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말 편지 Ⅱ
☑ ‘다른 말’과 ‘틀린 말’ 45
‘애매하다’와 ‘모호하다’
올해는 일본에게 빼앗겼던 나라의 주권을 회복한 지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여러 가지 행사들을 기획하고 있는 것도 70주년이 주는 무게감이 적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런저런 행사들 가운데는 우리말에 남아 있는 일본어의 잔재를 지우기 위한 국어 순화 운동도 있습니다.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7일까지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 연구팀과 대한민국 홍보 연합 동아리 ‘생존 경쟁’ 팀이 서울·경기 지역 남녀 대학생 350명씩 총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언어문화 개선을 위한 일본어 잔재 설문조사> 역시 그러한 의도에 따른 것입니다.
위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일본어 잔재 1위~30위 단어 가운데 대학생들이 평소에 가장 많이 쓰는 단어는 ‘구라(거짓말)’이고 그 다음은 ‘애매하다(모호하다)’입니다. ‘기스, 간지, 닭도리탕’ 등도 많이 쓰이는 사례에 속한다고 할 수 있지요. 이 가운데는 일본어 기원 외래어인 것을 알고 쓰는 것도 있겠지만 그러한 인식이 전혀 없이 쓰는 것도 없지 않은데, 대표적인 사례가 ‘애매하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매모호하다’라는 단어가《표준국어대사전》의 표제어로 등재되어 있는 실정이기까지 하니 ‘애매하다’가 일본어의 잔재라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를 수도 있으리라는 것이지요.
‘모호(模糊)하다’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는 ‘애매(曖昧)하다’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이른바 일본어식 한자어입니다. 결과적으로 ‘애매모호하다’라는 단어는 이른바 중첩어(重疊語)로서 동일한 의미를 지니는 ‘애매’와 ‘모호’가 중복해서 쓰인 것이니 국어 순화 차원에서 보자면 ‘애매’는 제외하고 ‘모호하다’로만 쓰는 것이 바람직한 우리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우리말 ‘모호하다’는 “희미하여 분명하지 아니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모호성’때문이었을까요? ‘모호하다’만으로는 뭔가 분명하지 않은 구석이 있어서 국어 화자들은 일본어인 ‘애매하다’를 빌려 ‘애매모호하다’라는 단어를 만들어 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애매하다’에 대해서는 한 가지를 더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어식 한자어가 아닌 고유어로서의 ‘애매하다’가 있어 ‘모호하다’와는 다른 의미로 쓰인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고유어 ‘애매하다’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고유어로서의 ‘애매하다’는 “아무 잘못 없이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아 억울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구체적인 용례를 몇 가지 제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