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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엘리사를 버린 게하시[2]
말 씀 열왕기하 5장 20-27절
세상에는 인구가 많은 만큼 사람의 인생 또한 다양합니다.
하나님을 몰라도 평생을 부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면서도 평생 가난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모은 물질을 타인이 쓰는 사람이 있는 하면, 생각지도 않게 악한 자를 만나 힘든 인생을 사는 사람도 있고, 선한 자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피해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80인 인생길에 다양한 환경과 사람을 만났을 때 여러분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은 하늘과 땅처럼 달라질 것입니다.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 어려움도 있지만 본인의 선택에 의해서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올바른 기준을 가지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배우지 못해서 바른 선택을 하지 못할 수도 있고, 올바로 배웠으면서도 감정의 기복이 심해서 일을 망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젊어서는 원치 않게 굽은 인생을 살아온 사람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붙들고 앞선 자를 따라 선한 인생을 만들어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순간의 선택이 오솔길처럼 안락한 인생을 만들 수도 있고, 빠져 나올 수 없는 진흙탕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늘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 인내는 잠깐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그 순간까지 인내해야만 하나님과 사람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을 대해 보면 선한 길로 이끌어주려고 노력해도 고무줄에 매달린 공처럼 묶여 있던 처음 자리로 도로 돌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결국 자기가 만들었던 잘못된 시간과 감정과 이성과 의를 버리지 못해서 처음자리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를 다시 이끌어 준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모르고 지은 죄보다 알고 지은 죄가 더 나쁘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말씀을 배우고, 말씀의 달콤함을 알면서도 다시 세상의 자리로 돌아가는 사람은 말씀을 모르는 사람보다 더 악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의를 버리고 거듭나려는 생각보다 말씀을 지식으로 많이 배워서 자기의 믿음을 인정받겠다는 생각이 더 강하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는 겸손함을 보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세상을 좋아해서 죄를 짓는 사람들을 버리신 것처럼 악한 그릇은 깨는 것도 새로 만드는 것도 힘이 듭니다.
작은 그릇이라도 깨끗한 것이 훨씬 사용하기 좋은 것입니다.
선한 말씀을 듣고 그리스도의 길로 가기 위해서 자신의 의를 버리는 사람들을 보면 인간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존경스럽기까지 합니다.
여러분은 문제를 만났을 때 성경에 이와 비슷한 사건이 있는지 생각해보고, 앞선 믿음의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했는지 그대로 살아보려고 노력한다면 말씀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공중권세를 잡은 자는 사단이기 때문에 거듭난 성도나 거듭나지 않는 교인이나 세상의 유혹을 동일하게 받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틀을 깨기 위해서 세상과 사단은 끊임없이 영혼들을 공격하기 때문에 인내와 소망을 동시에 갖고 있지 않으면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여러분도 믿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할 때면 꼭 혈기 나는 일이나 낙심하는 일이나 생각지도 못한 세상의 좋은 일들을 만났을 것입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는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통해 내가 무엇을 깨닫기 원하시는 생각해 봐야 하는데, 생각을 하기도 전에 혈기를 먼저 내는 사람의 인생은 반드시 굽은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혈기는 사단이 가장 좋아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사람이나 세상을 향해 혈기를 쉽게 내는 사람의 끝은 좋지 않습니다.
또 문제를 만날 때마다 근심하고 낙심을 먼저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보다 자기의 생각이 더 지혜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상의 길이 보이지 않을 때마다 근심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한 인간의 종말이든 세상의 종말이든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서기 때문에 영벌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인생의 목적을 바르게 알고 살아야만 심판을 피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마지막 날 구원의 목표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므로 근심이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상의 일이 생각보다 잘 열린 경우에 내가 믿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지혜와 축복을 주셨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직도 성숙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보다 자신을 더 높이려는 마음이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원하면 무엇이든지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응답을 받은 여러분이 어떤 마음으로 그 은혜를 담느냐에 따라서 그 응답이 상급이 되기도 하고 책망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좋은 환경과 선한 사람을 만나게 하셨거든 더 많은 구원의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생각으로 겸손히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이 지혜입니다.
성경은 배워서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 말씀을 삶에 녹여내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교회를 설립하고 얼마 안되었을 때 한 청년이 성경을 배우고 싶다고 왔는데 그 청년이 하는 말이 자기가 성경을 배우는 것을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자기 교회가 아니기 때문에 소문이 나는 것이 걱정이 돼서 그런가 보다 생각해서 그러겠다고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배운 말씀을 가지고 자기교회에서 자랑하는데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말씀을 많이 배워도 하나님과 전혀 상관 없이 교만의 죄만 쌓는 것입니다.
제가 성경 가르치는 것을 거절하자 제가 구원파라는 말을 하며 험담하고 다닌다는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저와 그 청년의 믿음의 길은 전혀 다를 것입니다.
한 영혼에게 말씀을 가르치며 그가 하나님을 섬기며 기쁨으로 살도록 도와주었던 저와 그 말씀을 이용해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려던 그 청년은 하나님앞에서 한 길을 갈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과 말씀은 자기를 높이기 위해서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영생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두려움을 가지고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만 구원과 상급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열왕기하 4장 31절 게하시가 그들보다 앞서 가서 지팡이를 그 아이의 얼굴에 놓았으나 소리도 없고 듣지도 아니하는지라 돌아와서 엘리사를 맞아 그에게 말하여 아이가 깨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게하시는 항상 엘리사의 곁에 있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엘리사를 만났는지 확실하게 알 수 없지만 게하시는 다른 사람보다 훨씬 엘리사의 마음과 믿음을 잘 알 수 있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게하시를 많이 의지했을 것입니다.
그는 엘리사가 엘리야의 능력을 칠배나 받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으며 하나님만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를 조롱했던 아이들이 사십명이나 암콤에게 습격을 당해 죽은 사건도 알고 있었고, 선지생도들이 독에 의해서 몰살당할 위기에 있었을 때 가루 한 웅큼으로 해독한 사건도 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바알 살리사에서부터 보리떡 이십개와 채소를 가지고 왔을 때 엘리사가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백명이 넘는 무리에게 떡과 채소를 나누어 주어 먹게 한 놀라운 기적도 보았습니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능력을 얼마나 많이 받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기적을 통해 보았고, 영혼들을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스승을 모신 것에 대해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며 기뻐하기도 했습니다.
엘리사가 수넴에 갈 때마다 그곳에 사는 믿음의 여인이 엘리사에게 식사를 대접하고는 했는데 여인은 엘리사가 쉴 곳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쉴 수 있는 방을 자기의 집에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 마음이 너무 감사했던 엘리사는 여인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게하시에게 물었고, 자녀가 없는 그녀를 위해 기도하여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여인이 아들을 낳았을 때 게하시는 엘리사의 능력에 감탄했고, 믿음의 사람인 엘리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습니다.
엘리사가 기적을 베풀 때마다 게하시는 믿음의 사람 곁에 있는 것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위대함에 더 겸손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게하시의 마음은 언제나 나도 엘리사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직접 베풀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이런 게하시의 생각은 훗날 그가 취한 행동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게하시가 만약 믿음으로 엘리사를 도왔다면 모세를 극진히 섬겼던 여호수아가 받았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수넴여인이 낳은 아들이 갑자기 죽는 일이 발생했을 때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지팡이를 주면서 아이의 얼굴에 지팡이를 놓아보라는 놀라운 지시를 했습니다.
그만큼 엘리사가 게하시를 믿고 사랑했다는 증거입니다.
물론 아이를 살리는 능력을 보이지는 못했지만 엘리사가 그에게 일을 시키고 있다는 것은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엘리사처럼 당장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해도,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지 못해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고 나아간다면 언젠가 믿음의 그릇에 은혜가 넘쳐 흘러서 그 역시 엘리사와 같은 기적을 베풀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엘리사와 똑같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데 왜 나는 기적을 행하지 못하느냐는 불평으로 그의 마음을 채웠습니다.
게하시는 엘리사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도록 돕기만 해도 엘리사와 동일한 상급을 하나님께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달란트와 다섯달란트를 받은 사람에게 동일하게 상급을 주신 것처럼 게하시에게 엘리사와 동일한 상급을 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게하시는 엘리사처럼 드러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엘리사가 사람들에게 받는 존경을 내가 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생각이 그를 사망으로 이끌고 간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능력만큼, 받은 달란트만큼 하나님의 일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는 사람이 바로 지혜로운 사람이며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집을 지을 때 석가래도 필요하고, 기둥도 필요하고, 창문을 만드는 작은 못도 필요한 것입니다.
모두 다 석가래가 되겠다고 하고, 기둥이 되겠다고 하면 사람들이 드나들 문과 창문이 없어서 집은 쓸모 없어 질 것입니다.
석가래를 올리고 기둥을 세운 집에 창문을 만들기 위해서는 작은 못도 필요하고, 작은 나무들도 필요한 것입니다.
자기가 맡은 일이 작은 일이라 할지라도 최선을 다해서 사명을 감당할 때 아름다운 집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멋지게 만들어진 집을 보는 사람들은 석가래가 멋있다는 둥, 기둥만 멋있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집 전체를 보면서 어우러진 멋진 모습에 감탄하며 칭찬하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기적을 베푸는 일을 감당했다면 게하시는 엘리사가 다른 곳에 신경 쓰지 않고 더 많은 일을 감당하도록 배려해주는 일을 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당한 일의 크기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지 보고 계시기 때문에 모두의 상급은 같은 것입니다.
열왕기하 5장 20절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가지고 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하고
엘리사가 가진 믿음은 하나님의 뜻과 동일한 영혼구원입니다.
하지만 게하시가 품고 있는 믿음은 세상적인 것이며, 자기의 이익을 위한 신앙이기 때문에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어느 날 아람의 군대장관인 나아만이 문둥병을 고쳐 달라고 엘리사를 찾아 사마리아로 왔습니다.
엘리사는 그에게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번 씻기만 하면 회복될 것이라는 이해하지 못할 말을 던졌습니다.
육을 위해서 살았던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의 말을 이해할 수도 없었고, 장군인 자신을 천대하는 것 같아서 분노했지만 다른 대안이 없어서 순종해 보았더니 놀랍게도 문둥병이 치료되었습니다.
인간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이렇게 큰 복입니다.
아람에서 사마리아까지 온 그의 작은 믿음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의 병을 깨끗하게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작은 믿음일지라도 하나님을 찾기만 하면 온전케 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엘리사가 나아만장군을 치료할 때 게하시는 그저 곁에 서 있었습니다.
나아만장군이 문둥병을 치료받았을 때 그는 우쭐한 기분도 들었고, 이 일로 인한 대가를 기대하기도 했습니다.
문둥병을 치료받은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은 십달란트와 금 육천개와 열벌의 옷을 주고 싶다는 말을 했지만 엘리사는 나아만의 영혼을 구원하는데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의 호의를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게하시는 엘리사가 거절하는 것을 보면서 스승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아만장군이 주는 것을 받아서 하나님의 일을 더 많이 감당하면 될 것 같은데 왜 거절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가끔 게하시와 같은 말을 하고는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물질의 복을 주시면 하나님을 위해서 쓰겠다는 말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이 있는 것처럼 행동을 합니다.
좋은 믿음이 있기 때문에 축복을 받았다는 정당성을 만드는 것입니다.
나아만이 주는 예물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한 게하시는 예물을 가지고 돌아가는 나아만을 뒤쫓아갔습니다.
죄 된 마음으로 쫓아가는 자기의 행동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서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죄를 가리기 위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을 보면 인간이 얼마나 악한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하나님께서 물질을 넘치도록 채워주시면 하나님의 일을 위해 그 물질을 사용하시겠습니까?
그럼 잠깐 여러분께 큰 재물이 생겼다고 생각하시고 가장 먼저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기의 뒤를 쫓고 있는 게하시를 본 나아만은 수레에서 내리며 기쁜 마음으로 그를 영접하면서 웬일이냐고 물었습니다.
병을 치료받은 나아만은 엘리사는 물론 그의 곁에서 시중을 들고 있던 게하시에게도 깍듯하게 섬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람의 장군이 엘리사의 사환인 게하시를 맞기 위해서 수레에서 내리는 겸손을 보이는 것은 나아만 장군이 처음부터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만한 큰 그릇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동 하나를 보면 그의 그릇을 가름해 볼 수 있습니다.
게하시는 엘리사의 곁에서 나아만보다 훨씬 더 많은 기회와 축복을 받았지만 그는 인간의 정욕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고, 엘리사에게 버림을 받았습니다.
게하시는 엘리사가 보냈다는 거짓말을 하며, 은 두달란트와 옷 두벌을 받아가지고 자기의 집 깊은 곳에 숨겼습니다.
거짓말까지 해가며 굳이 거짓된 행동을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원하는 만큼 채워주셨을 텐데 인내하지 못해서 스스로 자멸하고 만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다는 말이 거짓임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세상을 살아가도록 채우시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대신하여 생명으로 대속하며 사랑으로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그리스도를 절대로 배신하지 마시고 큰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열왕기하 5장 25절 들어가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하니 대답하되 당신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만약 게하시가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아만에게 은과 옷을 받는 죄를 지었다고 말을 했다면 엘리사는 그를 위로하며 은과 옷을 주었을 것입니다.
순간적인 유혹에 넘어질 수 있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게하시는 엘리사의 눈을 보면서 끝까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에 앉아서 아람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빠짐없이 알고 있는 엘리사를 속이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속이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보고 계신 것을 엘리사에게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거짓말로 게하시는 구원에서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나아만이 수레에 내려 너를 맞을 때 심령이 감각되지 않았느냐고 물었습니다.
게하시가 한 행동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엘리사는 하나님이 두렵지 않았으며, 나와 헤어지는 것이 두렵지 않았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화인 맞은 심령처럼 게하시의 마음은 이미 죄로 무뎌져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내가 실로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그들과 함께 있다는 말을 한 것처럼 성령께서는 한 분이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을 속이는 것은 자체가 죄인 것입니다.
기도는 성령께서 함께 동참해주시기 때문에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여러분 곁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있거든 그를 속이려는 어리석은 행동이나 거짓말은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결국 게하시는 나아만이 그토록 치료받기를 원했던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물질과 자신의 영생을 바꿔버린 게하시는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고, 자기뿐 아니라 자손들에게까지 그 문둥병의 저주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속지 않으시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도 속일 수 없습니다.
기도하시는 부모님과 영혼을 세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목회자와 구역장을 속이는 것은 아주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을 쉽게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의 곁에서 여러분의 믿음을 돕는 사람들이 있거든 인간의 생각대로 대하지 말고 두려움을 갖고 하나님을 대하는 것처럼 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을 통해 영혼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며, 사람을 통해 믿음을 성장시키고, 환경을 통해 신앙을 달아보시기 때문에 늘 긴장하고 두려운 마음을 갖기 바랍니다.
탐욕 때문에 엘리사를 버리는 것은 곧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버리는 악함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망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주셨지만 우리는 여전히 세상을 살아가는 수단으로 주님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나아만처럼 한번의 은혜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과 게하시처럼 많은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는 것은 본인의 선택입니다.
구원의 기회는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지지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은 여러분의 몫이므로 신중하게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언제나 그리스도와 엘리사의 곁에서 믿음으로 사는 성도로 사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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