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울컥 눈물이 나는 부분도 있었지만 내가 과연 슬퍼할 자격이나 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동안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외면하고 보려고 하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 이야기들이다. 결국 나는 <그냥, 사람>(홍은전 지음, 봄날의책 출판) 책과 마주하게 되었고, 또 다른 세상을 알아버렸다. 책을 읽는 내내 내가 이 책을 읽고 무슨 글을 쓸 수 있으랴 생각했다.
책을 거의 다 읽어가던 상태의 주말 아침, 루틴대로 걷기 운동을 나섰다. 새벽인데도 공기가 따뜻하다. 여기저기 꽃들이 활짝 피어나고 꽃향기도 가득한 봄날이다. 따뜻한 봄의 기운을 받으며 눈과 코가 호강하고 있는데 문득 ‘장애인들에게는 마음의 봄이 올까? 계속 추운 겨울 속에서 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는 사시사철 어김없이 돌고 돌아오는 계절이, 누군가에게는 오지 않고 추운 계절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산책로를 돌고 집으로 와서 다시 책을 펼쳤다. 책을 다 읽고 글을 써야 하는데 도저히 책상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괜스레 항상 후순위였던 집안일부터 시작한다. 빨래를 돌리고 김치찌개를 끓이고 다시 빨래를 널고 아이들까지 깨운다. 아침을 먹고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노트북 앞에 앉았다. 앉아 있는데도 자꾸 딴짓한다. ‘안 되겠다.’ 일단 인터넷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협회’를 검색했다. 그리고 정기후원을 신청했다. 그나마 불편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물론 후원이 능사는 아니겠지만 그들을 지지하고 후원하는 사람이 한 사람 늘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또 정기후원을 지속하며 관심을 가지겠다는 약속이기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고 애써 변명해 본다.
책 속에는 장애인, 세월호, 선감학원, 형제복지원, 강제 철거 현장 등등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특히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만큼 장애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 나는 장애를 가진 이보다 그 장애인을 돌봐야 하는 가족에게 더 마음이 쓰였다. 내 주변에는 지적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몇 있다. 다행이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나름 자신들의 자식을 위해 헌신하고 노력하며 키우고 있다. 그래서 나는 어쩌면 당연히 장애를 가진 사람보다 그 가족들의 고단함만을 염려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나는 또 한 번 내가 얼마나 편협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얼마나 잘못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장애인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와 똑같이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어쩌면 비장애인보다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행동하는 더 열정적인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p. 244
“너희들은 거리에서 싸웠잖아. 그 싸움 덕분에 내가 살 수 있었는데 집에 누워 있는 게 항상 미안했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싸운 거다.” 어떤 사람은 당연히 받는 선물을 어떤 사람은 평생 싸워서 얻는다. 자기 자신에게 권리를 선물한다는 일,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나는 꽃님 씨에게서 배웠다.
p.105 ‘앎은 앓음이다’
세상을 아는 가장 안전한 방식은 독서라고 했다. 그렇다면 가장 위험한 방식은 현장으로 들어가는 일. 박종필은 그것을 고집하는 사람이었다. 전자의 앎이 세상을 이해하고 싶은 욕망이라면 박종필의 앎은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열망일 것이다. 전자의 앎이 폭넓음을 지향한다면 박종필의 앎은 정확함을 지향할 것이다.
나는 책을 읽어야 함을 어필할 때 항상 ‘삶을 지혜롭게 살기 위함’이라고 말하였다. 그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살아가려 함이었다니... 나는 그렇게 세상을 안전하게 살아가려고 했었구나... 나를 자각하도록 만든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p.22 이전의 나는 내가 우물 안 개구리이기 때문에 우물 밖 세상에 대해 배워야만 세상에 대해 아주 작은 소리로라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내가 만난 우물 밖 사람 역시 자기만의 우물 안에 갇힌 듯 보였고, 그게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다. 내가 그의 세계를 몰랐으니 그도 나의 세계를 모르는 게 공평하다고. 그러니까 인간은 모두 각자의 우물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세상은 그런 우물들의 총합일 뿐이라고. 더 거대하고 더 유구한 우물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저 다른 우물들이 있을 뿐이라고. 그날 나는 나의 우물을 처음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세계관이란 나의 우물이 어디쯤에 있고 다른 이들의 우물과 어떻게 다르게 생겼는지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보다 생각했다.
작가가 너만의 우물 속에 갇혀있다고 꾸짖지 않고, 자기만의 우물에 갇힌 것은 당연하다고 이해해주는 것이 고마웠다. 그렇게 너와 나의 세계를 알게 되고 이해하는 것부터 시작하라는 말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렇게 나는 따뜻한 봄날 또 하나의 새로운 세상으로 한 발을 내디뎠다.
첫댓글 알기는 쉽지만 실천이 어렵다는걸 이 책에서 이렇게 확인하네요.
마지막 단락 우물에 갇힌 것은 당연하다고 이해해주는 것이 고마웠다는 문장에 저도 공감해요. 정기 후원 신청도 하셨으니 이미 큰 발걸음을 떼신거 같아요. 박수 보냅니다.
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