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전부터 여산인들이 2박3일로 지리산 종주를 한다고 하여 일정을 비워두었는데 여차 저차 하다보니 2박3일이 1박2일로 바뀌고, 코스 또한 당일치기 산행으로도 가능한 백무동 원점회귀 코스로 변경이 되다보니 굳이 무거운 박배낭을 메고 산에 올라야 하는 당위성 마저 희석이 된 가운데, 그나마 마음을 끄는게 있으니 수십명이 움직이는 단체산행에서는 불가능한 청학연못을 포함한 몇몇 비경코스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이다.
산꾼들에게 있어 비경 이라는 것은 대체로 통제된 구역내에 있는 곳을 말하는데, 조망이 기가막히게 좋은곳 이거나 용아릉 같은 스릴넘치는 곳 이기도 하겠지만, 이번의 경우는 스스로가 비처에 대해 공부를 하고, 의미를 부여해야 만이 비경으로써 가치가 있는 곳인데, 그곳에서 비경으로써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솔직히 아무런 가치나 감흥을 자아낼만한 그런 곳은 아닌 것이다. 흔히 볼 수 있는 커다란 바위, 작은연못, 사라진 암자터, 작은굴 등은 스스로가 자료를 찾아보고 의미있는 시선으로 보아야만이 비경이 될 수 있는것 인데, 결론적으로 이번 산행에 참여한 멤버들은 이미 다녀와서 흥미가 없는 분 이거나 비경(?) 자체에 별다른 의미를 두고 있지 않은 분들 이라서 결국 배낭무게에 짓눌린 그들의 몸과 마음이 굳이 힘들게 비경을 찾아야 하는 이유를 외면케 하고 말았다.
결국 이번에 계획했던 모든 비경들은 다음에 가벼운 배낭을 메고 당일치기로 진행을 해야겠다는 또 다른 계획만 세워주고 실패로 끝이 났고, 비박을 하며 가장 기대했던 아름다운 일몰과 환상의 일출 또한 구름과 연무로 제대로 볼 수가 없었지만 영신대에서 침낭속에 누워 바라보던 하늘의 총총한 별들과 이튿날 낮에 해가떠서 안개를 걷어내니 비로소 눈부시게 화창한 오후에 간만에 찾은 연하선경의 아름다움은 힘들게 지리를 찾아와 헛탕을 치고 돌아가는 지친 심신에 작은 위안이 되었다.
백무동 통제소 앞에서 이번 산행에 동참한 불량감자 여섯 (12시14분)
오도재에 내려 오도봉쪽으로 10여분 올라가면 있는 관음정에 올라 지리 주능선을 감상하였다. 지난번 삼봉산 일주 할때처럼 멋진 조망을 기대하였는데 이날은 연무로 인해 조망이 썩 좋지 않아 아쉬웠다. 지난 2월달에 관음정에 오를때만 해도 정자에 문제가 없었는데, 군데 군데 마루가 뜯겨나가 구멍이 나서 보수를 한다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부득이한 스케줄로 이번 산행에 동행하지 못한 꿈산형이 이번 산행팀을 속리와 불량감자들 이라고 하였는데 산행내내 불량감자란 용어가 서로간에 통용이 되고 말았다.
25키로가 넘는 무거운 배낭을 지고가는 푸름과 속리... 날이 워낙 좋아서 텐트가 필요 없었는데, 그 무게만 덜었어도 조금 더 편했을것을...
배낭 무게로 인해 느릿느릿 걸어가며 걷다 쉬다를 반복한다. 무거운 맥주들은 그때마다 앞을 다투어 배낭을 빠져나와 땀으로 증발을 하고.... 우리는 몇번의 출렁다리를 건너며 한신지곡 갈림길까지 진행을 한다.
한신지곡 갈림길을 지나 한신계곡으로 접어들자 마자 오른쪽 아래로 가내소 폭포가 나온다. (13시34분) 지난번 보았을땐 깊이를 알 수 없는 공포스런 시커먼 물색이었는데 오늘은 그래도 좀 만만해 보인다.
가내소의 전설
먼 옛날 한 도인이 12년 수행의 마지막 시험으로 가내소 양쪽에 밧줄을 묶고 눈을 가린 채 건너가고 있었다. 이를 본 지리산 마고할멈의 셋째 딸 지리산녀가 심술을 부려, 도인을 유혹해 물에 빠뜨렸다. 이에 도인은 “에이~ 나의 도는 실패했다. 나는 이만 가네.” 하고 탄식하며 떠났다고 한다. 그 후 사람들은 이곳을 가내소 라고 불렀다고 한다.
가내소 폭포
가내소 폭포를 지나니 풍덩 뛰어들고픈 아름다운 작은 폭포들이 기다리고 있다.
한신계곡의 명소 오층폭포는 등로 아래의 계곡에 숨어 있다. 층층히 용소를 이루며 떨어지는 폭포는 참으로 아름다운데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가는 일행들 누구도 계곡으로 내려가 폭포구경을 하려 하지 않는다. 계곡아래엔 벌써 하산중인 십여명의 등산객들이 폭포위 암반에 앉아 한신계곡의 절경을 감상하고 있다.
선두팀 두명과 함께 커다란 바위가 폭포를 이루는 곳에 배낭을 내리고 세족을 하며 쉬어 간다 (16시40분) 30여분을 기다리니 후미팀 불량감자 일행이 도착을 한다.
불량감자 일행이 도착을 하고 나서 5분뒤에 산행 초입부터 불량감자팀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가던 세명의 여인네들이 도착을 한다. 일명 서울산 불량감자 팀이다. (17시05분)
세명의 여성분은 지리산행이 처음인지... 박산행을 나왔는데, 어째 차림이 너무 간편해 보인다. 누군가 물어보니 산장 예약은 안했고, 짜파게티 하나 챙겨서 침낭만 배낭에 달고 올라간다고 한다. 가벼운 차림으로도 무거운 배낭을 멘 우리팀 불량감자 보다 걷는속도가 느린걸 보니 이 서울 여자분들이 얼마나 산행에 초보인지 알수가 있다. 결국 한신계곡 마지막 1키로 처절한 깔딱고개에서 이분들은 힘겨운 사투를 벌이게 되고 우연히 만난 산악회 동료분 두명을 포함해 건장한 남자들 세명이 세석에 올라와서 배낭을 내려놓고 이분들 구조활동에 투입된다. 덕분에 영신봉에서 한시간 이상을 기다리게 되고 비박터로 예정된 영신대의 잠자리는 다른팀에게 양보를 해야만 했다.
아무리 지리산이 밋밋한 산이라 해도, 그리고 산 능선에 산장이 있다고 해도, 최소한의 준비는 해야만 하는데 이처럼 준비없이 무턱대고 큰 산을 찾는 것은 삼가를 해야만 할 것 이다. 자신들의 체력을 고려해야 하고, 특히나 비박을 하려하면 음식물등 꼭 필요한 준비를 해서 산에 올라야지 그렇지 않으면 큰 낭패를 볼 수가 있다는 것을 이분들은 이번 기회에 깨달았을 것이다. 요즘같이 산에 다니기 좋은 날 주말 산장은 많은 인파로 북적대고, 이분들이 잠을 자려 했다는 취사장은 물론 산장 앞 마당까지 다들 자리를 펴고 눕기 때문에 적어도 매트리스 정도는 준비를 했어야 했다.
세석평원엔 아직도 지지 않은 연분홍 철쭉이 예쁘게 피어 있다.
세석 취사장은 물론 데크 앞쪽은 극심한 혼잡을 보이고 있고, 앞마당 헬기장에도 서둘러 비닐을 깔고 자리를 만들고 있다. 이마저도 늦게 도착하면 세석 앞마당에 조차 자리를 펼 수 없기 때문이다.
걸음이가 백무동에 오후 3시20분에 도착을 하였는데, 백무동 통제소에서 너무 많은 인원이 산을 올랐다고 3시부터 출입을 막고 있는 통에 대전서 백무동 까지 와서 그냥 돌아가야 했을 정도로 이날 지리산엔 많은 산객들이 찾아 들었다.
세석을 일별하고 영신봉으로 오른다. (클릭)
영신봉에 오르며 바라본 천왕봉-제석봉-촛대봉-세석으로 이어지는 파노라마 (클릭)
내가 파노라마를 만들었던 자리에 지나는 산객님이 올라서 늦은해가 비추는 지리산을 담고 있다.
영신봉 (18시20분)
영신봉 정상은 반대쪽 금줄 너머에 있고, 영신봉 이라 씌여있는 표지목 뒤로 창불대와, 영신대, 남부능선이 있다. 블방 이웃 숯댕이눈썹님이 영신봉을 두고 마누라봉 이라고 한것을 보니 사모님 이름이 영.신. 인가 보다 ^^
영신봉에 앉아 40여분을 기다리니 우리팀 불량감자들이 도착을 하고.... 서울 불량감자 팀을 돕고 있는 푸름님을 기다리는 사이에... 지리산 주능선에서 훈련이 있는지 군인들이 완전군장에 행군을 하고 있다.
덕평봉과 명선봉으로 가는 주능선 위로 짙은 구름이 드리우고.... 소망했던 지리에서의 멋진 일몰은 이렇게 물 건너 가고 있었다.
기다리다 못해 잠자리라도 마련해 두려 영신대로 내려서면서 바라본 영신대 영신대위의 큰 바위의 모습이 마치 무서운 눈을한 힘쎈 역사의 얼굴 같다.
큰세개골
영신대로 내려서면서 보니 누군가 이미 영신대에 도착을 해서 텐트를 설치 하고 있다. ㅠㅠ 얼핏보니 국방색 타프를 치고 있는 사람들이 좀전에 지나친 군인들 복장같아 내려서는걸 망설이다가 보니 산꾼들 이다. 쩝.... 영신봉에서 한시간 넘게 후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진즉 들어왔어야 했는데...
영신대 옆으로 통나무 다리를 건너 영신대 기도처로 가니 간신히 그곳은 자리가 비어 자리를 잡고 식사준비를 한다. 다들 아침을 먹고는 지금껏 술만 마셨지 제대로 식사를 안했기 때문이다.
잠자리를 다듬고 식사준비가 끝나고 나니 벌써 20시 40분이 넘었다. 다들 허기진 상태라 허겁지겁 식사를 하고 나니 그제서야 피로를 느낀듯 하나 둘 잠자리에 들어간다.
서쪽하늘에 짙은 구름과 연무로 일몰을 보지 못했는데 침낭에 누워 하늘을 보니 지리산 밤하늘에 별이 총총히 떠있다. 핸드폰으로 산악회에 접속하여 한줄 소감을 남기고 나도 잠을 청한다.
추천
1박 2일
산중이라 그런지 아침 5시에 눈이 떠지고... 마음은 서둘러 출발을 하고 싶었지만 다들 아침은 분주하기만 하다.
지난밤 영신대에서 주무신 분들중 몇분이 큰 카메라를 들고 우리 근처를 오락 가락 하신다. 이쪽 기도터도 사진에 담고 대충 말을 들어보니 영신사지를 찾는것 같다. 영신사지는 이쪽이 아니고 창불대 아래쪽인데...
간밤에 별일 없었냐고들 물어보신다. 우리가 비박을 한곳은 지리산에서 가장 기가 쎈 영신대 중에서도 기도터로, 이곳에서 혼자 잠을 자려면 꿈에 꼭 할아버지가 찾아와 "너 여기서 잘래, 그냥 갈래 ~" 라고 묻는다고 한다. 어떤이는 텐트 안으로 그 할아버지가 들어오는것을 봤다고도 하고.... 여하튼 우리는 일행이 많아서 그런지 아무도 그런꿈을 꾸지 않았다.
기도터 바로 옆에 있는 샘터, 용왕당 이라고 하는데 물맛이 시원하고 좋다.
기도터 위쪽의 새로운 기도터 무속인들이 돌과 시멘트로 터를 닦아놓은듯 하다. 아래쪽은 숙소로 사용하던 곳 같고, 위쪽은 제단 같은데 유사시 비박터로 사용이 가능할것 같다.
그 옆엔 큰 바위 밑에 굴이 평평한 굴이 있는데, 비가 올시에 들어가 누우면 비를 피할수 있을것 같다.
아침에 바라본 영신대 바위
대성골로 이어진 큰세개골
지리산 대성골은 빨치산의 최후 격전지로 유명하다. 토벌대의 지리산 총공세에 빨치산들이 전부 대성골로 몰려들었다가 몰살을 당했던 피의 격전지 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도 대성골엔 큰 나무가 없다고 한다.
지리산에서 가장 기가 쎈 곳이라 하니 그냥 갈 수 없다. 누구는 일부러 힘들게 기도하러 찾아도 온다고 하는데... 떠나기 전에 지난밤 편안한 잠자리를 감사드리고, 간절한 소망을 담아 기도를 드린다.
숙박지에서... 기도터 제단을 배경으로.. (08시10분) 자 출발 하자구요 ~
영신대에서 우리가 숙박한 바로 옆 기도터를 가려면 이렇게 바로 옆에 나있는 통나무 다리를 건너 석문을 통과 해야만 한다. 이 다리만 없으면 이속에 기도터와 샘터가 있는줄은 아무도 모를 것 이다.
영신대에서...
지난밤 야영을 했던 팀들은 이미 떠나고 없다. 영신대는 지리산의 주 능선과 남부능선이 교차 하는 지점에 자리하여 기운이 영험하고 쎄다고 한다.
『지리산의 10대 기도처 중에서 가장 기(氣)가 강한 곳이 영신대(靈神臺)와 관음대(觀音臺)다. 특히 지리산의 영신대는 영혼의 안식처로 신령하고 영험한 곳이다』
이번 산행후기를 준비하면서 조선시대 김종직의 유두류록을 몇차례 읽어 보았다. 유두류록을 누가 해석을 했는지 몰라도 김종직은 영신사에서 1박을 하였는데 (조선시대에 지리산을 찾는 분들중 많은 분들이 영신사에서 숙박을 해결한 것으로 나와 있다) 해석 하신분은 영신사와 영신대를 동일시 하고 있는듯 하다. 현재 영신사에 관한 고문헌에 나와있는 가섭대나 좌고대는 영신대가 아닌 창불대 아래쪽 영신사지에 있는 것이다.
영신대
지리산에는 33대가 있다고 하는데 그중에 중요한 10대는 다음과 같다. 참고로 지리산 10대는 사람마다 조금씩 견해가 다르다고 한다.
금강대에 대해서는 많은게 신비스럽다. 아직도 정확한 위치가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다음은 풍수칼럼니스트 노병한님의 의견이다.
금강대(臺)라 불리는 금강굴(窟)이 싸리봉 근처의 어떤 암봉 주변에 있다고도 전해진다. 한국 선가(仙家)의 이상향이었던 ‘청학동’과 불가(佛家)의 이상적인 수도처인 ‘금강굴’이 바로 지리산의 칠불사와 반야봉의 주변에 감추어져 있다고 도인(道人)들 사이에서 입으로 은밀하게 전해지기도 한다. 이 ‘금강굴’에는 일명 나한(羅漢)의 경지인 아라한과(阿羅漢課)를 이루고 2백세가 훨씬 넘은 개운조사가 은거해 있다는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금강굴’이라는 그곳에 접근되지 못하고 인간의 눈에 발견되지 않는 것은, 그곳에 8진법이 쳐져있기 때문으로 시공(時空)이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이기 때문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출처 :: 풀수칼럼니스트 노병한님>
세석을 내려서며 돌아본 창불대. 옛 선인들이 지리산행을 하면서 꼭 묵고 갔다는 영신사지는 저 아래 있다. 청학연못을 간다고 하니 창불대를 못가보더라도 아쉬움이 덜하다. 창불대 아래에도 반야낙조를 감상하고 잔돌평원을 살펴볼수 있는 기가막힌 비박터가 있다고 하는데...
촛대봉을 오르며 바라본 세석산장
푸름님이 독초라며 조심하라고 알려준 동의나물 곰취와 생김새가 비슷하지만 독초라고 조심해야 한다고...
세석습지에 동의나물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쥐오줌풀
촛대봉에 오르며 천왕봉쪽 능선....
촛대봉 (9시36분)
촛대봉에서 바라본 세석평전
촛대봉 고개 풍경
영신봉에서 내려뻗은 능선에 우뚝선 바위 창불대
영신봉에서 창불대를 지나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남부능선
촛대봉에서 청학연못에 들기로 했다. 배낭무게에 눌려 지친 분들은 제외하고 남자들 둘셋만 후닥~ 다녀오면 될 줄 알았는데 여기서 그만 청학연못을 다녀와서 길을 알고있는 유일한 사람인 속리님이 못가겠다고 한다. 배낭무게가 천하의 산꾼인 그의 어깨도 힘들게 했나 보다. 어차피 불량감자팀 이동속도가 뻔하니 혼자라도 다녀오려하니 속리님이 대충 설명을 해준다. 촛대봉 정상암릉 지나 쭈욱 가다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그쪽에서 오른쪽으로 바위가 나올때까지 가라고.... 큰 나무밑에 푹 들어간 지대에 있다며....해서 정상을 넘어가면 뚜렷한 외길이 있는줄 알고 배낭을 벗어두고 카메라만 챙겨서 뛰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5분 늦게 출발을 하더라도, 나는 촛대봉에서 인터넷에 접속을 하여 청학연못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갔어야 했다. 백문이 불여일견 이라고 백마디 설명보다 한장의 사진이 더 확연할때가 많은 법이니 말이다. 촛대봉에서 인터넷이 되었 는데 설명한대로만 가면 되는줄 알고 성급히 달려갔던 자신을 후회했다.
이날 산행의 최고 포인트로 청학연못을 생각했는데, 상황이 이리될줄 모르고 당연히 안내를 받을걸로 생각하고 미리 예습을 안해온 잘못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누굴 탓하랴.
촛대봉 정상부를 넘고보니.... 뚜렷한 길은 없다. 능선을 따라 내리막을 가는데 자꾸 오른쪽으로 갈라지는 샛길이 나온다... ㅠㅠ 속리님 말을 기억하며 샛길마다 들어가보고 길이 아니다 싶으면 다시 돌아와 내려가기를 반복... 한참을 내려서는데 더이상 진행방향으로 길이 없는듯하고 우측으로 더 선명한 길이 나있어 그곳으로 내려가서 이리 저리 잔돌고원을 헤매다 온 것 이다.
참고사진 :: 인터넷 YOON님 블로그
나중에 장터목에 와서 인터넷을 켜보니 바로 이 바위가 나온다. 검색해서 찾는데 1분도 안걸렸다. 촛대봉 정상부를 지나 능선을 타고 이 바위가 나올때까지 쭈욱 직진 하다가 이 바위를 만나면 우측 갈림길로 200여 미터를 계속 내려가면 되는 것이다. 촛대봉에서 잠시만 검색을 하고 출발했어도 그런 바보같은 실수를 하지 않았을 터인데...
청학연못의 모습, 뒤편으로 큰 슬랩바위가 있고 큰 나무들에 둘러 쌓여있다.
청학연못 :: 참고사진 :: 인터넷 YOON님 블로그
참고사진 :: 창불대에서 바라본 청학연못뒤 슬랩바위 (원 안)
사전에 조금만 조사를 했더라면 청학연못을 못찾고 헤매지 않았을텐데... 누구 말처럼 비등엔 때론 알바가 약이 된다고 하더니.... 소 잃고 외양간 고친격이 되버렸지만 다음에 오게 되면 이젠 대번에 찾아갈수 있을듯 하다.
청학연못 찾는 것을 포기하고 촛대봉으로 돌아가는 길에보니 중간에 샘이 하나 있다. 촛대봉 샘 인가 보다. 그 옆에는 비박터가 마련되어 있는데, 어떤분이 다녀가셨는지 비박지 한 가운데에 제대로 흔적을 남겨놓고 갔다. 쩝.
촛대봉을 내려와 일행을 ?아가며 뒤돌아본 촛대봉
그 옆으론 세석뒤로 영신봉이 보이고 칠선, 덕평봉지나 주능선 뒤로 반야봉이 흐릿하게 서있다.
반야를 좀더 당겨 본다.
삼신봉으로 가면서 바라본 천왕봉
삼신봉에 올라 바라본 지리산에서 가장 아름다운길 연하선경 목표했던 비경은 다 놓치고 유일한 위안이 되어준 선경
백무동 방면 조망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길을 한참을 서서 바라본다
삼신봉을 내려와 연하봉으로 가면서 뒤돌아본 그 길.
1667봉에 서서 쉬면서 도장골을 조망 한다.
뒤돌아본 삼신봉과 오른쪽 뒤로 서있는 반야봉
연하봉에서 (11시51분)
장터목으로 가면서 뒤돌아본 연하봉 아침엔 연무로 인해 일출이나 조망을 볼 수 없게 만들더니 해가 뜨면서 날이 쾌청해진다. 뒤로 보이는 노고단과 반야봉이 선명하게 보이며 그 오론쪽으로 만복대와 고리봉도 뚜렷하게 조망된다.
연하선경을 중심으로 바라본 지리산 파노라마 (클릭)
연하봉 왼쪽으로 촛대봉과 지리산 남부능선이 조망되고... 오른쪽으로는 반야봉뒤로 만복대, 고리봉,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이 보인다.
일출봉
장터목에 도착해 보니 지리를 찾은 많은 산객들로 인해 취사장 및 나무데크 의자는 자리가 없고 마치 옛날 장터의 현장 처럼 앞 마당 양쪽에 산객들이 그냥 쭈욱 늘어져 앉아 쉬며 식사를 하고 있다.
장터목에서 바라본 중산리
장터목에서 바라본 백무동 (오른쪽) - 서북능선 - 반야봉 (왼쪽)
마침 데크 테이블에 자리가 나서 앉아서 허기와 목마름을 달래가며 쉰다. 다들 힘들다고 천왕굴 가는것도 포기하고 장터목에서 하산하기로 하여 천왕봉이 처음이라며 장터목에 오는 중에 먼저 가서 배낭을 장터목에 벗어두고 천왕봉에 홀로 달려간 잠보님을 기다린다. 그사이에 푸름님이 중산리쪽으로 20여미터 내려가면 있는 산희샘에 빈 수통들을 들고 다녀와 물을 채워 온다.
백무동 하산길에 망바위에서 바라본 조망 나무에 가려 조망이 그렇게 시원치는 않다.
망바위 정상에 올라서니 멀리 반야의 엉덩이가 선명하게 조망된다.
망바위 건너편 바위에 올라서니 지나온 장터목이 조망이 된다.
망바위 건너편 소나무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하봉-중봉-천왕봉-제석봉-장터목 파노라마 (클릭) 중앙의 삼각형이 천왕봉이고 가운데 우뚝선 봉우리가 제석봉이다. 원 안은 장터목산장
참샘에 도착하여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후미를 기다리며 한참을 쉬었다가 하산을 한다.
야영장 인근에서 차가운 계곡물에 땀을 씻으니 이틀간의 피로가 싹 가시는듯 하다. (17시) 한신계곡과 달리 장터목에서 백무동으로 하산하는 길의 백무동 계곡의 지류엔 풍덩 뛰어들만한 물이 흐르지 않아 아쉽다. 백무동 주차장에 배낭을 내리고 근처 주막에서 시원한 맥주와 막걸리로 목을 축이니 비로소 산행이 종료가 되었다.
배낭무게로 인해 모든 일정이 뭉그러진 산행 이었지만 나름대로 즐겁고 배운게 많았다. 또한 이번산행을 통해 느낀것은 자주하면 어깨등이 단련이 될지 모르겠지만, 무릎이 자신이 없는 나에겐 이런식의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장거리 비박산행을 하는것 보다는 가볍게 다니면서 조망을 즐기는게 더 좋겠다는 것 이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높은 산에 오르는 것은 무릎에도 부담이 되며 평지를 걷는 트레킹과는 또 다른 중력의 힘을 느끼게 한다. 굳이 박산행을 가야할 경우엔 산장을 이용하고 꼭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만 챙겨서 배낭을 최대한 가볍게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배낭의 무게가 산행의 즐거움을 넘어서거나 이번처럼 지쳐서 계획된 일정에 차질을 주기 때문이다.
끝으로 장거리 운전을 하며 동행들을 위해 무거운 야영 장비를 챙겨 메고 고생한 푸름님과 속리님에게 감사를 드린다.
창불대와 영신사지터 참고지도 (출처 :: 인터넷)
이번에 놓친 비경들을 위해 다음에 당일치기로 거림-영신사지-창불대-세석-청학연못-거림 코스를 생각해 본다. 가을에 단풍에 물든 청학연못의 경치가 일품이던데 아마도 그때쯤이 좋지 않을까...
김두수 - 산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 배경음악 :: 김두수 - 산
지리산 한신계곡 ~ 백무동 지도
산행코스 :: 백무동 - 세석 - 영신봉 - 영신대 - 영신봉 - 촛대봉 - 청학연못찾기 - 장터목 - 백무동 (약 20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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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약수의 산행 포토에세이 원문보기 글쓴이: 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