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대를 맞고도 여배우들은 서럽다. 올들어 제작 기획중인 영화들 대부분이 남성 중심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고 영화에 전념하고 싶어도 마땅한 영화가 드물다.
전도연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전도연은 지난 가을 개봉했던 <해피 엔드> 이후 줄곧 휴식중이다. 그의 활동 중단은 여름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그가 특별한 이유를 들어 영화 출연을 삼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 안달이다. 시나리오도 쇄도하고 있다. 그러나 막상 출연작을 고르려고 하면 마땅한 작품이 없다. 그래서 자의반 타의반 휴식.
나는 카메라 앞에 서고 싶다
이는 전도연뿐만이 아니다. 예년같으면 겹치기 출연을 하고 있을 신은경 고소영 강수연 심혜진 등 내노라하는 여배우들이 다들 한가하다. 신은경은 최근 <종합병원>이후 쉬고 있는데 곧 공군영화 <블루 스카이>에 출연할 예정. 이 영화 역시 남성영화로 신은경은 영화속의 꽃 역할이다. 그래서 신은경은 최근 일본으로 무대영역을 넓히면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고소영도 올 출연키로 한 작품이 <신라의 달밤> 한편뿐이다. 심혜진은 결국 홍콩 왕가위 감독의 <2046>에 출연키로 해 활동 무대를 아시아로 옮길 수 밖에 없는 상황. 강수연은 아직 이렇다할 작품이 없다. 배두나가 아직 작품 결정을 못하고 있고 최지우도 마찬가지. <세기말>의 이재은은 TV로 옮겨 활동중이다.
왜소해지는 여배우들_ 영화의 남성화
이런 현상은 지난 해부터 떠들석한 화제를 낳았던 영화들 대부분이 남성 중심의 영화였던데서 기인한다. <쉬리>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주유소 습격사건> <태양은 없다> 등 화제작의 어느 곳에서도 여자는 작은 비중으로 격하돼 있다. <유령>에선 아예 여자가 없었다. 지금 개봉중인 <반칙왕>이나 개봉 또는 제작 준비중인 영화 가운데에서도 화제작은 대부분 ‘남성 영화’다.
여자가 큰 비중을 차지했던 영화로는 전도연의 <해피 엔드>, 심은하의 <텔미 썸딩>, 김태연의 <거짓말> 정도에 그친다.
왜 ‘남성’이 득세하나
한국 영화는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최은희_윤정희_정윤희_이미숙_강수연_최진실 등으로 이어지는 여성 톱스타의 매력에 크게 의존해 왔다. 하지만 90년대 후반 들어 여배우들이 눈에 띄게 ‘왜소’해졌다.
이는 멜러영화의 퇴조가 가장 큰 이유. 또 새롭고, 다양한 기획영화들과 블럭버스터 영화가 등장한 것도 한 이유다. 할리우드에 대항하기 위해 제작 스케일이 커지며 자연스럽게 액션 중심의 남성화 경향이 두드러진 때문이다.
이에 대해 전도연은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서는 <델마와 루이스>같은 여성영화나 여자를 중심으로 한 액션영화도 많던데…”라며 안타까움을 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