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회 동해무릉제 백일장 장원 작품
여행
정재하
2012년 여름
‘나’에 대한 성찰의 기회도 갖지 못한 채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한 무리의 불나방 떼처럼, 출세욕에 사로잡혀 신림동 고시촌에서 20대 중반을 할 일 없이 보냈고, 그렇게 20대 중반이 붉게 타는 저녁놀마냥 작별을 고할 무렵 허전하고 남루했던 27년의 삶을 일신하고자 동녘으로 떠났던 여향은, 지는 줄 알았던 내 인생에, 마치 동해안에 힘찬 에너지를 발하며 붉게 뜨는 일출처럼 희망의 새 빛을 아낌없이 주었다.
약 2년간의 고시 공부를 작파하고 발길 닿는 대로 아무 계획 없이 홀로 떠났던 여행.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혈혈단신 가볍게 떠난 여행이었지만 스물일곱이라는 나이와 나를 둘러 싼 사회 경제적 조건은 결코 가벼운 것만은 아니었다. 취직, 연애, 성취, 명예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사이에서 어느 것을 잡아야 할 것인지 수많은 질문을 안고 떠난 여행이 결코 가벼울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시점에서 3년 전의 여행을 회상하면, 여행 이전27년의 삶보다 여행 이후 3년의 삶을 더욱 풍요롭고 알차게 보낼 수 있었으며 인생에서 새로운 전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강원도는 나에게 미지의 먼 영역이었다. 발 한번 디딘 적 없고 일점혈육도 없는 낮선 타향. 지금도 3년 전에 왜 이토록 낮선 강원도 여행을 계획했던 것인지 알 수 없다. 사람에게 은명이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강원도를 여행한 것은 운명 그 자체였다.
첫 행선지 영월에서 친절하게 청령포 가는 길을 알려주신 할머니 외표에서 넉넉하고 인심 좋은 강원도의 순박함을 읽었고, 수려한 산맥과 R계곡으로 둘러쳐진 김삿갓 유적지에선 일체의 가공과 허식 없이 모든 것이 자연 그대로인 순수함을 발견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데, 방랑시인 김삿갓은 순수한 자연의 심성으로 부귀와 명리를 풍자한 것이로구나! 지난 27년의 삶이 김삿갓이 풍자했던 모습은 아니었던가. 사람들에게 위세를 과시함을 중시한 나머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잃어버림이 아니었던가.
계획에도 없던 강릉 주문진 밤바다 여행은 단지 오징어잡이 배의 번쩍이는 불빛을 보고 싶다는 매우 소박한 동기에서 시작된 것이었지만, 그 곳에서 27년의 이름을 바꾸게 될 줄은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이름(名)을 바꾼다는 것은 명(命)을 바꾼다는 것이요, 그것만큼 엄청난 혁명이 또 있단 말인가! 그날 밤 주문진 밤바다에서 만난 기인(奇人)과 캔 맥주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인간사의 부박함과 시사를 논하였고 그 결과 그 기인은 나의 이름을 무료로 풀어주겠다며 제법 근사한 한문 서체로 획수며 음양을 풀어주는 것이 아닌가. 이름을 친절히 풀어주던 기인과 지금은 연락조차 닿지 않고 있으니, 이토록 운명적인 만남과 헤어짐이 또한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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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인상 깊었던 여행이 있은 지 1년이 지났다. 부초처럼 정처 없이 떠돌던 내 인생을 새롭게 정리하고 새로운 명패로 새 출발하자는 각오로 과감히 혁명(革命)을 단행한 지 또 다시 1년이 지났다. 2014년, 스물아홉의 나이에 다시 경찰공무원 시험에 도전하였고, 이제는 여행을 통해 얻게 된 새로운 이름으로, 당당히 강원지역에 응시하여 합격증을 받았을 때, 명단 속에서 ‘정재하’ 이름 석 자를 발견했을 때, 잠시 잊고 있었던 주문진 밤바다 여행이 떠올랐고, 9월 8일 동사무소에서 전입신고를 마칠 때 청령포에서 사람 좋은 미소를 건넨 할머니가 떠올랐다. 3년 전 여행에서, 내가 강원도와 이렇게 인연을 맺게 될 줄 그 누가 알았을까.
평생 반려자가 될 것 같은 여자 친구와 함께 떠난 무릉계곡 여행. ‘무릉(武陵)’은 도연명의 <도화원 시>에 나오는 무릉도원의 이름을 따 만든 지명이라 한다. 청빈한 선비 도연명은 위<도화원 시>에서 소박하고 사람을 옭아매는 제도가 없는 자연의 이상향을 제시하였다. 뒷사람이 무릉계곡의 이름을 이 무릉도원에서 가져온 것이 어찌 단순한 풍경의 아름다움을 찬미하기 위함일 것인가? 부귀영화와 명리의 추구, 홍진 가득한 세태 속에도 인간의 본 모습을 잃지 않고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청렴하고 고결한 삶을 살았던 도연명.
무릉계곡의 굳센 바위는 계곡의 맑게 흐르는 든든한 수원(水源)이 되고 있으니, 우리 사람들도 저 무릉계곡의 굳센 바위처럼 인간 본연의 내면을 굳게 간직하며 세속의 명리와 부귀에 흔들리지 말라는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서른의 나이에 공직에 발을 디디는 나에게 무릉계곡이 주는 가르침은 여행이 주는 또 하나의 묘미이다.
3년 전의 여행이 나와 강원도를 잇는 새로운 혁명의 여행이었다면, 여자 친구와 손잡고 떠난 무릉계곡의 여행은 공직자로 출발하는 내게 도연명이라는 평생의 멘토를 만나게 해 준 가르침의 여행이니, 내 이제 이 여행을 평생 간직하지 않을 수 있으랴!
수상자 명단
산문(일반)
장원: 정재하- 동해시 천곡로
차상: 캐서리 구릉- 동해시 동회동
차하: 이덕환- 동해시 초원
참방: 추윤희- 동해시 동회동
박영숙- 동해시 평릉동
산문(학생)
차상: 정연주- 동해시 북평여자중학교 1-7반(동해무릉제)
차하: 박유진- 동해시 묵호여자중학교 3-2반(여행)
참방: 전소현- 동해시 북삼초등학교 2-2반(선물)
이지민- 동해시 동해삼육초등학교 2-2반(여행)
전원정- 동해시 광희고등학교 2-4반(여행)
김기민- 동해시 북평여자중학교 1-6반(여행)
김태익- 동해시 묵호중학교 2-5반(가을)
이경환- 동해시 북평중학교 1-2(가을)
시(일반)
차상: 송인식- 동해시
차하: 이경아- 동해시 평릉동
참방: 어윤자- 동해시 동회동
김기영- 동해시 양지길
김태호- 동해시 동호동
이소민- 동해시 한섬로
박말숙- 동해시
권필자- 동해시
시(학생)
차상: 장영철- 동해시 남호초등학교 6-1
차하: 이서은- 동해시 청운초등학교 2-2
참방: 이수인- 동해시 남호초등학교 3-2
최재원- 동해시 북평중학교 1-2
최보림- 동해시 북평여자중학교 2-8
김유진- 동해시 북삼초등학교 2-2
김가인- 동해시 북평여자중학교 1-6
정에림- 동해시 망상초등학교 2-한별반
최용현- 동해시 삼육초등학교 2-2
최요순- 동해시 청운초등학교 3-2
김태훈- 동해시 동해중앙초등학교 6-3
장진솔- 동해시 동해중학교 1-5
김 민 - 동해시 북평초등학교 5-1
김지완- 동해시 청운초등학교 6-2
장낭현- 동해시 북평여자중학교 1-6
정헤원- 동해시 광희고등학교 1-7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10.09 11:30
첫댓글 시
최재원 북평중1학년2반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