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14장까지 하기가 시간적으로 부담이 되서~ㅠ
일단, 계시록 13장을 먼저 올립니다.
바다 괴물에 대한 세부 묘사는 다니엘 7장에서 유래합니다. 여기서는 그 특성이 권력과 사악함의 두려운 통일체 안에 결합되어 있습니다. 표범은 잔인함과 교활함을, 곰은 힘을, 사자는 맹렬함을 상징합니다(1-2절). 짐승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았다’는 것은 황제들 가운데 하나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음을 시사합니다. 이는 아마도 네로 황제를 말하지 않나 싶습니다. 네로 황제는 주후 68년에 자살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나서 로마에 대항하는 동방의 권력을 이끌고 복귀할 것이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3절/조지 비슬리 머레이).
4-7절에서 세상은 마귀(용)과 적그리스도(짐승) 모두를 경배합니다. 후자에게는 ‘과장되고 신성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즉, 환난 기간) 일할 권세를 받습니다.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7절)를 포함하는 권세를 용이 주었습니다. 그러나 ‘마흔두 달’이라는 한계는 하나님이 정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 적그리스도의 행위를 통제하는 것은 신적인 허용입니다. 짐승들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입니다. 참 신자들은 자기들의 영혼이 어린 양의 책에 의해 안전하므로 사탄의 폭풍을 무사히 헤쳐 나갈 수 있음을 확신하지만, 짐승들에게 충성하는 자들은 그리스도가 그들을 짐승들의 속임으로부터 영적으로 보호하지 않으십니다(8절).
들을 귀가 없는 사람들은 권면을 받고도 마음이 더 완악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귀를 사용하라는 명령은 참 신자들에게 다수 사람들이 현실에 타협하여 안주하며 살고있는 상태에 대해 정신이 번쩍 들게 하려는 의도로 주어졌습니다. 신자들은 그러한 박해가 그들을 타협하게 만들려는 마귀의 의도라는 사실을 아는 까닭에(9절) 믿음에 더 굳게 서야 합니다.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10절), 이 문구는 성도들의 충성이 짐승이나 그 우상에 경배하지 않는 것임을 주장합니다. 계시록에서 사람들과 관련해 ‘믿음’이나 ‘충성된’이라는 표현은 전부 다 박해에 직면하여 인내하는 믿음과 관련됩니다(그레고리 비일).
11절의 두 번째 짐승은 ‘어린 양같이 두 뿔’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짐승은 사악한 마귀의 말을 합니다. 이 짐승이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였다’는 것은 그 짐승이 황제를 신으로 섬기는 황제 숭배의 제사장직과 그것을 지지하는 정치 권력을 표상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 짐승은 나중에 ‘거짓 선지자’로 불립니다(16:13; 19:20; 20:10). 첫 번째 짐승은 한 개인으로서 적그리스도 안에 구현된 반기독교적인 제국을 상징하는 데 반해, 이 이교적인 제사장은 마귀적인 일을 지휘하는 우두머리로 표현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12절/조지 비슬리 머레이). 이교의 제사장들은 하늘에서 내리는 것이라고 하면서 불을 내뿜고, 복화술을 이용해서 우상이 말하는 것처럼 하는 속임수를 쓰는 데 거리낌이 없습니다(13-15절).
16-18절에서 비그리스도인의 이마에 찍은 짐승의 표는 그리스도인에게 찍은 하나님의 인의 복사판입니다(7:1-8).
둘 다 하나님이든 마귀든, 어떤 한 개인에 대한 충성을 표시합니다. 모든 자가 짐승의 표를 받도록 한다는 것의 즉각적인 효과는 그 표를 거절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추방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순응하지 않는 자들에게 죽음이 임함과 더불어, 교회에 대한 국가의 경제적인 전쟁을 낳습니다(17절). 그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고 표기됩니다(18절). ‘짐승의 이름 또는 그 이름의 수’는 666입니다. 숫자 666이 짐승의 이름을 나타내는지, 아니면 그 이름의 수를 나타내는 지, 666의 정체와 의미를 둘러싼 일반적인 불일치로 인해 계시록 전체에서 가장 논쟁적인 구절 중 하나입니다. 어떤 학자들은 666을 네로와 동일시하려고 시도해 왔고, 또 어떤 학자들은 율리우스부터 베스파시아누스에 이르기까지 황제들의 이름의 첫 글자의 숫자적 가치를 더하면 666이 된다는 것도 있습니다. 666의 이해에 대한 해설은 다른 주석들을 더 참조해야 될 듯 합니다. 하여튼 성도들은 환난의 마지막 때의 사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영적인 통찰이 필요한 듯 합니다.
오늘도 깨어 기도하며, 오직 주의 은혜 가운데 거할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첫댓글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죽게 되었다가 살아나고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어린 양 같은 모습으로 큰 이적을 행합니다. 모두 예수님이 연상됩니다. 사람들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표를 받는 것도 하나님이 144,000명의 이마에 인친 것과 비슷합니다. 용과 바다짐승, 땅짐승의 역할도 하나님과 예수님, 선지자와 비슷합니다. 하나님을 비슷하게 흉내낼수록 속기쉬워서 더 위험해 보입니다.
사탄의 무리가 큰 권세와 이적으로 사람들을 우상숭배로 이끌고 반대하는 자들은 다 죽이도록 하는 13장만 보면 사탄이 승리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어진 14장을 보면 믿음을 지킨 자들은 하나님 보좌 앞에서 찬양을 부르며 하나님을 거부한 자들은 심판을 받고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것입니다.(14:9-10) 우리에게는 그 진노의 잔을 대신마신 예수님이 계셨지만 복음을 거부한 자들은 스스로가 그 잔을 마시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탄은 결국 패배할 운명입니다. 하나님을 흉내내며 마지막까지 사람들을 현혹할 사탄이지만, 가짜를 구별해낼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진짜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아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표는 이적과 같은 능력이 아니라 인내와 사랑과 같은 것이리라 생각해봅니다.
진짜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아는 것! 아멘입니다.
그렇습니다. 인내와 사랑! 이 시대에 믿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신앙 덕목들인 줄로 믿습니다.
인내와 사랑으로 늘 승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진짜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있기를 간구합니다
아멘입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잘 받을 수 있도록 늘 말씀의 지배를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고난과 박해속에서 인내하며 믿음을 지켰던 신앙의 선조들을 생각해 봅니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볼수있는 믿음을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날 너무나도 좋은 환경속에서 지내면서 신앙의 길을 걸을수 있게 하심을 또한 감사드립니다.
보이지 않는 가운데 볼 수 있는 믿음!
늘 영적인 눈이 뜨이고, 영적인 귀가 열리고~
또한 가난한 마음으로~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제대로 볼 수 있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