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지베르니, 몽셀미셀, 콜마르, 마르세이유
우석자
유럽의 5월과 6월은 아름답다. 특히 큰 도시보다는 작은 마을이 더욱 아름답다. 마을 입구와 길가, 담장, 창문 등을 예쁜 꽃으로 장식하기 때문이다. 꽃들은 너무 화려하지 않으며 주변 경관과도 멋진 조화를 이룬다.
그래서 5월과 6월의 유럽여행은 더욱 낭만적이다. 이 시기가 되면 프랑스 작은 마을들도 동화 속 한 장면처럼 멋지게 변신한다. 스위스나 오스트리아 산록에서 만나는 들꽃들과는 또 다른 멋을 느낄 수 있다. 파리를 벗어나 자동차로 한두 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은 더욱 신이 난다.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는 기차여행 중 우연히 발견한 지베르니에서 1883년부터 1926년까지 43년 동안 머물며 작품 활동을 했다. 모네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수련 연작 대부분도 이곳에서 완성되었다.
‘수련의 화가` 또는 `빛의 화가`라 불리는 모네는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다. 평온한 전원 풍경과 아름다운 자연을 그림 소재로 삼은 모네는 지베르니에서 수련 연작을 비롯한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가 작품 활동을 했던 정원과 수련 연못은 지금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정원`은 시련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자기 작품세계를 펼친 한 화가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모네가 지베르니에 정착하자 그의 화풍을 따르던 미국 화가들도 앞을 다퉈 지베르니로 모여들었다. 1887년부터 약 30년 동안 미국 인상주의 화가 100여 명이 모네 집 근처에서 작품 활동을 했다. 그 흔적으로 모네 집 근처에는 아메리칸 미술관이 있으며 야트막한 언덕에는 양귀비 꽃밭이 조성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은 모네가 말년을 보낸 지베르니 곳곳에서 그의 흔적과 숨결을 느끼고 있다. 한없이 인자하고 편안해 보이는 모습의 빛바랜 흑백사진 한 장. 허름한 밀짚모자를 쓴 그의 사진에서 방문객들은 `인상주의 거장` 모네가 아닌 평범한 시골 농부 모네를 떠올린다.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 박물관은 크게 아틀리에, 주거공간과 수집품 전시공간, 노르망디풍 밭과 정원, 수련 연못, 기념품 판매장 등으로 나뉘어 있다. 이곳을 찾은 방문객들은 매표소와 연결된 기념품 판매장을 지나 곧바로 정원으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는 지체 없이 담쟁이덩굴에 뒤덮인 건물로 발길을 재촉한다. 바로 이곳이 `모네의 집이라 불리는 공간으로 아틀리에와 침실, 일본 그림 전시장 등이 있다. 실내에서는 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나 2층에 열린 창문을 통해 정원 풍경을 찍는 것은 허용하고 있다.
모네 집 창문에서 내려다보이는 정원 모습은 다소 거친 듯하면서도 뭔가 특별한 공식에 의해 잘 정돈된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마치 잘 그려진 모네 그림 한 폭을 보는 느낌이다. 특히 6월에는 장미를 비롯한 많은 꽃들이 피어나 정원 전체가 동화 속 꽃동산을 연출한다. 정원 곳곳에는 앉아서 쉴 수 있는 벤치와 적당한 휴식공간들이 마련되어 있다. 정원을 산책하다 나무그늘 아래에서 잠시 쉬었다 가라는 배려다. 정원과 수련 연못은 지하보도로 연결되어 있다. 지하보도 위에는 두 공간을 가로지르는 자동차도로가 지나고 있다. 수련 연못에는 모네 그림에서 낯이 익은 풍경들이 펼쳐져 있다. 마치 밀림을 연상케 하는 울창한 숲 한가운데 연못이 조성되어 있고 연못 주위를 따라 구불구불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연못으로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곳에는 일본식 아치형 다리가 놓여 있다. 모네는 연못을 가꾸는 일에 남다른 공을 들였다.
연못에 물을 채우기 위해 인근 엡트 강 물줄기를 끌어들이고 습지에 어울리는 많은 나무와 꽃을 심었다. 그리고 시간이 나는 대로 연못가에 앉아 빛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수련들과 주위 사물들을 화폭에 옮겼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것이 이른바 `수련 연작`이라 불리는 그의 대표작들이다. 모네가 생전에 그리도 끔찍하게 여겼던 아름다운 공간들. 하지만 모네가 세상을 떠난 후 꽤 오랫동안 모네의 집과 정원, 수련 연못 등은 황폐해질 정도로 방치되어 있었다.
상속자인 둘째 아들 미셸이 이곳을 떠난 이유도 있었지만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거의 돌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미셸이 1966년 모든 공간을 미술학교에 기증을 하고 10년이 넘는 긴 복원공사를 거쳐 마침내 1980년 모네 박물관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몽셀미셀은 프랑스 서북 해안과 노르망디 해안이 서로 마주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 산에는 공중을 향해 피라미드 모양으로 우뚝 서 있는 몽셀미셀 수도원이 있는데 수도원은 옅은 회색의 화강암 위에 세워진 것이다. 관광객들은 세계적으로 기이한 절경으로 꼽히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감탄사가 절로 나오며 입을 다물지 못한다.
수도원은 아버트 주교가 대천사 미카엘의 메시지를 받은 후 708년부터 지어지기 시작했으며 10세기 때 천주교 신부들이 입주하기 시작하면서 수도원 밖에도 주민들이 거주하며 마을을 이루게 됐다. 수도원은 거대하고 튼튼한 성으로 지어져 있어서 영국군의 침공을 여러 차례 물리쳤으며 이로 인해 프랑스의 국가적 상징이 됐다. 1984년 역사기념탑으로 정식 인정받게 되고, 1979년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으로 등록됐다.
80척 고도의 꾸불꾸불한 돌계단을 올라가는 것은 쉽지 않은 일로 관광객들은 15곳의 관광 포인트를 거치게 된다. 성전, 기도실, 기타 석실들 이외 화원을 관광할 수 있는데 화원 옆에는 옥외광장도 있다. 광장에 서 있으면 부드러운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파도로 넘실거리는 바다가 펼쳐져 있고 맞은편 해안을 조망할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해상의 섬 위에 세워진 수도원은 길이 하나 밖에 없으며 이 길은 마을과 이어져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인들은 오래되고 조용한 곳을 좋아해 많은 프랑스인들이 이곳을 찾는다. 그들은 해안가 돌 위에 앉아 책을 읽거나 일광욕을 즐긴다.
프랑스의 작은 베니스 콜마르는 콜마르 기차역에서 옛 시가지까지 산책 삼아 걷기에 좋다. 온통 붉은색 제라늄과 노란색 꽃들로 드리워진 창문들과 알자스 특유의, 목조가 건물 외벽에 드러난 주택들, 중세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골목길들, 하나의 예술작품 같은 상점 간판들. 마을 가운데로 흐르는 맑은 운하와 운하를 따라 늘어선 카페·레스토랑들이 마치 동화 속 풍경에 들어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과거 와인 교환소였던 일명 ‘머리의 집’ 건물이 시선을 끈다. 건물의 벽면과 창틀에 온통 다양한 표정의 머리 형상의 조각을 장식해 놓았다.
어디선가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린다. 소리를 따라가 보니 옛 시가지를 가로질러 작은 운하가 흐르고 있다. 운하 양옆으로는 울긋불긋 수놓아진 꽃들이 새파란 하늘과 흰 구름을 이고서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다. 아름다운 운하길을 프랑스인들은 ‘프티 베니스’라고 부른다.
작고 예쁜 베니스라는 이름 그대로 흐르는 강물에 비친 반영과 파스텔톤의 색채 화려한 주택들, 화사한 카페들이 어울린 풍경이 그저 눈부시다. 콜마르 옛 시가지를 걷노라면 색채의 마술사가 한껏 재주를 부린 듯하다.
파스텔톤의 주택 문 앞에서 노크를 하면 동화 속 주인공들이 창문을 활짝 열고서 나를 맞이할 것만 같다. 그렇게 동화 같은 색채 속을 거닐다가 강물을 들여다보니 내 그림자가 비치고, 콜마르의 하늘이 담겨 있다. 향기로운 꽃과 화사한 색채의 도시 콜마르의 프티 베니스를 따라 걷다 보면 인생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마르세유는 프랑스 제2의 도시이자 상업항으로 빈번한 교역이 이뤄지고 코발트빛 지중해와 흰 언덕, 뜨거운 태양이 살아 숨 쉬는 아름다움으로도 유명하다. 도시 분위기도 가장 열정적이고 개방적이라는 남부 프랑스의 라틴계 기질 때문에 다혈질에다 활력이 넘친다.
지중해는 부러움과 질시의 대상이다. 대도시 문명과 인접한 바다인데도 놀랄 만큼 투명하고 깨끗한 풍광을 갖췄기 때문이다. 해안선의 자연환경은 경이롭다. 항구에 정박 중인 배들도 아시아 항구도시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허름한 고기잡이배들이 비린내를 풍기는 게 아니라 호화로운 요트들이 관광객의 시선을 동여맨다. 프랑스 최대 항구도시 마르세유에서 보트 여행으로 둘러본 해상국립공원은 지중해의 절경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매일 아침 생선시장이 열리며 구항일대에서는 전통요리 부이야베스(생선과 조개 등 어패류를 모듬 냄비 식으로 익힌 일종의 수우프)를 맛볼 수 있다.
또 세계적인 명작 `몽테크리스토 백작'의 무대가 됐던 이프 섬에 있는 이프성은 1529년 대포를 수용하기 위해 지었지만 군사적인 용도로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고, 후에 17세기까지 일반 범죄자들이나 정치범 등을 수감하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로마네스크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노트르담 드라 갸르드사원 등의 관광지에는 매년 전 세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 대전 출생, 세계여행 전문가, 한밭대학교 ‘세계문화기행’ 지도교수, TJB 모닝와이드 라이프 인 출연, seoksa1095@hanmail.net, cafe.naver.com/trip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