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밑줄 친 ‘이 왕’의 재위 기간에 있었던 사실로 옳은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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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왕이 원의 제국대장공주와 결혼하여 고려는 원의 부마국이 되었고, 도병마사는 도평의사사로 개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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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만권당을 설치하였다.
② 정동행성을 설치하였다.
③ 정치도감을 설치하였다.
④ 입성책동 사건이 일어났다.
정답: ②
* 충렬왕 재위 기간 중의 역사적 사실
충렬왕(1274~1308)은 개경환도(1270) 이후 원의 간섭기의 사실상 첫 왕으로 즉위하였다. 그는 원 황실의 제국대장공주를 왕비로 맞이하여 고려는 원의 부마국이 되었으며 왕호(충~왕)와 관제의 격하(2성 6부->첨의부와 4사)가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원의 간섭기 이후 도병마사가 도평의사사로 개칭되며(1279), 그 구성원 수가 증가하여 귀족연합정치의 성격을 띠며 왕권을 제한하였다.
또한 2차례(1274, 1281) 일본원정에 고려군이 동원되었으나 여.원 연합군의 일본 정벌은 실패하였고, 오히려 담당기구인 정동행성(1280)이 원의 내정 간섭기관이 되었다. 동녕부(1290), 탐라총관부(1284, 1301)가 설치되어 고려 영토를 잠식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홍자번이 ‘편민18사(1296)’를 찬진하여 반권문세족·위민민본의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아들 충선왕과의 권력투쟁으로 유야무야되었다.
문화적으로는 일연이 ‘삼국유사’(1281)’를 편찬하고, 이승휴가 ‘제왕운기’(1287)를 편찬하는 등 민족적 역사 저술이 활발하고, 안향이 성리학을 도입하였으며, 국자감을 성균관으로 개칭(1289)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
① 충선왕(1298, 1308~1313)은 왕위에서 물러난 후 원의 연경에 만권당(1314)을 세우고 이제현 등의 성리학자들을 조맹부 등의 현지 학자들과 교류하게 하였다.
③ 충목왕(1337~1348)은 정치도감을 두어 부원세력을 척결하고 권문세족들이 빼앗은 토지와 노비의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결하였으나 기황후 등의 기씨 세력의 압력으로 실패하였다.
④ 충숙왕(1313~1330, 1332~1339)과 충혜왕(1330~1332, 1339~1344) 때에 홍중희, 유청신, 오잠 등의 친원파들에 의한 4차례의 입성책동(고려를 없애고 원의 직할령으로 만들고자 하였으나 실패)으나 성공하지는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