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인권영화제
추모와 저항의 특별상영회:
지금, 트랜스젠더로 살다(hrffseoul24.org)클릭하면 바로 영화제!
(2021.03.21. ~ 2020.05.17)
상영작(7편):
퀴어의 방/우리가 여기 있다/씨씨에게 자유를/있는 존재
내 몸은 정치적이다/엄마, 나는 공주님이야/내 이름은 마리아나
"서울인권영화제는 5/17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 날까지
추모와 저항의 특별 상영회를 엽니다.고 변희수 하사, 김기홍 활동가, 은용 작가의 삶과 뜻을 기억하고, 혐오와 차별 없는 우리의 내일을 이어가기로 다짐합니다.우리는 끊임없이 서로의 안녕을 묻고 지금, 여기 우리의 존재를 드러낼 것입니다."
엄마, 나는 공주님이야Me Girl, Me Princess
마리아 아람부루, 발레리아 파반 – 아르헨티나 – 2014 – 47분 – 다큐멘터리 – 에스파냐어 – 한국어자막
20회 서울인권영화제: 기억, 하다(2015) 상영작
영화는 생물학적 남자 쌍둥이를 낳은 엄마의 인터뷰로만 이어진다.
쌍둥이 중 한 명은 생후 18개월이 되어, 말을 할 수 있게 되자마자 말한다.
“엄마, 나는 공주님이야!” 뿐만 아니라,
인형을 갖고 놀기를 좋아하고, 수건을 긴 머리인 것처럼 머리에 쓰고, 엄마의 티셔츠를 드레스 삼아 입는다.
서너 살이 되어서는 자기를 “여자이름”인 “루아나”로 불러달라고 한다.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심리상담사, 의사 등을 찾아가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행동들을 못 하게 하라고만 할뿐이다.
좋아하는 것들을 못 하게 하자, 루아나는 매일 울며 슬퍼했고 편안해 하지 않았다.
이에 엄마가 루아나에게 허락하는 것은 점점 많아진다.
집에서 치마 입기, 집 밖에서 치마 입기, 치마 사기, “여자”로 유치원 다니기⋯
학교에 가서도 “여자”로 대해 달라고 요구하자, 학교는 루아나의 학급만 “남자” 줄, “여자” 줄을 뒤섞어 버린다.
이를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엄마의 표정은 이게 얼마나 우스운 일이냐고 말하는 듯하다.
루아나를 이해하고 지지하게 될수록,
엄마는 세상이 얼마나 “여자” 아니면 “남자”로 억지스러울 정도로 구분되어 있는지 느끼게 된다.
쌍둥이 남자로 태어난 아이가 한 첫 마디 말이 "엄마, 나는 공주님이야"라는 말이었다니, 정말 충격이었다.
트랜스젠더의 경우, 빨라도 초등학생이나 청소년 시기에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 갈등한다는 말은 들었어도 이런 경우는 처음 들었다. 성정체성이 후천적인 영향이 아니라 선천적인 것임을 확실히 보여주는 영화다. 일부 개신교에서 주장하듯 성소수자의 전환치료가 가능하다는 말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어느 날이었어요. 고추를 잡더니 안 보일 때까지 뒤로 밀어 넣더군요. 그러고는 제게 와서 이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해요."
어린이집 문 앞에 서서 안 들어간대요. 울기 시작했죠. "왜 어린이집이 싫은데?" "나한테 남자아이라잖아요. 남자 줄에 서래요."
쌍둥이 오빠가 제일 힘들어했죠. 친구가 없었거든요. 남자가 여자로 변하는 집에 무서워서 누가 놀러 오겠어요. 그러니 우리 아들은 친구가 없었죠. 어떤 남자아이도 우리 집에 오지 않았어요.
우리 아들은 루아나에 대해 진작 알고 있었대요.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동생이 뭐 갖고 싶으냐고 물으면 "얘는 인형을 좋아해요." "넌 참 예뻐, 루아나" 이 말도 오빠가 처음 해줬고요.
어린이집 아이들 중에 절반쯤은 이해한 듯해요. 아이들이 정체성이 뭔지 이해해서 그런 건 아니죠. 루아나에게 고추가 있는지 묻지도 않고요. 어떻게 여자가 됐는지 묻지도 않았어요. 아이들은 그렇다는 거죠.
아이들 절반은 받아들였지만, 나머지 절반은 정말 우리를 힘들게 했어요. 부모의 이해가 부족했거나, 아빠가 겁을 줬다던가, 의심하거나 안 좋은 말들을 아이들한테 했기 때문이죠.
전 다른 부모가 하기 힘든 행동도 했어요. 아이를 존중했죠. 존중할 뿐 아니라 돕기로 했고요. 자기 탓이 아니란 걸 이해하도록 도왔어요. 다른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러는 거고 네겐 아무 잘못도 없다고요.
부모들이 전염병이 아니라고 깨달았는지는 모르겠어요. 상대편 성이 되고 싶다고 느낀 것 말이예요. 아무도 루아나의 영향을 받지 않았어요. 아무도요. 루아나뿐이었죠. 모두 그대로였고, 우리 아이만의 문제였어요.
우리 아이가 괜찮다는 게 제일 중요했어요. 여자로서 어린이집을 다닌다는 사실이죠. 즉, 24시간 내내 여자가 되는 거죠.
어린이집에서 여자아이가 된 것이 아이의 삶을 바꿨어요. 더 만족스러워했고, 빠지는 날도 없었어요. 등원하는 건 물론이고 친구와 선생님도 좋아했죠.
고추도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소중한 거라고 설명해줬거든요. 그게 없으면 소변을 못 본다고요.
넌 특별한 아이라고 했어요. 있는 그대로의 널 아끼고 포기하지 말라고 했어요.
고추를 가진 특별한 소녀니까 고추도 아껴줘야죠. 나중에 커서 완전한 여성이 되고 싶다면 지금의 몸도 사랑할 줄 알아야 해요.
어깨가 축 처져 돌아오더니 고추가진 여자아이는 없대요. 하루는 인형치마를 들춰보더군요. 모든 인형의 치마를 들춰보는 걸 알아챘어요. "엄마, 인형들은 고추가 없어요." "고추 달린 인형 갖고 싶니?" "네, 저처럼요" "그럼, 인형에다 고추를 달아주자꾸나."
우린 찰흙을 좀 샀어요. 작은 공처럼 빚어서 고환을 만들었죠. 인형의 작은 고추를 보고 어찌나 기뻐하던지요. 인형치마를 들어올리면 자기와 똑같았거든요. 자기 치마 속에도 그게 있으니 일체감을 느낀 거죠. 인형 10개를 들고 달려오더니 "모두 만들어주세요." 이제 인형 사건은 해결된 셈이죠. 잘 갖고 놀다가도 치마 속을 들여다보곤 하는데, 고추가 잘 달려있나 보죠. 그러고는 조용히 잘 놀고요.
처음에는 저희 선택이 옳은지 말해주는 사람이 없어 힘들었죠. 아이가 상처받을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고요.
친척들도 아이가 힘들어할까 봐 걱정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대할지 아니까요. 비판하고 벌주고 힘들게 하죠.
우리 가족의 판단, 그리고 제 판단은 옳았을까요?
저희 어머니는 집에서만 여자로 키우라고 하세요.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밖에선 남자여야 한대요. 그래야 상처받지 않는다고요. 큰 언니는 저보다 10배는 개방적인 사람인데요. 애초부터 루아나를 인정했어요.
"이모, 난 루아나에요. 이름 안 부르면 말 안할래요."
가령 병원에서는 남자아이 이름을 부르죠. "그건 내 이름이 아니에요. 루아나라고요."
좋아하거나 필요한 건 똑부러지게 얘기하죠.
'성별정체성 법안'이 통과되었을 때, 루아나의 정체성을 찾아주기로 했어요.
병원에서 남자 이름으로 불릴 일도 없죠. 루아나의 신분증을 만들려고 했어요. 등기소에 가서 서류도 작성했고요.
우리가 뭘 신청하는지 직원들은 이해하지 못했죠. 등기소에서도 이런 어린아이는 처음이었던 거예요.
마침내 연락이 왔는데, 등기소가 아니라 병원이었어요. 법원이 지정한 자문가가 제게 연락을 했어요.
무슨 일인지 가봤죠. 저희 부부는 변호사와 루아나와 함께 갔어요.
사춘기 전전 단계로 간주하더군요. 뭔가 결정하기도 힘든 다섯 살 꼬마인데다가 언제든 변할 수 있고 성격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대요. 그래서 거절당했죠.
이런 경우는 자기들도 처음이라 이해가 안 간다고 했어요. 자문가는 루아나를 보고 나서 완전히 확신하더군요. 여자아이라는 걸요. 신분증을 발급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요. 하지만 항소해야 한대요. 사법적 사안은 아니지만 정식적인 절차가 필요하다고요.
글쎄... 제가 바라는 건 세상이 아이를 인정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세상에 맞설 만큼 아이가 강해지길 바랄 뿐이죠. 있는 그대로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고요. 지금까지 싸워온 것처럼 밀어붙이려면 자신의 의지를 고수하고 단단한 사람이 되는 거죠.
막연히 밝은 미래를 꿈꾸거나 환상을 갖기보다는 강한 사람이 되었으면 해요. 어떤 상황이든 맞설 수 있을 만큼요.
정말 길지만, 노트에 써놓은 대사를 죽 타이핑한 것은 누군가의 존재가 사회적으로 온전히 수용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위로를 받고 힘을 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엄마의 마지막 바람처럼 "어떤 상황이든 맞설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람이 되라고"만 말하고 싶진 않다. 당신 혼자가 아니라고, 당신 존재를 온전히 수용하려는 많은 이들이 있다는 걸 기억하라고. 우리도 세상의 편견에 맞서 함께 싸우고 성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데 함께 하겠다고 말하고 싶다.
영화의 엔딩 문구가 감동적이다.
"이 인터뷰는 2012년 12월에 진행되었다. 2013년 10월, 루아나는 신분증을 받아 세계 최초로 아동/청소년 트랜스젠더가 되었다! 항소 절차를 거치지 않고 국가공인신분증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