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벌과 나 사이 지난 인연을 되돌아 보면 매우 흥미롭다. 시작 단계에선 매우 험악한 상태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양자 사이에 미묘한 변화가 나타나더니, 마지막 정리 단계에서는 이별을 안타까워하는 애잔한 정을 지니게 된 것 같다.
'떠날 때 뒷 모습이 아름다와야 한다.' 라고 말들 하더만--- 말벌의 뒷 모습이 고와 보이기조차 한다!
이런 변화의 과정을 짚어보면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말벌이 내 농장으로 무단 침입을 해서, 내 농막 뒷문 쪽에 집을 지었다. 그리고 지난 여름 어느 날 그 옆을 지날 때 , 강한 독침을 나에게 야무지게 꽂아 놓았다.
인간 사회에도 이런 말벌 형들이 있다. 초대받지도 아니한 상태에서 내 농막을 기웃거리면서 여러 가지 생활을 간섭하다가 자신들의 조언이나 바람을 따르지 아니하면--- ? 거북하게 빈정대며 수근대는 행위에 까지 이르는 모습이 , 그 말벌들을 쏙 빼다 닮아 보였다.
젊은 시절과 달리 독을 견디어내는 힘이 달리다 보니, 말벌 독침을 맞고 한 동안 매우 힘에 겨웠다. 그래서 말벌들이 떠나주기를 강력히 희망했었다.
그러나 막무가내로 버티는 말벌들을 어쩌지 못하고 , 그들과 버겨운 동거를 해야만 했다. 특히 8-9월 날씨가 무더울 땐 어찌나 말벌 세력이 왕성했는지 ! 농막 뒷쪽은 물론이요, 앞 쪽도 벌들이 날아다니기에 조심해야 했었다.
이런 위험한 말벌을 제거하지 않으니, 농막을 자주찾는 가족들은 물론이고 가까운 친지들의 규탄(?)성 조언이 이어졌다. 어떤 이는 불이나 에프 킬러, 혹은 경유 살포를 권장하기도 했다. 어떤 농부 친지는 말벌 집을 약으로 쓰겠다며 제거를 자원했고---.
살생을 반대하자, 어떤 이는 절집 사람들 가운데 일부가 해충이나 독사와 마주칠 때 대응하는 법을 전달해주며, 내가 그 분들 행동을 따르라고 은근히 채근했다.
그 분들은, '다음 생에서는 훌륭한 존재로 태어나서 성불하라 축원(?)해주며 죽인다.'나---.
독기를 뿜은 상태로 그들을 죽이면 내 인성이 그 독한 기운으로 인해 망가지겠지만, 그런 온유한 축원을 하며 죽인다면 , 다소 독한 기운이 줄어들어서 , 인성이 무너져 내림 또한 다소 적어질 가능성이 있겠다.
하지만, 나의 편리를 위해 다른 존재의 목숨을 가볍게 여기며 빼앗는 이기적 태도가 행동으로 완결되었다는 점에서 보면 , 큰 차이가 없어 보였었다.
더구나 명분만 갖추면 살생을 허용하는 자세가 지속되다보면 ---, 살생이 습관화 된 나머지, 어렵게 눌러온 독한 기운이 되살아 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또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시키려는 변명이 습관화 되는 것--- 그 또한 매우 무서운 결과였다!
농막 뒤곁이 풀로 무성해지고, 바람에 날려간 쓰레기가 그런 풀들과 뒤엉켜 지저분한 풍경으로 변하는 것을 볼 때마다, 조바심 내지는 말벌들에 대한 불쾌감이 은근히 치 솟기도 했다.
내 안과 밖에서 몰아치는 말벌 박멸 요구로 시달리며 힘에 겨워하는 가운데 , 정 반대로 내 뜻을 지지하는 기운도 발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우선 어깨 관절염이 심해서 고생이 컸는데--- 말벌침을 맞은 후에 나아 버렸다. 그 뿐만이 아니다. 농막 뒤곁을 넘나보며 기웃거리는 철부지 인물들이 있어 불편을 느꼈는데----, 그 말벌들이 그들의 접근을 막아주어 , 굳이 내가 나서서 싫은 내색을 내보일 필요가 없어 정말 좋았다.
그런 가운데 시간이 자꾸 흐르더니, 어느 듯 늦 가을에 접어 들었다. 새벽 기온이 10도 이하로 내려가면서 말벌의 활동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떨어진 감이 홍시로 변해서 단 맛이 강해지면, 그 주위에 나비와 말벌들도 몰려드는데-- 그곳에 모인 말벌들 기세는 아직도 상당히 위협적으로 보였다.
10월 하순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리고 이따금 아침 기온이 4도 이하로 내려가고 , 농장 울타리에 심은 가을 국화들이 만발하여 그 향이 청량하게 다가오는 시기가 되었다.
이제 꽃과 더불어 국화 꿀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 말벌들은 꿀벌들과 달리 힘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말벌 집 가까이 가면 어김없이 3-4마리의 파수군 말벌들이 그들의 집 대문가에 나타났다.
재미삼아 , ' 겨울철 말벌'이라는 내용으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 나무 가지 빈틈 사이로 깊이 파고들어가 겨울 추위를 이겨내는 여왕 벌을 제외하고, 여타 말벌들은 겨울철에 모두 죽는다고 나와 있었다.
3일 전이었다. 기온이 1도까지 내려갔기에 , 말벌 집을 돌아 보았다. 가까이 다가가 관찰해보니, 파숫군은 한 마리로 줄었는데--- 그 한 마리의 동작도 매우 힘에 겨워 보였다. 평소 드나들던 출입구 옆에 네발로 버티고 서있지만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아 보였다.
그래서 막대기로 몸을 건드려 보자 , 힘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날아서 파수꾼이 있어야할 자리로 돌아가려, 무진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았다.
뒤이어 벌집을 막대기로 두드려 보자 , 힘없이 부서지는데, 다른 벌들은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이 상태라면 벌집이 있을 지라도 나에게 해가 될 바가 없었다. 그래서 망가뜨리지 아니하고 그대로 남겨 두었다.
마지막까지 빈집을 지키고 있던 파수병이 꼭 베이비 붐 시대에 태어난 한국의 가장들을 닮아 보였다. 그 가장들은 , 가족들을 궁핍과 외부 위협으로 지켜내느라 평생을 일벌과 파수군 벌의 두 가지 기능을 하느라 허덕였다.
이제 자녀들이 성장해서 모두 떠나고 , 덩그러니 혼자 남아 빈집을 지키며 쓸쓸한 인생의 초겨울을 맞이하는 수 많은 가장들--- 그들 모습에서 내 미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일까 ?
그 파수꾼 말벌의 장렬한 최후를 보면서, 자꾸 내 내면에서는 뜨거운 기운이 솟아 올라, 눈가에서 물로 변해 고이는 것 같았다 !
태어남과 죽음이 있다는 점에서 말벌과 인간 사이 동류의식이 싹트고 , 나아가 말벌의 종말에 애잔함을 느끼는---
어느 단편 집에서 였다. 독일군 진지로 척후 활동동을 나간 연합군이 독일군 보초를 발견하고 사살하기 위해 카빈 총으로 목덜미를 겨누었는데---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 그 독일 군이 추위를 이기려 맨손 체조를 하는 것을 보고 ---- 대자연의 추위에 힘겨워하는 인간의 모습에서 동류애를 느낀 나머지 , 사살의 의지를 버리는 정경이 있었다.
나와 말벌의 관계가, 그리 변화된 것 같다!
파숫군 말벌의 죽음에 대한 애잔한 정을 느낀 경험을 통해서 , 비로소---- '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라는 윤동주 시인의 표현이 지극히 아름답다고 절감 할 수 있게 되었다. ( 금강경에서 마음을 항복받는 방법으로 모든 존재에 대한 자비심을 강조했는데-- 윤동주의 마음과 통하는 내용인 것같다! )
그리고 ,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라는 그 시인의 경지가 얼마나 높고 드 높은 경지인지, 새삼스레 구체적으로 헤아려 보는 계기도 되었고---
이래서 , 분별 시비를 초월한 생명 존중은 지고의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 만물의 영장 개념을 지니고 타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유태교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경지로써----(유태교에 대해 싸구려 종교라는 어느 철학자의 비난은 이런 면모에서도 출발한 듯 하다.)
불교 가르침 가운데 , 생명존중을 일깨워준 부분은, 내가 죽기까지 잊지 못할 것 같다 ! 비록 윤회나 영가나 아미타 사상 등등에 대해선 공감할 수 야 없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