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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먼저 맞는 매
나에겐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지난번 독일에 왔을 때 머물면서 신세를 졌던 사람들이 살고 있는 함부르크였다.
비록 이번엔 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겠다며 일부러 그곳을 피해 베를린으로 오긴 했지만, 그래도 벌써 재작년이 된 지난번 왔을 때 남겨두었거나, 멕시코에서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여기로 오리라며 일부 이쪽으로 부쳤던 짐들이 있어, 그것들을 찾아 정리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독일에 온 김에, 가급적 초창기에 빨리 갔다 오는 게 나을 거란 판단이 섰던 것이다.
어차피 맞을 매, 먼저 맞는 게 나을 거라면서......
*
오후에 함부르크로 가기 위해 서울에서 알게 된, 여기 베를린에 체류 중인 화가 ‘이 00’씨 집에 짐을 맡겼다.
그 분은 점심을 먹고 가라고 나를 잡았지만, 신세 지는 게 싫어 동행이 있다며 짐만 맡긴 뒤 바로 그 집에서 나왔다.
물론 나에겐 동행이 있었다.
짐이 너무 무거워 유스호스텔 룸메이트인 오스트리아 청년의 도움을 받았던 것이고, 고마움의 뜻으로 어제처럼 점심을 함께 먹으려고 베를린 동물원역 부근 ‘카이저 빌헬름(Kaiser Wilhelm) 교회 옆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아직은 시간이 너무 일러, 주말의 거리를 바라보고 있다.
5 . 30 낮
#서글픈 자유#
함부르크에 가기 전에 시간이 남아서 거리에 앉아 있는데, 어쩐지 의기소침한 느낌이다.
사실 이번 ‘함부르크’ 행은, ‘안 갔으면......’ 하는 길이다.
좋은 일로 가는 게 아닌, 현지에 있는 해묵은 짐을 처리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가는 길이라서다.
물론 그런 현상은, 현재의 내 입장과 처지를 그대로 반영하고도 있는데,
독일 수도 ‘베를린’이라는 곳에 와 아무 것도 정해지지 않은 막막한 상태에서 뭔가 혹 하나를 더 붙이러 가는 길이기도 해서다.
그런데 이상하다.
앞으로 뭐가 어찌 될지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는 이 막막함 속에서도, 군중의 흐름 속에 섞여 멍청하게 있다 보니, 갑자기 뭔가 ‘해방감’ 같은 게 물밀 듯 밀려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건, 정말 뜻하지 않았고 이치에도 전혀 맞지 않는 현상 같기에 오죽했으면,
‘내가 돌았나?’ 하고도 있었다.
그런데 그 의외의 감정은 이내 온몸을 휩싸고도 있었다. 그래서,
‘이건 뭐지?’ 하고 심호흡까지 하면서 다시 확인해 보니,
‘무한한 자유’ 같았다. 그래서,
‘이 막막함과 불안함 속에서 웬 자유?’ 하며 부정하려고도 했다.
그런데 맞는 것 같았다. 아니, 맞았다.
어느새 내 앞에 놓여있는, 그 어떤 제한이나 조건조차 없는 ‘자유’......
이렇게 머리가 길든, 남방을 바지 바깥에 꺼내놓든 말든, 낡은 신발을 끌고 다니든 말든(나는 구두도 헌 것으로 바꿔 신은 상태였다.), 아무도 뭐랄 사람이 없다. 남 눈치 볼 일도 없고, 날더러 그런 행색으로 다닌다고 나무랄 사람도 없다.
그리고 여기가 서울이라면, 나는 이런 길가에, 그것도 사람이 많이 다니는 거리에 앉아, 이렇게 종이를 꺼내 낯 두껍게 내 느낌을 끼적이고 앉아있지는 못할 것이다. 설사 그러고 싶어도 실행에 옮기기까지에는 약간의 갈등과 용기마저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는 얼마든지 맘대로 할 수 있다. 남이 나에게 신경을 쓰든 말든 관심 밖인 것이다. 그들이 나 같은 사람에게 신경 쓸 일도 없겠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내 쪽에서 무시하면 되는, 그리고 이제 이런 길가에 앉아 아이스크림이거나 빵, 혹은 과자 부스러기를 아무렇지도 않은 듯 먹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건 바로 ‘자유’였다.
‘근데 이 자유는, 내가 찾는 것인가, 아니면 나에게 주어진 것인가?’
아무튼 나는 그렇게 내 앞에 놓인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라도 과거의 탈을 벗어야 한다. 비록 가진 것 없어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마저 걱정하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탈을 벗고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자유가 있으니까.
그렇지만 이 자유는 ‘안락함’과는 사뭇 다른, 어쩐지 위태위태한 ‘서글픔’도 포함된 것 같은데, 어떡한다지?#
*
한국에서 가져왔던 ‘유레일패스’ 하루치를 사용하는 걸로, 지루한 평원을 가로지르는 기찻길을 달려 함부르크에 도착했다.
밤 10시가 되었는데도 밤이 되어있지 않았다.
1년여 전의 기억을 살려 ‘서 00’씨 식당에 찾아갔다.
찾아다니는 것을 잘 해야, 어디든 다닐 수 있는 거니까.
그는 일하는 중이어서, 그리고 바로 나에게 저녁식사를 먹이게 되면 오랜만의 둘만의 회포를 풀기가 애매할 거라서,
그가 일을 끝낼 때까지 내 쪽에서 참고 기다려야만 했다.
결국 자정이 넘어서야 그의 집에 들어가 저녁상을 받았다.
그렇게 다시 만난 그는 귀여운 아기의 아빠로, 젊고 이쁜 여자의 남편으로 어쩌면 행복하게 살고 있는 모습이었다.
식사를 마치자 졸음이 쏟아졌으나, 술을 한 잔 하면서 재회를 즐기려는 그에게 맞춰줘야만 했다. 그런데 그는 날더러,
“‘빈티’가 나지 않게 보이고 행동하는 게 무슨 일을 하드래도 도움이 될 거요.” 하고 충고를 하는 것이었다.
그 말은 나에게서 ‘빈티’가 난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니, 갑자기 내가 머쓱해지면서 위축도 되었지만, 내 행색이 그런 걸 어쩌겠는가.
‘나만 좋으면 어떻든 좋다’던 내 ‘자유’에 대한 ‘처세’가, 단 하루도 못 가서 벽에 부딪힌 꼴이기도 했다.
글쎄, 무엇보다도 꺼칠하게 긴 머리와 낡은 신발이 그렇게 보이게 했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현실이 그렇고, 어쩌면 그동안 내가 한국에서부터 너무 쪼들려 살아왔던 게 몸에 배어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 여간 씁쓸한 게 아니었다.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뭔가 꿈을 꾸었다. 나쁘지 않은 꿈 같았으나 곧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침 9 시도 되기 전에 눈이 떠졌는데,
일어나 움직이면 그들에 폐가 될 것 같아, 그냥 침낭 위에 누워 있었다.
*
피터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렇지만 음성녹음만 들려올 뿐이었다.
그러니 기분마저 부정적인 쪽으로만 흘렀다.
시내를 걷다가 공중전화 부스가 눈에 띄어, 거기로 들어갔다.
서울을 떠나올 때 얻어온 한 사람의 연락처를 찾아(혹시 도움을 청할 수 있을까 해서) 전화를 걸었으나, ‘지역번호’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역번호 없는 전화번호였던 것이다. 허탕이었고, 허탈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굳이 전화까지 걸지는 않으리라 여겼던, 몇 년 전 스페인에 처음 도착하자마자 한 달 정도 같은 아파트에 기거했던 한국인 ‘조 00’씨에게 전화를 걸게 되었다. 그들은 끝내 스페인에 적응하지 못한 채 독일인 친구를 따라 독일로 갔었는데, 그 전화번호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 부부는 어느새 8년 째 독일에 머물고 있었는데, 지금은 5살 된 딸아이도 있다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는데, 같은 한국인이라 속 얘기도 나눌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들과 다시 교류하고 싶지는 않았고(그들과는 원래 배짱이 맞지 않아서 스페인에서도 그리 친숙하게 지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저 내가 베를린에 와 있다는 소식을 알리는 얘기를 하며 전화 카드가 끝날 때를 맞춰 끊었을 뿐이다.
그런 뒤 다시 피터씨한테 전화를 걸었다.
역시 녹음소리가 나오기에 이번에는 메시지를 남겨놓는데, 그 분이 받았다.
방금 집에 돌아왔다고 하던데, 얼마나 반갑던지!
그렇게 통화가 되어, 그 즉시 그분 집으로 갔다.
1년여 만에 그 집에 다시 간 것인데, 무엇보다도 내 그림들이 벽 여기저기에서 나를 환영해 주는 것 같아, 내 스스로는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그 분은 날더러 서슴없이, 왜 독일로 왔느냐고 묻는 거 아닌가. 오히려 나에겐 스페인이 더 낫지 않겠느냐고도 하면서......
그러니 나는 온 몸에 기운이 좍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는데,
그 분은 이미 내가 베를린에 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런 말을 했다는 게, 나를 절망에 빠지게 했다.
그러면서도 여기 독일(그것도 특히 베를린)의 경제 상황이 좋지 못하다고 힘주어 말하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냥 듣기만 했다. 물론 속마음과는 달리 입가엔 미소까지를 지으며......
결국 나는 ‘짐 때문에 왔다’는 말을 했고, 자기 집 지하실에 있던 내 짐을 ‘서 00’씨 집 앞까지 실어다 주며 피터씨는,
“인야, 어려운 일이 있으면 연락해.” 하고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하던데, 나는,
“어려운 일은 잘 모르겠지만, 좋은 일이 있을 때는 꼭 연락을 드리지요.”하고 제법 힘주어 답해 주었다.
‘아, 그 때는 그런 ‘호기(豪氣)’라도 있었지. 허긴, 아직은 젊었으니까......'
그렇게 서 00씨 집 지하실에서 내 짐을 총 점검하게 되었는데,
내 첫 번째 테라코타 작품은 손가락이 끊어진 상태였고(그나마 사라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스스로 자위할 수밖에 없었다.), 무거워서 현지에 남겨두었던 몇 권의 화집도 눅눅해서 다시 보기엔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확인을 하는 것으로 얼추 짐 정리가 된 꼴이다.
그러고 났더니 함부르크에서의 일정은 마무리가 된 것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베를린으로 돌아가기엔 어중간한 시간이어서, 하룻밤 더 묵고 가기로 했다. 그 과정에서 짐 점검하던 중 찾아낸 멕시코에서 그렸던 합판 그림 하나를 감사의 표시로 서 00씨 집에 놓아두기로 했다.
그런 뒤 밖으로 나와 무작정 함부르크 한 호숫가로 나왔다.
5 . 31 낮 ‘알스터’ 호숫가 벤치에서...
#행운과 능력#
짐 정리를 끝낸 다음 밖으로 나왔다.
배도 고팠지만, 발길 닿는 대로 무작정 시내를 걷기 시작했다.
이제는 정말 오갈 데 없이, 죽으나 사나 베를린으로 돌아가야 할 처지라는 게 실감나면서, 앞이 캄캄해짐도 느꼈다. 그러다 보니,
‘너는, 여기 함부르크에 오면 좋은 일만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냐? 그렇지 않잖아? 그런데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왜 그리 풀이 죽어있는 것이냐? 모두들 힘들겠다며 말리던 일을 니 스스로 감행하고 왔으면서, 벌써 너는 그 길이 두려운 것이냐? 그래서 피해가려는 거냐?’ 하고 스스로에게 묻기까지 해봤다.
그래도 한숨이 나오는 걸 피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였겠지만 주변 사람들이,
‘인야, 너 같은 사람에겐 운이 따라주어야 해......’ 하곤 했었지.
그러니까 그들 보기에도 운 없이는 내가 여기 이역만리 독일에서 살아남지 못할 거라는 시각이었기 때문일 텐데,
그만큼 지금의 내 상황과 조건이 안 좋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겐 운이 따라 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난 운이 나에게 올 것인지에 대한 그 어떤 확신도 없기 때문에 무작정 행운만을(이 세상이 날 알아주기를 기다릴 수만도 없고, 그럴 처지도 아니다.) 기다리고 있을 수만는 없다. 그러니 차라리 그 운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쪽으로 마음을 정리하고도 있다.
물론 내가 원하는 목표에 운이 작용한다면 좋겠고, 또 난 그 운을 기다릴 수도 있다. 그러나 내 자신은 운에 의해서만 성공하고 싶지는 않다는 말이기도 하다.
적어도 나는 내 능력으로 승부를 걸고 싶은 예술가다. 그리고 사실 내가 운만을 바라고 독일로 온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내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찾기 위해 온 거니까.
오늘 하루가 가면, 내일 또 다른 하루가 온다.
순간순간 상황에 따라 최선을 다 해 그 기회를 찾아보자. 나 같은 사람에게 다른 뾰족한 수가 있는 게 아니잖은가 말이다.
독일이여, 그대가 운이 있어 내가 왔는지,
내가 운이 있어 그대에게 왔는지, 먼 훗날 그 결과가 나올 것이다.
'아, 그렇지만 그 가까이거나 25년이 지난 지금까지의 먼 훗날이거나, 나에게 독일에서의 행운은 더 이상은 없었다. 물론 내 능력이 없었다는 말도 될 것이고......’
나는 일할 준비가 되어있다.
독일이여, 날 받아다오. 나를 써먹어다오. #
*
비록 밖은 훤했지만 밤기운이 돌면서 한기가 몸으로 전해져 왔다.
그러면서야 벤치에서 일어나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서 00씨는,
“날도 추운데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어요? 점심은 먹었나요? 어서 돌아오세요.” 하는 등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내 움츠러든 마음을 녹여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은 녹아든 마음으로 그의 집에 돌아가,
맛있게 차려준 저녁을 먹고 TV 축구를 보다 졸았다.
아침에 밥을 먹고 서 00씨 집을 나섰다.
나는 U반을 타고 혼자 갈 생각이었으나 그가 굳이 역까지 바래다주겠다며 나섰다.
나중에 알고 보니 버스표라도 사줄 심산이었던 것 같았는데, 난 이미 돌아오는 버스표를 가지고 있었다.
아무튼 그는 맥도날드에서 점심용 햄버거를 한 보따리 사 나에게 안기더니,
“만약, 힘들면 전화하셔!” 하는 둥, 우선 자신의 한 후배에게 전활 걸어 숙소문제를 해결하라는 둥 여간 세심하게 신경 써주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그는 참 정도 많은 사람이다.
나는 마치 남 일처럼 그에게 말했다.
“나는 여태까지도 이렇게 허허실실 잘 살아왔으니까, 앞으로도 잘 살아갈 겁니다. 되는 대로 순리에 어긋나지 않게 적응해 보지요.” 라고.
(그런데 이게 순리대로 살아가는 모습일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한국식의 이별과 함께 베를린 행 버스는 출발했다.
그가 춥겠다며, 마지막으로 건네준 자신이 입고 있던 홑 자켓을 걸친 촉감이 좋았다.
그런 느낌 속에서 나는 이내 잠이 들고 말았다.
라, 험난한 여정
이제 쿠바에서 갈 곳은 정해졌고, 그 행로마저 정해진 상태로 내가 찾아가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 젊은이(토니)와 헤어지는 순간부터 나에겐 엉뚱한 문제들이 발목을 잡기 시작하는데......
(물론 여기에는, 내가 이제는(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지만) 돈도 넉넉하게 갖고 있지 않은 늙은이라는 걸 기본으로 깔고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즉, 나에게 벌어졌던 일(문제)들, 특히 어려움의 대부분은 돈을 아껴야 하는 처지에서 나오는 거니까.)
#아바나(Habana)로...#
한 눈치가 빠를 것 같은 멀쩡한 택시 기사의 차를 타고 공항을 벗어나 아바나 도심으로 들어가는데, 쿠바의 첫 인상이 지금은 꽤나 오래 전의 일이 돼버렸지만, 어쩐지 27-8년 전 내가 멕시코에 도착할 때와 비슷한 것 같았다.
도로 가의 인도가 없는 풍광이거나, 그런 먼지도 날리는 건조한 길로 다니는 행인들의 행색으로나. 특히 어딘가 낯선 곳에 가면 처음 느껴지는, 이곳에서는 약간 시큼하면서도 찌든 것 같은 냄새까지도......
그런데 그건 뭐, 특별한 건 아니었다.
우리는 모르지만, 어떤 사람들은 한국에 처음 내리는 순간 공항에서부터 ‘김치 냄새’를 느낀다고 하는 것과 같은 일이니까.
그렇지만 여기는 4월 초순인데도 어느새 강한 햇볕이 내리쬐는 날씨가,
‘역시 열대지방이라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였지만, 그만큼 도로 가의 나무들의 색깔이 짙기도 했다. 여름 색깔일 테니까.
그렇게 도심에 가까워지면서 점점 건물들이 많아지던데, 낡고 지저분한 것과 도로로 달리는 차량들 대부분이 달린다기 보다는 깡통이 굴러다닌다고 해야 할 것 같은, 여태까지 다른 나라를 다니면서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초라하고 낙후된 분위기도 절로 느껴져 왔다.
“저기가, 버스 터미널인데요.” 택시 기사가 힘주어 말했는데, 건물이야 별 특색도 없었지만 그 옆에 제법 큰 공터가 있었고, 수많은 택시들이 제각각 주차 돼 있었는데 그 사이사이엔 또 많은 사람들이 몇몇씩 뭉쳐 무슨 일인가를 도모하고(흥정하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그렇지만 나는 일단 숙소인 ‘까사(Casa: 우리의 ‘민박’)’ 잡는 일이 급했기 때문에,
“우선 ‘까사’부터 잡읍시다.” 하자,
그 스스로가 어떤 사람에게 ‘까사’에 대해 물어 한 건물을 찾아가 택시를 멈춰, 본인이 직접 나가 값을 물어오는 일은 해주던데,
“30불이라는데요?” 하는 것이었다.
“너무 비싼데......” 하면서 이번에는 내가 택시에서 내려, 그 부인을 따라 들어가 방을 보니,
우선 거부감부터 들었다. 그러니,
‘좋지도 않구만, 왜 이리 비싸?’ 하는 심정에,
“나는 침대 하나만 있는 방이 필요한데, 여기는 더블 침대와 하나짜리도 있는 등 세 개씩이나 있어서... 나에겐 너무 비싸네요.” 하자,
“방을 혼자서 쓰면 되잖아요!” 하기에,
“굳이 세 사람이 잘 수 있는 방을 내가 왜 혼자서 씁니까?” 하면서 그냥 나와 버렸다.
그러면서 택시에 다시 오르니, 그 기사의 싫어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그렇지만,
“다른 곳을 알아봅시다.” 하자,
“내가 아는 곳이 없는데......” 하고 꽁무니를 내리는 말에 나는 와락 짜증이 났다. 공항에선 자신의 택시를 타면 ‘까사’ 잡는 것과 ‘버스 터미널’ 도착 문제는 아무 문제없이 해결해 줄 것 같이 장담을 했던 그였는데, 실제로 보니 ‘까사’ 하나 제대로 아는 곳이 없는 건 물론, 그 가격 같은 것도 몰라서 나에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그 역시 돈만 바라는 사람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에 대한 믿음이 반감된 건 물론,
‘속았다! 내가 어리석었지!’ 하는 후회까지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그 택시로 계속 그 근방을 헤집고 다닐 수도 없는 일이라, 일단 택시에서 내리기로 했는데,
이때부터 내 쿠바에서의 시련이 시작된 것이다.
‘아, 며칠 전의 일이지만 지금 돌이켜 봐도 너무 까마득해서, 한숨만 나온다. 물론 이제는 다 지난 일이라 쉽게 말할 수 있는데, 다시 하라고 한다면 죽어도 못할 것 같다.’ 하면서 나는 고개까지 가로 젓고 있다.
그렇게 택시를 돌려보낸 뒤, 그 근방에 있던 어떤 한 남자에게 까사에 대해 물으니, 다른 쪽에 또 하나가 있다며 가르쳐 줘서 거기에 가봤는데, 맘에 들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다.
들어가는 입구부터가 우중충한 게 싫었는데, 방 역시 지나치게 화려한 꽃무늬의 침대보가 더구나 나이롱 재질이어서 숨마저 꽉 막히는 기분이었다.
‘미국에서는 ‘여관(Inn)’ 방 한 칸에, 그것도 싸게 해줘서 80불이 넘었는데(텍스 포함 100불), 여긴 25불이면 엄청 싼 것 같지만, 시설 면에선 너무 차이가 나고 청결 문제 역시 말도 안 되게 열악하고 지저분해서, 따지고 보면 싼 것도 아니네! 식사 40불, 택시도 20불. 방 하나에 25불...... 이런 식으로 돈을 썼다간 금방 바닥나겠네......’ 하고 머릿속이 복잡해 져서, 일단 버스 터미널에 가서 표부터 예약한 뒤 까사를 잡기로 마음을 바꿔 먹었다. #
*
그렇게 그 옆에 있던 버스 터미널의 한 방에 있는 ‘비아술(Viazul)’이라는 여행사 사무실에 갔다.
그리고 공항 사무실에서 결제가 안 돼서 왔다며, 내일 밤 버스표를 예매하려 한다고 했더니,
뚱뚱한 여직원이,
“기다리세요.” 하더니 일을 하는 건지 않는 건지, 아예 함흥차사였다.
그렇게 30 여분을 기다리다 화가 나서 항의를 했더니, 그제야 오라더니 여권을 달라고 해서 주었고,
잘은 모르되, 아까 공항 사무실에서 시도했던 내 기록이 여기 전산에도 뜨는지 카드를 달라고 하던데,
웬걸?
여기서도 카드가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자 자기로선 어쩔 수가 없다며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현상은 나만 그런 게 아닌가 보았다. 거기에 두 쿠바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들도 불만어린 표정으로 카드 결제가 안 된다고 불퉁거리는 모습이 눈에 띄어,
‘무슨 이런 나라가 다 있어? 정말 짜증나네!’ 하는 심정에, 당장 쿠바를 떠나고 싶어지는 것이었다.
더구나 이젠 ‘토니’ 같은, 나를 도와줄 사람도 없는데......
그래서 허탈한 심정으로 포기하고 나왔는데, 포기하려고 해서 그런 게 아닌, 무엇보다도 잠이 쏟아졌기 때문에,
‘세상만사가 귀찮네! 잠부터 잔 뒤에 가든 말든 하자.’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당장 잠을 잘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아직 ‘까사’도 정하지 못한 상태라서. 그러니 그 지친 몸으로 무거운 짐을 끌고 땡볕이 내리쬐고 있는 도심을 돌아다녀야만 했다. 어느새 11시도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바나 도심의 도로 사정도 나빠 내 짐수레의 바퀴에 뭔가 이상이 생기고 있어서, 그것도 걱정거리였다.
‘아, 이러다 바퀴마저 망가지면, 재난 상태나 다름없는데......’ 하는 불안감에,
‘내가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담? 한국의 내 아파트에서 편하게 지내면 될 몸인데...... 언제든 자고 싶으면 눕고, 먹고 싶으면 냉장고에서 맘껏 꺼내 먹으면 되는데......’ 하는, 서울의 내 아파트가 꿈처럼 그리워지는 것이었다.
그랬다.
지금의 나에게 그랬던 내 일상은 그저 꿈일 뿐이었다.
그렇게 그 근방을 돌아다니다 보니, 까사 비용이 25에서 30 달러 수준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건 결코 싼 가격이랄 수 없었다.
내가 쿠바란 나라에 온 것도 어찌 보면 ‘싼 물가’ 때문이었는데,
물론 미국보다야 싸다지만, 따지고 보면 그다지 싼 것도 아니었고, 또 돈을 아껴야 하는 내 처지에서는 비싸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다간, 가는 길목에 돈을 탕진하겠네......’ 하는 비관적인 생각만 들어, 이제는 희망마저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한 큰 사거리를 만났고, 거기 대각선 쪽에 ‘까사’ 표지가 눈에 들어와 힘들게 찾아가 물으니, 15불이라고 했다.
가격은 저렴해서 괜찮은 것 같았는데 어째 음침한 게 썩 내키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는 더 이상 견디기 힘들어, 그냥 하룻밤 묵기로 했다.
그렇게 방에 들어가 보니,
웬걸?
입구 문을 빼면 창도 하나 없고 바람도 안 통하는 곳 아닌가. 그러면서도 벽에는 커다란 여자 누드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 기가 막혔다.
나는 약간의 ‘폐쇄공포증’이 있는 사람으로, 바람 통하지 않는 밀폐된 공간을 못 견뎌하는데, 그렇다고 나가겠다고 할 수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그 방에 ‘에어컨’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꾹 참고 하룻밤 지내기로 했다.
일단 샤워부터 했고(뜨거운 물도 아닌 거의 미지근한 수준), 잠부터 자기로 했다.
꿀맛 같은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2시가 넘어 있었다. 기껏해야 세 시간 남짓 잤던 것이지만, 그래도 조금 살 것 같아 나는 시원한 바람이라도 쐬기 위해 바닷가로 나가보기로 했다.
쿠바에 오기 전에 지도 검색에서 ‘아바나(Havana)’를 클릭할 때는 늘 도심의 끝은 바다였기 때문에, 어딘가로 가다 보면 미국 플로리다 반도 쪽의 가까운 바다일 터라.
휠체어를 타는 여주인에게 물으니,
“밖으로 나가 첫 번째 사거리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져 죽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기에, 무조건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땡볕의 아바나 도심의 거리는 지저분했고 나른했다.
낡은 건물과 깡통 같은 차량들, 그리고 거리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어째 이상하게도 가게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이들은 장사를 않나? 그럼, 뭘 어떻게 해서 먹고 산다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상했다. 세상 어느 도심이거나 거리의 건물은 각종 상업시설이 자리 잡는 게 보통인데, 건물은 늘어서있는데 그저 우중충하거나 철창살이 있는 조그만 문이 전부이기도 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가게가 보이지 않는 게 아니라, 그런 상황에서도 제각각 뭔가 상거래를 하는 것 같았는데, 여느 다른 나라와는 사뭇 다른 모양새여서,
‘여기가 ‘사회주의’ 국가라 그런가?’ 하게 되었는데, 내 추측은 어느 정도 맞을 것 같았다.
여기도 사람들은 자유가 있는 것 같은데, 상업시설이나 구조가 다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조금 걷다 보니 비록 낙후되고 지저분하기는 했지만, 뭔가 정감이 느껴지는 면도 없지는 않았다.
어찌 보면, 내가 이미 여행을 했던 ‘멕시코’나 ‘모로코’ 등이 엇비슷한 것 같기도 했지만, 그래도 다른 두 곳은 이미 오래 전이었고 거리에 상가는 항상 있었는데(그게 너무나 당연했는데), 여기는 음침한 건물만 보이는 것 같은 차이는 있었다.
다만 여기는 치안은 안전하다는(사람들의 자세 자체가 친절한 듯) 것 같던데......
그렇게 가다가 뭔가 호기심이 나는 여기저기 작은 거리 쪽으로 걷기도 했는데, 한 채소시장 같은 곳이 있었다.
그런데 규모가 매우 작은 시장이었고, 양파, 마늘, 크지 않은 토마토, 오이 등이 보였을 뿐 채소마저 풍성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익지 않은 망고와 아보카도 같은 것들도 보였지만, 시장 자체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거기 입구에 과일즙을 비닐봉지에 담아 파는 가게가 있기에,
더구나 갈증을 느끼고 있었기에 구미가 당겨 가보니, ‘레몬’과 ‘오렌지’ 물을 한 덩어리씩 비닐봉지에 넣어 파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약간 연한 색의 ‘레몬 물’을 사려고 했더니, 앞 사람이,
“실텐데......” 하고 혼잣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렌지 물’을 샀는데,
그 옆 가게에서는 피자 같은 조그만 후라이팬에 기름으로 구운 ‘도넛츠’ 같은 먹거리를 팔고 다른 사람들도 먹고 있기에, 나도 그러려고 샀다.
그런데 그 옆의 서서 먹는 탁자에 올려놓았는데, ‘오렌지 물’ 비닐봉지가 너무 꽉 묶여 있어서 풀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어렵사리 비닐봉지를 풀어 조심스럽게 컵에 따라 맛을 보니,
웬걸?
색깔만 그럴 싸 했지 ‘주스’랄 것도 없이 별 맛도 없는 물일뿐이었다.
그렇지만 산 걸 버릴 수도 없고 해서(차라리 나에겐 물이 나을 듯) 천천히 먹고 있는데, 동행인 듯한 두 사람이 그 쪽으로 오면서 나를 보며 환하게 웃기에,
“이거, 먹는 것도 보통 힘드는 게 아니네!” 하면서, “같이 드실래요?” 하고 물었더니, 어리벙벙해 했다. 그래서 다시,
“나 혼자 먹기엔 너무 양이 많고, 또 내가 가져갈 수도 없어서 그러니, 그리고 깨끗이 먹은 거니, 저기 가서 컵만 가져 오세요. 그러면 내가 따라 드리지요.” 했더니,
아닌 게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즉흥적으로 그들이 합류하는 바람에, 물은 아예 그들에게 맡기고, 피자 같은 빵은 그들이 반절 넘게 먹는 바람에, 금방 동이 나고 말았다.
그래도 그런 즉흥적인 행동이 즐겁기까지 했고, 나는 뒤처리하기도 애매한 먹거리를 말끔하게 처리한 셈이기도 했다.
그렇게 시장에서 우스꽝스런 먹거리와 과일 물을 마시고는, 또 북쪽 방향의 몇 블록을 지나다 보니 저 쪽에 낮은 수평선이 보이는 것이었다.
약간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따라 간 뒤, 넓은 도로를 조심스럽게 건너 바다 방파제 한 경계선(약간의 그늘이 있어서)에 올라앉았다.
한 쪽은 아바나의 지저분하면서도 흉물 같은 건물들이 즐비하게 자리하고 있었지만, 그 아래 해안도로 너머엔 구불구불 해안선을 따라 방파제 같은 성벽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고, 그 너머 바다엔 짙은 수평선이 끝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맞아, 여기 오기 전 지도상으로 볼 때도 ‘아바나(Habana)’가 이렇게 생겼었어......’ 하는 뭔가 지도를 실물로 확인한 기분이어서 다소 안심이 되었지만,
‘아, 내가 이렇게 쿠바라는 나라에 와 있긴 한데, 잘 온 건지 아니면 괜히 온 건지......’ 하다간, ‘그나저나 막막하기 그지없구나! 어쩌면 긍정적인 것보다는 부정적인 느낌이 강한데...... 더구나 내일 밤에 떠난다는 버스표도 예매하지 못한 상태라 불안하기만 하고......’ 했지만,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아무렴 못 가겠어? 내일 오전에 다시 해봐도 되겠지.’ 하면서, 그저 하염없이 바다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햇살은 뜨거웠지만 저녁으로 가는 기운을 잠재우지는 못했다.
바닷가에도 서서히 저녁의 그림자가 깃들기 시작했고, 두어 시간 멍하니 앉아 있던 나도 숙소로 돌아가야만 했다.
한심한 건 여전했지만, 어쨌거나 잠도 더 자야만 했고, 내일은 또 내일 대로 뭔가를 해야 할 테니까.
그런데 그렇게 돌아오다 아무래도 요기는 해야 하겠기에, 한 모퉁이에 사람들이 줄지어 사는 빵집에 나도 들어가 샌드위치(100뻬소) 하나를 샀다. 그리고 마실 물을 사려니, 아무리 둘러봐도 수퍼마켓 같은 게 없어서, 사람들에게 물으니, 큰 거리의 음료수 파는 가게를 알려주었다.
샌드위치를 들고 가게까지 가서 물 한 병을 달라고 했더니,
1 달라라고 하면서도 비자카드로만 결제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한다고 카드까지 요구해? 그냥 현금으로 받으면 편할 텐데......’ 하는 약간 짜증스런 기분으로 카드를 주었더니, 이제는 여권도 요구하는 거 아닌가.
“예에? 무슨 물 한 병 사는데, 여권까지 달라는 거요? 참, 이상한 나라네!” 하고 항의 비슷하게 짜증을 내자,
“여기는 쿠바거든요.” 하는 것 아닌가.
그러니 내가 할 말이 없었다.
아무튼 그렇게 겨우 저녁거리를 사고는, 그대로 ‘까사’에 들어가면 너무 답답할 것 같아, 마침 거기가 대학가인 듯 젊은이들이 줄지어 버스를 타고 건물도 그럴싸해서, 거기 한 벤취에 앉아 저녁을 먹었다.
물론 거기까지는 그런 대로 좋았다.
그런데 거기서 내려오다(아까 낮에 지났던 길을 기억하면서) 길을 잃었다.
그 구역은 건물은 낡았지만 그래도 사각으로 구획이 잘 나누어진 동네였는데, 잘은 모르지만 내가 어느 한 지점에서 다른 구획으로 샜던가 보았다. 그래도 처음엔,
‘그래봤자, 이 동네일 텐데, 헤매면 얼마나 헤맬까?’ 하고 내 자신을 믿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날은 한 번 어두워지자 삽시간에 깜깜해졌고, 나는 여기가 거기 같고 거기가 여기 같은 구획을 이리저리(갔던 곳을 또 지나고 다른 곳을 가면 또 거기 같고) 헤매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거, 이러다 정말 길을 잃어 밤새도록 헤매는 거 아냐?’ 하는, 왈칵 겁도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제가 제법 심각했던 건, 나는 숙소의 내방 열쇠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 내가 묵는 ‘까사’의 주소도 전화번호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만 거기로 들어갈 때 ‘아미고(Amigo)’라는 간판을 본 건 기억이 되었지만, 그 근방엔 까사가 너무 많아서(내가 헤매면서 보니 정말 많았다.) 그 이름만으론 찾기가 쉽지 않았다.
불안했던 건 물론 점점 현지 주민들에게 묻는 횟수가 늘어났는데, 모두가 거리 이름을 대라고들 했지만, 나에게 기억되는 건 그 까사를 찾아갈 때 보았던 거리의 생김새(큰 사거리인데 인도에 나무들이 많은) 뿐이었다.
이제 등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가고 있었고, 점점 지쳐가고도 있었다.
‘아이 참! 내가 어린 애도 아니고, 나오면서 명함이라도 한 장 달라고 했어야 했는데......’ 하고 후회를 했지만, 후회는 후회일 뿐 아무런 실제적인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도심은 이미 한밤중 같았고 거리의 사람들도 줄어드는 것 같았는데,
내가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버스 터미널’이 속한 큰 길을 타고 한참을 걸어와 다음 큰 사거리였는데, 길을 건너다보니 거기엔 나무가 많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그렇게 설명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의외로 현장에선 멀리 벗어난 상태여서, 블록을 다섯 개나 거슬러 찾아올라가야만 했다.
그나마 내 기억력에 의한, 또 스페인어가 되었기에 그 상황에서도 결국은 ‘까사’를 찾아올 수 있었는데, 약 한 시간 동안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모른다.
땀에 흠뻑 젖어 숙소에 돌아오니 주인 남자가 냉장고에서 물 한 병을 꺼내다 줘서,
아까 길거리에 앉아 먹다 반절 쯤 남겼던 샌드위치를 마저 먹고(내가 쿠바에 오는 과정에 아직도 대변을 못 봐서, 어쩌면 변비까지 생길 우려가 커, 뭐든 먹어둬야만 했다.), 물도 꿀꺽꿀꺽 들이켰다.
그렇게 다시 샤워를 한 다음, 그래도 인터넷이라도 하려고(카톡) 까사 거실에 나가니, 아까 낮에는 되던 인터넷마저 연결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또 주인을 부를 수도 없어서, 그냥 방 안으로 들어왔는데,
피로가 몰려왔지만, 그저께 미국에서 출발하면서부터 걸렀던 여정 기록을 해둬야 할 것 같아, 쉴 수도 없었다.
그래서 정리 작업을 하는데, 밖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비가 내리는가 보았다.
그렇게 기록이 얼추 끝난 것 같아,
‘아, 이대로 깨어나지 않는 잠을 자고 싶다!’ 하면서 불을 껐다.
4 . 7
#치명적인 실수#
공기가 통하지 않는 답답한 방이었지만, 파김치가 되어있던 나에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너무나 달콤했던 잠에서 깨어난 것도 잠시, 나에겐 또 다시 막막함이 밀려왔다.
‘이 쿠바에 내가 왜 왔다지? 한심하기 짝이 없네!’ 하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당장 쿠바를 떠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쨌든 힘들여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얼마간은 머물러야만 할 것이었다.
‘근데, 그 바닷가 마을로 가는 버스표조차 예매가 안 된 상황이니, 어떡한다지? 그리고 만약 그 버스를 못 탄다면?(지금 상황으로는 못 탈 확률이 높아서)’ 하는데,
‘내가 못가면? 거기 어딘가로(이 순간에 나는 알게 되었다. 내가 찾아가야 할 도시의 이름도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를 마중 나온다던 택시 기사는 어떻게 된다지? 하다못해 전화번호라도 알아야 못 간다는 전화라도 걸 텐데......’ 하는, 현실문제에 눈이 떠진 것이다.
그러니, 그게 또 걱정이었다. 이미 잡힌 약속이라 지켜야 하는 건 당연한데, 내가 못가면 그 약속은 깨지는 것이라. 그리고 내가 못 간다면, 비록 내 쪽에서 고의로 약속을 깬 건 아니지만, 어떻든 그 사람은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로 그 버스 터미널에서 나를 기다릴 텐데, 나중에,
‘그 한국 놈, 약속도 안 지키고......’ 할 것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러고 보니 그 것도 한심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그 ‘토니’란 젊은이가 내가 가지고 있던 서류 봉투에, 자신의 전화번호와 이 메일 주소, 그리고 ‘카보 끄루스’ 주변 도시 이름인 ‘니께로(Niquero)’ 등을 또박또박 적으면서도 정작 내가 첫 번째 내려야 할 도시 이름을 빠트렸던 것인데,
그도 그렇지만, 내 쪽에서도 그 택시 기사의 전화번호 정도는 챙겨두었어야 했는데, 그 순간엔 둘 다 그 중요성을 간과했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바닷가 마을에 사는 자기 친구와 아버지 전화번호 역시 빠트렸으니, 내가 누군가와 연락할 그 어떤 끄나풀도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랬던 이유 중에는, 내 핸드폰이 전화통화 자체가 안 되고 와이파이 존에서 겨우 문자통화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가 알았기 때문인 듯한데, 그렇다고 지금 당장 그에게 메일을 보낸다고 해도 그가 받아볼 수 있을지 의문인데다, 여기 와이파이 상태가 좋지가 않아서(그리고 그 역시 제 3국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 인터넷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래저래 그와 통화하기는 불가능한 상황으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에이! 그나저나, 한 평생을 이런 식으로 여행을 다니며 살았던 나란 사람이, 어제도 이 까사 전화번호도 모른 채 외출을 했고, 내일 내가 가야 할 목적지가 어딘지도 알지 못하고 있는 어수룩하기 짝이 없고 실수투성이니......’ 하는, 모든 게 다 내 실수이자 잘못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하는 수 없었다.
‘그래도 버스가 내일 저녁에 출발하는 거니까, 최소한 내일 낮에는 다시 한 번 시도를 해봐야겠다. 그러니까 다시 버스 터미널에 가서 최대한 애를 써본 뒤, 그래도 안 되면 최후의 수단인, 다른 외국인 승객 중 누군가는 카드 결제가 될 테니, 그런 사람에게 부탁해, 내 대신 그 사람 카드로 결제를 해주면 현장에서 바로 내가 현금으로 지불하는 방법을 강구해서라도(미국에서도 S가 내 쿠바행 항공권을 그런 식으로 사줬으니까.), 가야 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그 택시 기사와의 약속도 지킬 수 있고, 그 마을에 찾아갈 수 있을 테니...... 토니의 친구라는 ‘윌리암’이란 친구와 직접 통화하는 건 못 들었지만, 토니의 아버지라는 여든 노인도 어쩌면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니......’ 하는 식으로 생각을 정리해 두기는 했다.
그저 행운을 바라는 불안정한 것이긴 해도......#
#본인의 목적지도 모르는 승객#
아침에 주인 남자가 뭔가 하얀 주스 같은 걸 가져오더니, ‘과야바 주스’라며 마셔보라고 했다.
그래서 맛을 보니 아주 맛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까사(민박) 주인 가족이 아주 친절하긴 했다. 하나하나 나름 세심하게 신경써 주는 모습이. 그래서,
“왜 인터넷 접속이 안 되지요?” 물었더니,
자신은 모르고, 그 장애인 딸이 와야 해결 될 거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 딸에게 전화를 거니, 어딘가 다른 데서 출발을 한다는 가 보았다.
그러면서 얘기 끝에,
오늘 밤 버스를 타고 남동쪽 끝의 ‘까보 끄루스’에 가려는데, 내 비자카드 문제 때문에 차표 예매를 못하고 있다는, 내 사정 얘기를 하면서,
“혹시 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요?” 하고 물었더니,
“도와줘야지요.” 하면서도, “그 문제 역시 딸이 오면 얘기해 보세요.”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일단 그들에게 도움 요청을 해둔 상태로, 얼마 뒤에 그 장애인 딸이 왔는데 그녀의 남편인지 남자(어제 함께 있었던)도 함께여서, 그 얘기를 했더니,
“조금 있다가 함께 버스 터미널에 가봅시다.” 하는 것이었다.
“그 휠체어를 타고요?” 하고 내가 의아해 하자,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 다른 방법은 없고 휠체어로 갈 수밖에 없어요.” 해서,
그런 식으로라도 나를 도와주려는 의지에 나는 감동하기까지 했다.
멀쩡한 사람이 해준다고 해도 미안하고 고마울 일인데,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나를 돕기 위해 버스 터미널까지 함께 가주겠다니......
그렇게 얼마 뒤에 그들 부부와 나는 ‘까사’를 나와 큰 도로를 건넌 뒤, 요리조리 큰 길을 피하면서도 휠체어가 갈 수 있는 아스팔트길로 한참을 걸어서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너무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들과 함께 가는 내 입장은,
‘몸도 성하지 못한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다니......’ 하는, 정말 좌불안석이기도 했다.
그런데 웬걸?
그 사무실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있었고, 차례를 물어 우리도 거기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지 모를 긴 줄에 우선,
‘아, 이렇게까지 해서 꼭 거기를 가야만 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짜증이 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여기 쿠바에서 외국인이 버스여행을 하려면 이 방법 말고는 없다니, 설사 내가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해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불가능할 거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사람 환장할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내가 가야 할 목적지를 모르고 있는 여행객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를 기다린 끝에 매표소 직원 앞에 앉게 되었는데,
“목적지는요?” 하고 물었는데,
“실은, 내가 그걸 몰라서......” 하자,
“예에? 아니, 어떻게 승객이 본인의 목적지를 모를 수가 있어요? 그러고서 어딜 간다는 거예요?” 하고 말도 안 된다는 듯 웃기까지 하면서,
“그럼, 뭘 어쩌란 말에요?” 하고 되묻기까지 했다.
그러니까 어제는 여기 사무소에도 공항에서의 내 기록이 남아있었던지 그 문제는 불거지지 않았는데, 오늘은 초면의 다른 담당자였고,
아무 것도 모르는 그녀에게 나는 ‘황당무계한 승객’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제 있었던 일을 잠시 설명한 뒤,
“여기 아바나에서 48유로 지점이라고 했는데요......” 하자,
“그렇게 해서는 목적지를 어떻게 찾겠어요?” 하고 난색을 표하기에, 나는 스스로 생각해도 부끄럽기까지 해서, 가급적 주변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하게끔 작은 목소리로,
“글쎄요, 그 도시 이름이 기역(G) 발음 같기도 했고, 비읍(B) 발음 같기도 했는데......” 하자,
“그렇게 해서 어떻게 지명을 찾아요?” 하면서 몇 군데 이름을 대긴 하던데,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어쨌든, ‘까보 끄루스(Cabo Cruz)’란 마을에 가야하고, 그 보다 큰 주변 지명이 ‘니께로(Niquero)’라고 한다고 적어주긴 했는데......” 하자,
“혹시 ‘Camaguey(까마궤이)’아니에요?” 하기에,
“글쎄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하자,
“근데, 거기는 48유로가 아닌데......” 하는 것이었다.
“그럼, 거기서 조금 더 먼 곳을 찾아보면 안 될까요? 48유로에 맞춰서......” 하고 내가 부탁까지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쿠바 동부 지역의 도시 이름을 알지도 못하면서 임의로 정할 수도 없는 입장이라, 그리고 순간적으로도 어차피 거기(‘Camaguey(까마궤이)’)도 동쪽이니까 거기까지 가면 거기서 또 동쪽으로 더 가는 방법을 모색할 수도 있을 거라는 나 편할 대로의 판단으로,
“거기라도 해 주세요......” 했던 게, 알지도 못하던 내 목적지로 정해지긴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잘못 된 지명이었다. 그리고 그 매표원도 한심하기만 했다. 내가 분명, 토니가 적어준 그 지방인 ‘그란마(Granma)’란 우리나라의 ‘도(道)’ 이름과, ‘니께로(Niquero)’ ‘까보 끄루스(Cabo Cruz)’의 세 곳은 말을 했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런 매표소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그 지명만을 조합해서도 내가 가야 할 ‘바야모(Bayamo)라는 도시가 ‘그란마 지방’의 가장 큰 도시이자 이 ‘비아술’ 버스가 정차하는 곳이라는 것과, 거기까지 가격이 48유로라 그 목적지를 끄집어내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이번엔 나를 도우려고 함께 갔던 ‘까사’ 주인 딸 부부의 카드가 여행사에서 요구하는 ‘비자카드’가 아니어서 나를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최후의 방법이라는 이 메일을 통해 내 ‘본인 인증’이라도 해보자고 하던데, 설상가상으로 와이파이 존인데도 불구하고 내 핸드폰으론 이 메일에 접속이 되질 않아(도대체 이건 무슨 일인지, 여태까지 멀쩡하게 사용하던 메일인데도 비밀번호가 틀리다며 접속이 안 돼) 결국 ‘본인 인증’도 할 수가 없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러니까 그들도 나름 나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 했지만,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다.
‘아, 이럴 줄 알았다면, 한국을 떠나오면서 핸드폰을 정지시키지 않고 ‘핫스팟’인지 뭔지로 계속 인터넷 접속을 하게끔 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저 ‘카톡’만 하면서 돌아다녀도 충분할 거라는 주제넘고 섣부른 판단으로 이런 일을 자초했던 거구나!’ 하고 후회에 후회를 거듭했다.
어디 그뿐인가.
이놈의 카드 문제도, 내가 해외에서 써먹기 위해 한국을 떠나오기 직전에 일부러 만들었었는데, 이 노릇을 어찌 한단 말인가?
‘아니, 그 은행 담당자가 웃으면서,
“이제는 아무 문제없이 해외에서 사용하실 수 있을 거예요!” 하고 큰소리까지 쳤는데, 며칠 전 미국에서도 그러더니 여기 쿠바에서도 마찬가지로 사용할 수 없으니, 정말 미치고 팔짝 뛰겠네!’ 하면서, ‘내, 나중에 귀국해서라도 한 번 그 은행에 찾아가서 난리를 쳐야지, 이놈의 카드 때문에 무슨 말도 안 되는 고통을 받고 있느냐고!’ 하면서 이를 득득 갈았지만,
현실적으론 아무런 도움도 되질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황이 그렇게 흐르자, 어젯밤에 생각해 두었던, 비자카드로 결제를 하는 다른 외국인 관광객의 도움을 요청하려던 계획마저 시들해져(그 순간엔 그저 멍했고, 모든 게 귀찮기만 했다.), 나는 다시 망연자실,
‘그렇다면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여기선 아무 데도 맘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으니......’ 하고 절망에 빠진 건 물론 판단력마저 희미해지고 있었다.
다만, 그 당장 나를 돕기 위해 동행했던 (장애인을 포함한)그들에게 미안해서 뭘 어찌 할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아무 정신도 없이...#
그렇게 버스 터미널을 터덜터덜 나오는데 여자가,
“이렇게 풀이 죽어 그냥 집으로 돌아갈 바엔, 여기 택시에라도 물어볼까요?”하는 제안을 했다.
“되면 좋고, 안 돼도 할 수 없는 거 아니겠어요?” 하면서.
그러자 바로 남자가 택시 기사들이 서서 흥정을 하고 있는 곳으로 갔고, 두어 사람과 의견을 교환하는 것 같더니 이쪽으로 뛰어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까마궤이(Camaguey)’까지 합승 택시가 있는데, 50불 달라는데요!” 하는 거 아닌가?(달러와 유로가 거의 같기 때문에, 48유로라는 곳에 가는 비용과 엇비슷했다.)
“예에?” 하고 내가 반가우면서도 어리둥절해 하자,
“근데, 곧 출발한다는데요!” 하기에,
“아, 그래요? 그건 좋은데, 근데, 나는 지금 못 가는데......” 내 입에서 바로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러자,
“왜요? 오히려 지금 가면, 버스로 밤에 가는 것보다 더 좋을 텐데......” 하고 그가 의아해 하는데,
“내가 지금, 배가 너무 고파서, 뭐라도 먹고.. 좀 준비도 해서 가고 싶은데......” 하자, 그 옆에 있던 여자가,
“아, 아침도 못 드셨어요?” 하기에,
“오늘 아침에 그럴 틈이 없었지요.” 하자,
“그랬군요! 그렇지만 어떻게든 그 합승택시를 타는 게 좋지 않겠어요?”하기에,
“그건 그런데......” 하면서 나도 일단 가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그러자 여자가,
“그럼, 어쨌든 짐을 실어야 하고 또 짐이 집에 있으니, 우리가 집에 도착한 다음에 택시가 집으로 와서 태우고 가기로 했으니까, 집에 전화를 걸어서 뭐든 먹을 것 좀 준비하라고 하고, 서둘러 집으로 갑시다. 어쨌든 요기부터 해야 하니......” 해서, 우리는 다시 급하게 ‘까사’로 돌아와야만 했다.
전혀 예상치 않은 일이 순식간에 벌어졌던 것인데, 나는 여전히 혼란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어찌 됐든 암울하기만 했던 이 아바나를 벗어나 그 바닷가 마을 가까이에 갈 수 있다는 것만 해도 나에게는 반절의 성공 같았고, 일이 이렇게나마 풀려주는 것도 고맙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나를 도우려는 그들의 친절에 내가 어찌 할 바를 모를 지경이긴 했지만......
그렇게 한참 만에 ‘까사’에 도착하니 여자의 아버지가 미리 준비했던 계란 후라이와 빵 하나를 내와 정신없이 먹게 되었는데,
시간이 없다 보니 나는 아침을 먹으면서도 숙박료 등 돈 계산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짐도 챙겨 놓는 등 얼추 떠날 준비가 되었는데, 그 와중에도 나는 어제 오가며 봐두었던 바로 그 ‘까사’ 옆 건물로 뛰어가 슬리퍼 하나를 사기로 했다.(내 그 전의 경험으로 봐도, 열대기후에서는 슬리퍼거나 샌들이 필수적이어서)
그런데 내 발에 맞는 게 하나 밖에 없었고 가격이 2천뻬소였는데, 썩 맘에 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살 수밖에 없어 시큰둥하게 나와 보니,
‘까사’ 앞에는 이미 택시가 도착해 있었고, 어느새 그 기사가 내 짐까지 택시에 싣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또 정신없이 뛰어 와 운동화와 양말을 벗고 슬리퍼로 갈아 신은 다음, ‘까사’ 주인들에겐 제대로 고맙다는 인사도 못한 채 택시에 올라야만 했는데,
사실은 차근차근 시간을 가지고 준비한 다음 밤에나 떠날 계획이었던 나는,
‘에이, 뭐 하나 제대로 되는 것도 없고 몸은 천근만근인데, 내가 왜 이렇게 바빠야 하는 거야?’ 하는 불만이면서도,
어쩐지 ‘미지의 내 목적지’에 가까운 곳으로 떠난다는 게 싫지만은 않았다.
비록 내가 ‘가려는 곳’은 원래 내가 ‘가야만 할 곳’과는 다른 엉뚱한 곳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출발#
어디로 가는 줄도 잘 모른 채 내가 정신없이 올랐던 택시는,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택시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또 마이크로버스 정도로 큰 차량 역시 아니었지만, 그 안을 고개만 숙인 채 들어갈 수 있는 그러면서도 운전석을 제외한 세 줄과 뒤 짐을 싣는 공간까지 갖춘 조금 특수한 SUV 차량 같아 보였다.
승객은 열 명쯤 탄 것 같은데, 이미 빙 둘러 자리가 다 찬 상태로, 제일 마지막에 탔던 나는 그들 한 가운데에 위치한 좌석에 앉아야만 했다.
여전히 어리둥절한 상태로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곧장 차가 출발했다.
그런데 땡볕이 내려쬐는 한낮이어서 제법 더운 상태였는데, 차량 한 가운데에 앉아 있자니 출발하면서부터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스스로 어딘가 갈 수조차 없던 막막한 상황에서 벗어나 어딘가로(바닷가로)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하다 못해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었고, 방금 갈아 신었던 슬리퍼 덕분에 발의 답답함도 다소 해소된 느낌이었다.
신호등에 걸리는 등 도심에서 몇 차례 멈추기는 했고 그게 답답했지만, 승합택시가 일정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물론 좋은 도로가 아닌, 왕복 4차선에 갓길이 상당히 넓어 6차선으로도 뵈는 정비가 덜 된 도로로 우리가 탄 차는 아바나시를 벗어나 평원지대로 접어들고 있었다.
그런데 떠난다는 설렘도 잠시, 나는 밑도 끝도 없는 길로 떠나고 있는 듯한 불안감에 사로 잡혀가고 있었다.
내가 가는 목적지(까보 끄루스(Cabo Cruz))가 쿠바의 동남쪽 끝이기 때문에 차는 그 쪽 방향 어딘가의 큰 도시로 가고 있을 것이었는데, 그저 그런 변화도 없는 길을 달리는 것도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아, 여기는 미국 같이 크고 넓은 나라가 아닌데도 웬 놈의 평원이 이렇게 길고 끝도 없는지 모르겠네......’ 하는 심드렁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런데 여기 쿠바 사람들(택시 승객들)은 서로가 전혀 알지 못하는 사이 같은데도, 한 사람이 뭔가 얘기를 꺼내면 주변 사람들 모두가 마치 동행인 것처럼 다 달라붙어 떠들썩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었다.
‘허긴, 스페인어권의 나라 사람들이 주로 그렇긴 한데......’ 하고 이해는 되었지만,
문제는 그들 한 가운데에 침묵을 지키며 앉아있는 나였다.
더구나 어디로 가는지조차 불확실했던 나는 결코 즐거울 수만은 없었는데,
그들의 얘기 홍수 속에서 마치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은 ‘이질감’이거나 ‘소외감’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두 시간 넘게 달린 것 같은데 차가 한 휴게실에 섰다.
그래서 나도 화장실도 갈 겸 사람들을 따라 내렸는데, 일단 화장실에 갔더니 유료였고, 3뻬소를 내라고 해서 내고 소변을 보고 나왔는데, 그 옆에 있던 매점 앞에서 사람들이 들어가질 못하고 서 있는 것이었다.
나도 물을 한 병 사 마시고 싶어 그 쪽으로 갔는데, 안에 사람들이 있기는 했는데 문이 잠겨져 그냥 멀쩡하게 서 있기에,
“무슨 일이 있나요?” 하고 물었더니,
“모르겠는데, 문이 잠겨 들어갈 수가 없어요.” 하는 것이었다.
‘무슨 이런 데가 휴게소야?’ 하는 불만이 솟구치면서, 나도 거기에 그냥 그들처럼 서 있었는데, 곧 우리 차가 크락션을 울리는 것이었다.
그건 빨리 타라는 신호였는데,
‘아니, 물도 못 마셨는데 타라고?’ 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차를 타러 가니 나라고 어쩌겠는가.
그렇게 다시 차에 올랐는데, 같이 탔던 사람들 모두는 뭔가 과자 같은 걸 하나씩 다 샀던 모양으로 그걸 먹는 등, 나만 겨우 소변만을 봤을 뿐 물도 못 마신 채 멀거니 서 있다 다시 차를 탄 꼴이었다.
‘도대체 이 나라를 이해할 수가 없네!’ 하고 있었지만, 그것도 마음뿐이지, 그들에게 그런 소리 한 마디 하지도 못한 채 차는 또 달리기 시작했다.
정말, 여기는 뭐 하나 확실하고 투명한 게 없었다. 그래도 딴에는 세상 여러 곳을 다닌 편인데도, 나에겐 모든 것들이 다 오리무중이고 이해 못할 것 투성이었다.
그런데 차가 달리기 시작한 얼마 뒤부터, 풍광이 조금 변하는 것 같았다.
그다지 높지 않은 산들이 보이는가 싶더니, 저 앞쪽엔 ‘무지개’가 떠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그 산 쪽으론 비가 왔다는 뜻도 되었지만,
‘아, 내가 가는 이 길이 저런 무지개만 같다면......’ 하는 얼토당토않은 망상에 나는 사로잡혀가고 있었다. 그만큼 내 현실이 암울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꿈일 수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래, ‘무지개’는 그저 무지개일 뿐이야. 지금의 나에겐 아무런 도움도 희망도 아닌 쓰잘데없는 허상일 뿐이야.....’ 하고도 있었다. #
#암울한 여정#
그런데 갑자기 비가 내리는 것이었다. 그 느낌이 보통비가 아닌 듯싶었는데, 나는 괜스레(아니, 몇 시간 후에 어딘가에서 내리게 된다면 한 밤중이 될 거라는 불안감 때문에),
‘아, 내가 왜 이렇게 발이 팅팅 붓도록 돌아다니는 생고생을 하고 있는 걸까? 얼마든지 서울의 내 아파트에서 평화롭고 안락하게 지낼 수 있는데, 일부러 그리고 어렵사리 여러 난관을 해쳐나가면서 외국 땅까지 나와, 지금은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른 채 낯선 나라의 한 바닷가 마을을 찾아간답시고 이 난리를 치고 있으니!’ 하고 한심해 하다간, ‘그건 그렇고, 이런 힘든 상황이 내가 간다는 그 곳 ‘십자 곶’에 도착한다고 바로 끝난다는 보장도 없는데, 내가 왜 이리 막연한 길을 가고 있는 걸까? 이러느니 아예 확 방향을 바꿔, 차라리 지금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 버릴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들면서는, 한국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져,
‘아, 냉장고에 있던 묵은 신김치에 라면을 끓여 먹어도 맛있고 행복할 것 같은데......’ 하는, 평소엔 잘 먹지도 않는 라면을 떠올리면서까지 후회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또,
‘어차피 그 여행사 고속버스를 타지 못했기 때문에, 내일 거기 어딘가에서 날 기다릴 운전기사 문제도 걱정이네! 이렇게 모든 일이 어긋났고 즉흥적으로 바뀌어 버린 걸 그가 알 턱이 없고, 그 문제 역시 이미 내 영역에선 벗어난 일이니, 이 노릇을 어찌 한다지?’ 하고 있는데, 그 순간 달리는 차가 치는 물보라가 어찌나 큰지 몸을 움찔하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그래서 보니 앞을 분간할 수 없도록 세찬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니, 무슨 비가 이렇게 쏟아진담? 여기 쿠바가 원래 이런가? 아니면, 오늘만 이렇게 난리를 치며 내리는 건가......’ 하면서 나에겐, 옛날 멕시코 시절 내 두 번째 전시회 오프닝을 망쳐버렸던 ‘하늘의 저주로 내린 비’를 떠올려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내리는 비도 하도 엄청나다 보니,
‘이러다가 비 때문에 차가 못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되는 등, 암울한 내 상황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날은 어두워지고 있었고, 그렇게 내리던 비도 구간 구간에 따라 다소 수그러들기도 했다.
그러다 제법 큰 한 도시를 지나게 되었는데(나는 그 이름에 관심을 가질 여력도 없었다.), 기사가 한 허름한 식당 앞에 차를 세웠다. 그러면서,
“여기서 저녁을 드세요!” 했던 것 같다.
사람들이 다 내리기에 내키지 않은 발걸음으로 나도 내렸는데, 굵은 비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어서 몸을 움츠리면서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봤자 벽도 제대로 없는 반 개방형 공간이었을 뿐이지만.
사람들은 비를 맞으며 화장실 쪽으로들 갔지만, 멍하지 있던 나는 식당의 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어린지 젊은지 잘 구분이 안 가는 한 여자아이가 와서 주문을 받기에, 우선 물부터 시켰다. 그랬더니,
“물은 음식과 함께 나오는데요.” 하기에,
나는 거기서 음식을 먹던 다른 사람의 음식을 보면서,
“나도 저거!” 하면서도, 양이 너무 많은 것 같아, 반절쯤만 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화장실에 갔던 같은 택시에 탔던 사람들이 엉거주춤 돌아와 식당 의자에 앉았는데, 다시 빗방울이 굵어지면서 빗물이 바람에 흩날려 식당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것도 걱정스러운 일이어서 나는 몸서리를 치면서도 비를 피할 수는 없었다. 아니, 피할 곳도 없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음식이 나왔는데,
소갈비 한 쪽과 그 아래엔 흰밥과 토마토 오이 등이 섞인 샐러드도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맛이 좋아 약간 놀라기까지 했는데, 그런 걸로 보면 이 식당은 기사들이 자주 찾는 ‘맛 집’ 정도는 될 것 같았다.
사실 나는 미리 지레 겁을 먹고(음식이 맛이 없어 남길 것 같아) 양을 적게 달라고 주문했었는데, 먹다 보니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아무튼 주전자의 물을 혼자 거의 다 마시면서까지 접시를 깨끗이 비웠고, 여기 쿠바에 와서 처음으로 식사다운 식사를 한 것이기도 했다. 그렇잖아도, ‘배가 고파 못 살겠다!’는 투정을 할 정도였는데......
차가 이제는 완전히 어두워진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두워지면서 나는 또 한 가지 새로운 걱정거리에 불안해지고 있었다.
내가 가는 곳이 어딘지 정확히 모르지만, 그 ‘까마궤이(Camaguey)’라는 도시에는 그리 머지않아 도착할 것 같았는데,
‘이렇게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밤에 낯선 곳에 도착하면, 뭘 어떻게 한다지? 아니, 어디로 가서 밤을 보낸다지?’ 하는 걱정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 차라리 이 합승택시가 밤새도록 달린다면 좋겠다!’ 하는 엉뚱한 바람까지 생겨 있었다. 이 막막한 상황에서 낯선 곳에 내려야 한다는 사실이 점점 겁나는 일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옆 좌석의 40대로 보이는 키가 껑충한 젊은이에게 물어보니(그는 처음부터 무뚝뚝해서 말을 걸지 않았었는데), 이 차가 가는 종점엔(그 도시 이름을 들었는데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새벽 2시 반 경에 도착한다고 하고, 내가 가는 ‘까마궤이(Camaguey)’라는 곳은 자정쯤 도착할 거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것도 걱정이었다. 차라리 모르고 있었을 때가 나을 것 같은, 더 큰 걱정거리가 생긴 기분이었다.
‘자정에 도착해서 뭘 어떻게 한담?’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그러니,
‘이럴 줄 모르고 아바나에서 좋아라고 이 택시를 탔단 말이냐?’ 하고, 그 당장 아바나를 떠나는 게 너무 홀가분하다며 좋아했던 내 자신의 경망스러움에 뒤늦은 후회까지 되었는데(차라리 몇 시간 더 늦게 택시를 탔다면, 새벽에 내리게 돼서 이런 걱정은 없었을 터라서), 이제는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때부터는 차가 달리면서 중간에 승객들이 하나씩 내리기 시작했고, 그럴 때마다 운전자가(둘이 교대로 운전을 했다.) 뒷문을 열어 짐을 꺼내 내려주곤 했는데,
이상한 것은,
“여기는 어딥니다. 내리세요!” 하고 운전자가 안내를 하는 게 아닌,
“나, 여기서 내려요!” 하고 승객이 요구하면 내려주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내가 어디에 있는 줄조차 감을 잡을 수 없었던 것뿐만 아니라 불안감만 가중되고 있었는데,
그 얼마 뒤였다.
한 순간 나에겐,
‘어딘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내리는 곳에서 다시 차를 갈아탈 수만 있다면, 가는 곳이 그 어디라 해도 좋겠다.’ 하는, 아주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런 생각이 스쳤는데, 그러면서는 또 엉뚱하게도,
‘쿠바 제 2의 도시라는 ‘산티아고(Santiago de Cuba)’도 동쪽에 있는 큰 도시니까(한국에서 쿠바 검색을 할 때 알아두었던), 거기에 가면 내가 찾아가야 할 ‘까보 끄루스’란 마을로 가는 방법도 있을 거야.’ 하는 아무 근거도 없으면서 나 편할 대로의 판단으로(이제 나에게 ‘까마궤이(Camaguey)’는 아무 관계도 없어진 듯한 기분으로),
“산티아고로 가는 차를 바꿔 타려면, 어디에서 내려야 하나요?” 하고 아까 그 친구에게 급하게 물었더니, 공교롭게도,
“아, 바로 요 다음 ‘프로빈시알...’(그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에 내려야 거기로 가는 차를 갈아탈 수 있을 겁니다.” 하고 가르쳐 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 5분 쯤 뒤에 그 도시에 도착했고, 나는 그곳 지명도 제대로 모른 채, 세 사람이 내린 그곳에 따라 내렸다.
(그런데 나중에 쿠바 지도를 정확히 확인해 보니, 아마 이 순간의 나는 이미 ‘까마궤이(Camaguey)’라는 도시는 지났던 것 같고, 어쩌면 (이때까지도 이 도시에 대해선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고 내가 가야만 했던) ‘바야모(Bayamo)’란 도시에 근접해 있었을 수도 있었는데, 그 도시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어디 있는 줄조차 모른 채 버스에서 내렸던 것이고, 그걸 확인할 그 어떤 방법도 없는 상태였던 것이다.)#
#어긋나는 행로#
거기는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 밤중이었는데, 그런데도 거기 제법 큰 대합실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의자에서 자고 있기도 했고, 버스 승강장에서 줄을 지어 있기도 하는 등, 자정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버스 승객들의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와 함께 내렸던 내 나이 또래의 여인이,
“어디로 가려고 그러는데요?” 하고 묻기에,
“저는 ‘까보 끄루스’라는 아주 조그만 마을에 가는데, 여기서는 ‘산티아고’로 가는 차로 갈아타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차가 언제 있을지 모르지만요.” 했더니,
“여권 좀 줘보시겠어요?” 하기에, 나는 서슴없이 내 여권을 그녀에게 넘겼는데,
거기 매표소에 가더니(자정이 넘었는데도 매표소의 직원이 있었다. 그것도 놀랍고도 이상한 일이었다.) 뭐라고 한 뒤 오더니,
“외국인은 안 된다는데요.” 하고 돌려주는 것이었다. 쿠바 내국인들만 타는 버스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도대체 쿠바의 교통 시스템을 내가 알 수가 없었다.),
‘좌우간 이 나라는 버스 타기가 이렇게 힘들어서 어딜 가고 싶어도 다닐 수가 없겠네!’ 하면서도,
“하는 수 없지요. 여기서 내일 아침까지 어떻게든 기다려 봐야 할까 봅니다......” 했는데, 정확하게 그때였다.
도로 저 쪽에서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웬 커다란 차량이 나타났는데, 겉모습은 탱크거나 장갑차 같은 둔탁하고 이상하게 생겨보였는데, 버스인가 보았다.
그러니까 나에겐 무슨 ‘깡통 버스’ 같은 차량이었는데, 내가 그 도시에 도착한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사실 내가 아바나에서 여기까지 오는 중간에 도로에서 이따금 벌겋게 녹슨 색깔의 그런 트럭인지 버스인지 모를 시대를 한참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차량을 보면서는,
‘무슨 저런 차가 굴러다닌담? 우리나라 6.25 시대 같아도 타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근데도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것 같은데, 좌우간 여기는 굴러가기만 하는 어떤 차라도 운행을 하나 보네......’ 하면서 희한해 했던, 바로 그런 종류의 차(버스)였다.
그런데 그 여인이 차량 쪽으로 가서 거기 조수인 듯한 젊은이와 뭐라 대화를 나누는 것 같더니, 날더러 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보니, 그 차가 바로 ‘산티아고’로 가는 ‘완행버스’라는 것이었고, 여기서 사람들이 내려서 몇 좌석이 비었다며, 날더러 그 버스를 타면 지금 바로 산티아고로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반갑고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지만,
‘도대체, 이놈의 쿠바란 나라에서는 뭐가 이리 도깨비처럼 순간순간에 일어나고, 나 같은 사람을 아무 정신도 없게 하는지 모르겠네!’ 하면서도 또 바로,
“그럼, 몇 시에 도착하는데요?” 하고 묻지 않을 수 없었는데,
5 시간은 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나 오래?’ 하고 놀랐지만,
그렇잖아도 한밤중에 낯선 곳에서 내려, 그나마 버스 대합실이 있어서 어떻게든 시간을 때울 수는 있겠다 싶었지만, 그렇게 아무 것도 모르는 곳에서 하룻밤을 새우느니, 어딘가로 가는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게 훨씬 안전할 거고, ‘까보 끄루스’라는 마을에도 더 가까워지는 길일 것 같아서, 더 이상 생각하고 말 것도 없이 바로 그 차에 오르기로 했다.(이게 어긋나는 길이라는 걸 내가 알 턱이 없었다.)
완행버스라 그런지 버스비가 25뻬소라고 했던 것 같은데(하도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 정확한 가격도 잊어버렸다. 그렇지만 엄청 쌌던 건 맞다.),
‘그건 그렇고 쿠바라는 나라가 그다지 크지 않을 텐데, 아바나에서 출발해 근 10시간 넘게 달려왔기 때문에 지금은 동쪽 끝이 가까울 텐데도, 여기서 산티아고까지 다섯 시간이나 간다고?’ 하고 도대체 나에겐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차들이 고물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도로 사정이 너무 안 좋아서 그런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 차가 온갖 마을을 다 거치며 가는 완행버스라 그런가?’ 하는 의문 투성이였지만, 어떻든 나는 그 버스를 타야만 했다.
그런데 버스에 오르는 것도 뒷부분 아래 통로를 이용해서 올라갔는데,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음침하기 짝이 없던 버스 안에는 사람들과 짐들로 틈도 없이 꽉 차 있었고, 퀴퀴한 냄새와 함께 숨까지 막히는 기분이었다. 그러니,
‘날더러 지금 이런 버스를 타고 가라고?’ 하는 거부감에 아찔해지고도 있었는데, 내 뒤로도 사람들이 몰려 들어오고 있어서 나는 막무가내로 앞으로 밀릴 수밖에 없었고,
“자리가 없어서 내려야할 것 같아!” 하고 내가 도망칠(아무래도 내려야 할 것 같았다.) 생각으로 말을 했는데도,
“안으로 더 들어가세요.” 하고 뒤에서 조수가 밀면서 다그쳐서,
그 순간에도 언뜻 눈에 띈 중간에 자리가 있어서 앉으려 했더니,
“지금 화장실에 갔어요!” 하기에 거기서도 밀리고 밀린 게,
정말 맨 앞, 그러니까 버스 방향으로 맨 앞자리가 아닌, 버스 운전석과 벽을 사이로 등을 맞대는 좌석이었고, 그것도 맨 구석 자리로 버스 맨 앞 좌석과는 마주보는 최악의 좌석이 앞이었다.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바로 앞좌석에 두 흑인 여자(하나는 몸이 거대한 중년, 하나는 젊은이)가 내가 앉을 자리에 다리를 뻗고 있다가, 내가 밀려서 그 자리까지 오자 귀찮다는 듯 다리를 내리며 좁디 좁은 자리를 내주는데,
정말 앞이 까마득해지는 순간이었다.
‘이 게 버스고, 내가 이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단 말이지?’ 하기는 했지만, 이제는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거기서 내린다는 건 더 복잡한 일일 수밖에 없었고, 그 상황에서는 아무 짝에도 쓸 데 없는 ‘사치’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그 흑인여자들 다리 사이에 내 다리가 끼어 들어가는 식으로 앉을 수밖에 없는, 내 생에 탔던 버스 중에서도 최악일 것이었다.
물론 나에겐 그와 비슷한, 2012년 모로코에서 두어 달을 지내다 스페인으로 돌아가던 길에, 거기 관광지 ‘셰프사우엔’에서 스페인 령 ‘세우따(Ceuta)’에 가느라 탔던, 현지 완행버스의 기억을 떠올리게도 했지만, 그 때 그 버스는 정면을 향해 앉을 수 있는 좌석이었고, 이렇게까지 사람들로 쟁여 넣지 않은 조건이었다는 것도 상기되는 것이었다.
‘내가 이런 버스를 타다니. 이런 버스를 타고 어딘가로 간다니......’ 하고는 있었지만, 이제는 정말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정말 다섯 시간을(물론 중간에 사람들이 조금씩 내리는 바람에 정말 조금씩 숨통은 트여갔지만) 통째로 그렇게 시달리며 가야만 했다.
내가 고생을 모르게 세상을 편하게만 살거나 여행을 다녔던 사람은 아니고, 그럴 형편도 못되고, 또 그걸 바라는 것 역시 아니지만,
나에겐 정말 악몽이었다.
‘앞으로 다시는 이런 버스를 타지 않겠다!’고 이를 갈았고,
‘아, 지옥이 따로 없구나. 더구나 이런 지저분한 버스에 서 꼼짝도 못한 채 등가방마저 앞에 떨어지지 않게 꽉 껴안고 있어야 해서 긴장을 늦출 수도 없으니, 이거 6. 25 때 피난 가는 것도 아니고, 무슨 개고생이란 말인가? 여기서라도 내려버릴까?’ 하고 내릴 생각도 두어 차례 해봤지만, 낯선 도시의 버스 대합실에서 밤을 새우는 일을 피해서 택한 결정이었기에, 그 모든 악조건을 견뎌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어느새 입술은 부르트기 시작하고 있었고, 천근만근인 몸에 잠도 못 자 감기몸살에 걸릴 확률도 놓아진 데다, 그렇게 되면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다 보니,
‘이거 이렇게 다니다 쿠바에서 개죽음이라도 당하는 거 아닌가?’ 하는 겁까지 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졸며 깨며 깡통버스는 덜컹대고 삐거덕거리면서 달렸고, 버스가 멈출 때마다 사람들이 내리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또 승객들도 따라 내려 주변에서 오줌을 싸기도 하던데,
남자들이야 여기저기 서서 볼 일을 봤지만, 여자들은 주변의 어딘가 나무 숲 등 뒤로 찾아들어갔다 머쓱해하거나 겸연쩍어하는 표정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면서는,
‘근데, 내가 왜 민망해 해야 하는지 모르겠네......’ 하면서도, 그런 세상이 왜 그런지 서글프기까지 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나는 단 한 번의 소변도 보지 않았는데,
버스에서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내가 그 끈적끈적하던 버스 통로를 오가는 고통을 피할 수 있었던 것만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면서도 버스는 쿵쾅거리며 밤을 달렸고, 아무래도 늦은 밤이라 더 이상 사람들이 타지는 않고 하나 둘 내리는 사람이 늘다 보니, 그나마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이라도 차에 여유 공간이 생기기는 했는데,
그러면서 보니 차 안의 의자라는 게, 스폰지가 다 너덜대게 드러난 건 보통이었고, 여기는 승객들마다 무슨 짐을 그리도 많이 갖고 다니는지(깐꾼에서 오는 비행기에도 유독 쿠바 승객들만 무슨 이사하는 사람들처럼 짐이 많아서 각자 초과 무게 때문에 짐삯을 더 내는 등 그 탑승절차 만도 상당히 길어지다 못해 난리통이더니), 사람들이 내릴 때마다 짐을 챙기느라 시간도 상당히 지체되었고, 어떤 경우엔 사람이 먼저 내리고 짐은 창을 통해 내려주기도 하는 등,
‘그 모든 것이, 쿠바엔 생필품 등 물자가 부족하다 보니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수 없을 것 같구나......’ 하는 식으로 나 같은 사람도 미루어 짐작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어서 시간만 가라!’ 하는 심정으로, 불빛이 많이 보이는 곳이 나타나기라도 하면,
‘저기가 산티아곤가?’하는 기대감으로 그 시간을 조금씩 단축시켜가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산티아고에 닿고는 있었던 것 같다.
여태까지와는 달리 상당히 큰 도시 하나가 나타났는데, 이미 비가 내렸던 듯 도로가 반짝이고 있었고 언뜻 도심에 조형물 같은 것도 있어서,
‘결국 오기는 왔구나!’ 하는 심정에,
“여기, 다른 곳에 가기 위해 버스를 갈아타야 할 정거장은 어딥니까?” 하고 물으니,
최종 종점이 ‘산티아고역’(기차역)이라고 해서,
정말 마지막 역에서 그 지옥 같았던,
‘아직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중간 여정’을 마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