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이어 빌레몬서를 여러분들에게 설교하겠습니다. 한 가정의 실제적인 문제를 통해서 용서의 정신을 너무나도 아름답고 감동 있게 설명해 준 책이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전에 말씀드렸지만 빌레몬의 집은 골로새에 있었고 골로새 교회는 그의 집에서부터 출발되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집에는 오네시모라고 하는 종이 있었습니다. 빌레몬은 훌륭한 주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네시모는 자유를 누리고 싶어서 빌레몬의 돈을 훔쳐 로마로 도망을 갑니다. 가기서 바울을 만나게 되었고 복음을 듣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이 됩니다. 완전히 옛날의 오네시모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옥바라지도 해 주며, 궂은 일들을 도맡아 해 줍니다. 바울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후에 안 일이지만 바울은 오네시모가 자기와 안면이 있는 빌레몬의 종인 줄 알고 오네시모를 주인 빌레몬에게 보내 줍니다.
한 장의 편지를 써 줍니다. 그것이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그 내용은 여러분들이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오네시모를 용서해 주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모든 잘못을 용서 해 주고 따뜻하게 맞이해 주라는 것입니다. 전에는 종이었지만 이제는 동역자요! 형제로서 대해 주라고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빌레몬은 바울의 권면을 달게 받고 오네시모를 용서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하나님의 동역자로 받아 줍니다.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대선 공동체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편지를 쓸 때에 바울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1. 사도 바울은 편지를 감사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4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리 급한 말이 많고 해야할 일이 많아도 첫째가 감사라고 하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감사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감사의 말을 해야지 상대방이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래야 설득력이 있고, 효과도 있습니다. 그러나 불평하고 원망하는 마음으로 말하면 상대방은 감정을 상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감동을 주지도 못하고 효과도 없습니다. 감사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항상 감사했습니다. 지금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감옥 밖에서 감사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감옥 안에서 감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1968)는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삼중고의 장애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난과 역경에 쓰러지지 않고 믿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극복했습니다. 그는 건강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대학에 들어가서 당당히 우등생으로 졸업했습니다. 많은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는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그는 88세까지 장수했습니다. 그가 노년에 이르렀을 때 한 신문기자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보통 사람들이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고통 속에서 일평생을 살아왔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따금씩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신 적은 없습니까?" 그때 헬렌 켈러는 단호히 말했습니다.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찌 하나님을 원망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는 임종 때에 이렇게 이야기를 했답니다. "아! 참으로 나의 인생은 아름다웠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늘 감사하면서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바울은 진실 된 감사를 드렸습니다. 지금 바울이 누구 앞에서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까?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감사 드리고 있습니다. 진실 된 감사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 앞에서의 감사는 진실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마음에 없는 거짓된 감사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 앞에 감사하거나 칭찬할 때는 그것이 진실 되지 않은 마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바울은 하나님 앞에서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 된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바울은 자기 때문에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바울은 빌레몬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그저 내게 무엇이 들어와야, 내가 잘되어야 감사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감사는 나 자신을 생각할 때도 감사해야 하겠지만 다른 사람이 잘될 때 그것으로 인해서 감사할 수 있는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제 경로잔치를 하면서 며칠 전부터 각자 맡은 일들을 열심히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선교회의 담임목사로서 저는 여러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삶은 감사의 삶이셨습니다. 심지어는 죽은 지 사흘이나 된 나사로의 무덤가에서도 먼저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감사는 무엇 때문에 감사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입니다. 우리도 이 감사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부디 항상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진실 된 감사를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그 누구를 생각 할 때마다 감사하시는 감사의 폭이 넓어지시기를 바랍니다. 때문에 감사하는 것도 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를 개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바울의 편지 내용은 칭찬입니다.
오늘 말씀드리는 이 본문은 하나님께는 감사입니다. 그러나 빌레몬의 입장에서 보면 칭찬입니다. 우리가 남을 칭찬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은 훌륭하십니다. 멋있습니다." 이렇게 막연하게 말하는 것은 아첨 성이 농후합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이래서 훌륭하십니다. 저렇기 때문에 훌륭하십니다." 그 이유를 밝히면 정당한 칭찬이 되는 것입니다.
빌레몬은 바울 때문에 예수를 믿게 된 사람입니다. 때문에 빌레몬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빌레몬을 가리켜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이라고 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칭찬도 듣기가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칭찬 거리가 없는 상태에서 그 사람에게서 칭찬 거리를 개발하여 진실 되고 참되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칭찬하는 것이 실력입니다. 이런 실력들이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또 23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지금 바울 곁에는 에바브라가 있습니다. 여러분, 에바브라가 누구입니까? 골로새 교회의 초대 담임목사입니다. 골1:7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군이요." 사실 빌레몬은 에바브라 목사를 통하여 성경을 배웠고 신앙의 법도를 배웠고, 삶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골로새 교회의 초대 목회자였던 에바브라가 지금은 로마에 있습니다. 바울은 에바브라를 통해서도 빌레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에바브라가 로마로 가고 나서는 빌레몬의 아들인 아킵보가 이어 골로새 교회의 목회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무엇을 칭찬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칭찬의 대상은 모든 성도들입니다. 그리고 칭찬의 내용이 두 가지로 나오고 있습니다. "사랑과 믿음"입니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의 대상은 예수님이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무엇입니까?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을 믿으면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사랑의 대상입니다. 사랑의 대상은 모든 성도입니다. 사람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요, 사랑의 대상입니다. 골1:4절의 말씀을 읽겠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즉 믿음은 예수님과 연결이 되어있고, 성도는 사랑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또 엡1:15절도 함께 읽겠습니다.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그러면 지금 바울이 칭찬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빌레몬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칭찬하는 것입니다. "빌레몬아, 네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깊고 모든 성도에 대한 너의 사랑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나는 오네시모를 통해서 또 에바브라를 통해서 이미 잘 알고 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 것처럼, 이제는 너도 너의 종 오네시모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고 그를 따뜻하게 영접해 주리라. 그렇게 할 줄 나는 믿는다" 이러한 의도로 지금 사도 바울은 빌레몬을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칭찬은 빌레몬의 믿음의 교제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6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나는 나, 너는 너, 나 혼자만 잘 믿으면 된다."그런 것이 아닙니다. 빌레몬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따뜻했습니다. 그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외로운 사람이 있으면 친구가 되어주고 먼저 가서 인사하고, 어려움을 당하면 같이 짐을 나누어주고, 기쁜 일이 있으면 같이 기뻐해 주는 사랑의 마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따뜻한 마음으로 이제는 너의 종 오네시모도 영접해 주기를 바란다." 바울은 이러한 뜻으로 빌레몬을 칭찬했던 것입니다.
셋째 칭찬은 그리스도인 다운 삶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라고 합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빌레몬의 삶을 통해서 기독교인이 실천해야 할 선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 그리스도인들은 저렇게 살아야 되는구나! 저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선이구나!" 빌레몬의 삶을 통해서 성도들이 깨닫게 된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오네시모가 온 것을 골로새 교인들이 다 보고 있습니다. 오네시모가 어떤 죄를 빌레몬에게 진 것도 골로새 교인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큰 죄인이라고 하는 사실도 압니다. 오네시모는 당시의 법으로는 죽어야 합니다. 아니면 그 이마에 도망자라고 하는 뜻의 'F'(Fugitivus)자를 잔인하게 이마에 짖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오네시모를 빌레몬이 형제라고 하면서 끌어 않습니다.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영접합니다. 그것을 성도들도, 이웃 사람들도 다 봅니다. 그리고 깨닫습니다. "아, 저것이 기독교의 사랑이구나! 저것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용서의 정신이구나!, 아! 그리스도인들은 저렇게 사는 것이구나" 얼마나 칭찬 할만한 일입니까?
넷째 칭찬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그 모습을 칭찬하는 것입니다. 6절 하반 절을 보면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 우리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어도 주를 위해서 죽고, 살아도 주를 위해서 사는 존재입니다. 이제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 할 때에 예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예수님이 기뻐하십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칭찬은 빌레몬은 성도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칭찬하는 것입니다. 7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으니 내가 너의 사랑으로 많은 기쁨과 위로를 얻었노라" 얼마나 놀라운 칭찬입니까? 빌레몬은 성도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해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실 말 한마디 잘 못해서 이웃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많은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단지 말 한마디입니다. 그것 때문에 상처를 받고 심하게는 원수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하기에 앞서 좀 더 깊이 생각을 하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사람이 아니라 이웃의 마음에 평안함을 끼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빌레몬을 다섯 가지로 칭찬했습니다. 그에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믿음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선을 실천함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었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씀을 맺으면서 우리도 바울처럼 칭찬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돈 드는 것도 해야 하는데 돈 안 드는 칭찬에 인색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빌레몬처럼 칭찬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남에게 책망을 받고 남을 불안하게 만드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칭찬 듣는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성도들이 이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면 주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는 것은 말 할 것도 없고 주의 종들에게도 큰 기쁨과 위로를 주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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