질하셨습니다. 싹싹......하는 그 정갈한 소리를 들으며 난 교과서 행간을 비틀거리지 않고 지나왔습니다. 그 때는 저녁에 일찍 자고 새벽 2시면 어김없이 책상에 앉아 책을 펴 새벽공부를 하는 버릇이 있던 때였습니다. 지금은 일찍 자지 않지만 그래도 그 때처럼 지금도 새벽에 일어나 책을 읽고 시를 씁니다. 어머니의 비질하는 소리를 그리워하며 15층 베란다 너머로 밤을 꼬박 파수하던 외등이 조금씩 조는 새벽, 난 오감을 활짝 열어놓고 나를 절정에 치닫게 할 시를 찾아 헤맵니다. 시가 주는 불의 시간에 내가 타오릅니다. 그러니 어찌 시를 아니 쓸 수 있겠습니까.
임애월 : 네, 새벽시간...... 신이 내려준 이슬 같이 맑은 새벽에 주로 작품을 쓰시는군요. 15층 공중에서 말입니다.
김왕노 : 네, 결국 내게 시란 한 때 내가 밤하늘로 숱하게 날려보낸 그리움이고 내가 그리움에 실어준 힘만큼 반동해 내게 되돌아오는 그 무엇입니다. 그리고 시를 쓸 때의 나는 어디서 몰아쳐온 해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둠에 진원지를 둔 쓰나미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둠이 엄청나게 준 에너지로 인해 견딜 수 없어 스스로 발산해야 비로소 내 존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발광해야 내 길을 밝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없이 나에게 넘치는 이 에너지로 인해 몇 번이나 극에 달했다가 또 극으로 치닫기도 합니다. 생은 굽이라 했지만 에너지가 넘쳐 구불대는 삶이란 가관입니다. 젊은 날 황금처럼 몸이 빛났던 시절, 나를 향한 비수가 슬로비디오처럼 보여 그 비수마저 순식간에 낚아채던 시절, 난 싸움꾼으로 충분히 자질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남에게 지기 싫어 공부도 늘 남보다 앞에 섰으니 더욱 그랬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시인이 되었습니다. 시가 나를 감염시켰습니다. 시는 슈퍼박테리아입니다. 이제 시는 내게서 박멸될 수 없습니다.
뒤돌아보면 내 성격에 집요함이 있고 한번 빠지면 마구 몰입하는 근성이 있습니다. 삼십 대 후반에 시를 접하지 않았더라면 아니 시에 열정적으로 매달리지 않았다며 난 엄청난 부자가 되었거나 악의 소굴에 빠져 있을 것입니다. 달콤한 조건으로 유혹해오는 세상의 모든 것을 뿌리치고 시란 투석기로 내 검은 피를 맑게 걸러내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상상만 해도 아찔합니다. 시인이 되지 않았다면 언제 내가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란 시집을 내고 한 시인으로 겸허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었겠습니까.
임애월 : 네에...... 삶에 대해, 시에 대해 거의 광적이라고 할 만큼 치열한 그 정신이 강렬하면서도 부드러운, 멋진 작품들을 창조해 냈나 봅니다.
김왕노 : 나는 반도에 사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삼면이 바다여서 끊임없이 철썩여 주는 파도가 바로 반도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는 것입니다. 눈을 감으면 머리에 떠오르는 잔잔한 바다, 때로는 격정에 못 이겨 몸부림치는 바다, 이것이 바로 내 시의 내유외강이 되어줍니다. 시의 양면성을 지니게 하는 것입니다. 부드러움과 힘찬 면을 다 가지게 하는 것이다. 직접 나를 만나보지 않고 내 시를 읽은 사람들은 나를 30대쯤으로 여깁니다. ‘시를 읽을 때는 30대인 줄 알았는데 저와 연배가 되시는군요’ 라는 어느 기자의 이메일도 받았습니다. 농담으로 ‘예 나이 값 못하고 삽니다’라고 대답했지요. 젊은 시를 쓰는 것, 그것은 끝없이 나를 채찍질하며 이 시대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게 합니다. 때로는 파수꾼처럼 시대를 감시하며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가슴에 조금씩 쌓여가는 울분, 이 울분이 시의 자양분이 될 때가 있고, 오늘도 이 시대를 향해 총알을 난사하고 싶어 발기한 내 영혼을 봅니다. 그러다가 견딜 수 없으면 시로 사정하는 슬픔, 그래서 내 시엔 비릿한 정액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어류의 기억이 비늘로 번뜩이는 진화의 골목에 서성거리듯 내가 살아있음을 알리는 비린 냄새가 나는 것입니다
임애월 : 말씀을 듣고 나니 제가 읽었던 선생님의 시편들에서 슬픔을 넘어선 분노랄까, 울분이랄까.......그런 것들이 느껴집니다.
세 번째 시집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외에도 사랑에 관한 시편들이 비교적 많은 편이던데요.
김왕노 : 사랑은 영원한 내 문학의 주제고 사랑의 대상인 여성은 영원한 향수를 나에게 가지게 합니다. 여성은 내 시 쓰기의 원동력이고 구원이며 영원한 주제이자 뜨거운 화두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경험 중 가장 가치 있는 경험, 가장 아름다운 경험, 가장 비중이 있는 경험은 사랑입니다.
사랑 시 한편 들려드릴게요.
언제 넌 내 가슴을 지그시 밟고 간 백 년 전 꽃잎이었던가.
내 마음 지층에 남겨진 네 발자국은
숱한 내 고열과 생의 무게로 눈부신 화석으로 남았다.
물방울 화석보다 더 고운 네 발자국에
내 뺨을 문지르며 아직도 네가 나타나지 않는 늦은 저녁 모서리에
너를 낙서하는 날이 시작되었다.
가로등 켜지는 나직한 소리가 네 발자국 소린가
깜짝깜짝 놀라는 사이사이로 푸른 계절이 지나가버리거나 비가 내리기도 했다.
낯선 문장이 오래 서성거리기도 했다.
초승달에 마음 베여 흐느낄 때까지 나의 낙서 속으로 졸음이 찾아들 때까지
그립다고 했다가 그렇지 안다고 했다가
그럴지 모른다고 했다가 그럴 수도 있다고 했다가
시간은 증오마저 향기를 품게 하는데
언제 넌 내 가슴을 지그시 밟고 간 백 년 전 꽃잎이었던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뚜렷해지는 기억의 잎맥들
난 꽃잎을 그렸다가
네 얼굴을 그렸다가 보고 싶다고 했다가
그렇지 않다고 했다가 죽을 정도로 보고 싶다고 했다가
죽이고 싶도록 사랑한다고 했다가 널 만난 걸 후회한다고 했다가
심한 발작을 일으키는 추억을 다독거렸다가
저녁 모서리에 너를 낙서하는 동안에도
넌 내 가슴을 지그시 밟고 가는 지금도 그 백 년 전 꽃잎인가.
물기 머금은 듯 이 향기는
그리고 밤하늘에 무수히 마중 나온 저 별들은
나는 널 사랑하다가 죽어 버리려고 한 날들이 있었다.
너와 나는 서로를 통과해 멀어져 가는 안개라 한 적이 있었다. 서로를 축축이 적시다가는
네게 젖은 나를 뽀얗게 말린다고 바람을 기다린 적도 있었지만
이제 묻고 싶다. 내 안에 꽃잎의 발자국화석으로 남아있는 너의 흔적들
언제 넌 내 가슴을 지그시 밟고 간 백 년 전 꽃잎이었던가.
-「늦은 저녁 모서리에 너를 낙서하는 날이 시작되었다」
임애월 : ‘영원한 주제이자 뜨거운 화두가 바로 여성’이다...... 감동이네요.
김석준 문학평론가는 ‘시인 김왕노는 사랑의 사자다’라고 하면서도 그 어떤 사랑에도 구속되지 않는 아나키스트 그 자체....라고 했는데 정말 ‘사랑의 사자’가 맞으신 듯합니다. 그렇지만 구속은 되지 않는 아나키스트적인 사랑이요.
김왕노 : 사랑 = 여성이라는 등식이 나에게는 성립합니다. 그러나 내 사랑이 무조건 여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내가 살아가면서 스치는 모든 것이 내가 애증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할 여성과 같은 것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생명의 주체인 여자 같다>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내가 많은 사랑의 대상을 만났다는 것은 상대편에 대한 존중에서 나옵니다. 조물주에게 사람이 가장 애지중지해야 할 대상이 여자라는 전언을 들은 것 같습니다. 나도 조물주를 좇아 조물주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여자를 위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자가 가진 모성애를 훔쳐서 세상 모든 것을 보듬을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물은 여자가 변형된 것 그래서 여자를 사랑하듯 세상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이 즐겁습니다. 사랑이란 긴 어금니를 가지고 사랑이란 긴 갈기를 휘날리는 수사자로 포효할 수밖에 없습니다. 절망의 숨통에 어금니를 박아 넣을 수밖에 없습니다.
임애월 : 여성을 단지 남성과 성이 다른 대상이 아니라 이 세상을 창조하고 지탱해 나가는 버팀목 같은 존재라는 의미로 들었습니다.
말씀을 듣다보니 정말 선생님께서는 사랑 예찬론자 같습니다. 들리는 말들에 의하면 후배들에게 인기가 많은데,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더 많다고 들었어요. 하긴 남성미와 낭만성을 모두 지니셨으니 여성 팬들이 좋아하실 만도 하십니다
김왕노 : 여성 팬들이 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팬들을 내가 좋아하니까 상대적으로 그들도 나를 좋아하지 않나 생각합니다.(웃음)
사실 여성 팬들은 내 詩 안에 존재한 나를 좋아하지 실체인 나를 별로 좋아할 것 같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비유가 맞는지 몰라도 달콤하게 만들어진 아이스크림을 좋아하지만 아이스크림 만드는 과정이나 기계를 좋아하지는 않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임애월 : 작년에 네 번째 시집 『그리운 파란만장』을 펴내셨는데 일단 시집 제목이 시선을 확 끌어당깁니다. 독자들의 관심을 많이 받으셨지요?
김왕노 : 『그리운 파란만장』으로 시인들과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습니다. 그 시집의 시들을 라디오와 TV에서 인용하거나 낭송을 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파란만장을 그리워할 만큼 파란만장했느냐’는 질문 앞에서는 잠시 머뭇거리기도 했습니다.
내게 있어 ‘파란만장’은 내가 자초한 것이고 내가 선택한 것이므로 사실 그 파란만장을 즐겼습니다. 그러니 그리울 수밖에 없습니다. 파란만장의 실체는 나의 길일 수도 있고, 여자일 수도 있고, 돈과 관련된 일일 수 있고, 모임에 관한 것일 수 있고, 가족에 관한 것일 수 있고, 직장에 관한 것일 수 있고, 어머니, 부모와 형제, 지인이나 주위사람들일 수 있고...... 파란 하늘 아래 만장처럼 나부끼며 살아가는 모든 것이 내게 파란만장일 것입니다. 파란만장의 힘으로 나의 추억이나 삶은 여름 한철인 듯 늘 푸르러 갑니다.
고맙다 파란만장아
네가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출렁였고
네가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슬퍼했겠고
네가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아파했겠고
네가 아니면 어떻게 그렇게 헤매다가
꽃을 보고 새를 만나고
그 먼 강둑에 앉아 흐르는 강물을 보았을까.
파란만장하니 인생이다.
파란만장하니 노래한다.
파란만장하니 사랑한다.
파란만장하니 그립다.
파란만장아 고맙다, 파란만장하니 고맙다
-「그리운 파란만장」
임애월 : 파란만장한 ‘파란만장’은 아프고, 슬프고, 아름다워 그리워하시나 봅니다.
모든 예술의 극점은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대식 시인은 이 시집의 작품해설에서 ‘아름다움으로의 투신......어떤 조건도 없는 그 시적 투신’으로 미루어 선생님을 ‘유미주의자’라고 명명했던데요....동의하시는지요?
김왕노 : 예술이란 그 자체로서 자족한 것이며 어떠한 이면적 목적이 그 속에 내포되어서는 안 되고, 윤리적이라든가 정치적, 또는 다른 비심미적(非審美的) 기준에 의하여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유미주의자의 주창일 것입니다. 탐미주의라고도 하므로 난 유미주의자란 범주를 벗어나 있거나 유미주의자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습니다. 시를 통해 끝없이 낭만으로 가는 노 젓기, 시를 통해 인간본성의 아름다움을 찾아내 즐기려는 나의 식탐, 시가 처음이자 끝이고 시의 첨단이 또 시일 수밖에 없다는 나의 인식에 대한 평가라 정확히 나는 유미주의자이자 탐미주의자입니다.
임애월 : 음악이나 미술 같은 분야는 즉각적으로 그 느낌이 전달되는데 비해 문학은 읽고 난 후 수용자가 그 느낌을 재구성을 해야 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독자들의 담당하는 몫이 더 클 수밖에 없지요.
하나의 문학작품은 작가의 손을 떠나면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독립된 유기체로써 존재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때론 작가의 의향과는 무관하게 왜곡된 모양새를 하고 있을 수도 있지요. 선생님의 작품들도 그런 경우가 있었나요?
그 예가 있으면 작품 인용 좀 해주세요
위독은 거대한 짐승입니다
위독한 사이 철학자가 되기도 하고 울부짖는 얼굴이 되기도 합니다 숨겼던 진실을 각혈하듯 게워내기도 합니다 위독한 자는 심연에 가라앉은 고래가 되어 잠들지 않는 뇌로 우주를 명상하기도 합니다 위독하다는 소식이 짐승 한 마리로 먼 길을 밤 새워 왔을 때 나는 날 간 같은 영혼을 던져주려 했습니다 살 몇 근 거뜬히 베어주려 했습니다
일생에 몇 번 위독이란 짐승이 되었을 때
스스로의 살점을 녹여 뼈마디까지 드러나게 한답니다
무엇을 지탱하기 위해 살가죽을 밀며 드러나는 뼈마디들인지
죄마저 끝까지 버티게 해주는 뼈마디의 의도가 어디에 숨어있는지
결국 죽음 속으로 무너져가면서 왜 쉬 삭아 내리지 않고
마지막 까치 관속의 어둠을 견디는 뼈인지
후략의 말 뒤에 무엇을 덧보태고 싶은지 스스로 묻기도 한답니다
멀리서 그대 위독이란 짐승이 되어 누워있습니다
그대에게 철철 쏟아져 내리는 마지막 말들이 자귀나무 뿌리를 적셨는지 미루나무 뿌리를 적셨는지 창밖의 계절은 독오른 듯 푸르다는데
그대 이제 이승의 살점 다 빠지고 뼈만 앙상해진 위독이란 짐승
사랑이고 그리움이고 다 말라가 피골이 상접한 짐승
그러나 지금은 본성이 살아나 밤하늘을 향해 우우 울부짖는
지상의 마지막 순결한 한 마리 짐승
- 「위독」
김왕노 : 이 시에서 ‘위독’을 사랑이라 놓고 사랑 시의 절정이라 평하는 것을 종종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위독 = 사랑이라는 방식으로 해석하거나 중의적이라니 이 시 외에도 여러 번 있었으나 난 개의치 않습니다. 내가 시를 자유롭게 썼듯이 내 시를 자유롭게 해석하는 데는 아무 거리낌이 없습니다. 도공이 도자기를 만들어 내어 세상에 내놓았다면 그것을 가져간 사람이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 것과 같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위독이 자형의 죽음과 연루된 시였으나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었고 그렇다고 잘못된 데 대한 방관자의 입장도 아니었습니다. 내 시가 내 눈앞을 떠나면 그 시는 읽는 사람이 가져다 대는 프리즘에 의해 달라져 보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임애월 : 선생님께서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말 같은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셨는데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게 무엇인지, 어디를 향해 그렇게 줄곧 달리셔야만 하시는지요?
김왕노 : 의식은 하지 않지만 결국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닐까요?
달리면서 얻는 속도란 죽음으로 데려가는 악마의 손길이자 신의 충복입니다. 그래도 달립니다. 달려야 뛰는 심장, 가쁜 호흡, 스쳐가는 세상으로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달린다는 것에 나는 중독된 것 같습니다. 공을 찬다고 달리고 배드민턴을 친다고 달리고 마라톤을 한다고 달리고 몸이 달리지 않으면 마음이 북벌의 말이 되어 달립니다. 마음의 날을 세워 추풍낙엽처럼 북으로 상징되는 것을 날리면서 마음은 달립니다. 사실 달린다는 것은 남보다 앞서기 위한 노력이자 자기만족일 것입니다. 종마 같은 아버지가 나를 낳아 나는 달릴 수밖에 없는 잠재된 의식을 가진 것 같습니다. 내가 달려가려는 곳이 절정일 수 있고 누군가의 깊은 가슴 속이거나 우리의 신화의 별이 뜬 곳일 수 있습니다. 백두대간을 따라 달려가다 발길을 멈추는 주목이 우뚝 선 산정일 수 있습니다. 내가 달려가는 것은 눈앞이 환하게 트여 바다가 보이는 언덕일 수 있습니다. 물꼬를 터야 할 들판일 수 있습니다. 아니면 그 멀다는 사랑의 극점일 수 있습니다. 분명 달려가려는 곳은 나의 만족이 있고 함께 어울려 만족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무정부가 정부인 곳입니다. 풀꽃이 당국이고 물이 당국이고 구름이 당국이고 소녀가 당국이고 무엇이든 주체가 되는 곳입니다.
임애월 : 그렇군요. 누구든 현재를 안고 끝없이 달려야만 하고, 그러다 달리는 것을 멈추는 순간 그게 삶의 끝이겠네요.
어머니의 수의는 올해도 마당 가득 피었었는지 궁금합니다.
김왕노 : 저는 이제 불두화와 수국꽃을 구분할 줄 압니다. 수국이라면 불두화고 불두화라고 생각하며 수국일 때가 많았습니다. 수국 잎은 깻잎처럼 생겼고 불두화 잎은 갈래져 있습니다. 지금 고향의 집도 마당도 옛 고향도 사라졌지만 세상이 수국 가득 피는 마당이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수국인지 불두화인지 살피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수국꽃 기억이 어머니가 한 벌 입고 가신 수의라는 시를 다시 한 번 생각하면 이제는 수국으로 돌아오신 어머니를 만납니다.
임애월 : 바쁘실 텐데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이제 곧 처서가 다가오는데요, 가을 시 한편과 술(酒) 시도 한편 들려주세요.
아, 술에 관한 시는 같이 한잔 하시면서 듣는 걸로 하겠습니다. 이제 한잔 하시러 가시죠.....(웃음)
김왕노 : 고맙습니다. 함께 자리해 주신 이상정 시인님도 반갑고 감사합니다.
《한국시학》이 여름나무처럼 나날이 푸르러지기를 기원합니다.
당신은 말이 아니라 물로 흘러왔다. 말이 편한데 물로 흘러왔다.
말에 젖으면 따뜻한데 물에 젖으니 내가 으슬으슬 춥다.
말이 아니라 물로 왔으니 내게 틈만 있으면 당신은 줄줄 샌다.
바람이 불거나 햇살이 쨍쨍하면 증발하거나 물 얼룩을 남긴다.
말이 아니라 물로 온 당신, 어떤 날은 내 안에 호수로 출렁인다.
말이 아니라 물로 온 당신, 당신을 낮추고 낮추어 물로 온 당신
내 발끝을 적시며 물로 흘러온 당신, 내 갈증을 닦아주는 당신
저 멀리서 당신은 불빛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고 물로 흘러왔다.
여름 푸른 강이었다가 찬물 소리 내는 물로 내게 끝없이 흘러왔다.
-「물로 온 당신」
좌로부터 임애월, 김왕노 시인, 이상정 시인
파란만장한 삶을 위해 삶을 먼저 앓고,
파란만장한 사랑을 위해 사랑을 먼저 앓고,
파란만장한 詩를 위해 詩를 먼저 앓는 김왕노 시인......
그는 몸으로 시대를 살고, 몸으로 사랑을 살고, 몸으로 詩를 사는 이 시대의 진정한 로맨티스트이자 치열하게 아름다움을 탐색하고 폭식하는 탐미주의자이다.
삶과 사랑과 詩를 안고 끝없이 질주하는 그의 길목에 맑은 새소리와 푸른 별빛이 가득 쏟아지기를 기원한다.
이제 가을이 오고 있다.
김왕노 시인 약력
경북 포항 (옛 영일군 동해면 일월동) 출생
1992년 매일신문에 「꿈의 체인점」으로 신춘문예 당선
시집 - 『슬픔도 진화한다』 『말달리자 아버지(문광부 지정도서)』
『사랑, 그 백년에 대하여』 『중독-박인환문학상 수상집』
『사진속의 바다-해양문학상 수상집』 『그리운 파란만장』 등
수상 - 2003년 제8회 한국해양문학대상, 2006년 제7회 박인환 문학상
2008년 제3회 지리산 문학상
2013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 문학창작금 등 수혜 및 수상
현재 - 시인축구단 글발 단장
문학잡지 《시와 경계》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