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난 주머니"(학 1:3-6)
많이 심었지만 적게 거두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물을 마셔도 흡족하지 않고, 옷을 입어도 따뜻하지 않고, 열심히 번 돈을 주머니에 넣을 수 없다면, 참으로 안타깝고 비참할 것입니다. 특히 구멍난 주머니는 그야말로 무익한 결과를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여러분이라면 구멍난 주머니에 무엇을 담을 수 있겠습니까? 그 주머니가 아무리 비싸고 아름답다고 해도, 이미 구멍난 주머니는 쓸모 없고,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누가 과연 구멍난 주머니에 돈을 담으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숙고해 보라"(학 1:5)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위가 그랬던 것입니다(학개 1:6).
그러나 주목하십시오. 이러한 어리석은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란 것입니다.
학개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어리석음, 곧 구멍난 주머니에 돈을 넣는, 어리석음을 일깨우시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하는 우선 순위와 하나님께서 정하신 우선 순위가 맞지 않았을 때, 그것은 바로 구멍난 주머니에 돈을 넣는 것과 같은 것이란 사실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살펴보기 앞서, 먼저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학개서와 같이, 소선지서에 기록된 사건들은, 거의 대부분 구약의 역사 후반부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1,500년 정도 되고, 모세로부터는 1,000년 정도, 그리고 다윗으로부터는 500년 가량 지난 후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학개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사역했던 선지자입니다. 학개 선지자는 바벨론 포로생활 70년 후에 귀환한,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며 예언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의 귀환은, B.C. 539년 바벨론 제국을 무너뜨린, 페르시아왕 코레스의 칙령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대략 50,000명 정도의 유대인들이 스룹바벨의 지도아래(학 1:1) 예루살렘으로 귀향했습니다.
자신들의 고향으로 안전하게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했던 유대인들은, 성전건축을 시작했습니다. 제단이 다시 건축되었고, 예물과 절기들이 다시 회복되었으며, 새로운 성전의 기초를 놓는 일이 완료되었습니다. 에스라 3장을 읽어보면, 이에 대한 큰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스 3:10-13 [건축자들이 주의 전의 기초를 놓을 때에 예복을 입은 제사장들은 나팔을 들고, 아삽의 아들들인 레위인들은 심벌즈를 들고 서서 이스라엘의 다윗왕의 율례대로 주를 찬양하게 하여 그들이 함께 노래하며 주께 찬양하고 감사를 드리니, 이는 그가 선하시고 그의 자비는 이스라엘을 향해 영원히 이어지기 때문이라. 또 그들이 주를 찬양할 때에 모든 백성이 큰 소리로 외쳤으니, 이는 주의 전의 기초가 놓여졌음이라. 이 전의 기초가 그들의 눈 앞에서 놓여지자 첫 번째 전을 보았던 나이 많은 제사장들과 레위인들과 족장들 중 많은 사람이 큰 소리로 울었고, 많은 사람들이 기뻐서 크게 소리지르므로 백성들이 기뻐서 지르는 소리와 울음 소리를 분간할 수 없게 되었으며, 백성이 큰 소리로 소리지르니 그 소리가 멀리까지 들리더라.]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러한 부흥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주변에 위치한 대적들의 위협과, 유대인들 가운데 두려움과 낙담과 실망으로 인해, 큰 좌절이 있었고, 주의 집, 성전을 건축하는 일은, 답보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스 4:23,24 [아탁세르세스왕의 칙서의 사본이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들의 동료들 앞에서 읽혀지자, 그들이 급히 예루살렘으로 유대인들에게 올라가서 강압과 권력으로 그들을 중단시키니,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전의 공사가 중단되어 페르시아의 다리오왕의 치리 제 이년까지 중단되었더라.]
15년 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일이 중단되었던 것입니다.
공사장에 기초만 놓은 채, 공사가 중단된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흉물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학개 선지자가 나타나기까지,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전 건축은 아직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어쩔 수 없이 지연되는 것이라고, 체념하듯 지냈던 것입니다(학 1:2).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전이 기초만 놓은 채, 버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와 그만한 사정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의 기초만 놓고, 그 이상에 대해서는 포기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공사 중단보다 더 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건축의 필요성과 의지를 갖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닙니다. 오늘날도 이와 흡사한 일들이 우리 가운데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세워진 사람들입니다. 이미 기초가 확실하고 확고하게 마련된 사람들입니다.
고전 3:11 [...이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시라.]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진리의 터전 위에, 진리의 기초 위에 세워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부분은, 기초만 세워진 상태에서 멈추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초만 놓고, 버려진 공사장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 기초 위에 건축물이 지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좋은 간증을 통해 믿음 안에서 기초를 놓지만,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멈춰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열성과 열의를 가지고 시작하지만, 더 이상 믿음으로 건축을 하지 않고, 중도에 포기하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만 놓은 채, 그 위에 아무 것도 지어지지 않고 버려진 공사장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의 전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전은, 더 이상 그 위에 건축물을 짖지 않아 버려진 흉물처럼 방치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나름대로의 이유와 변명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일은, 뒷전으로 밀려난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건축을 중단해야 했습니까? 왜 그토록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성전 건축에 대해 냉담한 태도를 가지게 되었겠습니까? 그 해답은, 오늘 본문과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학개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아낌없이 외쳤습니다(학 1:3-11).
문제는 우선 순위에 있습니다. 이런 핑계, 저런 핑계로 인해, 하나님의 일이 뒤로 밀려났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전에 대해 관심도 있었고, 성전 건축에 대해 열의도 있었지만, 방해와 외적인 압력이 있자, 차츰 하나님의 일보다, 자기 자신의 일에 눈을 돌리게 되었습니다(학 1:4).
하나님의 전은 기초만 놓인 채, 버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집을 치장하고, 지붕을 덮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학개 선지자를 통해 강력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숙고해 보라"(학 1:5,7)
오늘 본문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유익한 교훈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은,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도, 하나님의 일보다, 우리 자신의 일이 더 우선 순위에 놓여 있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의 전의 기초만 놓은 채, 자신들의 일에 바빴던 것입니다. 그럼으로 인해, 주의 전은 버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약 15년간이나 말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세워진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도 그 기초 위에 무엇인가를 세워야 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고전 3:10 [....각 사람은 그 위에다 어떻게 지을지 주의해야 할 것이라.]
기초는 이미 세워졌습니다. 이제 그 위에 무엇을 어떻게 지을지가 남아 있을 뿐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이제 그 기초 위에 무엇을 어떻게 지을지 주의하는 것이지, 아무 것도 짖지 않고, 버려져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건축물보다, 내 자신의 건축물들에 더 관심이 많은 분들이 있습니까? 주님의 일들에는 관심도 없고, 어떻게 되든 상관도 없으면서, 나 자신의 것들을 꾸미기 위해서는, 모든 시간을 사용하고, 열정을 쏟고, 돈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목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 일은 "삯을 받아 구멍난 주머니에 넣는" 것과 같은 것이란 사실입니다(학 1:6). 왜냐하면, 자신을 위해 만든, 그 모든 것들은, 이 땅에 쌓여 있는 것이지, 하늘에 쌓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 6:19-21 [너희 자신을 위하여 땅에다 보물을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이나 녹이 해치며, 또 거기는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서 도둑질하느니라. 오히려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하늘에다 보물을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녹이 해치지도 않으며, 또 거기는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 마음도 있느니라.]
또한 그러한 자신을 위한 일들은, 나무나, 짚이나, 그루터기로 발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전 3:11-15 [이 닦아 놓은 기초 외에 아무도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시라. 이제 누구든지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짚이나, 그루터기로 지으면, 각 사람의 일한 것이 나타나게 되리니, 그 날이 그것을 밝힐 것이라. 이는 그것이 불로써 드러나고, 또 그 불은 각 사람의 일한 것이 어떤 종류인지를 시험할 것이기 때문이라. 만일 어떤 사람의 일한 것이 세운 그대로 있으면, 그는 상을 받을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의 일한 것이 불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당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게 되지만 불에 의해서 그렇게 되리라.]
다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그들이 자기 집을 짓고, 지붕을 덮는 일은 잘못된 일이거나, 죄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주 하나님께서 "너희의 행위를 숙고해 보라"고 경고하고 계시는 것입니까? 문제는 우선 순위입니다.
당시, 하나님의 전은 기초만 놓인 채,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습니다. 성전이 그대로 방치되었고,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끄러운 생각도 없이 그저 자신들의 일에 대해서만 시간을 들이고, 힘을 썼고, 돈을 들이며, 집중했던 것입니다.
우선 순위는, 오늘날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집안 일을 돌보고, 돈을 벌고, 저축하고, 사업에 투자하고 이러한 일들이 잘못되거나, 죄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일해야 하며, 가정을 돌보고, 사업도 하고, 저축이나 투자도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선 순위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간음이나 우상숭배와 같은 드러나는 죄는 짓지 않습니다. 또한 시간을 악한데 사용하거나, 사업이나, 재산, 혹은 우리 몸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리스도인의 우선 순위입니다. 그 어떤 것이 되었든,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보다 앞서게 되면, 그것은 분명히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숙고해 보라"
우리는 우리의 우선 순위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과연 나의 최우선의 위치에 하나님의 일이 있는지, 아니면, 나만의 일이 있는지 말입니다.
학개 선지자의 시대에 최대의 비극은 하나님의 전이 잊혀졌다는 사실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손해보는 일들에 열중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우선 순위가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부시려고 했던 축복을 보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늘은 이슬을 내리지 않았고, 땅의 소산물들은 나지 않았습니다(학 1:10,11). 백성들은 많은 시간을 드렸고, 많은 수고를 하였지만 초라하게 거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구멍난 주머니에 돈을 쏟아 부은 꼴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선 순위를 바르게 세우지 않고, 또한 하나님의 전을 버려둔체, 자신들의 일에만 매달리게 되면, 구멍난 주머니와 같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관심사보다 나 자신의 관심사에 더 많이 집중할 때, 우리의 손실은 분명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들이 나무나, 짚이나, 그루터기와 같기 때문입니다.
비록 일시적으로는 이익이 있고 번영과 즐거움이 있을 수도 있지만, 잘못된 건축물은 반드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선 순위가 잘못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무엇을 짓고 있습니까? 우선 순위가 바르게 정해진 건축물들은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선 순위가 잘못된 것들은 다 타버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시간을 투자하고 땀을 흘리고 열정을 가지고 하는 일들이 구멍난 주머니에 쏟아 넣는 일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을 우선 순위에 두고, 어떤 일이든 하십시오. 그보다 확실한 투자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삯을 구멍난 주머니에 넣지 않는 방법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어렵거나, 복잡하거나, 모호하지 않습니다. 단순하고, 직접적이고 체계적으로 제시하셨습니다.
학 1:8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집을 건축하라.]
해결책은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는 의외로 단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면 되는 것입니다.
학개 선지자의 말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은 긍정적이고 즉각적이었습니다.
학개 선지자의 설교의 결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 앞에서 두려움이 회복되었고, 영의 변화가 있었으며, 하나님의 집을 다시 건축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학 1:12-15).
극적인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오늘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얼마든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마음의 새롭게 함으로, 진리의 기초 위에 건축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학개서 2장을 통해, 우리는 성전이 완성될 때까지 학개 선지자의 사역이 지속되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백성들은 미래에 대한 약속으로 크게 위로를 받았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권면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에스라 6:15에서 성전이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4년이라는 기간이 걸렸다는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4년이라는 시간은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축복의 시간이었던 것입니다(학 2:19).
왜 그렇습니까? 그들의 우선 순위가 바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버려지고 흉물스럽게 방치되었던 하나님의 집, 기초에 하나님의 집을 건축했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멍난 주머니에 돈을 넣는 일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저와 여러분에게도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너희의 행위를 숙고해 보라."
만일 여러분이 하는 일들이 구멍난 주머니에 돈을 넣는 일이라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하늘에 쌓이지 않는 모든 땅의 일들이 그렇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기초 위에 세워지는 모든 육신적인 일들이 바로 구멍난 주머니에 돈을 넣는 일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해야 합니다.
기초 위에 집을 지으십시오. 진리의 기초 위에 우리의 행위의 집을 지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자신들을 위해 15년간이나, 성전 재건이 방치되었듯이, 지금 여러분의 건축물이 지어지지 않고 있다면, 다시 지어야 합니다. 멈춰 있으면, 그곳에는 죽은 나무와 잡초와 그루터기 그리고 쓰레기만 무성하게 쌓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