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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은 진실, 그들이 말한 거짓(07)
팩션형(faction) 사모펀드 투쟁기
6조8천억은 어디로 증발했나
○ 펀드가 뭐길래, 왜 나와 우리 가정을 이렇게 만들었나
“나 갖다 올게, 일찍 퇴근할거니까 준비하고 있어요”
남편 박명환은 아내 최경희의 눈치를 살피면서, 한마디 툭 던지고 현관문을 나선다. 주희의 뒷 머리를 묶어 주고 나자, 주찬이가 가방을 챙겨 문밖을 나서면서 “엄마, 오늘 태권도 승단시험 올거야?”
“주찬아, 엄마가 오늘 좀 몸이 안좋아서 거긴 못갈거 같아 미안해”
“치이, 엄만 맨날 맨날 안오고, 그럼 나만 혼자 잖아”
“미안해, 이따가 주희 학원 갖다 와서, 도넛츠 구워줄게 그거 먹고 저녁에 아빠랑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 가자. 내일이 할머니 생신이잖아. 너 할아버지 할머니 보고 싶다며?”
“알았어, 엄마, 그래도, 엄마가 왔으면 좋겠다.”아쉬움이 남는 표정으로 동생 손을 잡고 문을 나선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오빠보다 씩씩하고 명랑한 주희가 미소를 짓고 뒤 따른다.
아이들이 등교한 후 문득 달력을 보았다. 일주일째 문밖 출입을 하지 않았구나. 현관에 쌓인 재활용 쓰레기 봉투를 들고 문을 나선다. 현관 문 앞에 소복히 쌓인 각종 안내 전단지를 주워 분리수거장에서 분리 수거 중 기업은행 전단지와 안내문이 나온다. 갑자기 울화가 치민다. 안내문을 박박 찢어서 다시 재활용 통에 담아 버린다.
하늘을 보았다. 꽃샘 추위에 바람이 아직 차다. 짙은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하다. 집으로 올라와 집안 여기저기 청소를 한 후 TV를 켜니, 하필 기업은행 CF광고가 나온다. 중저음의 성우 목소리로, “아직 세상이 알아보지 못한 기업을 위해, IBK기업은행” 마지막 멘트를 듣고 갑자기 숨이 멎고 화가 난다. TV를 바로꺼버렸다. 요즘은 기업은행 얘기만 들어도 화가 나고 머리가 아프다. 잠시 쇼파에 누워 호흡을 가다듬고 답답한 가슴을 진정한다. 문득 활짝웃는 주희 사진이 눈에 들어온다. 어쩌면 저리도 어릴적 내 모습과 똑 같을 수 있을까, 나를 속 빼 닮았다. 주희의 인생은 나보다 불행하지 않고 나 보다 더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경희는 고등학교까지 전남의 영광에서 자랐다. 어려운 형편에 엄마 아빠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공부해서 서울의 이화여대에 입학했다. 4년간 악발이처럼 살면서 장학금을 타고 알바를 해서 용돈을 벌어썼다. 졸업 후 직장선배의 소개팅으로 지금의 신랑을 만나, 3년 연애 끝에 결혼해서 주찬이 주희를 낳았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주찬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봄 시어머니께서 봉투를 내밀면서 “받아둬라. 종잣돈이지만, 네가 똑똑하니 잘 관리해서 주찬이 주희 사회생활 시작할 때 사용하면 좋겠구나”
“어머니 이렇게 큰 돈을...”봉투안에 2억원짜리 통장과 도장이 들어 있었다.
“집 팔고 남은 돈이다. 더 늙기 전에 손주, 손녀들에게 뭔가 해주고 싶어서 그런거니까 받아둬라.” 그후 시부모님들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 청주로 내려가셨다.
시부모님의 고마운 뜻을 잘 이어서, 주찬이 주희 대학졸업 후 사회생활 시작하면 목돈으로 불려서 선물로 주자고 남편과 약속했다. 금융상품을 잘 몰라서 일단 안전한 예금상품에 넣어서 목돈을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기업은행 정기예금에 가입해 관리해 왔다. 나중에 금융투자 공부를 좀 해서 비교적 안전한 국공채 같은 장기 투자상품 중심으로 관리하려고 했다. 은행도 망하는 세상에 장기간 돈을 맡기려면 아무래도 공기업이 안전하다고 믿고 기업은행을 선택했다. 넉넉하지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급여 덕분에 남편도 안전하게 관리하는 것을 좋아했다.
2018년 11월 경 기업은행 박혜정 부지점장이 전화를 걸어왔다. 주찬이 주희 정기예금 만기가 된다면서 새로운 상품을 권한다. 그날 은행에 가지 말았어야 했다.
“이거 정말 안전한 상품 맞아요? 저 이 돈이 어떤 건지 잘 아시죠?”
“그럼요, 저랑 거래한지 벌써 3년째이신데, 아무렴요. 이거 솔직히 먼저번에 권유해드리려고 했던 거예요. VIP 고객에게만 가입기회를 드리는 상품인데, 몇 일전 만기가 된 고객이 사정이 생겼다며 재계약 약속을 펑크 냈어요, 그래서 최경희님께 특별히 혜택을 드리는 거예요”
“어떤 상품인데요?”
“미국의 우량 소상공인들에게 대출해서 수익을 내는 상품인데요. 환율 헷지도 잘 될테니까 돈 받는데 문제 없을 거예요 자세한건 여기 박범희 부장이 더 잘 알고 있으니 자세한 설명은 박부장님께 듣고 오신 김에 가입하고 가셔요”
“안녕하십니까? 중계WM 센터 박범희라고 합니다.”명함을 내밀면서, 안쪽 VIP룸으로 안내한다.
몇 분동안 설명을 해주는데 무슨 소리인지 도통 잘 모르겠다. 펼쳐놓은 4쪽짜리 상품설명서에 ‘단기글로벌 사모투자신탁’이라는 글씨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설명도 어려웠고, 특히 ‘투자’라는 글씨가 마음에 걸렸다.
“집에 가서 애들 아빠랑 상의해볼게요.”
“어머, 이거 시간 별로 없는데, 그럼 기다릴게요 연락 주셔요”
아빠랑 상의해 본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거절의 의사표시인데, 박혜정 부지점장, 그걸 알만한 분이 몇일 후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저 아직 결정을 못했어요. 애들아빠도 바뻐서....”
“그럼 제가 주찬이 아빠 직장에 찾아가서 잠시 설명 드릴게요”
“그건 좀 곤란한데”남편은 늘 바빠서 가정사에 관한일로 직장에 찾아가는걸 싫어한다.
“아뇨, 저희 은행에서 아빠 직장하고 거래관계가 있어서 가는 길에 한번 찾아 뵙고 설명드릴게요”
그렇게 몇차례 더, 남편 직장까지 찾아 가겠다고 하면서, 집요하게 가입 권유를 해서, ‘저렇게 전화를 자주 하는 것 보니 정말 안전하고 좋은 상품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계약서에 싸인을 해줬다. 그게 문제였다.
그렇게 기다리다 2019. 4 환매중단 통보를 받았다. 날벼락을 맞은 심정이었다. 박혜정 부지점장은 걱정말아라, 펀드가 깨진게 아니라고 했었다. 그런데 1년이 지나 70% 가까이 손실이 예상된단다.
가입통장을 찾아 보았다. IBK기업은행통장이 아닌 IBK투자증권 통장이었다. 깜짝 놀라서, 박혜정 부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그거 그때 박범희 부장이 투자증권 명함드렸잖아요?”
“같은 곳이라고 했잖아요. 왜 제가 투자증권에 가입되어있지요?”
“제가 더 알아볼게요.” 그렇게 다시 전화를 주기로 해놓고 답도 없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스마트 폰에서 알람 벨이 울린다. 정신과 클리닉에 가야할 시간이다. 주희를 낳고 나서, 루프스 진단을 받았다. 루프스는 자가면역질환으로 외부로부터 인체를 방어하는 면역체계가 이상을 일으켜 거꾸로 자신의 인체를 공격하는 질병이다. 온 몸이 아프고 통증이 심해서 꾸준히 스테로이드 약물 치료를 받아야한다. 요즘 많이 좋아졌었는데 디스커버리펀드 손실통보를 받은 이후 스트레스로 증상이 심해지고 남편과의 잦은 다툼을 벌이면서 무기력하고 우울증세가 심했다. 남편의 손에 이끌려 정신과 의사와 마주했다.
“잘 살고 있는 가정에 갑자기 전화해서 이렇게 어려운 상품으로 사기쳐도 되나요? 평생 증권사에 발을 들여놔 본적도 없어요. 그런데 제가 증권사 피해자라뇨. 억울해요. 양심이 있으면 은행에서 제 돈을 돌려줬으면 좋겠어요.”최경희가 의사에게 털어 놓은 하소연이다.
“최경희님은 전형적인 우울증입니다. 루프스 질환으로 고통이 더해져서, 꾸준히 약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의사의 진단 결과이다.
루프스 질환을 앓고 극복한 동네 언니가 있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많이 웃어야 돼, 유튜브 같은 데서 개그콘서트나 재미있는 것 찾아서, 많이 보고, 자주 웃어 안그러면 죽어 알았지?” 피식 웃음이 나왔지만 요즘은 그게 맞는 말이구나 싶다. 매사 모든게 귀찮고, 화가 나고, 가슴이 답답하다. 내가 왜 이럴까, 이런일이 왜 나한테 벌어진 걸까? 요즘 시어머니께 안부전화 드리는 것도 두렵고 망설여진다. 오늘 저녁에 시어머니 눈길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지? 눈물이 난다.
병원을 다녀오는 길에 박혜정 부지점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은 울리는데 받지 않는다. 톡으로 문자를 남겼다. "박 팀장님 어쩜 그럴 수 있어요. 제가 왜 IBK투자증권에 가입된 거죠? 원금 손실 났다고 연락받고 가입 당시 서류를 받아보니 투자증권에 가입되었네요. 어떻게 된 거죠?”잠시후 답이 왔다. “그 상품은 WM센터 전용판매 상품이라서 저는 잘 몰라요. 더 알아보고 있으니 기다려 주세요”환매 중단후 늘 이런식이다. 지금은 다른 지점으로 옮겨서 만나기도 어렵다. 우연히 카톡 프로필을 보니, ‘오늘도 힘차게 날개짓 하자’라는 글씨와 잔디위에서 골프채를 들고 활짝 웃는 모습이 들어왔다. 나는 이렇게 힘들게 보내고 있는데, 골프장에서 희희낙락 하는 모습을 상상하니 괘씸하고,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스럽고 답답해진다.
집에 오는 길에 폰으로 ‘디스커버리펀드’라고 뉴스 검색을 해봤다. 나같은 피해자가 더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지점으로 전화를 걸어서, “혹시, 나같은 사람들 모임이 있지 않나요? 거기 전화번호 좀 알려주실래요?” “그런 모임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잘 모르고요 한번 알아 볼게요”새로온 PB팀장의 답변이다.
펀드가 뭐길래, 우리 가족들의 삶을 이렇게 망가 트릴 수 있지? 도데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한 숨이 깊어진다
★★★
○ 꼬끼리 뒷다리 더듬기, 가자 금감원으로
장자크 루소는 ‘인간불평등 기원론’에서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특별한 특징은 ‘자기향상능력’이라고 한다. 자기향상능력이 없는 동물은 수 천년이 흘러도 언제나 첫해에 있던 그 상태 그대로 있지만, 인간은 지식의 빛과 오류, 악덕과 미덕으로 자신과 자연에 대한 자기향상능력이 있어, 번영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그 능력이 인간이 지닌 모든 불행의 원천이란다.
시장을 좌우하는 권력은 언제나 사회의 경제적 부를 증진하기 위해서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야 한다고 규제받지 않는 시장 즉 자유시장을 외치지만, 그들의 기본적 사고는 “적어도 정당한 이익이 부당한 수단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넘어서는 일은 결코 없다.”는 믿음으로 무장하고 “이웃사람에게 가할 수 있는 손해는 언제나 봉사보다도 돈이 된다.”는 루소의 지적대로 실천하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자기향상능력의 폐단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곳이 화폐 금융시장이다. 그런 시스템 안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를 당하면, 피해당사자들은 마땅한 해결책을 찾아 전전긍긍하게 된다. 쉽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거래처에 하소연하고 화를 내는 방법으로 대응을 하지만, 이미 상대는 모든 준비를 마쳐놓고 조직적으로 일사불란하게 대응을 하기 때문에 피해자들은 철옹성을 맞보게 된다.
피해자들이 모이면 제일 먼저 생각하는 방식은 집회를 개최하거나, 금융권력의 입김으로 만든 법에 호소하게 마련이다. 복잡한 투자구조와 용어를 이해하기 어려웠던 피해자들은 대규모 사모펀드 피해사태가 발생하자 변호사들의 문을 노크하거나 법정으로 달려갔다. 대형 로펌(법무법인)이 먼저 나서서 소송인단을 모집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사기판매라고 믿고 찾아갔지만 막대한 소송비용과 승소 가능성을 놓고 망설일 수 밖에 없다.
“당장 민사소송으로 가는 것보다, 일단 금감원 분쟁조정을 먼저 활용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2020. 5. 15 상암동 MBC 사옥 1층 커피숍에서 만난 신장식 변호사의 첫마디였다. 최창석위원장, 김창희, 김학서, 이의환과 함께한 신장식 변호사의 손에는 이미 디스커버리펀드 투자제안서와 두터운 자료가 들려 있었다. 자료를 검토하고 나온 것이다.
최창석 위원장이 초조한 표정으로 “소송으로 가는 것 보다 그게 더 나을까요?”
“제가 지금 하나은행과 우리은행 DLF펀드 피해자들을 대리해서 은행측과 분쟁조정 협상을 하고 있거든요. 금융정의연대 김득의 대표가 피해자들을 도와주고 있고요. 그런데, 사기나 계약무효가 아닌 불완전 판매로 결론이 나오는 경우, 소송보다 분쟁조정이 실효성 측면에서 더 유리할 것 같습니다. 은행마다 재량권이 좀 있어서 피해자들에게 유리하게 협상을 이끌어 갈 수도 있고요”
소송까지 생각하면서 만났던 일행은 변호사 입에서 소송보다 분쟁조정을 거론하니 더 신뢰가 갔다. 당시 피해자들과 대책위는 사기라는 주장을 뒷 받침할 만한 근거가 명확하게 없었다. 신장식 변호사는 민주노동당 지역위원장 시절부터 현장에서 이런 집단 민원을 처리해 본 경험있어서, 누구보다 피해자를 잘 이해하고 판단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이 갔다.
소송에서 패하는 경우 피해자들은 패배감이 커서 피해대책위는 응집력이 떨어지거나 조직 자체가 와해될 수 있다. 그래서 소송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처음부터 패배를 자초할 가능성이 높아 진다. 더구나 문제를 법정으로 바로 가져가면, 기업은행 등 금융사들은 대형 로펌을 앞세워 법정안 다툼으로 논쟁을 가둬둘 수 있고, 금융사 평판을 잠재울 수 있어 기업은행도 반길 것은 뻔한 이치였다.
“은행 쪽에서는 저희가 소송을 하는 게 편한지 아니면 소송을 안 하는 게 편한지 좀 이게 우문인데 어떤 쪽이 편합니까?” “저희 은행에서는 소송을 하면 편하죠. 집행부에서 알아 보셨겠지만, 소송을 하면 고객님들은 돈을 많이 못 받는다는 거죠.” 4. 29 역삼 wm센터에서 만난 피해자들과 기업은행 WM 사업본부장 오영국이 나눈 대화내용이다. 당시 오영국도 정답을 말하기는 했으나 사건을 조용히 잠재우고 싶은 의도에서 한 말로 풀이된다.
“DLF펀드가 뭐예요” 김학서의 질문에 대해 신변호사는 “DLF펀드는 우리, 하나, 국민은행 포함해서 약 6개 금융사들이 법인, 개인 3,000여명에게 약 8천억 정도 판매했는데요, 선진국 금리가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최대 90% 가까이 손실이 발생했지요. 그 피해를 고스란히 투자자에게 떠넘긴 펀드입니다. 내용은 좀 다르지만 디스커버리 펀드처럼 불완전판매의 관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고 봐야겠죠”
DLF 펀드는 독일, 영국, 미국의 채권 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해당 국가들의 장단기 금리차에 따라 손실 또는 이익이 발생하는 까다롭고 복잡한 파생금융 상품이다. 예를 들어, 기초자산(보통은 금리)이 특정 범위 내에서 움직이면 연 3.5~4%의 수익률을 보장받지만, 기초자산 금리가 범위 바깥(down)으로 내려가 손실구간에 진입하면 원금을 몽땅 잃을 수도 있는 상품이었다. 3천여명의 개인 고객들이 약 7천억의 피해를 입은 DLF사모펀드 사태는 피해자들이 주로 60세 이상 고령자이거나 안정적 투자 성향의 퇴직자, 주부 등이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했다.
“DLF펀드도 디스커버리 펀드처럼, 은행 PB들이 정기예금처럼 안전하고, 손실확률 0%, 심지어 통장에 금리 5.1%라고 확정형 상품인 것처럼 써주거나, 독일이 망하지 않는 한, 영국이 망하지 않는 한 안전한 상품이라면서 판매했던 상품입니다.”
“기업은행도 ‘미국이 망하지 않는한 원금 손실 없다' 그랬는데 우리랑 똑 같네요”
“그렇죠, 본점에서 판매 화법이나 교육을 했기 때문에 큰 차이가 없을 겁니다. DLF펀드의 경우에는 6개월 만기 상품이니 은행측에서 2모작 3모작 상품이라고 창구직원들에게 판매를 독려했고, 판매성과 지표를 체크하면서 막상 상품 심사위원회 위원 의견을 제멋대로 ‘찬성’으로 기재해서 승인을 받는 등 내부직원의 문제 제기도 무시하고 상품을 출시한 사실이 드러나서 충격을 주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소송보다 금감원 분쟁조정 신청이 유리할까요?”
“그건 장담할 수 없지만, 소송을 하게 되더라도 금감원의 조사결과가 나와야 구체적인 문제가 파악될 것입니다. 금감원이 분쟁조정위원회를 개최하려면 먼저 조사를 실시합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상품 선정, 리스크 검토 과정에서 어떤 잘못이 있었는지 전반적으로 밝혀지고. 창구직원들이 상품 판매 과정에서 범한 위반 사실이 밝혀질 것입니다. 구체적인 사실들이 밝혀지면 그때 가서, 소송으로 방향을 틀더라도 당장 금감원 문을 두들겨 분쟁조정을 받아보는 것이 효과적일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손해배상 청구권 소멸시효 문제가 있지 않나요?”
“손해배상 채권 소멸시효가 10년이니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있고, 내년에 임기가 끝나는 윤석헌 금감원장이 있을 때 분쟁조정이 내려지면 피해자들에게 유리할 것 같습니다.”
“분쟁조정은 언제 쯤 개최될까요?
”분조위는 빠르면 금년 하반기, 늦어도 내년초에는 개최된다고 보고 더 미뤄지지 않도록 금감원을 압박해야겠지요.”
2018. 5 부임한 윤석헌 금감원장은 2021. 5 임기가 종료될 예정이다. 윤원장은 금융학 분야의 전문가이고, 숭실대 교수 출신으로 비교적 개혁적이라고 평판이 나와있고, 전임 금감원장들과 달리 피해자들에 친화적이란 기대가 있었다. 키코사태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키코(Knock-In Knock-Out)는 2007년부터 국내 은행들이 수출 위주의 중소기업들에 집중적으로 판매한 환헤지 통화 옵션 상품이었다. 919개의 기업이 약 3조 1천억의 피해를 입었던 사건이다. 피해기업들은 법원으로 달려가 소송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2013년 대법원에 의해 ‘사기가 아니다’고 판결이 났다. 지지부진하던 키코 재조사는 2018년 5월 윤 원장의 취임 이후 ‘키코 분쟁조정전담팀’을 꾸리면서 피해자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었다.
“분쟁조정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눠서, 은행의 본점 차원 잘못을 공통배상비율로 결정해서, 모든 피해자들에게 일괄적으로 배상하는 비율을 결정하게 됩니다. 소위 1층을 쌓는다고 하죠. 그 위에 피해자들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례에 따라 추가비율을 합산해서 공통배상비율 더하기 개별배상비율로 개인별 최종배상비율이 결정됩니다. 이걸 2층을 쌓는다고 표현하곤 합니다.”
“그럼 은행 본점의 잘못이 먼저 밝혀져야 겠네요, 개인들의 사례는 이미 어느 정도 나와있으니”
“그렇죠. 그래서 전체 공통 배상비율을 높이는 1층 쌓기 투쟁이 중요합니다. 전체 배상비율이 50% 이상 나오면 추가되는 개별배상비율이 자연스럽게 높아질 테니까요”
“오늘 들었던 내용은 코로나 거리두기 때문에 대규모로 사람이 모이기 어려운 상황이니까, 일단 조만간 대책위 임원들과 먼저 신변호사님의 설명을 다시한번 함께 듣고 그 다음에 투쟁방향을 잡아봅시다.” 김창희 위원장과 최창석 위원장이 모임의 결론을 내리고 나서, 다음 투쟁은 자연스럽게 금감원 앞 집회로 가닥을 잡게 되었다.
다음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