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대( 2013.6.18-19) 골프 나들이
<골프는 정말 거울처럼 인생을 반영한다.
북적대는 사람들을 뚫고 타 오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점을 알 수 있다.
골프를 쳐 본 사람이라면 골프가 어떻게 인생을 반영하는지 알 수 있다.
인생은 때때로 다른 누구의 발길도 닿지 않은 이슬내린 풀밭, 그리고 그 위로 비치는 아름다운 햇살 같은 때도 있다.
또 완벽한 티샷을 날리고 무슨 일이건 해 낼 수 있을듯한 상쾌한 기분일 때도 있다.
물론 모든 것을 다 포기 하고 싶은 절망감 속에서 간신히 다시 일어서게 되기도 한다.
골프는 가족과 친구의 유대를 끈끈하게 해주고
우리 내면을 여행 할 기회를 제공한다. 골프는 가장 고마운 스승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골프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용서하며 겸손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언제나 긴장하고 언제 편안한 마음으로 순간을 즐겨야 하는지 도 알려준다.
골프는 우리에게 수많은 교훈을 알려 준다>
어느 외국인의 골프에 관한 글이다. 오랫동안 내가 읽은 골프 관련 글 중에서 단연 압권인 글이다.
내가 골프를 시작한 지가 금년에 꼭 22년 이 되는 해이다.
2개월 전에 골프 약속을 하고 2주전에 예약을 했고 어제 드디어 4부부 8명이 계룡대와 구룡대를 다녀왔다. 장마가 시작된다고 하는 일기 예보를 모두 사전에 들어 알고 있으면서도 줄기차게 내리는 빗줄기를 뚫고 대전으로 차를 달렸다.
어제 낮 12시경에 계룡대에 도착하였을 때는 여전히 비가 오락가락 했고 경기 진행 여부는 전적으로 예약자들의 선택 사항이라고 했다. 골프 예약은 인터넷으로 14일이나 10일전까지 해야하고 5일전에 결과를 통보받게된다. 그런데 보통은 골프를 예약하였던 사람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예약을 취소를 할 경우에는 적어도 3일전에는 통보를 하여야 한다. 그 것을 지키지 못하면 벌금도 물어야하고 신용불량자가되어 그 해당 골프장 출입이 3개월간이나 정지가되기도 한다. 이번에는 비가많이 오기 때문에 비록 예약은 했지만 비가 오는 상황에서 경기를 취소해도 벌금을 내야 한다거나 3개월 동안 예약을 하지 못한다거나 출장 정지를 시킨다거나 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여자들은 장마비속에서 차라리 운동보다는 찜질방으로 가고 남자들은 그래도 준치라고 비가 오는데도 운동을 하기로 강행을 했다. 오전에 2팀이 나갔는 데 그 사람들도 비 때문에 중간에 포기하고 나왔다고 하며 오후에는 아직 한 팀도 나가지 않았다고 ... 그러나 우리는 준비완료 출발을 했다. 우리 팀을 수행했던 경기 도우미 아가씨가 말하기를 아침 5시에 출근하여 우리가 운동을 시작하던 12시 30분까지 장장 7시간동안을 대기실에서 기다렸다고 했다. 우리마져 그냥 돌아갔다면 그 아가씨는 하루를 공치게 될 뻔 하였다고 하는 말에 일말의 위안도 되었다.나중에 경기가 끝나고 샤워장에서 알았는데 우리가 나간다음 두팀이더 우리처럼 비속에서 운동을 했다고 한다.
계룡대는 나의 추억이 서린 곳이다. 물론 5공 정권과 관련되어 지금의 세종시처럼 행정 수도가 올뻔 했던 그런 시절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신도안에는 조선초기 이곳 신도안으로 천도를 계획하다가 물이 없다고 하는 이유로 중단이 되엇다고도 하는 곳이다. 항공 학교에서 근무하던 내가 육본으로 전속을 가서 89년도까지 삼각지에 있던 항공 감실에서 근무하다가 신도안으로 부대가 이동을 하는 바람에 군인으로서의 나의 삶은 정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기도 했었다.
항공 학교에 근무하던 내가 갑자기 삼각지에 있던 육본으로 전속을 왔지만 지방에 살던 서민이 언감생심 수도권 한 가운데 5척 단구를 쉬게 할 작은 방 한 칸도 없었고 그렇다고 밥을 부쳐 먹으면서 출퇴근을 할려면 어디 친인척이나 아니면 사돈의 8촌이라도 기댈 곳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내게는 그런 행운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육군 본부로 간다니까 부러워도 했지만 정작 나는 어디서 출퇴근을 할까 하고 남모르는 고민에 빠졌었다. 할 수 없이 조치원 부대 아파트에서 살던 가족들을 그대로 부대 아파트에 남겨 두고 혼자 세면도구를 챙겨들고 육본사 독신 장교 숙소로 들어가서 머물면서 토요일에는 가족들이 살고 있는 조치원으로 내려 갔다 오는 생활을 6개월 정도를 했다. 그러자니 언제나 이방인 어디 정을 부칠 데도 없고 밥을 챙겨먹기도 힘이들었다. 삼각지 일대의 대구탕집이 나의 식당이었으니 말이다.
그 당시 비슷한 시기에 육본으로 전입을 왔던 신 모 대령도 같은 처지라서 그분의 차를 얻어 타고 조치원까지 주말마다 같이 다녔다. 그러다가 주말마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이 힘이 들어서 경기도 광명리 하안동(?)어딘가에 살고 있던 동서네 집 옆으로 셋방을 얻어서 아내와 아이 둘을 이사를 시켰다. 그런데 광명에서 삼각지까지 출퇴근을 하려면 버스를 세 번씩 갈아타야 했다. 하안동에서 오류동이나 개봉동까지 와서 다시 다른 차를 타고 마포까지 와서 또 삼각지로 오는 차를 타야했다. 전철을 이용하려 해도 오류동까지는 광명에서 버스로 이동하여 신도림까지 와서 다시 또 삼각지로 가는 차를 갈아타야 하니 하안동에서 삼각지까지 다니는 것이 정말 출퇴근 전쟁이었다.
더구나 여름철에 군인답게 군복을 입고 당당히 다니라는 윗 사람들의 지시는 자기들이 부대차로 출퇴근을 하니 세상 물정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을 망각하고 멋만 부릴 줄 아는 엉뚱한 지시로 하위계급 장교들이 겪는 애환도 모르는 처사였다. 복잡한 버스 출퇴근을 사복으로 하고 사무실에 와서 군복을 갈아입곤 하던 나는
한 여름에 만원 전철이나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하던 군인들을 마치 동물원 원숭이를 보듯하는 적대적인 시민들의 눈길을 의식하면서 버스를 세 번씩 갈아타면서 출퇴근을 했었다.
그래서 출퇴근 전쟁을 견디다 못한 내가 중고 자동차를 300여 만 원에 한 대 구입했다. 그 돈도 사실은 변두리 상계동 아파트를 분양 신청하여 분기마다 온 힘을 다해 분담금을 내던 힘겨운 가정 형편에 무리수를 쓴 것이었다. 그러다가 동빙고에 군인 아파트가 나와서 입주를 하기까지 풍상도 많았다. 전속을 갔는데도 이사를 가지 않고 있다고 항공학교에서 부대 아파트에 들어오려던 사람들로부터는 또 눈치 없는 놈이라고 구박도 많이 받았다.
천신 만고 끝에 출퇴근할 숙소가 해결되었는데 육군 본부가 또 대전으로 이동을 하였으니 그리도 어렵게 해결된 숙소가 .나만 혼자 대전으로 부대를 따라가 버리고 여러 달 후에 가족이 뒤따라 신도안으로 이사를 왔는데 겨우 3개월 후에 나는 또 경기도 이천으로 전속을 가게 되었다.
남편과 아빠를 따라 신도안으로 이사를 와서 전학과 낯선 환경에서 적응도 해야 하고 텃세를 부리는 촌 녀석 들 앞에서 서울 놈이 촌놈 신세로 전락한 기막힌 사정 속에 아빠는 또 다른 곳으로 철새가 날아가듯 전속을 가버렸으니 ..
지금은 둘 다 결혼을 하여 자식을 기르고 살고 있는 아들 딸 들이지만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정말 애비로서 남편으로서 할 말이 없을 뿐이다.
비를 맞으면서 동기생들과 운동을 하면서 계룡대의 그 파아란 잔디를 밟고 걷고 있는 우리들을 ,아니 나를 보고 있는 저 앳된 경기 도우미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 할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어렵게 살던 우리들이 골프장 조성 작업을 할 당시 잡초를 뽑으며 투덜거렸다 운동은 높은 사람들이나 하는데 우리가 왜 이란 작업을 해야 하느냐고 .골프장을 군인들은 체력 단련장이라고 부른다.
주말에 서울에 사는 가족들을 두고 혼자 와서 근무하는 간부들이 계룡산으로 등산을 가게 되면 불시 비상상황이 발생된다 하면 부대로 복귀하는 데 두 시간도 더 걸리지만 체력단련 장에서는 10분이면 부대 복귀가 가능하다. 물론 긴급 상황 근무자들은 항상 대기태세로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퇴근 후에는 자기 개인 정비를 하게 된다. 식사도 하고 목욕고하고 산책이나 등산도하고 그래서 전투 비행단 안에서도 조종사들을 붙잡아두기 위해서 체력단련장을 운용하고 고급 군부대 인근지역에 체력 단련장을 조성하게 된다. 물론 많은 국민들은 이해를 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미국에는 골프장이 만개도 넘고 이웃 일본에는 천개도 넘는 골프장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2~300개의 골프장이 있고, 지금 건설 중이거나 운용을 준비 중인 골프장이 500여 개가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중에서 군인들이 근무하는 부대와 관련된 체력 단련장(골프장)은 어림잡아 20여 개가 된다고 한다. 세계 200여개의 나라 중에서 우리나라만 해도 선진 경제 대국 20개의 나라 속에 들어가고 무역 수지 규모가 8~9위가 된다는 나라인데 국민들이 즐기는 500개의 골프장 중에서 공무원 , 경찰 등의 관련자들이 운용하는 다른 많은 골프장과 달리 공군 전투비행장 에 딸린 곳 10여 곳을 빼고, 해군에서 2~3곳을 운용하는 곳을 빼고 나면, 50만이 넘는 육군에서 군 간부들의 유사시 출동테세 준비 차원에서 간부들이 부대로부터 멀리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유인 효과를 위하여 운용하는 계룡대.자운대.무열대,선봉대,비승대등 6개의 골프장을 군인들이 휴가나 외출 외박시에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해를 못하는 많은 시민들은 군인들이 골프장에 출입하는 것을 탐탁하게 보지 않고 있으니 정말 안타깝게 생각될 때가 많다.
비를 맞으면서 계룡대에서 운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되었다. 38년의 군 생활을 마치고 전역한지 7년이 되었지만 나름대로 내 인생 2모작을 위하여 애를 쓰다가 오랜 친구3명과 같이 자동차로 세 시간을 달려왔는데 비는 억수로 내리고 잔디를 밟으면서 쳐다보는 계룡산 꼭대기의 통신 중계 탑을 쳐다보면 , 지금도 나라의 안위를 위하여 저 중계탑을 통하여 전국 어디든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이 천황봉 아래를 거닐면서 지나간 내 인생의 그 수많은 사연들을 생각하니 그야 말로 천사 만억이요 수수로운 나그네의 마음이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