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화란 무엇인가?
꽃은 시간이 흐르면 이내 시들어 버리고 마는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압화는 꽃의 수분을 제거하여 눌려 말린 평면적 장식의 꽃 예술을 말하며 우리말로는 적당한 표현을 찾기 어려워 한자를 빌어 압화(압화)라고 한다.
압화는 길가의 작은 이름 모르는 꽃, 무심코 스쳐 버리는 작은 풀잎들을 비롯하여 절화 낙엽등을 그 모습 그대로 액자나 병풍에 담을 수 있고 양초, 보석함, 명함, 카드, 스탠드등의 일반 생활 용품에 응용해서 광범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아름다운 꽃 공예이며 액자에 넣으면 꽃 그림이 되는 신비한 꽃 예술이다.
당초에는 영국 귀족층에서부터 압화가 시작되었다고 하지만 근래에는 일본에서 가장 활발한 전성기를 맞고 있다.
압화는 특별한 손재주가 없어도 누구나 쉽게 배울 수가 있으며 꼼꼼함과 세심함을 요구하므로 어린아이들에게는 침착함과 상상력을 키워주며 어른들에게는 정서적 안정감과 집중력을 주는 이점이 있다.
꽃과 함께하는 생활은 여유와 향기가 있다. 우리가 매일 보고 쓰는 생활용품마다 그 속에서 들에서나 볼 수 있었던 작은 꽃잎하나 풀잎 한줄기를 찾을 수 있다면 그 모습 그대로가 하나의 예술이며 새로운 생활문화속에 꽃 문화로 정착될 수 있을 것이다.
압화 표현의 국가별 특색은 먼저 유럽을 보면 색채의 우아함과 액자의 고풍스러움은 고위층의 생활의 맛을 나타내준다. 색은 아름다운 꽃 색깔을 중요시하지 않고 대개 황금색, 황갈색 계통을 표현의 주제로 삼는다. 선은 완약하고 대범하며 구도는 명쾌하고 섬세하다. 즉 유럽풍 압화는 고급스러운 무드 압화이다.두째로 일본은 그 특색을 한마디로 꼬집어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하다.
기법을 중심으로 보면 유머스러운 환상을 표현하는 형태와 자연의 멋을 강조하는 자연풍경식 형태, 생활응용 작품에 응용되는 화려한 구도와 색의 선명함을 강조하는 형태와 마지막으로 동물과 인물등을 표현하는 회화적 압화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셋째로 한국의 압화는 유럽풍과 일본식을 접목한 성향을 갖고 있지만 최근에는 동양화 기법등 한국식 압화 기교와 품격을 세워 보급하는 등 독자적인 표현기법이 개척되고 있다.
압화의 역사
대부분의 사람들은 네잎클로버나 예쁜 꽃 또는 아름다운 단풍잎등을 책갈피 속에 소중히 끼워 두었다가 앨범의 사진 사이에 붙여 다정한 사람에게 사연과 함께 보냈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아름다운 꽃의 색과 향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요구는 지극히 본능적인 것이고 또한 동서고금을 가리지 않는 보편적인 풍습이다.
따라서 압화는 자연발생적으로 행하여져 왔지만 그 발전의 첫단계는 식물에 대한 학술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식물표본이다.
식물표본에 대한 최초의 구체적인 기록은 이탈리아의 식물학자 Kinee에 관한 것이다. 그는 1551년에 오스트리아의 한 의사에게 자신이 제작한 식물표본 6백여종을 보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Kinee는 도대체 몇 연도부터 표본을 제작하기 시작했을까? 상세한 기록은 없지만 그의 제자였던 Sera Dotsipo가 1532년에 표본작업에 참여했다고 했기 때문에 1532년보다 2년전쯤인 1530년 정도로 추정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용척마금의 저서 압엽집을 통해 그 기원을 추측할 수 있다. 압엽집에 의하면 일본 에서의 압화의 기원은 1767년에서 1848년 사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 압엽집은 단지 식물 표본제작 연구와 학술용에 그 소개의 중점을 두었을 따름이다. 또압엽집에이어 1803년부터 1901년사이에 윤동규개가 기초압화표본 서적인 태서초명소를 펴냈지만 이 역시 10cm*27cm의 종이위에 접착제로 식물을 붙이고 그 오른쪽 하단에 10cm*6cm 정도의 설명서를 붙여 식물명 수집장소 연월일 채집자 성명 등의 항목을 기입한 식물 표본집에 불과했다.
그러면 식물표본이 어떻게 변천하고 발전하여 압화예술을 성립시켰는지를 살펴보면 현재 서적에 기록되어 있는 바로는 영국의 표본 수집가 Betiwa가 1658년부터 1718년 사이에 끊임없이 국내외의 식물 애호가들에게 식물 건조표본 제작을 추천해 왔다고 한다. 따라서 예술관점에서 표본을 보면 능히 Betiwa를 표본예술의 개척자라 칭할 수 있는데 그는 수많은 표본제작 과정 서적을 인쇄하여 애호가들에게 참고자료로 제공하였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식물표본 단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다가 19세기 후반 빅토리아 여왕시대부터 식물표본의 단계를 벗어나 본격적으로 발달하였다. 그 당시 궁중의 여인들은 방에서 자수를 놓는 것이 유일한 취미 생활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들의 자세를 나빠지게 하고 건강에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여왕은 귀부인들에게 들이나 해변가에 나가서 야생화를 채집해와서
성서의 표지를 장식하거나 액자에 넣어 벽면을 장식하게 하였다. 이것은 점점 그 구도나 기법이 발달하여 궁중의 귀부인이나 상류사회 부인들의 우아한 취미로서 넓혀져 갔다. 현재도 유럽에서는 압화를 애호하는 상류사회 부인이 많다고 한다. 이밖에 Hiludalobins는 1974년에 예술적 압화를 저술하여 판매하였다.
한편 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후 건조제를 개발하여 시장에서 호황을 누렸으며, 뒤이어 간단한 식물표본이 제작되고 이것이 오늘날의 압화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만에서는 일본에서 압화를 배운 후 귀국한 사람들이 1983년을 기해서 압화교육을 확산시키면서 붐을 일으켰다. 그 후 꾸준한 성장을 보여 1987년 7월18일에는 대북시 압화예술추진협의회가 발족되어 더욱 왕성하게 발전하여 학원생만 해도 수만명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는 옛 선조들이 단풍잎이나 은행잎 대나무잎 등을 문창호지에 발라서 실내에서도 자연에 대한 정취를 돋구었고 한편으로는 재앙방지용 벽장식으로 삼아 온 전통이 있다.
press flowe 만드는 방법
프란지와 유광제는 둘다 플레스 플라워를 고정.접착시키는 데 사용되지만 프란지는 얇은 종이로 부채나 스텐드, 카드 등에 꽃을 붙일 때 많이 이용하고 유광제는 상자나 열쇠고리 등의 악세서리에 많이 이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