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철스님! 저는 시방 끈 떨어진 연입니다
둘도 없던 단짝 친구/먼저 간‘얄미운 사람’/허망한 배웅길…/자꾸 뵙고 싶어 어쩌나
결국 스님을 천당길에 배웅하고 돌아왔군요. 시방 스님은 예수님과 부처님과 알라님 곁에서 아무 미련이나 번뇌없이 행복하시겠어요. 그런데 저는 왜 이렇게 자꾸 옆구리가 시린 겁니까? 앞서 배웅이라 했는데, 마중 나갈 기회가 없는 배웅인지라 무척 허망하네요. 목사와 승려가 나눈 다정한 우정, 두루들 고운 이야기로 회자되었던 무등산 증심사 일철 스님과 다산초당 가는 길 남녘교회 임의진 목사의 인연도 이승에서는 오늘이 마지막이었군요. 대중가요 한 소절처럼 ‘얄미운 사람’이라고 아프게 꼬집어 주고 싶으나 하늘의 초청을 받은 막중한 걸음이시니 남은 사람은 그저 한숨만 내쉴 따름입니다. 끈 떨어진 연 신세라 할까요. 시방 제 꼴이 그렇습니다.
스님이나 저나 만나자마자 종교집안이 다름도 나이가 다름도 냉큼 접어버리고(저는 스님보다 한참 아랫사람입니다만) 서로들 얼마나 각별한 친구였습니까. 우리 둘 다 하도 살아가는 행보가 주위의 시선을 끄는 ‘땅불쑥이’들인지라 여기 저기 소문만 크게 난 거겠지요. 촌구석에 은거 아닌 은거 중이었던 저를 부르셔서 사회발전을 위한 공동선에 한 목소리를 내야 되지 않겠냐는 따끔한 가르침을 주셨던 일, 촐랑이 방정맞은 수염을 달고 댕기는 부족한 인간인지라 매우 아결하고 강단있는 스님에게 냉큼 반해버려서 조폭 쫄따구처럼 시키는 대로 무조건 따랐던 그간의 제 행동들(스님 말씀대로 성심성의껏 봉행하지 못한 점 많아서 부끄럽습니다), 무등산을 푸르게 되살리는 환경운동에 발 벗고 뛰어드신 스님을 뒤에서 잔잔히 돕는 즐거움은, 스님께서 저에게 주신 다함없는 가르침이었고 다시 받아볼 수 없는 소중한 애정이었습니다.
시방도 제 흙방에는 스님에게서 받은 오죽으로 깎은 단소와 손바닥만한 지장부처님상과 다구들이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지금 제 눈에 보여지고 제 손에 만져지는 스님의 마음붙이들입니다. 어느 것 하나 사연 없는 물건이 있겠습니까. 또 스님과 찍은 사진들이 몇 해 동안 얼마나 쌓였는지 모릅니다.
스님에게 선물하려고 만든 음반이 다음주에 나옵니다. 스님 병구완 하는데 보탤려고, 저와 노래벗들이 꾸민 작은 성의의 표현이었습니다. 무등산과 일철스님에게 드리는 헌정 음반 〈산 Mountan〉에는 스님이랑 나랑 평소 좋아했던 노래 존 레논의 Imagine 기타 연주로 시작됩니다. 제가 스님 병환의 깊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그만 추모음반을 만들어 버렸네요, 아쉽기도 하지만 스님이 소식 듣고 고맙다고 내 손을 진작 잡아주셨으니 그걸로 족해야겠지요. 이 음반을 듣는 모든 분들이 스님께서 남기신 생명존중, 평화사상에 깊이 젖어드리라 확신합니다.
내 생애의 호우경보, 눈물이 하염없었던 영결식, 피붙이 형제지간이나 목사 친구가 세상을 떠도 그렇게 울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증심사에 가면 많은 신도들이 저에게 공손히 합장을 합니다. 영원한 부주지라나요? 신도님들의 인사에 겸손한 마음으로 저도 머리를 숙입니다. 스님 없는 절집 마당을 헤맵니다. 스님이 묵으셨던 방, 내 방처럼 여기고 드나들었는데 문상 온 스님들로 가득 차 있었고 저는 열외의 사람처럼 절집 주변을 헤매다가 공양시간에도 산을 내려와 어디 순두부집에서 4천 원짜리 짜디짠 소금 같은 밥을 겨우 삼켰습니다.
처마 끝 풍경만 저 홀로 댕그렁거리는군요. 이제는 저 소리가 스님 목소린가 해야 하나요. 벌써 뵙고 싶은데 어쩌죠? 사진만 닳고 닳겠습니다.
임의진 / 남녘교회 목사,수필가
불교신문/칼럼보기/청론/2003-08-13 오후 2:06:57 등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