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대로 풀리지 않는 일상, 지쳐버린 스스로를 보듬고 재정비할 수 있다면 어떨까?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시험, 연애, 취업... 뭐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 버거운 일상을 잠시 멈추고 고향으로 돌아온 혜원의 이야기이다. 남들과는 다른, 자신만의 삶을 살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재하', 평범한 일상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은숙'과 함께 직접 키운 농작물로 한 끼 한 끼를 만들어 먹으며 겨울에서 봄, 그리고 여름, 가을을 보내고 다시 겨울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특별한 사계절을 보내며 고향으로 돌아온 진짜 이유를 깨달아간다.
이 영화를 처음 만난 건 2018년, 내가 14살이던 해였다. 리틀 포레스트는 ‘저렇게 살고 싶다’라는 강한 느낌과 ‘좋은 힐링 영화 한 편 봤구나’ 정도의 첫인상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휘몰아치는 중간고사, 수행평가, 친구관계 문제로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나는 리틀 포레스트가 보고 싶다며 집 바닥에 드러누워 엉엉 울었다. 엄마와 아빠의 황당해 하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초등학생 때 이후로 그런 행동을 한 게 처음이라 때 부리던 나도 나의 행동이 참 당황스러웠다. 더더욱이나 갑자기 리틀 포레스트가 떠올랐던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다. 참 신기한 일이다. 여하튼, 꼬깃꼬깃 모았던 용돈으로 영화를 결제하고 계속 생각날 때마다 봤다. 18살인 지금까지 최소 60번 이상을 감상했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일상을 다시 온전히 살아갈 힘이 생긴다. 기분이 좋았던 날, 바빠서 지친 날, 슬프고 우울한 날. 언제 보아도 참 좋은 영화다.
영화 속 혜원의 일상은 내게 이상적인 삶의 형태인 것 같다. 처음엔 내게 농촌 판타지라도 생긴 줄 알았다. 하지만 농촌이라는 영화의 장소적 배경보다는 스스로를 위한 밥을 정성스레 해 먹으며 자기 자신을 대우하고 챙길 줄 아는 주인공의 모습, 주변인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함께 살아가는 삶의 형태가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나는 15살부터 17살까지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빌라에서 언니들과 기숙사 생활을 해왔다. 24시 카페에서 pt 준비를 하며 밤을 새우고, 맥도날드의 팬케이크를 사 먹은 후 학교에 가, 발표 시간 전까지 20분 정도 쪽잠을 잔 후 발표를 하고 피드백을 받고, 학교가 끝나면 머리를 감고 또 24시 카페에 가서 피드백 반영을 하며 밤을 새우고…의 반복이었다. 외모 강박이 심해지고 나서는 하루를 음료수 혹은 에너지바 하나로 때웠다. 음식을 먹으면 후회가 밀려왔었다. 몸도 망가지고 마음도 힘들었던 것 같다. 내가 나를 귀하게 대하지 않았고 나 스스로도 그걸 느꼈을 것이다. 잘 자고 잘 먹고 나를 잘 챙기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영화 속 혜원은 도시에서 임용고시 준비와 알바를 병행한다. 편의점 폐기 도시락으로 식사를 하고, 스트레스 상황 속, 자신을 잘 챙기지 못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나의 서울 생활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고, 인스턴트 음식은 나의 허기를 채우기엔 부족했다. 배가 고파 돌아왔다는 나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라는 혜원의 말은 나에게 깊이 와닿은 대사였다. 영화에선 고향에 돌아온 혜원이 요리하는 장면이 길게, 자주 표현되는데, 바쁜 일상 속에서 후다닥 먹는 인스턴트식품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여유롭게 만들어 먹는, 그런 쉼을 표현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마을 인생 학교에 오게 된 후 리틀 포레스트를 한 번 더 보았는데, 영화 속 혜원이와 비슷한 상황을 살아가게 된 것 같아 신기했다. ‘이렇게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아닌, 삶의 방향을 모색하는 감각의 강한 힘인 것 같다.
혜원은 고향으로 돌아가 여유로운 일상을 보내며 해답을 찾아가지만, 고향인 미성리가 혜원의 리틀 포레스트인 것은 아니다. 그 안에서 혹은 다른 곳에서 혜원 스스로 자신의 리틀 포레스트를 찾아야 한다. 그것이 자연이든, 친구들이든, 직접 해 먹는 음식이든, 그것은 이미 존재할 수도 앞으로 만들어나갈 수도 있다. 하나가 아니라도 좋다. 혜원 엄마의 리틀 포레스트가 자연과 요리, 그리고 혜원에 대한 사랑이었던 것처럼.
혜원이의 엄마는 혜원이가 힘들 때마다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과 햇볕을 기억한다면 언제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또한 그 뿌리의 힘으로 혜원의 엄마도 혜원도 자신만의 작은 숲, 리틀 포레스트를 찾고 꾸리기 위한 삶의 방향으로 걸어간다. 우리는 살면서 계속 '옮겨 심어'진다. 주변 상황은 바뀌기 마련이고, 감정은 매번 요동친다. 혜원 또한 마찬가지이다. 서울로 '아주심기'를 하러 갔지만 실상은 '옮겨 심기'에 불과했다. 또다시 고향으로 옮겨심어진 해원은 고향에서 사계를 보내며 자신의 아주심기 장소를 정하려 한다.
나의 리틀 포레스트는 장소가 아닐 것이다. 동물, 책 한 권, 혹은 영화 한 편. 모든 것이 나의 리틀 포레스트가 될 가능성을 지녔다. 삶에 지쳤을 때, 돌아갈 나의 작은 숲, 리틀 포레스트. 그것을 꾸려나가야겠다. 겨울을 겪어낸 양파는 봄에 심은 양파보다 몇 배나 달고, 단단하다. 몇 배나 달고, 단단한 삶의 모습이 나와 함께할 것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첫댓글 달달한 양파씨~ 잘 읽었어요.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