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의 광화문을 지나 한국일보 사옥이 서있는 곳에 동십자각(東十字閣; 경복궁 동쪽의 망루)이 보이는데 이곳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면 삼청동길이 시작된다. 아직까지 일본 강점기 시대에 건축된 일대의 한옥이 즐비하게 남아 있고 길 옆으로는 무슨 갤러리다, 화랑이다 또 젊은 연인들의 만남의 장소인 카페 등은 서구풍 벽돌로 지어져 하나 둘 들어섰는데 무계획적인 건축으로 인하여 신구(新舊)의 조화로움에서는 약간 어색한 것 같아 보인다.
청와대와 갈라지는 삼거리를 지나고 국무총리 공관을 가기전에 초라한 기왓집의 삼청동 수제비집이 보인다. 일대에 관공서나 회사들이 많아 점심 한나절에 뜨끈한 국물의 삼청동 수제비를 한그릇 하려고 줄을 길게 서있는 모습은 여전하다. 옛날 조선시대로 치자면 고관대작에 해당하는 고위 공무원들이 드나들고 한때 김영삼 전대통령도 가끔 들러 이집 수제비를 맛보고 갔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거나 그 삼청동에서 오랫동안 한가지 음식을 해오면서 그 수제비에 입맛을 들인 사람들의 맛소문을 타고 유명해지게 되었다. 필자는 1996년도에 세종로 종합청사 뒷편에 있던 현대전자 빌딩에서 계동 현대사옥으로 옮겨와서 근무를 하였는데 이곳 삼청동에 들러 우리 고유의 맛있는 음식을 먹는 일이 가끔 있었다. 계동 현대사옥과 삼청동길은 걸어 다니는데 이래저래 왕복 30분이 소요되는 거리로 점심시간 1시간이 짧게 느껴지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이런 음식점들 앞에서 길게 줄을 서서 10 ∼ 20여분을 기다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하여 점심시간 전에 1명을 먼저 보내 자리를 확보하고 나머지 일행은 도착 즉시 수제비를 먹을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방법은 언제나 좋은 효과를 발휘하여 인근의 삼청동, 재동, 비원 근처의 음식점들에서 비교적 느긋하게 점심을 먹을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삼청동 언덕 오르막길이 시작되기 전에 있는 다락정이라고 하는 만두전골 음식점이 하나 자리를 잡고 있다. 아치형 입구와 석조물이 있는 화단엔 대나무가 몇 그루 심어져 있어서 사시사철 푸르른 모습이 좋기도 하다. 음식이라는 것이 개인의 기호에 따라 입맛을 달리 하지만 이곳도 늘 손님이 많기로 유명하다. 특히 갈끔한 국물맛이 일품인 토장만두전골(전통 된장으로 국물맛을 내는 만두전골)에 매료되어 자주 찾아 가는 곳이기도 하다. 그시절 전날 회식으로 과음을 했던 경우에 어김없이 이곳 다락정에 들러 토장만두나 김치만두전골로 해장을 하곤 했었는데 과연 주독(酒毒) 해결에는 최고였다. 그후 반도체부분의 합병으로 계동 현대사옥을 떠나 강남 대치동의 테헤란로 빌딩으로 옮겨갔지만 지금도 가족이나 지인들과 가끔들러 그 맛을 음미하곤 한다.
[다락정 만두전골 전문점]
삼청동길 주변으로 많은 서구풍 와인바(Wine bar)나 카페(Cafe)가 있는데 그 역사가 깊지 않고 명백을 오래 잇고 있는 그런 곳은 없는데 비하여 이런 오래된 곳의 음식점들이 맛도 좋고 그 음식을 먹으러 다니던 날의 추억거리도 많다. 서울의 강남이 급작스럽게 성장을 하였고 이와 더불어 그런 문화에 어울리는 페스트푸드(Fast food) 음식점을 선두로 하여 서구풍의 음식점이 발달하였고, 서울의 강북, 특히 경복궁을 중심으로 종로 일대에는 전통을 자랑하는 고유음식과 슬로우푸드(Slow food) 음식점이 고스란히 남아 사람들의 입맛을 변하지 않게 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좋은 것은 경복궁과 창덕궁으로 이어지는 한옥골목 일대에서는 모자라는 반찬이나 음식을 더 내어주시는 음식점 주인장들의 푸근한 정(情)이 듬뿍 베여있는 인심(人心)이다. 인심좋았던 그 아주머니들께서 이제는 세월의 무게에 나이를 더하여 음식점 역사와 함께 늙어버린 할머니의 모습들이다. 그런 인심과 음식 맛의 대(代)를 이어 그 아들들이나 며느리가 지금은 손님을 맞고 정성스럽게 음식을 내주시고 계신다.
음식점의 모양이 현대식의 고급 레스토랑(Restrant)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나름데로 경복궁과 창덕궁의 종로 일대에서 전통과 역사를 이어가는 곳은 많다. 그런 곳 중에는 서민들이나 인근의 직장인이 자주 찾아 가는 곳이 대부분이나 입맛이 정에 들었는지 연로한 어른들께서 멀리서 오시는 그런 곳도 몇군데 있다.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서 헌법재판소 가는 길에 있는 만수옥이라고 하는 설렁탕집이 그러하고 또 재동초등학교 앞의 재동골(재동골마님순대국)이라고 하는 순대국밥집이 그런 곳 중의 한 곳이다. 이따금 고급 승용차를 운전하고 와서 여유롭게 따뜻한 국물의 국밥을 드시고 가시는 어른들의 모습도 볼 수 있다.
[계동 현대사옥]
이런 음식점은 계동 현대사옥을 끼고 창덕궁 비원의 담벼락까지 연결되어 있는데 조랭이떡국과 함께 정갈한 한국식 음식이 한상 차려져 나오는 용수산이라고 하는 한정식집도 음식맛으로는 좋고 길건너 편에 있는 비원손칼국수집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유명한 곳이다. 언덕배기에 있는 안동칼국수집의 부추김치와 함께 먹는 그 맛도 일품이지만 비원 옆에 있는 집이라 일단 지역적 명성으로 비원칼국수도 문전성시를 이룬다. 여기서도 점심시간에 특히 비가 내리는 날에 외식을 하러 오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기는 매한가지다.
[계동 현대사옥 비원칼국수와 안동칼국수]
경복궁 삼청동에서 창덕궁 비원 옆 원서동까지 이어지는 종로의 오래된 음식점들이 주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나 직장인들에게 음식 그 이상의 어떤 심리적 충족감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필자가 계동 현대사옥을 떠난지 오래 되었지만 그 90년대의 추억을 되새기면서 해마다 입춘(入春)이 되고 고궁을 다녀 오는 날에는 근처 어디엔가 주차를 하고 이 길을 꼭 한번 걸어보게 된다. 오래된 기억도 기억이지만 음식은 맛보다 정성이라고 하던 칼국수집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나기도 한다. 내일은 7월 두번 째 일요일, 하루종일 장맛비가 내린다고 하는데 내일 하루는 아이들과 오랫만에 비 내리는 날의 비원 칼국수집을 다녀 올까 한다. 길 옆으로 난 창에 큰 유리를 해서 비내리는 날 바깥 풍경이 좋을 듯 하다. 물론 비가 내리고 또 일요일이라 줄을 서서 음식을 기다리는 수고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2009_07_11) |
출처: Life is always beautiful ! 원문보기 글쓴이: 뷰티플임
첫댓글 얹제 부터인가 맛나는 집의 명함을 수집하는 버릇이 나에게도 생겼다 그래서인지 주위의 친구들이 흔히 전화 해서 어디로 여행을 갈건데 뭐가 맛있냐고 묻고들 한다 특별한 "맛집"을 알고 있으면 여행의 제미가 배가 되지 않을까?
음식은 개인의 입맛에 많이 좌우되는 특성이 있어서 크게 추천하고 싶지는 않은데,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면 어느 정도 입맛에 보편적으로 통하는 것 아닌가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