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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요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2)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사도행전 4:23-31)
먼저, 두 가지 양해를 구합니다,
하나는 설교 제목입니다.
지난 달 설교 제목은 “성령은 핸드폰입니다”였습니다.
점잖지 못하다고 할까, 좀 이상한 느낌을 주는 제목이었지요.
이번 달 설교 제목도 마찬가지로 이상한 느낌을 줍니다.
“성령님, 다시 한 번!”, 불완전한 문장이고, 설교 제목에는 느낌표를 쓰는 법이 별로 없는데 느낌표가 붙어 있습니다.
제목이 성도들의 호기심을 일으켜 설교를 잘 듣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정했습니다.
또 하나 양해를 구할 것은,. 설교는 성경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데 오늘 설교에는 한국교회 이야기가 좀 많이 들어 있습니다.
설교에는 설교자 자신의 이야기는 될 수 있으면 하지 말아야 하는데 제 이야기도 좀 들어 있습니다.
유익이 되기를 바라면서 조금 탈선을 하는 것이니까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지난 달에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달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우리는 지금 사도신경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사도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신앙고백입니다.
제일 먼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 다음에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음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서는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 ‘예수님은 이런 분이다’, 설명이 붙어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는 특별히 자세합니다.
그런데 성령에 대해서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성령을 믿사오며” 이것이 전부입니다.
그 다음부터도 설명이 없습니다.
“거룩한 공회”,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 ”몸이 다시 사는 것“ ”영원히 사는 것“, 이렇게 카워드들만 나옵니다.
‘다른 것들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성령님은 성부, 성자와 함께 삼위 가운데 한 분이신데 왜 아무런 설명이 없을까? 불공평하지 않은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성령님에 대해서는 왜 아무런 설명이 없을까요?
여기에 대한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신학자들이 그 이유를 추측하여 만든 답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 답은 이렇습니다.
”사도신경이 만들어지던 시기에는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셔서, 성령이 어떤 분인지 설명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도들의 시대, 초대교회 시절에는 성령이 정말 강하게 역사했습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있는 사도행전은 초대교회의 역사를 기록한 성경인데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별명이 무엇일까요?
끝의 두 글자는 ‘행전’입니다.
‘아, 알겠다! 바울 이야기가 많이 나오니까 <바울행전>이겠구나!’
아닙니다, 사도행전의 별명은 ‘성령행전’입니다.
‘성령이 행한 일의 기록’이라는 뜻입니다.
신구약성경 66권에 ‘성령’이라는 말이 197번 나오는데 그 가운데 1/4인 50번이 사도행전에 들어 있습니다.
‘초대교회 시절에 강력하게 역사하셨던 성령님, 지금, 한국교회에 다시 한 번 강하게 역사하여 주십시오, 용산교회에서 다시 한 번 강하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오늘 설교 제목에는 이런 뜻이 들어 있습니다.
성령은 초기에는 예루살렘에서 강하게 역사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로마에서 그랬습니다.
중세교회의 중심지는 로마였지요.
그 다음은 유럽에서 그랬습니다.
유럽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나서 개신교가 탄생했습니다.
감리교회도 영국에서 탄생했습니다.
그 다음은 미국입니다.
미국은 청교도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세워진 나라이지요.
미국교회가 세계 여러 나라에 선교사를 파송했습니다.
다음은 어디였을까요?
선교학자들은 한국이라고 말합니다..
20세기에는 한반도가 성령역사의 중심지였습니다.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에서 시작해서 1970년대와 1980년대 여의도에서 열린 대형집회들까지, 성령의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모두 한국교회 같으면 20세기 안에 세계복음화를 이루 수 있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오늘 설교제목에는 ‘그 때 그렇게 한반도에서 뜨겁게, 강하게 역사했던 성령님, 지금 다시 한 번 역사하여 주옵소서!’ 하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한국 다음은 어디일까요?
이것은 ‘지금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하는 뜻을 가진 질문인데요, 선교학자들은 지금은 중국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중국의 기독교인 숫자가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이런 질문을 하면 답이 둘 나옵니다.
어떤 분은 ‘3천만입니다’라고, ‘예, 1억이 넘습니다’ 하는 분도 있습니다.
둘 다 맞는 답입니다.
‘3천만’은 정부에 등록된 교인들의 숫자이고, 1억은 정부에 등록되지 않은 교인들까지를 합한 숫자입니다.
중국은 기독교를 좋아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독교인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막을 수 있는 세력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음은 어디일까?
모르지요.
그러나 성령의 역사가 진행되어온 방향을 보면 이슬람권이 될 것이 것이 분명하다고들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어디일까?
다시 예루살렘이 될 것이라고들 말하고 있습니다.
잠깐 말씀 드렸는데 20세기, 그러니까 1900년대 한국교회의 부흥, 정말 대단했습니다.
1907년, 평양에서 시작된 대부흥의 열기, 뜨거웠습니다.
그것을 이어받아 1910년에는 ‘백만 명에게 전도하자’하는 ‘백만 명 구령운동’이 벌어졌습니다.
분단을 겪고, 6․25 전쟁을 겪으면서 남한의 교회는 더 부흥했습니다.
저 북녘이 교회가 매우 흥왕하던 곳인데 북녘의 교안들이 많이 월남해서 곳곳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7년 전인데요, 한국교회의 역사를 연구하는 감리교 목사님들 사이에서 ‘우리 북한에 있다가 남으로 내려온 감리교회들에 대해 연구해 봅시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먼저 ‘그런 교회들을 뭐라고 불러야할까요?’ 하는 것을 의논했습니다.
저는 근북교회(根北敎會)라고 하자고 했습니다.
근, 뿌리가 북, 북쪽에 있는 교회라는 뜻입니다.
그때 감신대 교수였던 이덕주 목사님이 ‘향북교회’(鄕北敎會)라고 하자고 했습니다.
향, 고향이, 북쪽인 교회라는 뜻입니다.
저는 ‘저도 향북교회에 찬성하겠습니다. 그런데 향북교회라고 할 때 향 자는 ’고향 향‘ 자이지만 때로는 ’향할 향(向) 자‘를 쓰는 것도 좋겠습니다. 관심이 북녘을 향해 있는 교회, 통일이 되면 앞장서서 북을 향해 가서 옛 교회를 재건하는 일응 하는 교회라는 뜻으로 말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향북교회에 대한 연구는 여러 사정이 있어서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때 감리교회에 북이 고향인 교회, 뿌리를 북에 두고 있는 교회가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고 놀랐습니다.
저기 회현동에 일신교회가 있습니다.
저희와 같이 중구용산지방에 속해 있는 교회인데요, 중구용산지방의 대부분을 예전에는 서울남지방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고등학생이었던 때 MYF서울남지방연합회가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그때 일신교회에 운동장이 있어서 거기에서 배구시합을 자주 했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향북교회 이야기가 나오면서 일신교회가 개성에서 온 교인들을 중심으로 세워진 교회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때 일신교회를 담임하고 계시던 목사님, 당시 서울연회 감독이셨는데 이분도 향북교회 연구에 참여할 뜻을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지난 주일 설교에서 담임목사님께서 용산교회는 해방되던 해에 장시화 목사님, 김수철 목사님, 이강산 목사님이 중심이 되어 설립되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장시화 목사님은 평안도 안주 출신이고 초대 담임자인 이강산 목사님은 황해도 옹진 출신으로 황해도에서 목회하시다가 월남하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용산교회도 넓은 의미에서는 향북교회 가운데 하나였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960년대에 이어 1970년대의 한국교회 대단했습니다.
여러분, 1973년 5월에 여의도에서 열렸던 빌리 그래함 한국전도대회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가운데 그 대회에 참석하신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한국교회 역사에서 최초로 100만 명이 모인 집회였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엑스플로 74 전도대회’가 여의도에서 열렸는데 비가 쏟아지고,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이 일어나고 어려움이 많은 가운데에서도 백만 명 이상이 모여 은혜롭게 진행되었습니다.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는 미국의 빌리 그래함 전도협회가 중심이 되었고, 엑스플로 74는 국제대학생선교회가 중심이 된 집회였는데, 한국의 부흥사들이 중심이 되어 1977년에 ‘77민족복음화성회’를 했습니다.
1977년은 1907년 평양대부흥으로부터 70년이 되는 해이어서 더 열심을 냈는데 77민족복음화성회도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970년대, 1980년대, 대형교회들이 탄생하고, 선교가 다양해지고, 중국의 개방정책에 따라 중국선교 붐이 일어나고, 대단했습니다.
외국에서 한국교회를 견학하기 위해 찾아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때 저는 선교방송기관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견학 온 외국손님들을 종종 안내해 드렸습니다.
한번은 일본에서 온 목사님 한 분이 인천 숭의교회 철야기도회를 가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을 모시고 밤에 경인고속도로로 해서 인천으로 가는데 이 목사님이 좀 천천히 갔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안전 때문에 그러는줄 알고 천천히 갔습니다.
그랬더니 한참 가다가 이제는 빨리 가도 좋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길옆에 십자가가 많이 보여서 몇 개나 되는지 세어보려고 천천히 가 달라고 했는데 너무 많아서 세는 것을 포기했으니 빨리 가자는 것입니다.
사실 일본 거리에서는 십자가 보기가 아주 힘이 들지요.
숭의교회에 도착했습니다.
그때는 밤 열두시에서 새벽 네 시까지는 통행금지가 실시되고 있어서 교회의 철야기도회도
밤 열두시에 시닥해서 새벽 네 시까지 고밝 철야하며 진행되었습니다.
지금은 심야기도회로 바뀌었지요.
밤 열두 시에 본당에 들어갔는데 이 성도들이 가득 차서 손뼉을 치면서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 일본 목사님,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시계를 한 번 보고, 창밖을 한 번 내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왜 그러시느냐고 했더니 하시는 말씀이 지금이 낮 열두 시인지, 밤 열두 시인지 확인하고 싶어서 그랬다고 합니다.
일본에서는 밤 열두 시에 성도들이 이렇게 교회에 모여 기도회를 갖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그랬다고 합니다.
돌아오는 차속에서 이 일본 목사님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한국교회만 축복하시는지 알 수 없다고 하시면서 한숨을 푹 쉬셨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끝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한국교회의 역사에서 교회가 지금처럼 힘을 잃은 때가 또 있었나?’ 궁금해질 정도입니다.
‘한국교회 역사에서 교히가 지금처럼 비난을 많이 받고 있는 때가 또 있었을까?’ 궁금해질 정도입니다.
사람은,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존재하는데 교회가 비난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교회가 이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는 때가 또 있었나?’ 두려워지기도 합니다..
지난 주일에 담임목사님께서 에베소교회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에베소교회를 향해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5b)하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부흥의 촛대, 열심의 촛대, 경건의 촛대, 칭찬의 촛대가 한국교회에서 옮겨진 것이 아닌가, 다시 한 번 두려워집니다.
그러면서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님, 다시 한 번!‘
‘성령님 한국교회 가운데에서 다시 한 번 강하게 역사하여 주옵소서!’하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을 봅니다.
오늘 본문을 ‘제2의 성령강림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제1의 성령강림은 두 말 할 것 없이 오순절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일은 사도행전 2장 1절에서 4절까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제1의 성령강림을 통해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1절에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라고 하였지요.
그리고 빠른 속도로 성장했습니다.
사도행전 4장 4절에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이 오천이 ‘앞의 삼천이 포함된 숫자냐, 아니면 그 삼천 명 말고 새로 믿게된 사람의 숫자냐’ 논난이 있습니다만 어느 경우든지 빠른 성장인 것은 분명합니다.
신유의 역사도 일어났습니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향해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행 3:6) 하니 그가 뛰어 서서 걸으며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어려움도 겪었습니다.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에게 체포되어 갇혔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들에게 심문을 받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하지요.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 4:19~20)
관리들은 더 어쩌지를 못하고 사도들을 석방했습니다.
사도들은 그 동료들에게 가서 겪은 일을 말하고 함께 기도합니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행 4:29~30)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본문 가운데 31절을 같은 목소리로 읽겠습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진동의 역사가 일어나고 무리가 다 성령을 충만하게 받아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기초가 튼튼해지고 계속해서 흥왕하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5장 14절은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만일 제2의 성령강림이 없었다면 성령강림은 오순절에 있었던 일은 한 번 있었던 일로 끝날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것을 ‘일과성’(一過性)이라고 하지요.
한국교회에는 일과성, 한 번 일어났다가 지나가버리고 마는 일이 참 많습니다.
부흥은 지속성 부흥이어야 하지 일과성 부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소나기성’이라고도 합니다.
요즘 소나기가 자주 내리는데요, 소나기는 해갈에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쟁개비성’이라고도 합니다.
쟁개비는 무쇠나 양은 따위로 만든 작은 냄비를 말하는데 쉽게 끓고 쉽게 식습니다.
그래서 ‘양은 쟁개비 끓듯’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양은 쟁개비가 불에 올려놓자마자 끓다가는 내려놓으면 곧 식고 만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할 때에 꾸준하지 못하고 처음에 얼마간 부글부글 끓듯이 열성을 내다가 금방 식어 버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금방 끓어올랐다가 식어 버리는 열정을 ‘쟁개비열정’이라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의 본문을 읽으면서 ‘예루살렘교회에 다시 한 번 임하셨던 성령님, 한국교회에도 다시 한 번 임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저희 교회가 있는 용산,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시위의 중심지도 되었습니다.
한 장애인 단체가 삼각지역에서 매일 아침 지하철 탑승 시위를, 몇 달을 계속했습니다.
석 주일 전 토요일, 2일 오후에 사무실에서 나와 보니 삼각지 교차로 일대가 경찰들로 가득했습니다.
민주노총인가 하는 단체가 세종로에서 시위를 시작해서 전쟁기념관 후문 앞까지 행진해 와서 궐기대회를 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주일 토요일, 16일, 지난 수요일, 20일에도 규모가 큰 시위가 있었습니다.
저희 교회가 있는 곳이 이렇게 정치 중심지, 시위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성령강림의 중심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말은 저희 교회가 그 한 가운데 있었으면 좋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1907년 대부흥 이야기가 몇 번 나왔는데 그 중심에는 장대현교회가 있었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가 뭘!’ ‘우리 교회가 어떻게?’ 하실지 모르겠는데요, 여러분 꿈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세계 여러 곳에서 통일선교 운동을 하고 있는 분들이 미국 시애틀에 모여 내일부터 ‘2022년 한민족 통일선교 서밋’을 합니다.
‘서밋’(summit)은 수뇌회담이라는 뜻입니다.
사실은 실무자들의 모임인데, ‘우리 책임이 중하다’는 뜻으로 그런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100명 정도가 모이는데 50명은 한국에서 가는 분들입니다.
제가 개회예배 설교를 맡았는데 설교제목을 “꿈 잔치!”라고 했습니다.
‘우리, 통일이 되어 북녘에 가서 전도를 마음껏 하는 꿈을 꿉시다! 이 서밋이 그런 꿈을 나누는 잔치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내용입니다.
요셉이 해와 달과 렬힌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는데 그 꿈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 꿈이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의 통일선교 꿈도 이루어질 것이라고 할 것입니다.
요엘이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욜 2:29)라고 했는데 첫 번째 성령강림 때 베드로가 이 말씀을 본문으로 해서 설교를 했지요.
저도 내일 시애틀 서밋에서 그 말씀을 본문으로 설교를 합니다.
여러분, 이 자리가 성령운동의 중심지가 되는 꿈, 꾸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오늘도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다음 주일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 다음 주일에도, 계속해서 그렇게 할 것입니다.
사도신경으로 신앙을 고백할 때 “성령을 믿사오며” 하시면서 속으로 “성령님, 다시 한 번!”하시기 바랍니다.
“성령님, 다시 한 번 한국교회 가운데에서 역사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저희 교회 가운데에 임재하여 주옵소서!”
아멘!
<기도>
2천 년 전 예루살렘에 강림하여 교회가 시작되게 하시고, 다시 강림하여 교회의 기초를 튼튼하게 하신 주님,
20세기에 한국교회에서 강하게, 뜨겁게 역사하신 성령님,
한반도에 다시 한 번 강림하여 주옵소서.
남녘의 교회가 다시 순수해지고, 주님께 큰 영광을 돌리게 하여 주옵소서.
북녘의 교회들이 회복되고 놀랍게 부흥되게 하여 주옵소서.
저희들에게 오순절에 한 곳에 모인 성도들의 믿음을 주옵시고, 놓인 사도들이 찾아간 곳에 모인 믿음의 동료들이 가졌던 담대함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