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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결혼과 시집살이
나의 어머니는 만 18세에 만16세 이셨던 아버지와 결혼 하셨다.
어머니는 결혼전에 아버지의 얼굴을 한번도 보지 못하시고 어른들의 결정에 따라 시집 오셨다.
얼굴이 대강 어떻게 생기셨다고 부모님이 아무런 말씀도 해 주시지 않으셨단다.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께서, 양반집의 규수로서 그에 걸맞는 예의범절이 있기 때문에 부모님께 여쭈어 보실 수도 없으셨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집안도 모르시고 성격도 직업도 장점도 단점도 학벌도 아무것도 모르시고 부모님의 명령에 순종하셔 시집오셨단다.
어머니는 그렇게 부모님께 순종 하셔서 하나님으로부터 장수의 복을 받으셨나 보다 .
우리집은 정선전씨의 대 종갓집이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 작은 아버지들과 고모랑 한집에 함께 사는 대가족이었다.
할아버지는 2 아들과 1딸 삼남매 아버지가 그중 장남이셨다.
16살 밖에 안된 아버지를 일찍 장가들인 이유는 우리집에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일을 잘 할수 있는 건강한 며누리를 구하다 보니 할아버지가 아들이
어린나이라 할지라도 일을 잘할 수 있는 나이의 어머니를 첫째 며누리로 맞이 하신것 같다.
어머니는 시집오셔서 엄하신 시부모님 밑에서 얼마나 많은 집안일을 감당하셨을까 ?
더구나 할아버지께서 벼슬을 하셨으니 사랑채에는 친구들과 손님들로 항상 만원이었고 안채에는 한분 시동생들과 세 올케들 그리고 할머니가 계시니
어머니의 하루일과는 생각을 도저히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드시고 어려운 시집살이를 겪으셔야만 하셨다.
지금 같으면 세탁소 전기밥솥 가스 방앗간등이 있어 일상 가정생활 하는데 편리 하지만 그당시에는 나의 어머니 혼자서 그 많은 집안 일을 대부분
감당하셨을 것이다.
그 많은 식구들 옷 지어 주시고 빨래하시고 보리,벼를 절구통에 찌어 아궁이에 불을 질러 밥을 지으시고 어린 시동생들과 시누이들 밥먹여 학교
보내고 ---
어머니께서 겪으신 시집살이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하였고 특히 할머니와 고모들로부터 시집살이를 심하게 받으셨지만 그 당시에는
며누리로서 자기의 주장을 내세우지 못하고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참아야 하는 것이 그 당시 며느리의 사명과 도리를 잘 하는 것으로 여겼던
시절이었다.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하루에도 수많은 손님을 위해 밥상을 차려야 하셨고 그 당시에는 내가 어렸을 때보다 밥상을 차려 주어야 하는 거지들도 훨씬
많았다고 말씀해 주셨다.
왜 새로 시집온 며느리들은 시집살이를 그렇게 심하게 해야만 했을까 ?
그 당시 사회 풍조는 어른을 높이고 어른에게 순종하는 아름다운 사회윤리와 복종하고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는 풍습과 습관이 도가 지나쳐서 심한
시집살이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대종가에서 그 많은 손님들을 접대하시고 ,많은 가족과 친척들을 위해 집 안과 밖의 일을 도맡아 하시기에 얼마나 마음고생을 하셨나 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눈보라가 치고 폭풍이 세차게 불어닥처도 강함을 자랑하듯 우뚝 서 있는 언덕의 장송과 같으셨던 어머니의 모습을 상상케 한다.
어머니는 힘드셨고 어려우셨지만 그럴 때마다 참아야 된다는 다짐 아래 얼마나 많이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눈물을 흘리시고 한숨을 쉬셨을까 ?
혹시나 사람들에게 들킬까봐 얼마나 많은 눈물을 삼키셨을까 ?
서럽고 너무 힘드셔서 저절로 울음소리가 복바쳐 나오셨건만 몰래 우시기 위해 울음소리를 억지로 죽이시기 위해 얼마나 힘드셨을까 ?
아마도 너무 힘드셔서 죽고싶을 때도 많이 있으셨으리라.
그러나 어머니는 이런 힘든 역경속에서 잘 참아 내신 삶의 승리자이시다.
나의 어머니가 참 자랑스럽다.
어머니는 참는일에 도사시다.
어머니란 뜻을 풀이하라면,
"참는데 세계 챔피언 ",
"울으시면서 울음을 감추시는 세계 챔피언"
"가정을 위해 몸과 마음을 희생하시는 데 세계챔온" 이라고 부를수 있겠다.
손과 발이 다 닳도록 일만 하시면서 한 없는 시집살이에 시달려야만 하셨던 나의 어머니.
그렇기에 어머니는 세상의 고통, 괴로움,외로움을 다 이기고 견디셨으니 아무리 어머니를 자랑해도 부족하다.
어머니는 내가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더욱 힘드셨으리라. 그렇다고 임신한 몸으로 집안일을 할때에 이 어려운 집안에서 누가 불쌍하고 가련하게
생각하여 도와 주거나 마음적으로 위로 해 줄 수있는 동정심이 있는 식구들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특별히 아버지가 47세에 돌아 가신 후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팔남매 뿐 남편도 없는 상황에서 힘드시고 외롭고 쓸쓸한 어머니의 생활은 시원한 물 한 목음 마실 수 없는,
아무리 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을 헤메며 ,오아시스가 언젠가는 나오리라고 기대 하시면서 한발짝 한발짝 앞으로 전진 하시는 어머니의 강하시고
끈기 있으셨던 삶의 모습이 그려진다.
밤에는 잠자리에 들어 가시니 온 몸이 다 쑤시고 아프시다. 집안에는 그 당시에 진통제가 없다. 침을 맞아야 하는데 어른들에게 아프다고 말씀을
드릴 수도 없고 우리동네에 약국도 의원도 없기 때문에 아예 생각 조차 할 수없다.
어머니는 조용히 눈을 감고 누워 계실때 눈물이 어머니도 모르게 주르르 흘러 내렸다.몇분이 지나니 흐느낌이 절로 나오지만 이를 악물고 참고
계셨다.
어머니가 태어나시고 어머니께서 자라시던 그 고향에 그리워 가고 싶으셨다.
" 부모님, 친척들 , 친구들 다 고향에 있는데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실까? "
"다들 몸 건강하시고 마음이 편하신지 궁금하고 보고싶기만 하는 구나."
어머니는 눈을 다시 조용히 감으셨다.
외롭고 쓸쓸한 마음이 밀물처럼 몰려와 온 몸을 적셨다.
긴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친정 부모밑에서 사랑을 받고 살던 그시절이 엇그제 같은데 어머니는 문득 시집올때 가슴설레던 그 옛시절이 머릿속에 스처 지나갔다
어머니의 결혼은 어머니에게는 기쁨과 걱정이 함께 했을 것이다.
시집오시자 마자 가슴조이시며 마음이 설레어 아버지를 처음 보셨을때 얼마나 행복 하셨을까?
어머니가 18세 되실 때까지 그렇게도 기다리시고 꿈꾸시던 일생의 반려자, 그토록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으셨던 ,그렇게 그리던 그 사람.
양가 부모님의 주선으로 아버지를 처음 만나던 그 순간, 어머니의 마음은 한편으로는 행복한 순간이셨지만 아버지를 만나기 전에는 걱정도 크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당시의 결혼은 양가의 부모님의 결정으로 결혼전에 당사자인 신랑 신부가 서로 보지않은 상태에서 결혼 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어떤
경우에는 상대방이 신체 장애자가 될 수 있고 능력이 없는 사람일 수도 있고 심할때는 신랑이 이미 사망하여 그의 혼과 결혼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런 경우엔 신랑측의 부모님이 서로 타협된 들여오는 형식의 결혼이 될 수도 있었다.
이런 사정을 어머님이 아셨을지 모르지만 마음이 불안하셨음에는 틀림없다.
친정 부모님들은 어머니가 시집가기 전날에는 그토록 사랑하고 아끼시던 기둥이던 맏딸이 내일이면 시집을 간다고 생각하시니 얼마나 마음이
허전 하시고 섭섭하셨을까 ?
외할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시집가서 지켜야 할 법도를 기회 있을 때마다 가르치시고 또 마지막으로 시집가기 전날 다짐하시면서 조심하고 해야 할 일들을
가르치셨지만 외할아버지 생각에 시집가는 장녀인딸이 여러가지면에서 부족함을 느끼셨을 지도 모른다.
좀더 관심을 가지고 많은 것을 가르쳐 시집가서 잘 살수 있도록 했어야 했었으면 하고 후회 하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지금은 더 가르쳐 줄 수 있는 시간이 없어 마음이 안타깝기만 하다.
말 잘듣고 어리광도 부리며 고이 기른 맏딸.
철없는 이 어린딸을 정선전씨의 대종가집으로 시집을 보내시는 마음은 두렵기도 하시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집갈 나이가 다 차서 시집을 보낼 생각을
하니 시원한 생각도 드셨으리라.
시부모님들을 비롯한 시집식구들을 잘 섬기고 아무 문제없이 지혜롭게 잘 살아야 할텐데 하고 걱정하시면서 밤을 지새우셨을 지도 모른다.
외할머님..
나의 사랑하는 딸아
너를 시집보내는 나의 마음
가슴이 찢어지듯 아프고
너를 볼 수 없으니
허전한 마음 견디기 힘들구나
너는 나에게 귀한 복덩어리
항상 어머니를 돕고 나를 잘 따르던 너
내가 아플때면 머리 만져 주며 약 다려주고
내가 기뻐하면 옆에서 함께 웃어주던 너
너의 웃던 그모습 다시 보지 못하겠구나
"가"자에 기억하면 "각" 하고
"나"자에 시옷하면 "낫"하고
하늘"천" 따"지" 가믈"현"누루"황"
"천지 현황하고 우주홍황"이라.
너의 어렷던 시절도 자꾸만 생각 나는구나
나의 사랑하는 딸
너는 이제 나의 식구가 아닌
정선전씨 집안의 맏 며누리
친정집은 아예 생각하지 말고
시집에서 큰 사랑받는 귀한 며느리가 되어라.
혹시나 힘들고 어려운 일 닥쳐와도
눈보라가 너희 앞에 세게 불어 와도
우리집 길 여우언덕의 큰 소나무처럼
슬픔과 눈물 보이지 말고
흔들리지 않는 강함으로 인내 하며 살거라.
양주시 은현면 선남리 마을 사람들이 모여 시집가는 잔치집에 축하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동네에서 신부화장을 좀 아는 아줌마가 얼굴에 하얀 분가루를 얼굴에
발라 주셨다.
하두 지금까지 농촌일을 많이 하셔서 얼굴에 분가루가 잘 먹히질 않았다. 지금처럼 화운데이션도 없다.
검게 탄 , 햇빛과 먼지에 시달렸던 그 얼굴은 아무리 화장해도 화장이 잘 받지 않았을 것이다.
다음엔 이마의 한 가운데와 양 볼에 빨간 곤지를 찍고
머리에 아주까리 기름을 바르시고 참빗과 대빗으로곱게 머리를 빗으신 다음 머리를 뒷쪽으로 올려 외할아버지가 혼수로 사주신 은비녀로 감아
고정시키셨다.
머리엔 오색 찬란한 쪽도리를 쓰셨고 양단저고리와 유똥치마를 입으셨다. 어머니가 손수 만드신 하얀 버선을 신고 다음에 하얀 새 고무신을 신으시니
아주 예쁜 새댁이다.
시집가는 어머니의 마음 어떠셨을까 ?
이렇게 신부화장을 받으시는 동안 어머니의마음은 왜 그런지 마음이 설레셨다.
"드디어 꿈에만 그리던 시집을 가는 구나..
나의 신랑은 어떤 분이실까?
친절 하시고 자상한 분이실까?
항상 나에게 사랑의 윙크를 해 주시며 나를 무척이나 아껴 주시는 분일까?
밥을 지을 때 땔 나무도 충분히 해주시고 바쁠때면 내일도 도와 주시면서 사랑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을 텐데.
내가 아플 땐 밤새 주무시지 않고 나를 지켜 주시며 약을 다려주는 그런 신랑일꺼야.
내가 시집가면 시집에서 식구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는 며느리가 되어 행복의 기쁨 속에서 살고 싶구나"
아 내가 드디어 시집을 가는구나
내 마음이 왜 그렇게 설레느뇨?
가슴이 두근거리고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 먼 고읍리217번지로
그곳이 시집인가요?
보여 주셔요
알고 가고 싶어요
눈을 소눈 처럼 크게 떠도
언덕 위에 서서 아무리 볼려고 애써 봐도
보이질 않네요?
그 집은 큰 집에 대문도 크지요
시집식구들 너무 좋을것 같아요
나를 도와주고
웃음과 사랑속에서
시부모님 모시고 잘 살고 싶어요
보고 싶은 당신의 얼굴
다정 다감하시고
늘 나를 그림자처럼 함께 하시며
언제나 어디서나 이세상 끝날 때 까지
사랑을 속삭이면서 살고 싶어요.
밖에서는 온마을 사람들이 다 모여 시집갈 신부를 보고 한마디씩 내 뱉는다.
" 아씨 오늘 참 예쁘다 "
"시집 가니까 좋겠네 "
" 아씨는 시집가는 데 나는 언제나 갈지, 부럽다 부러워."
" 내가 속으로 은근히 좋아 했었는데, 짝 사랑했던 아씨가 시집을 갈 것을 생각하니 살 생각이 사라지는구먼"
" 아 ! 내가 곱게 기른 딸이 드디어 시집을 가는구나, 이제 걔 방이 텅 비어 있을 텐데 , 마음이 얼마간 허전 하겠구먼 . 제발 시집가서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라."
"그만 하면 시집 잘 보냈지, 양주군 최고의 부자집 그만한 자리와 그런 신랑감 구하기가 뭐 쉬운가 ?"
" 경주이씨 양반댁의 맏딸이고 얼굴이 귀엽고도 예쁘니 시집도 양반집 부자댁으로 잘 갈 것이구먼"
"그렇게 예쁘던 이씨댁 맏따님이 시집가니 동네총각들 , 닭 쫒던 개 지붕쳐다 보는 격이 되었구먼"
어머니는 이 집에서 18년동안 살아오신 지난 일들이 하나 하나 현실이 아닌 추억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 과거는 이미 어머니에게는 이미 지난 일이지만 그 과거 속에는 어머니의 아름답고도 귀하고 즐거웠던 추억이 하나 하나 어머니 머릿속에 맴돌고
그 추억을 더듬는 것은 마치 아름다운 그리고 귀하게 간직 해왔던 귀중품을 가지고 기뻐하시는 마음 이랄까?
부모님의 사랑안에서 엮어진 추억들은 하나 하나 진주알을 실로 꾀어 아름다운 진주 목걸이가 된것처럼 아주 아름답고 소중하게 느끼고 싶으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실에 진주를 더 이상 꾈 수가 없으셨으므로 그 진주 목걸이는 더욱 귀하고 소중하게 느끼시고 간직하시고 싶으셨으리라.
우선 태어 나시고 어린시절의 추억이 담긴 고향산천을 떠나는 것은 정말로 힘드셨을 것이다.
이제가면 이 정든 고향에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떠나기도 전에 벌써 고향땅이 그리워 진다.
당분간 다시 보지 못할 집안 구석 구석을 다시 돌아 보고 기억해 두고 싶다.
텃밭의 삼밭,모시밭, 무우밭, 배추밭 목화밭 그리고 고개너머에 있는 옥수수밭과 감자밭 이 모든 밭에 어머니의 손길이 가시지 않은 곳이 없다.
가을이 되면 웬 새떼들이 그렇게 많이 찾아와 다 익은 곡식을 쪼아 먹어 어머니를 더욱 바쁘게 했던 많은 새떼들.
어머니께서 헝겊과 막대기로 사람모형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여기 저기 밭에 꽂아 놓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 울상이 되었던 그 시절
새야 새야
어서 멀리 멀리 날아 가거라.
훠위, 훠위
네가 곡식을 한알 한알 쪼아 먹을 때마다
내 마음을 아프게 쪼는구나.
훠위,훠위
우리집 가을 추수 잘 할수 있도록
그만 쪼아먹고 멀리 멀리 날아 가거라.
훠위, 훠위
어머니는 농사일에 바쁘시지만 틈만 있으시면 논과 밭에 나가셔서 " 훠위 훠위 " 하시면서 새 떼들을 목이 터져라 하고 긴 막대기를 휘두르시면서
멀리 쫓으셨던 일들.
큰 광우리를 들고 목화밭에 가셔서 하얀 목화송이를 마음껏 따시면서 기뻐하셨던 일들.
저녁식사후 동네의 같은 나이 또래 친구들끼리 함께 모여서 봉숭아꽃을 여러송이 딴 다음 식초를 섞어 돌로 이긴 것을 손톱위에 얹어 놓고 넓은
아주까리 잎을 그위를 싸매어 봉숭아 꽃물을 들이는데 다음날 아침에 함께 모여 누가 가장 예쁘게 들여 졌는지 서로 손톱을 내 보이며 자랑하던
소녀시대의 친구들.
8월 추석에 친구들이 함께 모여 새 빨간 치마와 색동저고리를 입고 긴 빨간 댕기를 하고 동네 마당에 만들어진 늘판에서 쿵더쿵 쿵더쿵 함께 늘을
뛰던 일들,
동네의 큰 나무 가지에 동아줄로 맨 그네에서 같이 밀어 주기도 하고 끌어주기도 하며 덩실 덩실 함께 그네를 타던 처녀 친구들.
저녁먹고 나서 친구집에 모여 함께 노래 부르던 친구들.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저달속에 계수나무,
금도끼로 찍을까
은도끼로 찍을까
금도끼로 찍어내어,
양친 부모 모셔다가
천년 만년 살고 지고
이런 친구들과 그 많은 추억들을 고향에 다 두고 홀로 떠나가시는 마음,얼마나 가슴 조이며 마음 아파 하셨으며 발걸음이 무거우셨을까?
고향을 떠나는 나의 마음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여라
부모형제 고향땅에 다 계신데
벌써 보고 싶은 마음 가슴에 스며오네
나의 이웃 나의 친구들 다 고향에 두고서
님을 찾아 떠나는 내 마음
허전하면서 가슴 설레네
산과 들과 내가 지나 일하던 밭
고향에 다 두고
자랐던 집과 부억살림 그대로 두고
새로운 곳으로 멀리 떠나네
홀로 떠나는 이 마음
한없이 무거운 나의 발걸음
뒤를 자꾸만 돌아보고 싶네
꾀꼴아 "꾀꼴 꾀꼴 " 나에게 지저귀던 너
옛 정을 잊지말고 나에게 찾아와서
고향의 좋은 소식 들려 주게나
아버님 어머님 만수무강 하시고
친구들아 잘있어
나 다시 올때까지
그때에 내 시집생활 마음껏 들려줄께
밖에서는 보통때보다 더 웅성웅성하며 시끄러웠다.신랑이 조랑말을 타고 들어 오신단다
16 살 밖에 안된 신랑이 마부의 도움으로 조랑말에서 내리신 후 서로 큰 절을 하므로 결혼 예식이 끝나고 첫날밤을 지난 후 신랑은
조랑말,신부는 가마를 타고 30리길(약 12 Km)이나 되는 신랑집에 가셨다.
이렇게 결혼식이 끝나고 드디어 결혼 생활에 들어가셨다.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아버지는 16세 밖에 안되시는 새 신랑이셨지만 굉장히 위엄이 있으셨고 말을 아끼시는 정선전씨의 종손 다운 풍채가
있으셨다고 말씀하셨다.
마을 사람들도 아버지가 나이에 비해 너무 엄하셨기 때문에 아버지와 대화하기를 어렵게 생각했고 밖에 나가셨다가 집에 들어오실 때는 우선 대문
밖에서 들어오신다는 신호로 " 흐으흠 " 하시고 헛기침을 하시고 들어 오셨다.이 때에는 호랑이가 집안에 들어 오는 것처럼 다들 계속하던
대화를 끊고 긴장하면서 하던 일을 계속 하였다고 말씀하셨다.
또한 집안에 들어오실 때는 아래옷 바짓가랭이가 언제나 발 부분 까지 내려와서 아래 다리부분이 한번도 내 보이지 않고 집안에 들어 오셨단다.
나이가 어리신 데도 그렇게 예절을 지키고 절도 있으셨던 것은 할아버지로부터 엄한 가정교육을 받으신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아버지가 너무 엄하셨고 또 양반집 종손으로서 그 집안의 기둥역활을 하셔야 했기 때문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무척이나 어려워 하셨다.
아버지보다 2살이나 더 많으신 어머니는 남편인 아버지 얼굴 한번 똑바로 보지 못했다고 옛날을 회상 하시는 것을 언젠가 오래전에 들었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께서 아버지와 같이 살아 가시면서 얼마나 하고 싶었던 말들이 많으셨을까?
요즘처럼
" 사랑해요 "
"일찍 돌아오세요"
"당신 없으면 못살아"
"한번만 안아 주세요" 하셨다가는 여자가 교양이 없고 상스러운 여자라 하여 집에서 쫒겨날 지경 이었으리라.
아버지께 어려워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시고 입은 있으셔도 벙어리 처럼 사셔야 하셨던 나의 어머니.
어머니의 시집 생활에서 남편과의 생활과 그외의 생활 모두가 이렇게 심적으로 힘들고 육체적으로 쉬지않고 열심히 일을 하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니
어머니의 강하시고 참고 견디심에 무한 감사드리고 싶다.
나의 사랑하는 남편이여
그리웁고 마음이 허전하구려
님에게 더 가까이 하고 싶은
내 마음 간절하지만
나의 깊은 마음
사막의 풀처럼 힘들어 하네요
당신과 나 사이 사랑의 대화로
메마른 논밭에 단비가 되어
마른땅 촉촉히 적셔 주소서
나와 함께 계실 때에는
모든것 다 내려 놓으시고
우리들의 대화로 나에게 힘을 주소서
사랑하는 당신에게
가까이다가 가고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 나
그대의 사랑의 손길
견디기 힘든 꿈에서 나를 깨워 주시어
내마음 당신으로 채워 주소서
나의 모든것
나의 영원한 반려자
나의 사랑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의 님이여
내 삶의 모두인 당신
나의 골수 깊은 곳까지 당신으로 채워 주소서
나를
님의 말 한마디 아니면 님의 몸짓으로
따뜻한 사랑의 입김으로
나의 얼어붙은 이 몸과 마음녹여 주셔요.
그러면 한마리의 새가 되어
푸른 창공을 마음껏 날으리이다
하늘나라에계신 어머니 에게 막둥이 ...선우....가 ...어머님사랑합니다..
살아게셨을때 부모께 힘써 효도하세요 나중에 후회 하지마시고 부모가 다~~자식잘되라고 돈까먹을까봐 주기싫어서 안주는게 아니라 자식들까먹을까봐 부모가독하게지고있는거에요 근데그런것도몰르고 부모가 돈안줘다고 살인하는세상 본받G마시길바랍니다 ~ 카페지기.선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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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by Solo - Anything That's Part Of You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 스타일을 이탈리아 음악과 잘 어우러지게 한 아티스트
I memorize the note you sent
Go all the places that we went
I seem to search the whole day through
For anything that's part of you
I kept a ribbon from your hair
A breath of perfume lingers there
It helps to cheer me when I'm blue
Anything that's part of you
Oh, how it hurts to miss you so
When I know you don't love me anymore
To go on needing you
Knowing you don't need me
No reason left for me to live
What can I take, what can I give
When I'd give all of someone new
For anything that's part of you
당신의 하나하나 무엇이든지
당신이 보낸 편지를 떠올립니다
우리가 함께 갔던 곳들도 둘러보며
온종일 당신의 하나하나 무엇이든지
찾고 있는것 같아요
당신 머리를 묶던 리본
거기에도 향기의 숨결이 어른거려
당신의 부분 하나하나 무엇이든지
내가 우울할때 위로해주죠
당신을 그리워함이 얼마나 가슴아픈지
당신이 더이상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걸
알았을때에 그리고 사랑하지 않는걸 알면서도
당신을 계속 필요로 할때에
내가 살 이유가 남아있지 않아요
새로운 사람에게 모든걸 줘야할때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줄수 있을까요당신의 부분 하나하나를 위해서
비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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