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밑줄 친 ‘그’에 해당하는 인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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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버지는 원성왕과의 왕위 다툼에서 패하였다. 그는 웅주(공주)를 근거로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장안, 연호를 경운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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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이자겸 ② 김보당 ③ 김헌창 ④ 조위총
정답: ③
* 김헌창의 난
신라 하대의 첫왕인 내물왕계 선덕왕이 죽자 내물왕계인 김경신과 무열왕계인 김주원이 서로 왕위를 다투었는데, 이 때 승리한 김경신이 왕위에 올라 원성왕이 된 반면, 김주원은 중앙에 있지 못하고 지방의 연고지인 강릉으로 퇴거하여 지방 호족이 되었다. 그의 아들인 웅천주 도독 김헌창은 아버지가 왕이 되지 못한 데 대하여 불만을 품고 헌덕왕 14년(822)에 반란을 일으켜 국호를 장안, 연호를 경운이라고 했으나 실패하였고, 그의 아들인 범문도 난을 일으키다가 제거되었다(825).
① 고려 전기 최대의 문벌귀족인 경원 이씨 이자겸은 딸들을 예종과 인종의 왕비로 두어 최고의 권력자로 행세하였다. 이자겸의 권력은 국왕의 자리까지 넘볼 정도였다. 이에, 왕위 유지에 위협을 느낀 인종이 이자겸을 제거하려 하였으나, 도리어 이자겸의 반격을 받아 궁귈이 불타는 등 위기에 처했다. 이를 이자겸의 난이라 한다(1126). 그러나 얼마 후 인종은 이자겸의 부하인 척준경을 시켜 이자겸을 제거하였다.
②, ④ 무신정변(1170) 이후 제일 먼저 문신 출신 동북면 병마사 김보당은 정중부, 이의방 무신 정권을 타도하고 폐위된 의종을 복위시키고자 난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고(1173), 이어 서경 유수 조위총이 무신 정권에 반발하여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는데(1174~1176), 이 때 많은 농민이 가세하였으며, 난이 진압된 뒤에도 농민 항쟁이 여러 해 동안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