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와 파스
대학 시절 동해안으로 친구들과 함께 놀러 간 적이 있었다.
민박을 잡아 놓은 후, 주위의 건어물 파는 곳에 갔더니 대왕 건오징어 한 마리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 마리 밖에 없어서인지 줄을 서서 서로 사려고 쟁탈전이 벌어졌다. 운이 틔었는지 오징어는 나에게 낙찰이 되었다. 기쁜 마음으로 먹어보았더니 그 맛 또한 너무너무 좋았다. 양도 많고 맛도 좋아 2박3일 동안 다른 것도 먹지 않고 줄곧 오징어만 뜯어먹었다. 얼마나 양이 많았던지 먹고 또 먹어도 줄어들지도 않았다. 그런데 여행 마지막 날, 민박집에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머리맡에 있는 오징어를 더듬거리면서 입에 넣는 순간 그렇게 맛있던 오징어가 굉장히 질기고 맛이 나질 않았다. 그래도 ‘계속 씹다보면 맛있겠지’ 하고 계속 씹었는데 갑자기 입에서 불이 나기 시작했다. 입이 화끈거리고 폭발하기 일보직전이었다. ‘혹시 상했나?’ 아니면 ‘너무 많이 먹어서 내 입이 감각을 잃었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옆에 있던 손전등을 켜고 확인을 해보니 붙이는 파스를 오징어로 착각하고 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파스는 친구가 어깨가 아파서 붙여놓은 것을 떼어서 오징어 옆에 두었던 것인데 내가 그만 그걸 씹어버린 것이었다. 그 다음날 아침에 내 입술이 오리엉덩이보다 더 크게 부풀어져 있었고 딱딱한 것을 하루종일 씹은 이는 얼얼해졌다. 그 순간 속으로 다짐했다. 다시는 대왕오징어를 먹지 말아야겠다고.... 지금 생각해보면 친구들이 한 번만 달라고 했을 때 주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아마도 벌을 받은 것 같다. ㅋ 원 없이 오징어 실컷 먹어봤고, 원없이 입술 퉁퉁 부어봤고, 동물 보다도 더 탄탄한 이빨도 확인했으니, 이제 앞으로는 먹는 것에 욕심 내지 말고 몸관리에나 더 신경써야겠다. 마침 날씨도 선선해지고 하늘도 높고 말도 살찌는 계절인데 우리 몸만 부풀리지 말고 영의 양식을 쌓는 일에 집중해야겠다. 그런데 어쩌지? 그 때 먹은 대왕오징어 생각은 이 가을에도 마음 속에서 떠나질 않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